폭탄 (3)
해링턴 대표는 고기를 참 좋아한다.
체격이 좋은 분이니 그만큼 많이 먹는 거겠지.
내게 와인을 권유한 대표의 입에서 먼저 나온 건 S.솔리드의 숙소 상황이었다.
“본래 식사 중에 무거운 이야길 하는 걸 좋아하진 않지만 오늘은 그 이야길 하려고 자넬 불렀네. 다소 불편하더라도 이해를 부탁함세.”
“예.”
“며칠 전에 감독이 나한테 전화를 하더군. 자네가 재계약을 하지 않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게 사실이냐고 말이야. 나는 사실이라고 했어. 처음부터 그런 계약 조건이었다고 말이야. 그랬더니 감독은 조금 화가 난 눈치였지.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며 말이야. 물론 감독 입장에선 중요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셈이니 화가 날 수도 있겠지.”
대표는 잠시 창밖의 야경을 응시하더니 말했다.
“숙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야긴 존을 통해 전해 들었네. 감독이 트집을 잡아 자네를 괴롭힌 이야기들, 선수 간 화합이 무너졌단 이야기도 말이야.”
“죄송합니다.”
“아니야. 자네에게서 죄송하다는 이야길 듣고 싶어서 부른 게 아니야. 오히려 내가 미안하군. 감독이 그렇게까지 나온 건 내게 책임이 있거든.”
통화할 당시 감독은 제법 강한 어조로 이번 일에 나서지 말아줄 것을 부탁했다고 한다.
“그가 말하길 내년에도 남아있는 건 자신과 코치, 그리고 선수들이니까 이 문제를 지금 해결해야 한다고 했어. 궁금했지. 대체 일을 어떻게 해결할지 말이야. 그래서 알아서 하라고 했네.”
대표의 알아서 하라는 발언이 감독이 나를 몰아붙이게 된 배경이었다.
“음. 오해하지 말고 듣게. 감독의 말은 틀리지 않았어. 내년에 남아있을 사람들은 그를 비롯한 선수들이니까. 그런데 이런 식으로 흘러갈 줄은 꿈에도 몰랐지. 아마 감독 생각과 내 생각이 많이 달랐던 모양이야. 나는 정한솔이라는 친구를 팀을 위해 헌신한 최고의 선수라고 생각했어.”
“감사합니다.”
“감독은 아니었던 모양이야. 선수를 팀을 위한 부속품 정도로 생각하지 않았더라면 도저히 이렇게 할 수 없었을 텐데 말이지.”
입가를 닦아내는 해링턴 대표는 누가 봐도 언짢은 기색을 두르고 있었다.
“이번 일에 대해선 내가 대신 사과하지.”
“아닙니다. 대표님이 그간 얼마나 잘해주셨는데요.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당장 내일모레 열리는 월드챔피언십이야. 지오에서 공을 굉장히 많이 들이고 있네. 자네가 볼 땐 어떤가. 이대로 가면 우리 팀이 우승할 수 있을 것 같은가?”
“글쎄요.”
식사자리에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짐을 싸서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던가.
감독이 저렇게 공격적으로 날뛰고 있어서야 예측은 불가능했다.
엔트리에 이름이 없을 확률을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대니얼은 해결이 아니라 일을 망치고 있어. 이제 슬슬 바로잡아야겠는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 올해까지는 팀을 위해 뛰겠다는 계약, 아직 유효한가?”
해링턴 대표는 불꽃 같은 눈동자로 나를 응시했다.
그만 집으로 가겠다고 말하면 무서운 일이 벌어질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드는 시선!
“···유효합니다.”
“걱정했는데 다행이군. 혹시라도 감독이 벌인 일로 자네가 한국으로 가겠다고 하면 어쩌나 싶었지 뭔가.”
뭐지? 살짝 무서워질 뻔했어.
“크흠. 아닙니다.”
“자네의 솔직한 생각이 듣고 싶군. 감독과 코치, 둘 모두에 대해서 말이야. 팀을 위해 제대로 일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면 굳이 비싼 밥 먹여가며 숙소에 놔둘 이유가 없으니 말이야.”
대니얼 화이트 감독, 그리고 브라이언 오 코치.
둘은 2년간 S.솔리드를 무사히 잘 이끌어왔다.
그러나 이제는 변화가 필요한 시기인 듯했다.
대표의 질문에 따라 객관적으로 두 사람의 팀 기여도를 점검해봤다.
아마 다른 선수였다면 힘들었을 질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미 여러 팀을 전전하며 다양한 감독과 코치를 경험해본 적이 있다.
솔직한 평가를 하자면 브라이언 코치는 괜찮은 코치였고 대니얼 감독은 무난한 감독에 가까웠다.
가끔 엔트리에 개입해 그림을 망치는 경우가 종종 나오긴 해도 개인 특유의 친화력으로 다른 팀 정보를 빼 오는 재주가 있어서 플러스 마이너스를 비교하면 단점이 보완됐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우승하기 전까지의 이야기고.’
결승전 이후, 요 며칠을 기점으로 감독의 평가는 훅훅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내가 당사자라서가 아니라 이건 상식 밖의 행위였다.
“브라이언 코치는 일을 맡은 역할은 제대로 하는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대니얼 감독은 제 기준에선 문제가 있습니다.”
“기준이라?”
“월드챔피언십 우승이 목표라면 저를 전력 외로 두는 건 최악의 수죠. 웬만한 감독은 이런 일을 하지 않을 겁니다.”
자랑처럼 들릴 수 있는 말이지만 엄연한 사실이었다.
능력을 한껏 발휘하면 올해까진 무패 기록을 이어나갈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개인전 비중이 제법 큰 게임, 내보내기만 하면 달달한 1승을 챙겨줄 수 있는 전략 카드를 개인감정으로 제외시킨다?
물론 나를 빼고서도 S.솔리드가 우승할 수 있는 팀이라면 상관없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그들이 유니크라는 자산을 제외하고도 우승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오만이다.
이미 나머지 메이저 리그 지역의 실력은 날카로운 수준에 이르렀다.
아차 하는 순간 회복불능의 상처를 입을 정도로 말이다.
“즉, 대니얼이 무능하단 이야기군.”
대표의 말에 침묵을 지켰지만 뜻은 제대로 전달된 것 같았다.
고개를 끄덕인 대표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나. 처음엔 감독을 바꿀까도 생각했네. 그러다 문득 일단 대화를 나눠보고 진행하는 게 좋겠다 싶었지. 자네와 이야기를 하다 보면 더 좋은 의견이 나올지도 모르잖나.”
해링턴 대표의 의지는 확고해 보였다.
감독을 바꿔달라고 하면 당장에라도 갈아치울 모양새였다.
“제가 감독을 바꿔달라고 하면 그리 해주시겠습니까.”
“한 입으로 두말 안 하네.”
대회 돌입 전에 감독은 바꾸는 게 좋겠다고 말하려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대표가 나한테 원하는 건 정확히 뭘까.
월드챔피언십이 끝나면 한국으로 떠나겠다는 의사는 이미 존을 통해서도 다시 한 번 전달했다.
이번 대회가 마지막이니 최대한 뽕을 뽑겠단 생각인 걸까.
그렇게 생각하기엔 대표가 보내는 눈빛이 너무 너그러웠다.
곧 있으면 팀을 떠날 선수, 섭섭할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어차피 마지막 식사자리일 수도 있겠다 싶어 나는 직접 물어보기로 했다.
“자네한테 이렇게 해주는 이유가 궁금하다고?”
“예.”
“나는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뿐이네. 비즈니스를 망치는 일을 두고 볼 리 없잖은가.”
“대표님은 제가 돌아가는 것에 대해 서운하지 않으십니까.”
“아, 그런 질문이었군.”
해링턴 대표가 희미하게 웃는다.
“솔리드 테크놀러지를 꾸리기 전에 내가 무슨 일을 했는 줄 아나?”
풍채 좋은 배 나온 할아버지가 무슨 일을 했을지 짐작하기 쉽지 않았다.
치킨집 사장님···?
“벌써 40년도 넘었군. 난 군인이었네. 해외 파병도 숱하게 다녔지. 처음 자네를 가이아의 카페에서 봤을 때, 사실 뽑지 않을까도 생각했네. 하하, 오해 말게. 지금이야 자네를 쓰라면 억만금을 주고서라도 데려갈 팀이 줄을 서겠지. 하지만 그땐 아니었잖나. 물론 테스트에서 멋진 모습을 보여주긴 했어도 아직 반신반의했던 시기였지. 그런데 조국을 위해 헌신하고 싶다는 그 말이 내게 와 닿더군. 아직도 기억나. 국가의 명예를 위해 헌신하고 싶다던 자네의 말이.”
조국에 대한 헌신이 대표님의 마음을 흔들었던 모양이다.
죄송합니다. 그거 그냥 둘러댄 말이었어요···.
“맘 같아선 더 남아달라고 붙잡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않겠네. 처음부터 그런 약속이었으니까.”
“감사합니다.”
“요 며칠간 있었던 일은 잊어주게. 내일부터는 모든 게 자릴 찾을 걸세.”
“예.”
***
식사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숙소는 적막한 분위기에 잠겨있었다.
‘뭐래?’
1층에 있던 팀원들이 입 모양으로 경과를 물었다.
내가 갑자기 사라진 이유를 팀 내에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대표님이 무슨 말을 했든 오늘은 결판이 나겠다는 걸 다들 느끼고 있었다.
“돌아왔어?”
누구보다 신경이 쓰였을 감독이 계단에서 내려오더니 나를 향해 물었다.
“그래. 대표님은 뭐라 시더냐.”
씩 웃어줄 수도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표정이 굳어졌다.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으니 감독의 입꼬리가 살살 올라간다.
속 보인다. 속보여.
혹시라도 판이 뒤집히진 않을지 걱정하고 있었으면서 말이다.
“별말 없으셨습니다.”
“그래?”
그럼 그렇지 하는 혼잣말이 그 뒤를 따랐다.
“정한솔. 넌 지금부터 훈련에 들어간다.”
“지금요?”
“너 혼자 오전에 훈련 제쳤잖아. 언제 연습할래!”
참나, 훈련 못 한 게 누구 때문인데.
아니 그보다 도통 이해가 안 가는 건 왜 이제 와서 이런 지랄병인지 이해를 못 하겠단 거다.
그동안은 대체 어떻게 참은 거야?
대표님 눈치 보여서 입 닥치고 있던 게 틀림없다.
“감독님.”
“왜.”
“하실 말 있으시면 그냥 하세요. 저도 조금 지나면 풀리시겠지 하고 참았는데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
“뭐라고?”
“솔직히 오전에 훈련 못 한 게 어디 제 탓입니까? 감독님이 그렇게 시키신 거잖아요.”
“하. 이 자식이 다들 에이스라고 치켜세워주니까 아주 건방이 하늘을 찌르는구만!”
“그래서 대회도 얼마 안 남았는데 괜히 트집거리 잡으신 겁니까? 곧 떠날 선수인지도 모르고 눈치 본 게 억울해서요?”
“이 새끼 말하는 것 좀 봐. 내가 언제 네 눈치를 봤어!”
감독은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한 덩치 하는 감독이 씩씩거리며 다가오자 코치와 팀원들이 우르르 달려 나와 말리기 바빴다.
“이거 놔!”
“아이고 감독님! 어린애예요. 그냥 참으세요! 그러다 갈비 나가요!”
격투기 챔프도 숙소에서 봉변을 당하지 않았던가.
코치는 제 딴에 생각고 한 말이었는데 그게 감독을 더 열 받게 한 모양이다.
“세상 사람들이 다 치켜세워주니까 네가 진짜 뭐라도 된 줄 알아!”
성난 고릴라처럼 날뛰는 감독을 보며 난 옛 생각에 잠겼다.
예전부터 그랬지만 난 스타병에 걸린 선수를 싫어했다.
실력이 너무나도 뛰어나 팀 위에 군림하는 스타급 선수들, 그런 선수를 좋아하는 팬은 많지만 동료의 입장에선 고까운 게 사실이다.
역사가 짧은 e스포츠에선 그런 경우가 드물지만 다른 스포츠에선 선수의 입김이 다른 동료는 물론이고 감독까지 갈아치우게 하는 경우가 종종 일어난다.
정말 내가 그랬나?
프로게이머 생활 내내 1군 말석에만 매달려 있다가 최고의 자리에 올라 사람이 변해 버렸나?
그 옛날, 눈살 찌푸리게 만들었던 선수들의 행동을 내가 답습했는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솔직히 그 정돈 아니잖아!
실력은 변했지만 필요 이상으로 나대진 않았다.
물론 한국에 있을 때보다 트래쉬 토크를 과감하게 쓴 건 맞지만.
인터뷰를 자청했어. 아니면 팀이 무능하다고 짜증을 냈어.
감독이나 코치 상대로 대든 것도 아니고.
생각해보니까 억울하네?
“제가 뭘 그렇게 잘못했습니까?”
“하나부터 열까지 다! S.솔리드가 너 혼자 만든 팀이야? 네가 말하는 것만 봐도 그래! 다른 팀원들이나 우린 안중에도 없지?”
감독이 버럭 소리치자 팀원들은 눈만 껌뻑거렸다.
아니 한솔이가 대체 언제? 라는 그런 시선이다.
“어디 다른 팀 다녀오셨어요? 친구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하는 거 같은데요. 감독님 혼자 그렇게 생각하신 거 아니에요?”
“뭐야?”
“코치님은요? 코치님도 그렇게 생각하세요? 제가 정말 그렇게 잘난 체하고 다녔습니까?”
“어, 어?”
기습을 당한 코치는 난처한 표정으로 아랫입술을 깨문다.
왜 나한테 그러느냔 얼굴이다.
“빨리 말해. 너도 쌓인 거 많다고 했잖아.”
“제, 제가 언제 그랬습니까.”
“하, 이 자식들 봐라. 잘 생각해! 이제 짐 싸서 나갈 놈 편들어주는 거냐?”
감독의 으름장에 다들 표정이 어두워진다.
그 말마따나 이제 누가 나가고, 누가 남을지가 너무 명확하지 않은가.
대표도 별말 없다는 거 보니 아무래도 상황이 바뀌진 않을 것 같았다.
계속 팀에 남아있는 게 감독이라면 결국 팀원도, 코치도, 감독의 눈치를 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 식으로 애들 겁박하지 마세요.”
“이런 버르장머리 없는 새끼.”
“대회 때 쓸 생각도 없으신 거 같은데 훈련은 뭐하러 시키셨어요. 차라리 그냥 나가라고 하시지.”
“말 한번 잘했다. 네가 이딴 식으로 나오는 데 기용을 할 수 있겠어? 이런 놈도 어떻게든 기회 주려고 한 내가 바보지.”
“기회요? 월드챔피언십 보험 들어두려고 하신 거 아니고요?”
“이 자식이 끝까지!”
“워워! 참으세요!”
“한솔이 너도 그만해!”
“감독님 생각 자-알 알겠습니다. 짐 싸서 나갈게요. 이런 팀에 더 있을 생각 없습니다.”
나가겠단 얘길 꺼내자 팀원들이 벌떼처럼 일어났다.
“야! 그게 무슨 소리야! 함께 한다며!”
“이건 아니지!”
“감독님이 사과하세요!”
“솔직히 요 며칠간 너무 했어요!”
“그래! 눈에 뵈는 게 없다 이거지. 이 바닥 소문 빠른 거 몰라? 어디 잘해봐라. 너 없어도 우리 팀은 우승할 수 있어.”
“야! 한솔이 못 나가게 잡아!”
다시 나가려는 걸 말리는 팀원들, 양쪽에 선수 하나씩 매달고 날뛰는 감독.
그야말로 개판 5분 전이었다.
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정리한 건 문을 열고 들어온 존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꼴이야.”
최근 감독이 적극적으로 대들긴 했지만 예전부터 숙소 내 입지는 감독보다 존의 끗발이 더 높았다.
엉망이 된 숙소를 보며 존은 고개를 흔들었다.
“장난이 심했구나.”
“당한 게 억울해서요.”
“···?”
존과 주고받은 말을 사람들이 이해하기도 전에 그가 재차 입을 열었다.
그 대상은 멍청하게 서 있던 감독이었다.
“대니얼 화이트씨. 지금 이 시간부로 해임입니다. 남은 연봉은 따로 지급해 드릴 예정이니 신변 정리해주시죠. 대표님 결재 떨어졌으니 분란 일으킬 생각 마시고요.”
“그게 무슨···.”
크으···.
감독의 얼굴은 그야말로 볼만했다.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기분?
감독이 영문을 몰라 입만 뻐끔거리고 있을 때 존이 차가운 얼굴로 쐐기를 박았다.
“들어오는데 재밌는 얘길 하고 계시더군요. 그 말대롭니다. 당신 없어도 우리 팀은 우승할 수 있어. 이 바닥 소문 빠른 것도 사실이고. 그나마 있는 평판이라도 챙기고 싶으면 서두르는 게 좋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