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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OS 소설 아닌데요-68화 (68/170)

사람이면 당연합니다 (2)

그 말에 코치가 화들짝 놀란다.

“설마 고의로 지겠단 말이야?”

“예?”

코치의 대답에 나도 놀랐다.

“왜 무서운 소릴 하고 그러세요. 고의로 지는 것도 엄연히 승부조작의 범주 안에 들어가는데요.”

“아니지? 난 또 무슨 위험한 생각을 하나 하고 정말 놀랐지 뭐냐. 근데 지면 어떻게 된다니? 네가 지면···.”

코치는 말끝을 흐렸다.

지금껏 단 한 번도 진 적 없는 무패의 선수.

팀이 흔들리고 있을 때 최고의 에이스마저 덩달아 패배하면 그건 분명 상상하고 싶지 않은 그림일 것이다.

“지금 막 불안해지려고 하는데 혹시 이상한 생각 하고 있는 거 아니지? 넌 이대로 게임에 최선을 다하면 된다.”

“이상한 생각까진 안 했습니다. 그냥 지면 어떨까 생각해보시란 얘기였죠. 지금은 아니겠지만 저도 언젠가는 지게 돼 있습니다. 그게 언제냐의 문제죠.”

사람인 이상 지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번 패치에서 운영 측은 백색 계열의 방어값을 올려 좀 더 효율적인 공방전을 펼칠 수 있도록 설계했다.

날 노리고 한 패치는 아닐 것이다.

전체적으로 백색 유저들 승률이 퍽 저조했으니 말이다.

어찌 됐건 이번 패치로 인해 나도 질 가능성이 생겼다.

소위 S급이라 불리는 선수들, 리그에서 한 손에 꼽을 수 있는 재능을 가진 선수가 백색 클래스를 자유자재로 다룬다면?

상위 장비와 스킬에 전폭적인 투자를 받아 나서면 나라고 천년만년 무패로 버티진 못한다.

“제가 지면 팀 분위기가 더 떨어질 수도 있고. 대표님 심기가 불편하실 수도 있고. 우리팀을 만만히 본 상대 팀의 기세가 올라서 더 어려운 경기를 펼칠 수도 있겠죠.”

“잘 아네. 왜 알면서 그런 무서운 얘길 하고 그래···.”

코치는 제발 그런 상황이 오지 않길 바라는 눈치다.

브라이언도 타 게임 챔피언 출신으로 게임을 알 만큼 아는 사람이다.

내가 언제까지 이기기만 할 순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을 터였다.

“혹시 요즘 많이 버겁거나 그래? 분석팀에선 아직 문제없다고 해서 내가 신경을 많이 못 썼다. 미안하다.”

“아뇨. 아직은 버틸 만 해요. 올해 내내 전승은 장담 못하겠지만요. 어찌됐건 제가 말하고 싶었던 건 제가 지면 팀원들이 얻어가는 게 있을 거란 얘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고의로 지겠다는 게 아니고요.”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궁금한데?”

“기여도요.”

“기여도?”

코치는 선뜻 이해하지 못하고 반문했다.

“언제부턴지 팀원들이 저를 고정값으로 생각하는 느낌이에요. 작년엔 이 정도까진 아니었거든요.”

“고정값?”

“제가 반드시 이긴다는 계산을 머릿속에 넣어두고 플레이를 하는 거죠.”

“그거야 너에 대한 신뢰가 높으니까 그런 거지.”

“하지만 덕분에 팀 분위기가 크게 가라앉았죠. 지금 제리, 제레미, 마이클 모두 자신 때문에 졌다는 압박감을 크게 받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결과만 놓고 보면 걔들이 승리를 못 해서 시합을 놓친 게 맞잖아?”

“좀 더 정확하게 말씀드렸어야 하는데. 제 말은 친구들이 본래 느껴야 할 책임감 이상으로 패배에 대한 무게를 느끼고 있다는 말씀을 드린 거예요.”

S.솔리드 팀원들은 패배에 대한 자책을 다른 팀에 비해 더 심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 원인 중엔 여태껏 한 판도 진 적 없이 전승을 달리는 나도 들어있었다.

“코치님도 현역 시절에 선수였으니까 아시겠지만 게임을 하다보면 뿌듯할 때가 있잖아요. 주로 이겼을 때라든지?”

“그렇지. 나 때문에 팀이 이겼다고 생각하면 누구라도 기분 좋으니까.”

“내가 팀의 승리에 기여했다. 내 덕에 팀이 이겼다. 이런 감정과 생각은 프로 생활을 지속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죠. 그런데 우리 팀은 다른 팀에 비해 그게 약해요. 경기를 이기면 가장 주목받는 건 거의 저였고, 작년에 너무 높은 성적을 올린 탓에 승리는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하게 됐거든요. 그런데 올해는 3주 동안 3패를 했죠.”

“3패···.”

“리그를 계속 진행하면 패배 횟수는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마다 이기면 당연하고 지면 무조건 내 탓이란 생각을 하면 사람인 이상 피로가 쌓일 수밖에요.”

코치는 이런 식으론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지 조용히 내 얘기를 귀담아들었다.

나로 인해 게임을 졌다는 감정을 상쇄시키는 가장 좋은 아이템은 무엇인가.

답은 간단하다.

내 덕분에 팀이 이겼을 때 느끼는 감정, 희열이다.

그런데 이번시즌 S.솔리드는 팀이 이겼을 때 가져가야 할 만족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

작년의 압도적인 성적, 그리고 1승 고정값이 된 나 때문에.

많은 선수들이 시합이 끝나면 경기 결과에 대한 감상, 게시글, 댓글을 살핀다.

우리 팀도 마찬가지다.

보면 대부분 얘기는 비슷하다.

오늘도 유니크가 잘했다. 이대로 계속 이겼으면 좋겠다.

유니크는 잘하는데 팀원들 때문에 1패 하는 거 어떻게 생각하냐.

유니크만큼만 해라 등등.

팬들은 아무렇지 않게 패배의 요인은 이기지 못한 선수들에게 돌리고 언제나 약점을 찾아낸다.

누구 한 명을 찍어 네가 원인이라고 두들겨 패지 않으면 잠이 안 오는 모양이다.

원래 이 바닥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선수가 무척 많은 편이다.

지금까지 S.솔리드는 그런 문제에서 거리가 상당히 멀었지만 이젠 더는 남 일이 아니었다.

“코치님. 제가 볼 때 지금 우리 팀 분위기 문제는 딱히 방법이 없어요. 프로가 경기하는데 7, 8할의 승률은 다른 게임을 찾아봐도 엄청난 승률이잖아요. 팬들도, 팀원들도 받아들여야죠. 작년이 유례없는 미라클 시즌이고 이제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으로요.”

“으음.”

“그리고 솔직한 심정으로 저도 한 게임 정도는 빨리 졌으면 좋겠단 생각도 하고요.”

“아니 한솔아! 너마저 그러면 나는 못산다!”

코치가 움찔하더니 가슴을 두드리며 눈물 짜는 시늉을 했다.

“저라고 패배 부담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에요. 안 그런 척 하는 거뿐이지.”

기상천외한 능력, 거기에 피지컬을 얻어 지금까지 무패 신화를 쌓아올렸다.

선수의 커리어를 산으로 표현한다면 지금 나는 누구도 오른 적 없는 가장 높은 산을 오르고 있는 셈.

이 페이스 대로면 전생의 모든 가이아 프로게이머를 통틀어도 나를 뛰어넘을 선수가 없을 건 분명했다.

하지만 내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게 초인이 된 건 아니었다.

적어도 내 정신력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했다.

지금껏 쭉 정상을 차지했으니 언젠가는 내려갈 날이 올 터였다.

그 날이 오면 사람들은 내게 무슨 이야길 할까.

나를 정상에 올려준 이 능력은 앞으로 영원할까?

적어도 나를 다시 살게 한 녀석들한테 복수할 때까지 만이라도 능력이 남아있으면 좋으련만.

그건 내 욕심일는지도 몰랐다.

“코치님. 우리도 멘탈 케어 한 번 하죠.”

스트레스에 자주 노출되는 프로 선수 특성상 심리 치료, 상담은 그리 흔한 시스템이 아니다.

그간 우리 팀은 이런 문제에 노출된 적이 없기에 이제야 도입하는 것 뿐이다.

“안 그래도 부르려고 생각 중이었다. 금방 준비하마. 그나저나 한솔이 너 내일 진다거나···.”

“질 생각 없다니까요.”

“···고맙다.”

“별말씀을요.”

질 생각 없다는데 고맙단 소릴 듣는 선수는 아마 내가 유일하지 않을까?

***

코치의 우려와는 달리 다음날도, 그 다음 날도, 나는 계속해서 무패를 이어나갔다.

달라진 게 없진 않았다.

멘탈 케어 덕분인지 숙소 분위기는 다시 원래 자리를 되찾았다.

다만 승률, 아주 가끔 튀어나오는 패배는 어쩔 수 없었는데 도를 넘는 악플은 강력하게 대처한단 사실이 알려지자 법 무서운 줄 모르는 미치광이들 외엔 건전한 채팅문화가 유지됐다.

그 미치광이들도 법무팀의 뜨거운 맛을 본 뒤로는 하나둘씩 사라졌고 말이다.

또 하나 변한 게 있다면 바로 고정직이었던 내 자리가 비 고정이 됐단 사실이다.

언제나 엔트리 한 자릴 차지하던 나의 이름이 종종 빠지는 날이 생겼다.

이건 전적으로 내가 대표님에게 부탁한 결과였다.

물론 쉰다고 해서 쿨쿨 잠을 자는 것도 아니고 엔트리에 들지 못한 팀원들과 같이 경기를 지켜보는 작업을 해야 한다.

하지만 게임을 할 때보다 편한 건 사실이었다.

나의 영향력을 좀 줄이고 좀 더 다른 선수들에게 무게를 실어주려는 의도였다.

올해가 끝나면 팀을 떠나야 하니 갑자기 팀을 터트릴 게 아니라면 꼭 필요한 작업이기도 했다.

선수가 시즌 도중에 장거리 외출을 하는 경우는 흔한 일이 아니지만 난 주말이 되면 산을 오르곤 했다.

분기에 한 번씩은 꼭 들렸던 세도나 국립공원이었다.

최근엔 기운을 보충하러 산에 들리는 주기가 조금 빨라졌다.

원인은 체력이었다.

자연의 기운을 쓰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

스킬이나 장비의 레어리티를 올리고 싶어 힘을 쓸 때와 풀 컨디션을 유지해야하는 경우였다.

스크림을 반나절 가까이 뛰어도 전혀 지치지 않는데서 이미 인간을 초월한 체력이지만 이런 컨디션을 유지하는덴 기운이 많이 들었다.

내가 느껴야 할 피곤함을 자연의 힘이 대신 받아가는 듯했다.

게다가 작년과 달리 리그의 전체적인 실력이 오름에 따라 게임에 훨씬 더 많은 집중력을 필요로 했다.

만일 내 체력이 남들과 같았다면 더 빨리 지칠 수밖에 없는 구조, 기운의 소모가 늘어난 건 자연스런 일이었다.

에너지를 빵빵하게 충전하고 돌아와 게임에 접속하니 메시지가 한 통 들어와 있었다.

-약속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잡설이 붙지 않은 짧은 메시지.

나는 곧장 전송진을 이용해 약속 장소로 향했다.

길드원들이 같이 필드에 나가자고 하는 걸 잠시 미뤄두고 말이다.

전초기지부터 약속 장소까지 도착하기까지 시간이 제법 걸렸다.

현재 S.솔리드 길드는 미개척지 최전선을 돌파하는 중이기에 당연히 전초기지도 유저들이 주로 이용하는 중심지와는 거리가 먼 편이었다.

외곽에서 빠져나와 오랜만에 도심지로 나가는 셈이다.

웬만하면 있는 곳으로 오라고 했을 텐데 이번 만남은 내게도 상당한 이득이 있을 예정인지라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기로 했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회색 성채.

성채 내부에 위치한 작은 선술집에서 쥐색 로브를 입은 남자를 만날 수 있었다.

자리가 제법 넓은 가게인데도 주변에 사람이 없었다.

아직 사람이 많이 유입된 적 없는 전방 도시인 탓도 있고 유저가 활성화 되는 시간대도 아니었다.

프로게이머야 하루 종일 게임을 하니 상관없지만 일반 유저는 학업, 직장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니 아무래도 오전엔 게임을 하기 힘들다.

“만나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유니크님.”

활짝 웃으며 자기소개를 하는 남자의 정체는 헤르메스의 고위 간부였다.

고급 정보를 구하고 싶으면 가장 먼저 찾는다는 가이아 최고의 정보꾼 집단이다.

며칠 전, 길드 전초기지로 찾아온 헤르메스 일원은 나를 만나고 싶단 의견을 밝혔다.

평소 같았으면 무시했을 텐데 애초에 저쪽에서 제안하기를 만남에만 응해줘도 전설급 스킬을 내주겠단 딜을 걸어왔다.

한 번 만나서 얘기하고 전설급 스킬 하나 받을 수 있다는데 나가지 않을 이유가 있겠는가?

“바쁘실테니 본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는 현재 공략된 S.솔리드의 북방 개척 데이터를 원합니다.”

가이아의 모든 정보는 헤르메스로부터 나온다는 말이 있다.

틀린 말이 아니다.

나도 작년엔 이곳에서 데이터를 받아 쏠쏠하게 사용했다.

하지만 올해는 살짝 사정이 달랐다.

이번 시즌도 작년과 마찬가지로 헤르메스는 동서남북 모든 방면의 정보를 쓸어담아 거래하기 시작했다.

대체 저만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인력자원을 투입했을지 가늠키 어려울 정도.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헤르메스 직속 개척단의 실력은 어지간한 프로팀에 맞먹는다고 알려졌기에 양과 질 모두 빼어난 정보들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이 유일하게 밀리는 곳이 있었으니 바로 북쪽 최전선에 관한 자료였다.

북미 최고의 프로팀, S.솔리드를 중심으로 뭉친 우리 길드의 개척속도를 저들이 따라잡지 못했던 것이다.

“자료를 넘겨드리면 어떤 이득이 있습니까?”

“스킬, 돈, 무엇이든 저희가 조달할 수 있는 거라면 원하는 대로 드리겠습니다.”

“혹시 LGE마켓에 올라오지 않은 전설급 스킬이라 해도요?”

“물론이죠.”

내 말에 그가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저흰 이미 독자적으로 스킬을 확보할 일부 수단을 구축했습니다. 다만 프리미엄으로 가격이 좀 더 비쌀 수는 있습니다. 프로 선수로 뛰고 계시니 더 잘 아시겠지만 일부 물건은 가격을 책정하기 힘들 때도 더러 있으니까요.”

“그런데 굳이 자료를 사셔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헤르메스도 개척단을 따로 움직인다고 알고 있습니다. 어차피 곧 따라잡을 거 아닙니까.”

아무리 격차를 좁히려 해도 줄어들지 않던 개척 진도가 최근 빠르게 줄어들어 거의 나지 않는 게 사실이었다.

프로 선수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길드 모두 마찬가지였다.

리그가 시작됐으니 선수는 경기를 뛰어야 하고 자연스레 종일 개척에 힘쓸 수 없게 됐으니 헤르메스에 따라잡히는 건 당연했다.

“며칠 차이도 안날 텐데요. 길어야 일주일?”

“이쪽에서 일주일 짜리 유통기한을 가진 정보면 새거나 마찬가집니다.”

“그럼 이번 거래를 마치고 나면 또 뵐 일은 없겠군요. 시즌이 끝날 때까진 리그에 집중해야해서요.”

“유니크 님의 역량이면 앞으로 가이아가 어떻게 변할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많으실 것 같은데 짧은 정보라도 귀하게 받겠습니다.”

미래 정보를 달란 건가?

아마 북방 데이터는 그냥 명목상의 이야기고 처음부터 이쪽에 관심이 있던 모양이다.

업계 최상위 프로 선수들이 운영진과 긴밀한 커넥션을 갖는 건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아마 나라면 운영 측과 줄이 닿아있을 거란 추측을 했겠지.

실제로 이번 패치에 관한 소식도 다른 팀보다 조금 일찍 전해 듣긴 했다.

니콜라이와 종종 연락하는 덕분이었다.

전생에도 헤르메스가 운영계통에 발을 걸치고 있단 얘기가 파다했으니 이런 식으로 길을 만들었을 듯했다.

“지금 당장은 없지만 앞으로 그런 정보가 생길지도 모르죠. 근데 값은 잘 쳐주시는 분들인지 모르겠네.”

내 말에 남자는 자신 있게 선물을 내밀었다.

“약속드린 대로 이번에 나와주신 일에 대한 보상입니다.”

한 번 만나는 것으로 전설급 스킬 하나.

전설급 스킬이라고 모두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는 건 아니지만 그중 제일 안 좋은 놈이라고 해도 남는 장사임엔 분명했다.

“어떻게 적당한 값이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음?”

최하위 스킬만 아니면 좋은 거래로 생각하려 했는데 이건 정말 예상 밖, 없던 신뢰가 절로 생길 정도의 물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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