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OS 소설 아닌데요-64화 (64/170)

다시 돌아온 개막전 (2)

경기 시작까진 아직 한참 남은 시각.

ESBN과 인터넷 채널에선 시즌 개막에 맞춰 준비한 영상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날만을 손꼽아 기다린 팬들은 TV, 모니터, 영상을 볼 수 있는 곳 앞으로 몰려들었다.

-결과가 정해져 있음에도 기대가 되는 날이다.

-결과가 정해져 있다는 게 무슨 말임?

-이제 막 리그를 시청하는 뉴비인고?

-어우솔.

-ㅋㅋㅋㅋㅋ

-어우솔!

작년 하이라이트부터 시작해 슬그머니 시간을 거슬러 올라오더니 어느새 당일 촬영한 숙소 인터뷰 차례였다.

-여기는 아침인데도 애들 상태가 좋아 보이네.

-비시즌기간에 무슨 사료 먹였냐? 뱃살 봐라 ㅋㅋㅋ

숙소 인터뷰는 팬들에게 있어 에피타이저 같은 느낌이다.

선수들이 말빨이 좋은 건지 아님 대본이 좋은 건지, 간만에 보는 선수들은 사람 웃기는 재주가 있었다.

-S.솔리드는 또 인질이냐?

-항상 솔리드는 끝에 보여주더라.

-먼저 보여주면 니들 채널 돌리니까 그렇지

-ㅋㅋㅋ 우릴 너무 잘 아네.

이번에도 마지막에 배치됐을 거란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어느덧 화면에선 S.솔리드 숙소 전경이 흘러나왔다.

“오랜만이에요. 유니크 선수.”

“안녕하세요.”

-이번엔 그래도 맨 마지막 아니네.

-킹니크 오셨는가

-다른 선수는 살 좀 쪘던데 잘 안 먹고 다니나 봄.

-살찌면 몸이 둔해져서 안 됨. 은퇴할 때까지 현상유지 ㄱ다.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팬을 거느린 가이아 프로 선수.

인터뷰를 시청하는 모두가 유니크의 인터뷰에 집중했다.

S.솔리드 팬들은 유니크가 아무 말이나 해도 빵 터져서 웃기 바빴다.

-블랙이글스를 모른데. ㅋㅋㅋ

-이거 다 거짓말인거 아시죠?

-유니크는 진짜 대전상대 모를 수도 있음

-누가 나오든 다 이기는데 봐서 뭐함?

블랙이글스 이야기가 시작됐을 때만 해도 깔깔거리며 화면을 바라보던 시청자들은 갑작스레 입을 다물고 심각한 표정이 됐다.

생각지도 못한 은퇴 발언 때문이었다.

“못 지키면 은퇴하겠습니다.”

-헐;;

-저건 좀 너무 나간 거 아니냐?

충격적인 인터뷰에 커뮤니티마다 유니크에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블랙이글스 개무시, 이대로 좋은가부터 시작해 1인자의 오만함을 지적하는 글도 제법 많았다.

-솔직히 블랙이글스가 약하긴 하지.

-그래도 은퇴 발언은 선 넘었지 ㄹㅇ루

-근데 유니크는 블랙이글스 싫어할 수밖에 없음.

-왜?

-타읍읍;

-읍읍타!

-아. 우리 오빠 못 잃어 빨리 발언 철회하라그래!

-어차피 이길건데 쫌 조용히 해!

훈훈하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고 말았다.

한솔의 채널 고정! 멘트를 끝으로 화면이 페이드아웃 되자 이대로 인터뷰가 끝났구나 싶었다.

-이러다 은퇴하면 pd 시말서 확정이냐?

-이걸 그냥 내보내네. 머리에 총 맞았냐고 ㅅㅂ!

-오늘 져가지고 은퇴하면 개 레전드 ㅋㅋㅋ

-나 유니크 안티인데 은퇴하면 상남자 인정한다.

-다 꺼져!

유니크가 다소 경솔한 반응을 보였다는 의견이 주를 이룬 가운데, 다 끝난 줄 알았던 화면에 다시 한솔이 모습이 나타났다.

이대로 방송 전까지 떡밥을 태우려던 팬들은 뭐지? 하며 영상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인터뷰어는 다소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한솔을 바라봤다.

“과격한 공약을 거셨는 데요. 이유가 있을까요? 은퇴 언급으로 팬들과 블랙이글스 쪽에서 상당히···격한 반응을 보일 수도 있는데요.”

“이유야 있죠. 상대가 블랙이글스라면서요. 몇 번 불미스러운 일이 있어 팀 차원에서 항의를 했는데 변하는 게 없더라고요.”

“항의라니요?”

“블랙이글스에 우리 팀을 수시로 비방하는 선수가 있거든요.”

“네? 그게 사실인가요?”

“선수 이름을 언급해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아, 네. 물론이죠. 문제 생기면 저희가 다 편집해서 내보낼 거니까요.”

“이번에 새로 들어온 선숩니다. 닉네임은 타우러스.”

-내가 이거 얘기 나올 줄 알았다 ㅋㅋㅋㅋㅋ

-타우러스 ㅋㅋㅋㅋ

-뭔데 너만 알지 말고 알려줘.

-검색해봐. 타우러스, 유니크 검색하면 바로 나옴.

타우러스.

블랙이글스가 시즌 도약을 위해 사이클론과 함께 고르고 골라 뽑은 실력파 아크위자드.

일전에 전쟁지역에서 길드간 충돌에서 유니크가 본때를 보여줬던 상대다.

유니크에게 한 번 호되게 당한 선수들은 기가 눌리곤 했는데 타우러스는 전과 다름없이 유니크에 대한 적개심을 불태웠다.

아니, 오히려 더 꿈틀거리며 발악하기 바빴다.

그 이후로도 틈만 나면 길드 인원을 습격할 요량으로 전투를 걸어올 정도였다.

게다가 종종 트는 개인방송에서 유니크 별거 없다.

많이 과장됐더라 등의 발언으로 꾸준한 어그로를 끄는 행동은 덤이었다.

“유니크 솔직히 별거 아니에요. 클래스 잘 잡고 스킬 운빨 터져서 유행 타는 반짝 선숩니다. 리그 시작하면 충분히 박살 낼 수 있어요.”

사람을 끌어모으는 어그로.

이런 타우러스의 언행에 사람들은 대체로 두 가지 반응을 보였다.

실력도 쥐뿔 없는 게 나댄다는 반응, 유니크 꼴 보기 싫었는데 응원한다는 쪽도 있었다.

어찌 됐건 어그로를 끌기 시작한 이후로 타우러스의 개인팬은 덩치가 빠르게 커진 게 사실이었다.

유니크의 팬이 워낙 많다 보니 안티팬만 끌어들여도 그 숫자가 기존 팬을 아득히 넘어서는 숫자였다.

블랙이글스 자체가 팬이 별로 없던 팀인 데다 아직 데뷔전도 치르지 않은 신인.

그간의 어그로가 찻잔 속의 작은 바람이라고 하면 이제는 한솔의 인터뷰로 인해 타우러스의 검색량이 급격히 오르기 시작했다.

대체 어떤 미친놈이기에 유니크가 이렇게 나온 건지 궁금했던 것이다.

그리고 화면이 전환되며 타 팀 숙소가 등장했다.

인기를 생각하면 진작 나왔어도 이상하지 않을 블랙이글스 숙소였다.

-악마의 편집이냐?

-ㅋㅋㅋ 이럴려고 뒤에 놔뒀네

-블랙이글스 ㅋㅋㅋ 니들 왜 안나오나 했다!

포털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기 시작한 타우러스가 의자에 앉아 인터뷰를 시작했다.

화기애애하게 진행되나 싶던 인터뷰는 돌발 질문으로 진흙탕 싸움의 포문을 열었다.

“최근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타우러스 선수가 굉장히 S.솔리드를 싫어한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사실인가요?”

“예.”

“리그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팀인데 어떤 이유인지 무척 궁금한데요?”

“저는 실력도 없이 나대는 선수들 안 좋아합니다. 솔직히 S.솔리드 거품 너무 심하죠. 다들 인정할 겁니다. 그런데 조용한 이유가 뭐냐. S.솔리드 팬이 많으니까 욕먹기 싫은거예요. 저는 할 말은 합니다. 잘하면 잘한다고 하고, 못하면 못한다고 하고.”

-저새끼 지금 뭐래는 거냐?

-어그로 보소 ㄷㄷ

-S.솔리드 승률을 보고도 거품 드립을 하는 선수가 있다?

-지면 어쩌려고?

-저자식 브레이크 누가 훔쳐갔어 ㅋㅋㅋㅋ

-ㅁㅊ넘이신가? ㅋㅋㅋ

“S.솔리드 길드와 필드 싸움에서 졌다는 얘기가 들리던···.”

“누가 그딴 개소릴 합니까! 그 뒤로 우리도 몇 번 이겼습니다.”

타우러스가 목에 핏대를 세우고 소리쳤다.

인터뷰어 말까지 자를 정도면 상당히 열이 받은 모양이다.

-찐텐 ㅋㅋㅋㅋㅋ

-누나 도망가!

-눈빛 봐 ㄷㄷ 한 대 치겠다;;;

-ㅋㅋㅋㅋㅋㅋㅋ

“사실 지금 인터뷰가 전국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데요. 조금 전에 들어온 이야기에 따르면 유니크 선수가 오늘 대전 상대를 몰랐다고 했거든요.”

“거짓말이죠. 그걸 믿어요? 작전 세우느라 밤잠 설쳤다고 하면 믿을 만 하죠.”

“그리고 누가 나오든지 1분 내로 끝장내겠다란 발언을 했다는데 이에 대해 하실 말씀 있으신가요?”

“하. 새끼···.”

방송에 내보낼 수 없는 과격한 단어가 나왔는지 연신 삐소리가 울렸다.

“전해주세요. 자신 있으면 1라운드에 나오라고. 오늘 경기 블랙이글스가 잡습니다. 전국에 있는 팬 여러분. 응원해 주십시오. 이 타우러스가 일 한 번 내겠습니다.”

“혹시 지면 어떻···.”

“지는 놈은 은퇴하는 겁니다. XX!”

-하 새끼래 ㅋㅋㅋ

-킹두대 매치 미쳐버렸다;;

-아직도 4시간이나 남은거 실화야?

-경기 마렵네 ㅁㅊ놈들;;

-이거 지는 팀은 뒷감당 못 할 텐데.

-e스포츠 팬질 10년 하면서 이런 미친 오프닝은 처음 본다.

불바다가 된 커뮤니티, 갑작스런 단두대 매치까지.

그야말로 역대급 개막전이었다.

***

입장신호를 기다리는 브라이언 코치의 얼굴은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화난 도깨비 역할을 시키면 딱 좋을 정도.

코치뿐만이 아니었다.

인터뷰 방송이 나간 이후 S.솔리드는 독이 바싹 오른 상태였다.

난 타우러스가 어떤 녀석인지 알고 있던 터라 기분이 엉망이 되거나 하진 않았는데 팀원들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더니. 애초에 선수 관리를 제대로 했으면 우리도 그런 식으로 인터뷰 안 했지.”

“한솔아. 1라운드 나갈 거지?”

마이클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피할 이유는 없었다.

오히려 나와 1라운드에서 맞붙어 준다면 고마운 일이었다.

우리 팀 입장에서 타우러스는 그저 재수 없는 놈에 불과하지만 완전 입만 산 놈은 아니었다.

실력만 놓고 볼 때 리그 상위권 레벨인 건 사실이었다.

개인라운드에서 제일 경계해야 할 대상은 둘, 타우러스와 사이클론.

그런 요주의 인물이 자진해서 붙어주겠다는데 이보다 더 고마운 일이 어딨겠는가.

접속 준비가 완료됐다는 싸인이 떨어지기 무섭게 풍경이 변화하며 우릴 벤치로 이끌었다.

-왔다아!

-오래 기다렸다;;

작년 시즌 6만 명 규모에서 10만 명으로 확장된 VIP 관중석을 꽉 채운 관중들.

열기로 한껏 달아오른 콜로세움이 선수들을 맞이했다.

“박수로 맞이해주시기 바랍니다. 오늘의 마지막 경기를 치를 주인공들이 입장하고 있습니다.”

다섯 번째 매치로 배치된 블랙이글스와 S.솔리드의 경기.

점심 일찍부터 풀린 떡밥에 현재 누적 시청자는 최고조를 달리고 있었다.

브라이언 코치는 고민할 거 없다는 듯 곧바로 엔트리를 제출했다.

1. 피닉스 (데니스 트란) - 실드나이트

2. 유니크 (정한솔) - 무도가

3. 헤븐메이커 (제레미 스티브) - 무도가

4. 오디세이아 (마이클 롱) - 엘레멘탈 마스터

5. 아그니 (제리 우드) -아크 위자드

6. 티르윙 (케빈 스미스) - 비숍

엔트리를 보는 순간 코치가 이번 경기를 얼마나 이기고 싶어하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본래 오늘 개막전 엔트리는 새로 들어온 하이프리스트 로이와 맏형 존이 들어올 예정이었다.

기존에 경기에 오르지 못했던 선수들에게 기회를 줌과 동시에 엔트리의 유동성을 가지는 것으로 상대 팀이 우리 팀 전력을 예측하기 힘들게 만들겠단 의도였다.

이번 시즌 스크림 시작 전, 브라이언 코치는 리그 초반에 로테이션을 돌리겠단 선언을 했었다.

그러나 이 엔트리는 변화된 로테이션과는 백만 광년쯤 거리가 있었다.

그야말로 고인 물의 참맛이 느껴지는 명단 아닌가.

S.솔리드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기존에 쭉 기용했던 멤버들 뿐이었다.

누구나 예측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안정성이 보장됐단 뜻이기도 하다.

실제로 S.솔리드에선 나, 제리, 제레미로 이어지는 딜러 3라인을 가동한 이후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상대 팀을 찍어눌러 왔다.

코치가 스스로 했던 말을 보류하면서까지 안정된 엔트리를 꺼낸 이유는 단 하나, 오늘 경기를 반드시 잡고야 말겠단 의지의 표명이었다.

엔트리 변화를 기대했을 선수들은 실망할 수도 있는 상황.

하지만 분위기를 살피니 실망한 기색을 표하는 선수는 없었다.

오히려 작년 결승전 엔트리 그대로 간단 점에 고갤 끄덕이는 분위기였다.

그만큼 타우러스의 인터뷰가 우릴 열 받게 했다는 뜻이었다.

그간 개인 방송으로 자꾸 우릴 언급하는 것에 대해 팀 차원에서 여러 번 블랙이글스에 항의를 넣었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오죽하면 팀원들이 개인방송으로 깔아뭉개버리자는 걸 내가 말렸다.

보는 사람만 보는 개인방송으로 응수하는 것보단 수백만 명의 시선이 쏠리는 개막전에서 콧대를 납작하게 눌러주는 게 훨씬 통쾌하지 않겠는가.

“한솔아. 매운맛 보여줄 준비 됐냐?”

“물론이죠.”

“박살 내버려!”

“한솔아. 믿는다!”

코치가 내 어깨를 두드림과 동시에 양 팀의 1라운드 출전 선수가 준비 완료됐다는 신호가 들어왔다.

팀원들의 기대를 등에 업고 무대 위로 올라갔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다섯 번째 게임! S.솔리드와 블랙이글스의 1라운드 경기를 시작합니다!”

굉음을 자아내는 관중의 함성 속에 2029시즌, S.솔리드의 첫 경기의 막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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