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인가 방패인가 (2)
“이거···.”
“생각보다···.”
“약한데?”
연습경기를 지켜보던 인원이 동시에 같은 말을 했다.
북미 최고의 아크나이트로 불리는 비프로스트를 불러 다이나믹 G.C와 똑같은 조합을 꾸렸는데 경기력은 그에 미치지 못했다.
‘손발이 전혀 안 맞네.’
선수 개인의 실력이 부족한 건 아니었다.
다이나믹과 비교하면 개인 역량은 오히려 근소 우위라고 할만했다.
그럼에도 연습 경기 내내 디펜스 조합은 실무아비에 얻어터지길 반복했다.
생각해보면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다.
원래 S.솔리드는 디펜스 위주의 운영보단 공격적인 운영을 선호하는 팀.
스타일이 달라졌고 팀 구성원도 달랐다.
한몸처럼 움직이는 게 쉽지 않은 건 당연했다.
“이거 생각만큼 연습 효과가 안 나오겠는 데요.”
제리의 마법에 난타당한 비프로스트가 땀을 닦으며 말했다.
그의 실력은 피케에 뒤지지 않지만 새로 손발을 맞추려다 보니 스텝이 계속 꼬여댔다.
벌써 리그 수준이 여기까지 왔나.
선수 개인 역량을 믿고 5라운드를 치르는 시대는 끝났다.
올 시즌을 기점으로 팀전은 정해진 스텝과 배치, 철저한 스킬샷 배분으로 기계적인 플레이를 요구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디펜스 조합을 예시로 들면 아크나이트를 시작으로 뒤에 따라올 멤버의 순서, 이동속도가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다.
상대의 공격이 날아들면 어떻게 방어할지, 누가 부담을 더 지며 스킬 쿨타임은 어떻게 돌릴지 하는 등의 작전이 세밀하게 짜여있다.
플랜에 따라 움직이는 고도의 움직임을 곧장 따라하는 건 당연히 어려운 일이었다.
“며칠 해보면 감은 잡을 거 같은데.”
마이클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시간이 문제였다. 결승전이 코앞까지 다가온 상황.
될지 안 될지 모르는 불확실성에 승부를 거는 것보단 차라리 필드에 나가 하루라도 더 파밍하는 게 나을 수도 있었다.
모두가 고민하고 있을 때 내가 조용히 의견을 냈다.
“코치님. 비프로스트 선수만 괜찮으면 조금만 더 연습해보고 싶은데요.”
내 감이 말하길 지금은 장비보다 상대의 주력 조합에 더 집중해야 할 시기였다.
원거리에서 치고 빠지며 장기전을 노리는 플레이.
지금껏 우리 팀이 겪어보지 못했던 생소한 조합이었기에 익숙해지는 게 우선 과제였다.
“뭐, 저는 괜찮습니다.”
내가 밀어붙이고 당사자가 괜찮다고 하니 더 고민할 게 없었다.
단단한 방패를 뚫을 수 있는 날카로운 창의 연마.
그렇게 창끝을 가다듬는 연습이 계속 이어졌다.
***
매년 치러지는 가이아 프로리그 결승전 매치.
사람들은 이를 두고 챔피언 시리즈라는 이름을 붙였다.
가을 무대의 정점인 동시에 한 해를 마무리 짓는 각 대륙 마지막 게임.
“누굴 응원하러 오셨나요?”
“S.솔리드!”
“솔리드요!”
“어우솔!”
장내엔 S.솔리드를 응원하는 팬이 8할은 넘어 보였다.
전년도와 비교하면 시장 규모 3배 이상의 성장, ESBN의 챔피언 시리즈 광고가 일찌감치 완판됐다는 기사도 이어졌다.
-크으. S.솔리드의 리그 2연패!
-대장군 나가신다!
비싼 값을 치르고 경기장에 착석한 관중들은 전부 전신접속기를 통해 자리한 사람들.
실제 경기장이 아님에도 그 분위기는 여느 스포츠 경기 못지않은 열기가 가득했다.
사전에 허가받은 깃발이 콜로세움 사방에서 펄럭였다.
S.솔리드의 팀 마크인 붉은 주먹이 새겨진 깃발이었다.
분위기만 보면 이미 승패는 확정, 콜로세움이 S.솔리드 홈인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소수의 다이나믹 팬들이 목청껏 응원해보지만 바람 앞의 촛불 수준이었다.
처음 가이아를 보러 온 각계 유명인사들은 VR기술이 이렇게나 발달했나 놀라워했고 분위기가 한껏 고조됐을 때 스크린을 통해 영상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미리 준비한 각 팀의 승자예측 인터뷰였다.
누구보다 메타 흐름에 민감한 선수들은 S.솔리드의 우승을 예상했다.
작년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작년엔 압도적 기세로 올라온 레전드크루의 손을 들어주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그도 그럴게 당시 스나이퍼 조합에 혼쭐이 난 팀이 한둘이 아니었다.
S.솔리드를 빼면 다들 쓴맛을 한 번 씩은 봤기에 어쩌면? 이라는 말이 많이 나왔던 것이다.
그에 비하면 올해 도전자인 다이나믹 G.C는 ‘압도적’이란 단어와는 거리가 먼 팀이었다.
블랙이글스가 스스로 자멸하긴 했지만 슈퍼호넷도, 레드불스도 다이나믹을 상대로 괜찮은 경기력을 선보였다.
놀라운 경기력을 선보였던 레전드크루도 결국 S.솔리드의 제물이 되지 않았던가.
지금 다이나믹 G.C의 포스로는 왕좌의 주인을 바꾸지 못하리란 의견이 대세였다.
준비된 영상이 나간 뒤엔 현장 인터뷰 차례였다.
주인공은 당연히 나와 피케였다.
작년과 또 다른 점은 인터뷰가 아주 깔끔하단 점이었다.
서로 1라운드에서 보자는 설전을 벌였던 것관 달리 상대의 실력을 존중하며 멋있는 경기를 해보잔 훈훈한 덕담이 이어졌다.
너무 순한 맛이라 중계진은 다소 아쉬워하는 눈치였지만 팬들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박수를 치며 환영했다.
-솔리드의 매운맛을 보여줘라!
-챔피언의 힘을!
-다이나믹 파이팅!
사방에서 지지팀 이름을 외치는 가운데 게임이 시작됐다.
데니스, 제레미, 마이클, 제리, 케빈, 그리고 나까지.
엔트리가 발표되는 순간 다시 한 번 커다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오래전부터 S.솔리드를 지탱하는 6인의 명단이었다.
“첫번째 경기는 마이클이 나간다.”
“옙!”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는 말이 있다.
모든 시합이 그렇지만 1라운드는 매치포인트를 제외하면 가장 중요한 경기다.
낼 수 있는 카드는 1라운드 이후 계속 줄어들고 상대의 노림수를 예측하기 쉬워지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마이클을 내보낸 이유는 간단했다.
1라운드에 나올지 모를 피케 저격 배치였다.
물론 대인전에선 제리의 아크위자드가 엘레멘탈 마스터보다 낫다.
하지만 1라운드는 블라인드 맵, 맵의 상성을 알 수 없으니 안전빵으로 마이클을 내보낸 것이다.
다이나믹 G.C는 개인전보단 협동전을 더 잘하는 팀.
저쪽에 확실한 S클래스 선수는 피케밖에 없기 때문에 순서가 맞아 떨어지면 4:0 셧아웃을 시키는 것도 불가능은 아니었다.
4:0이 터지면 팬들은 실망하겠지만 코치와 감독 입장에선 무엇보다 확실한 승리가 중요했다.
“잘해라!”
“연습한 대로만 해!”
[1라운드 - 잊혀진 사원]
[S.솔리드 엘레멘탈 마스터 vs 다이나믹 G.C 아크나이트]
시작부터 강수를?
스크린에 나온 상대 선수를 보는 순간 감독, 코치의 안색이 살짝 굳었다.
대조적으로 상대 벤치는 고갤 끄덕이며 그럴 줄 알았단 반응이다.
다이나믹의 1라운드 선택은 피케였다.
맵을 알 수 없었던 상황, 유구의 천칭이라도 나왔으면 그림이 크게 망가지는 상황 속에서 배짱을 부린 것이다.
“초장에 승부수를? 그래도 이럼 우리가 유리하지 않나?”
“아직 몰라. 잊혀진 사원은 반반이니까.”
중규모에다가 바닥이 무너지는 마력조성 2레벨 맵.
상성을 생각하면 마이클이 유리한 게임이지만 선수 개인의 순수 실력이 변수였다.
피케는 누가 봐도 S급 선수지만 마이클은 잘 쳐줘도 S는 아니었다.
파이트 소리와 함께 지면을 박차고 튀어나가는 피케의 몸놀림은 그야말로 전광석화였다.
득달같이 달려드는 피케를 향해 마이클이 묵직한 얼음창을 소환해냈다.
얼음창에 그치지 않고 뇌격을 쏟아내는 마이클을 보며 S.솔리드 팬들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쏟아지는 마법의 포화, 백색 계열 클래스 대다수가 마법 방어력이 낮기 때문에 오래 버티지 못할 터였다.
-발라버려! 마이클!
-본때를 보여줘라!
실로 가공할 마법의 연타였다.
어찌나 마법을 쏟아냈는지 신전 바닥에서 피어오른 먼지로 잠시 시야가 가려질 정도.
마이클은 방심하지 않고 재빨리 먼지 구름을 향해 스캔을 시전했다.
은신한 상대방, 먼지 등으로 시야가 보이지 않을 때 적을 찾는 마법이다.
무엇을 읽었는지 마이클이 뜨악한 얼굴이 됐다.
바로 그 순간 먼지를 뚫고 튀어나온 피케가 날카로운 검격을 쏟아냈다.
얇은 백색 빛에 둘러싸인 검신은 마이클의 마법을 족족 잘라내 버리는 게 아닌가.
“저거 솔직히 너무 성가셔.”
앞선 포스트시즌에서도 등장했지만 피케의 검엔 마법을 상쇄시키는 기능이 깃든 게 분명했다.
“마이클을 믿어 보자고.”
우리도 대책 없이 마이클을 낸 건 아니었다.
압도적 사기 장비 같은건 존재하지 않는다.
그림자 서곡의 은신 시간이 3초밖에 안 되는 것처럼, 저 백색 검도 마력 소비나 지속시간 제한 등의 약점이 분명 있을 터였다.
전력분석팀의 결과로는 마력 소비형 제약일 확률이 높다고 했다.
장기전으로 끌면 이쪽이 유리하단 뜻이다.
마이클은 자신감 있게 마법을 쏟아냈다.
-마이클이 이 정도였나?
-움직임 거의 탑클인데?
-아냐. 피케의 체력을 봐.
-아.
공방이 이어지는 가운데 관중은 이상한 점을 느꼈다.
마이클이 쏟아낸 마법이 백여발이 넘었음에도 피케의 체력은 거의 변화가 없었다.
원인은 장비 세팅이었다.
마법 저항력을 극도로 올리는 세팅을 하고 나온 것이다.
“점쟁이라도 앉아있나? 어떻게 알고 마법 저항에 올인 했지?”
“그게 아니야.”
“그럼?”
난 신중한 얼굴로 피케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자신이 있는 거야. 탱커나 암살계를 상대로 할 땐 공격으로 방어할 자신이.”
마법과 달리 물리 공격은 얼마든 보고 막을 수 있다.
그렇다면 물리 방어력을 포기하고 마법 저항에 올인하는 것도 이상한 선택이 아니었다.
내가 무도가의 약점 보완을 위해 물리 저항력을 중시하는 것처럼 피케도 마찬가지 선택을 했을 뿐이다.
단, 이처럼 극단적인 세팅을 살리려면 디펜스 능력이 받쳐줘야 했는데 피케의 실력이 생각보다 더 좋았다.
빛을 번쩍이며 뇌격을 벤 피케가 고속의 상단베기를 펼쳤다.
이를 악문 마이클은 지팡이로 검을 받아쳤다.
많은 마법사가 근접전이 약한 편이지만 마이클은 달랐다.
S.솔리드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몸놀림이다.
나는 물론이고 제레미, 데니스, 심지어 케빈까지.
무대에 오른 팀원 중 근접전 대응이 엉망인 선수는 단 한 명도 없었다.
팀 내 다른 선수들이 출전 기회에 대해 불만을 거의 가지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훈련을 같이 하면서 다들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기회를 받은 친구들의 컨트롤이 나보다 좋다는 걸 말이다.
지팡이를 검처럼 잡아 휘두르는 마이클의 몸놀림에 경기장은 경악에 빠졌다.
-ㅁㅊ 저게 뭐야.
-마법사가 아니라 힘법사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클래스 전직해도 잘하겠는데
검과 지팡이가 부딪쳐 나는 불꽃, 1라운드가 시작된 지 60초가 넘었지만 빠진 체력은 둘 다 합쳐 5퍼센트도 되지 않았다.
진정한 천상계 전투에 관중들은 목이 터져라 환호했다.
‘빠져나와. 마이클! 더 버티면 안 돼!’
한껏 달아오른 관중과 달리 팀원들은 애가 탔다.
아무리 마이클이 잘 버텨도 결국 엘레멘탈 마스터다.
아크나이트를 상대로 근접전은 어리석은 짓, 피케의 스킬이 터지기 시작하자 마이클의 체력이 무썰듯 토막나기 시작했다.
초월급 이상의 스킬은 인간의 동체시력으로 보고 막는 게 힘들다고 알려져 있다.
외워도 막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빠른 스킬도 더러 존재한다.
스탯의 한계로 마이클이 젖먹던 힘을 써도 완벽한 디펜스는 불가능했다.
그가 막을 수 있는 건 스킬이 가미되지 않은 기본동작까지였던 것이다.
콰가각!
마이클은 몸을 스치듯 날아오는 검기를 피해 바닥을 굴렀지만 한 번 잡은 기회를 피케는 놓칠 생각이 없었다.
깨진 독처럼 체력이 사라지자 마이클은 바닥에 대고 마법을 터트렸다.
본인도 마법의 여파에 휩쓸릴 걸 알고 있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신전 맵의 특성을 이용해 바닥을 무너트려 기회를 잡겠단 심산이었다.
균열과 함께 넓은 바닥이 훅- 하고 붕괴했다.
“후우.”
부유마법을 이용해 공중에 남아있던 마이클이 어지러운 시야속에서 피케를 찾았다.
이 기회를 살려 데미지를 입힐 심산이었다.
‘공중에서 두들겨 기회를 노리자!’
계획은 좋았다.
무너지는 바위를 밟고 튀어 올라 피케가 붙기 전까진.
“미친···.”
현실이라면 당연히 불가능하지만 가이아는 게임이다.
보법 스킬을 쓴 피케의 몸놀림은 흡사 날다람쥐 같았다.
그와 동시에 쏟아져 나오는 무한의 검격.
인피니트 슬래셔에 난도질당한 마이클이 힘없이 바닥에 떨어져 내렸고 승리를 알리는 초록불이 다이나믹 G.C 쪽에 들어왔다.
‘저놈은 진짜다.’
마이클의 경기를 보며 피케에 대한 평가를 다시 수정했다.
녀석은 진짜배기였다.
내 마음속에 괴물이라고 인정한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만한 실력자였던 것이다.
‘팀전까지 가는 건 기정사실이다.’
피케의 진짜 실력을 본 이상 남은 개인 라운드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결국 이번 챔피언 시리즈의 향방은 팀전에서 피케를 꺾을 수 있느냐로 갈릴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