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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OS 소설 아닌데요-84화 (84/170)

폭탄 (2)

대니얼 화이트, 그는 어디에나 있을법한 평범한 감독이었다.

S.솔리드로 오기 전에도 감독직을 수행 중이었는데 당시엔 스페이스솔져라는 RTS 게임을 맡았다고 했다.

평소엔 팀에 간섭하는 일이 별로 없는 편인 그는 이따금 엔트리를 두고 조언을 던지곤 했다.

말이 조언이지 사실 강제나 마찬가지였다.

S.솔리드의 시합 엔트리 조율은 대체로 브라이언 코치의 몫이다.

이유인즉 코치가 감독보다 게임을 더 잘 아는 탓이다.

물론 감독도 브라이언이 자기보다 낫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참견을 자주 하진 않았다.

그러나 이따금, 느낌이 왔다면서 이번엔 누굴 내보내자는 등의 의견을 현장에서 내면 코치도 그의 의견을 무시할 순 없었다.

그렇게 의견을 수용해 기존에 설정해뒀던 전략을 수정하면 열에 일곱 정도는 안 좋은 결과를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감독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1라운드 정도 패한다고 해서 S.솔리드가 무너지는 일은 없었기 때문에 부담이 없었으리라.

게다가 무조건 꽝만 나오는 건 아니었다.

열 번 찍으면 세 번은 좋은 결과를 만들어냈고 그 세 번은 그에게 기분 좋은 감각을 남겼다.

본인이 낸 작전이 실패하면 입을 닦고 있다가도 어색한 전략이 용케 들어맞으면 봤지? 봤어? 저거 내가 만든 거야라며 벤치에서 허허 웃는 게 그의 소소한 낙이었다.

가이아는 아무래도 개인전 비중이 높은 게임이고 인원수도 적은 편이기에 축구에 비하면 감독이 하는 일이 훨씬 적은 편이었다.

게임을 겉핥기 정도로만 알고 있는 감독으로선 게임에 간섭할 일이 이런 것밖에 없었으리라.

그래도 지금까진 문제없었다.

감독의 사소한 헛발질로 무너지기엔 S.솔리드가 너무 강했으니까.

하지만 이번엔 아닌 모양이었다.

북미 최강을 넘어 세계 제일의 팀을 노리던 S.솔리드의 기둥이 밑바닥부터 흔들리고 있었다.

*

감독과 마주 앉아 커피를 나누고 있는 브라이언 코치의 얼굴은 다소 착잡해 보였다.

“정말 이래도 괜찮겠습니까?”

“뭐.”

“아시면서 그러세요. 한솔이요.”

충격적인 일이었다.

유니크가 내년이면 S.솔리드를 떠난다는 사실.

월드챔피언십을 우승할 수 있을진 뚜껑을 까봐야 알 일이지만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내년 시즌을 구상하던 그였다.

그런데 대들보가 없어지게 생긴 상황, 아무런 통보도 못 받은 코치로선 재해를 만난 격이었다.

보낼 때 보내더라도 당장 눈앞에 다가온 세계 대회는 확실한 집중이 필요했고, 유니크는 절대 뺄 수 없는 전력이었다.

“그냥 적당히 하고 넘어가 주시죠?”

“쯧쯧, 네가 그러니까 선수들이 엉기는 거 아냐. 선수들이 나한테 말할 때도 너한테 하는 것처럼 하냐?”

‘아니, 감독님이랑 저랑 나이 차이가 얼만데.’

“네가 그렇게 말랑말랑하게 구니까 애들이 풀어지는 거 아니냐고. 다들 매너리즘에 빠졌어. 애들 게을러진 게 네 눈엔 안보이디? 한솔이 녀석만 해도 그래. 걔가 이번 결승전에서 처음 죽었다. 걔가 죽을 애냐? 정신력이 약해진 거야. 정신력이.”

“그건 피케가 잘한 거죠. 그런 기습이면 안 죽은 게 용한데···.”

“자식이. 말대꾸할래?”

“죄송합니다. 그럼 한솔이 잡으신 건 풀어진 분위기를 조이는 차원에서 그러신 거죠?”

“아니.”

칼 같은 답변에 코치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솔직히 한솔이 없이 월챔 준비를 어떻게 합니까. 게임 한 번 할 때마다 한솔이 비중이 못해도 3할, 아니지. 4할은 될 겁니다.”

“인마. 넌 그게 문제야. S.솔리드가 보통 팀이야? 우린 세계 최고야. 그런데 선수 한 명에게 4할 씩이나 지분을 맡기면 그거야말로 문제지. 20년 전통을 자랑하는 스페이스솔져에서도 그런 일은 없었어. 미리 알았으니 망정이지 한창 훈련 중에 저 나가겠습니다 했어 봐. 우리만 뒤통수 맞는 거 아냐.”

잔에 담겨있던 커피를 비운 감독은 찬장으로 다가가 위스키를 꺼냈다.

“미리 내년 준비한다고 생각해. 녀석은 떠날 사람이라고. 코앞의 열매에 취해서 사리분간 못 하면 우리도 하루살이 신세 되는 거야. 너 작년이랑 올해 감독이 몇 명이나 바뀌었는지 아냐?”

“글쎄요. 두 명?”

“감독은 여섯 명, 코치는 열 명 갈렸다. 슈퍼호넷은 월챔 끝나면 인사 변경 할 거고. 레드불스도 윗선에서 불편한 기색이야. 우리 팀만 만나면 맥을 못 췄으니 말이야.”

감독이 꺼낸 이야기에 코치는 조금 놀랐다.

숙소에만 있는 것처럼 보인 감독이 어찌 그리 남의 팀 이야기에 정통 하단 말인가.

선수와 이야기하는 시간보다 타 팀 관계자들과 교류한 시간이 더 많을지도 몰랐다.

“다른 팀에서 말이야. 우릴 탐내는 곳이 제법 많아.”

“감독님이요?”

“나, 그리고 너. 강팀의 노하우가 꼭 필요한 팀들은 아주 목이 마른 상태거든. 자리만 옮겨주면 연봉으로 500만 달러를 주겠다는 곳도 있었다.”

“500만 달러요?”

헉소리가 나올만한 거액이었다.

감독이 입 밖으로 내고 다니진 않았지만 대우가 좋다는 S.솔리드에서 그가 받는 금액은 대략 150만 달러 정도.

코치는 그가 허파에 바람이 들어 이러나 싶었다.

그 정도로 액수 차이가 나면 군자라도 마음이 동할 만 했다.

“나한테만 이런 조건을 제시한 게 아냐. 같이 움직이면 너도 챙겨주겠다고 했으니까.”

“저도요?”

그러면서 감독은 슬쩍 손가락 두 개를 내비쳤다.

뜻을 알아들은 코치는 눈을 부릅뜨고선 숨을 죽였다.

200만 달러!

감독에 비해 훨씬 적은 급여를 받는 코치로선 상상하기 힘든 거액이었다.

“솔직히 우리도 팀 운영 측면에선 능력 있는 사람들 아니냐. 이런 공로가 그간 한솔이한테 많이 갔지. 내가 대외 인터뷰라도 안 했어 봐라. 바깥사람들은 너랑 나 이름도 몰랐을걸?”

코치는 한솔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만큼 공로를 세웠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그 말을 입 밖에 낼 정도로 멍청하진 않았다.

“그럼 혹시 감독님도 이적을 생각하고 계신 겁니까?”

코치의 조심스러운 말에 감독이 피식 웃는다.

“사람이 아무리 돈이 좋아도 그렇지 그렇게 줏대 없이 이리 움직이고 저리 움직이면 결국 버림받는다. 나는 계속 솔리드에 남을 거다.”

의외였다. 당장에라도 이적할 줄 알았는데 말이다.

“다만! 어차피 한솔이는 내년에 떠날 선수 아니냐. 네가 볼 땐 우리팀 월드 챔피언십 우승 확률이 어떤 거 같아.”

“음 적어도···.”

“한솔이 빼고.”

“아, 빼고요?”

유니크라는 필승 카드를 빼고서 계획을 세운 적은 없었기에 코치는 잠시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높게 잡아도 5할 정도 아니겠습니까.”

“무슨 소리야. 우리 로테이션 마구 돌릴 때도 7할 승률 나온 팀이야!”

“다른 대륙 리그 안 보셨어요? 실력 장난 아닙니다. 피케 같은 선수 데리고 있는 곳도 몇군데 있어요.”

“피케. 흠, 그놈이 잘하긴 하더라. 그래도 데니스 케빈 제리, 제레미, 마이클 고정으로 잡고 한자리만 교체하면 우승할 수 있지 않을까?”

“가능성은 있죠.”

“아니야. 아니야. 이건 확실히 우승이야.”

브라이언 코치는 깨달았다.

아, 감독이 팀에 거는 기대치가 나랑 많이 다르구나.

감독이 보는 S.솔리드는 한솔이가 없어도 무조건 월드챔피언십 우승감인 모양이었다.

“어차피 떠날 녀석이야. 이번 대회 끝으로 팀을 떠날 녀석이 스포트라이트 쓸어담으면 어떻게 되겠어. 팀 꼬라지 볼만하겠다. 그치? 차라리 엔트리 제외하고 우리 힘으로 가자. 그래야 내년에도 입지가 흔들리지 않아.”

‘명장 감독님 소리도 한껏 들으실 테고요.’

속내를 깨달은 브라이언은 침묵했다.

한솔이가 올해를 끝으로 팀을 떠나는 것도 사실이고 S.솔리드의 우승 확률이 제법 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다리를 뻗으려면 자릴 잘 살펴봐야 했다.

숙소에선 감독의 파워가 세다지만 프런트를 비롯해 대표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 먼저 알아봐야 했다.

자신들이 받는 돈이 결국 누구 주머니에서 나오는지를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대표님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잖습니까.”

“걱정도 팔자다. 말했잖아. 나는 다섯 개고 너는 두 개. 우리의 팀을 위한 열정을 무시하면? 그땐 이적하면 되는 거야. 몇 배는 좋은 대접 받으면서 말이지.”

“월드챔피언십 우승을 놓치면 그 팀들의 시선도 달라질 텐데요.”

“아이고 머리야. 내가 이런 멍청한 놈을 데리고 팀을 운영한다니까. 야 인마! 정 안 될 거 같으면 그때 한솔이 투입하면 되잖아. 생각을 좀 해라. 생각을! 이건 무조건 우리에게 유리한 게임이야.”

감독의 말을 계속 듣고 있으니 일리는 있단 생각이 들었다.

선수들에게 가려 항상 빛을 보지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감독 말대로만 되면 나쁠 건 없어 보였다.

“너는 나만 믿고 따라와. 괜히 선수들한테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알았어?”

***

팀 연습은 계속 난항이었다.

다른 선수들은 평소와 같았지만 감독과 코치의 견제가 계속 이어졌다.

대표 찬스를 쓰지 않고 이걸 지켜본 이유는 다른 팀원들 때문이었다.

전화 한 통 넣으면 분명 이 사태는 해결된다.

하지만 압력으로 사람의 진심을 얻을 순 없다.

월챔에서 제대로 기량을 내려면 서로 속을 털어놓고 대화를 하는 게 우선이었다.

그렇게 3일의 시간이 흘렀다.

내가 계속 꼬투리 잡혀 구박당하는 꼴을 보는 게 불편했는지 선수들이 하나둘씩 방으로 찾아오기 시작했다.

대체 왜 그랬냐. 정말 우리에게 비밀로 하고 떠나려고 했던 거냐. 그런 이야기들.

나는 너희가 그렇게 상처받을 줄은 몰랐다며 진심으로 사과했고 대다수는 나의 사과를 받아들였다.

이런 이야긴 대부분 밤에 이루어졌다.

오전엔 감독이 눈을 부라리며 선수들이 나와 말을 섞는 것조차 못하게 했으니까.

물론 밤에도 맘이 편한 건 아니었다.

코치의 방은 선수들과 같은 3층이었는데 훈련 때를 떠올리면 코치 역시 감독과 같은 편으로 보였다.

코치가 밤중에 선수들이 내 방을 오가는 걸 알았다면 분명 무슨 말이라도 나왔을 터였다.

하지만 선수들과 이야길 나누는 동안 코치의 방문은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그렇게 선수들과 화해를 할 수 있었지만 끝내 제레미는 내 방을 찾아오지 않았다.

내가 추천했고 나랑 훈련하는 걸 누구보다 좋아했던 녀석의 마음은 아직 풀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다음날, 훈련하고 있는데 문밖에서 언성을 높이며 싸우는 목소리가 들렸다.

틀림없는 존과 감독의 목소리.

이 소릴 듣는 건 나와 코치뿐이었다.

선수들은 접속기 안에서 훈련을 진행 중이라 이 사실을 알 수 없었다.

“이런 식으로 의미 없이 드잡이질 하면 가만 있지 않겠습니다.”

“맘대로 해보십쇼. 대표님도 다 알고 있으니까. 그리고 선수 관리는 제 일이니까 간섭하지 말란 말입니다!”

존의 펀치에 감독도 지지 않고 대응했다.

놀라운 일이었다.

팀 창단 초기부터 숙소 내 입김은 존이 월등하지 않았던가.

프런트를 맡기 전엔 해링턴 대표의 비서로 활동하며 오랜 시간 수족을 담당했던 존이기에 코치도 감독도 그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 맞받아치는 걸 보니 그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점점 멀어져가며 싸우는 통에 더 들을 수 있는 말은 없었다.

‘대체 뭐지?’

다른 건 괜찮은데 대표가 지금 숙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알고 있다는 말이 신경 쓰였다.

해링턴 대표가 지금 내 상황을 알고 있다?

만약 알고 있다면 조용한 이유는 무어란 말인가.

미련없이 한국으로 떠날 사람인 내게 결국 관심을 접어버렸다면?

그렇다면 앞뒤가 맞았다.

지금까지 가만있던 감독이 갑자기 날뛰기 시작했다.

나를 향한 대표의 신임이 사라졌단 확신이 있는 게 아닐까.

정말 그런 거라면 지금이라도 짐을 싸는 게 나을 터였다.

나와 S.솔리드의 계약기간은 11월 초에 종료된다.

한창 월드 챔피언십 예선전이 진행 중일 시기다.

물론 나는 계약 여부와 상관없이 S.솔리드를 소속으로 게임에 나갈 참이었다.

올해까진 나도 S.솔리드 선수라는 마음이었으니까.

하지만 대표가 나를 불신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훈련도 하지 못하고 계속 멍때리기만 하고 있을 때 호출이 들어왔다.

해링턴 대표였다.

“간만에 나랑 저녁 식사나 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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