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OS 소설 아닌데요-62화 (62/170)

내가 누구인가 (2)

은은한 열기 속에 연습경기가 시작됐다.

올 시즌 누가 주전을 뛸 것인지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자리.

S.솔리드의 첫 번째 선택은 존이었다.

“일단은 작년 여섯 명은 제외하고 로테이션으로 간다. 유니콘스가 몸 좀 풀 수 있게 말이야.”

“그렇게까지 신경 써야 할까요?”

“기죽은 애들 상대로 연습이 안 될 것 같거든. 유니콘스잖아.”

상대 팀이 몸이 풀리는 걸 배려해줄 정도로 우리 쪽은 여유가 있었다.

솔직히 저쪽에서 의욕을 보이긴 하나 양 팀 간 실력 격차가 상당하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감독님이 말한 게 있으니 한솔이 너는 내보내긴 해야겠네. 일단 5라운드 대기다.”

“지금 나가고 싶은데 안 되겠죠?”

“조금만 기다리자. 바로 내보내 줄 테니까.”

코치는 새로 들어온 친구들을 첫 게임부터 엔트리에 올렸다.

너무 여유를 부린 걸까?

S.솔리드는 시작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작년 6인 엔트리로 나섯던 선수는 나와 제리, 마이클, 제레미, 데니스, 케빈이다.

나를 포함한 이 여섯 명은 팀을 받치는 대들보 같은 존재다.

이 인원을 빼고 엔트리를 짜겠단 얘긴 한쪽 팔을 묶어두고 하는 것 이상으로 심각한 패널티였다.

물론 내가 포함되어 있긴 하지만 5라운드 대기라 그 전까진 없는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최근 게임 양상은 청색과 적색이 나눠 먹는 시대.

완전히 백색이 변두리로 밀린 상황에 엔트리에 아크나이트, 버서커, 수호자까지 들어가니 거의 속수무책이었다.

그나마 애덤이 체면치레를 했지만 3:1 패배라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오고 말았다.

5라운드까지 가지도 못한 것이다.

“으음.”

코치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상위권도 아니고 중위권을 맴도는 팀에게 3:1 패배.

물론 클래스 상성에 맵까지 따라주지 않았다지만 조금 심각하긴 했다.

“나이스!”

“잘했다. 얘들아!”

반면에 유니콘스의 벤치 분위기는 화기애애하기 그지없었다.

S.솔리드도 별거 아닌데? 그리 생각하는 게 눈에 보였다.

스크림도르로 불렸던 S.솔리드 아닌가.

주력 멤버가 빠진 걸 이들 역시 모르는 바는 아니나 기분 좋은 건 사실이었다.

우리 감독은 어떤지 슬쩍 보니 여전히 팔짱을 낀 채 상황을 관망할 뿐, 별다른 언급은 없었다.

주력 카드를 내기 시작하면 압도적으로 박살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깔렸으니 딱히 열 받을 것 없다는 태도다.

다만 이번 판 패배의 원인을 제공한 선수들은 이미 많이 무너진 듯 보였다.

한 번 넘어간 분위기를 가져오는 데 가장 효과적인 건 압도적인 경기로 라운드를 따내는 것.

그리고 그걸 가장 잘하는 이들을 두고 사람들은 에이스라 부른다.

“어떻게 하실 거에요?”

“이번 판 까지만 대기. 다음 게임부턴 개인전에도 내보낸다.”

“예.”

그렇게 시작된 두 번째 게임.

한 번 졌던 팀원들은 유니콘스의 다리를 붙잡고 늘어졌다.

이기진 못하더라도 쉽게 내주지 않겠단 의지가 강하게 느껴졌다.

특히 맏형인 존은 이를 악물고 적의 공세를 버텼다.

작년에 게임을 거의 뛰지 못한 존은 필사적일 수밖에 없었다.

소외당하는 버서커 클래스에 평범한 실력, 아마 S.솔리드를 나가게 되면 그가 다른 팀을 구하기란 쉽지 않을 터였다.

조금 전 게임엔 아크위자드를 맞이해 일방적으로 두드려 맞기만 했으나 이번엔 상성도 나름 괜찮았다.

유니콘스의 웨폰마스터를 상대로 존의 검격이 날카롭게 들어갔다.

‘잘하고 있어. 연습한 대로만 해.’

팀원들 모두가 같은 마음이겠지만 나는 한층 더 존을 응원했다.

재능으로만 따지면 평범한 1군 하위권에 머무르는 선수.

그러나 존의 연습량은 다른 선수보다 훨씬 많았다.

가장 일찍 일어나 새벽까지 연습실을 지키는 친구다.

어떻게든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는 그의 모습에서 예전의 나를 보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프로게이머 생활을 하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느끼겠지만 이 바닥은 정말 재능있는 친구가 많은 곳이다.

평범한 선수가 살아남으려면 2배, 3배 연습하는 것만이 살길이다.

존은 시간이 날 때마다 내게 틈틈이 조언을 구했다.

평범한 1군 선수가 재능 충 사이에서 버틴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의 마음을 잘 알 수 있기에 나는 최대한 그를 도왔다.

맨투맨으로 열심히 도와주자 분명 효과가 있었다.

변칙적인 공격에도 당황하지 않고 공격을 받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공격의 심리, 왜 이렇게 움직여야 하는지를 자세히 설명하며 그의 훈련을 도왔다.

솔직히 힘들었을 거다.

전신접속기를 쓰게 된 이후 선수들은 연습전이라면 치를 떨었다.

아무리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고통 때문이었다.

오죽하면 연습벌레로 소문난 제레미의 연습량이 급격히 떨어졌을 정도다.

그러나 존은 오히려 연습량이 늘었다.

이렇게 열심히 매달리는 선수의 실력이 늘지 않을 수 없었다.

“존이 요즘 많이 좋아졌더라.”

“요즘 연습 제일 오래 해요. 그것도 한솔이랑.”

“음.”

감독과 코치가 존에 대한 감상을 나누는 사이 존의 대검이 상대의 옆구리를 양단할 기세로 휘둘러졌다.

이럴 때 대응하는 방법은 세 가지, 공격을 막거나, 피하거나, 그대로 밀어붙이는 것이다.

일단 막는 건 별로 좋지 않은 수다.

버서커의 공격은 중량감에 있어 탑클래스를 달린다.

날렵한 공격을 추구하는 웨폰마스터가 막기 쉽지 않았다.

피하는 선택은 차선쯤 되는데 공방을 나누다 뒤로 빠졌을 때 곧장 이어지는 상대의 연계를 받아내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뛰어난 프로는 열이면 열, 그대로 상대의 급소를 노린다.

어차피 체력이 0이 되지 않는 이상 지지 않는다.

옆구리를 내주고 상대의 머리통을 꿰뚫으면 대량의 체력을 소모시킬 수 있다.

존의 남은 체력을 고려했을 때 머리를 뚫리면 패배는 확정.

유니콘스의 웨폰마스터는 그 찰나의 순간에 최선의 판단을 내렸다.

그대로 머리를 향해 오른손에 쥔 검을 내지른 것이다.

“아!”

양 팀 모두가 웨폰마스터의 승리를 직감할 때 나만이 존의 승리를 예감했다.

턱을 당기며 우직하게 대검을 휘두르는 일격에 순간 웨폰마스터의 얼굴이 크게 일그러졌다.

순간 숨을 쉬는 것도 힘들 정도의 고통이 상대를 엄습했다.

파르르 떨리는 오른손은 머리를 꿰뚫지 못하고 존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정상급 프로게이머라 해도 버서커의 대검을 맞고 자세를 끝까지 유지할 순 없다.

때문에 웨폰마스터가 게임을 잡으려면 상체가 뒤틀릴 것을 고려해 궤적을 손봤어야 했다.

자신의 몸이 보내오는 고통을 무시하고 그대로 깔끔하게 공격을 이을 수 있을 거라고 자신했던 게 상대의 패배 요인이었다.

“우윽.”

옆구리가 끊어지는 통증을 느끼며 얼굴을 구긴 상대에게 존이 연이어 공격을 퍼부었다.

한방 한방이 묵직한 공격이기에 순식간에 승패가 결정 났다.

“저걸 몸으로 받을 생각을 하네!”

“안 맞아봐서 그래.”

“끝내줬다!”

조금 전 패배의 여파로 가라앉았던 분위기가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무대를 내려오는 존은 가장 먼저 나를 찾았고 희미한 웃음을 보였다.

나 역시 엄지를 들어 보이며 화답했다.

*

애덤이 다시 한 번 승리를 가져오며 2승을 확보, 결국 게임은 5라운드까지 이어졌다.

우리 팀 기세가 오른 반면, 유니콘스는 분위기는 조금 가라앉았다.

S.솔리드가 강팀이긴 하지만 주전을 다 뺀 엔트리를 상대로 접전을 벌이고 있는 셈이니 기분 좋게 웃을 수 없었다.

5라운드에 출전할 선수로 브라이언 코치는 나와 폴, 애덤과 로이를 지목했다.

무도가, 수호자, 다크레인저, 하이프리스트.

팀전을 치르기에 썩 좋은 밸런스는 아니었다.

그러나 나를 바라보는 팀원들, 코치의 눈빛엔 무한한 신뢰가 담겨있었다.

“기대한다.”

“뭘?”

제리가 말했다.

“우리가 당한 압도적인 폭력. 쟤들도 맛 좀 봐야지.”

“누가 들으면 엄청나게 때린 줄 알겠네.”

“때렸는데?”

“때렸지.”

다른 팀원들까지 제리를 거들자 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연습때 제대로 해두지 않으면 실전에서 실수를 하기 마련.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조금 신경 써준 것뿐인데 오해를 산 모양이다.

“걱정 마. 연습 말고 진짜 실전이 뭔지 보여줄 테니까.”

“오메···.”

놀라는 팀원들을 뒤로 한 채 5라운드가 시작됐다.

[5라운드 - 유구의 천칭]

마력 조성 3레벨 맵의 등장에 유니콘스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마법사를 보유한 쪽이 유리할 수밖에 없는데 유니콘스 쪽엔 마법사가 둘이나 있었다.

아크위자드, 엘레멘탈 마스터.

반면 이쪽엔 마딜러가 한 명도 없는 상황, 어떻게 움직이는 게 좋을지 고민하는데 상대가 먼저 움직임에 나섰다.

“마그네틱 포스.”

“스톤엣지!”

상대를 끌어당기는 마법과 지면에서 솟구치는 바위기둥에 우리 진형이 강제로 붕괴됐다.

놈들의 속셈은 명백했다.

나와 팀원들을 떼어놓으려는 거다.

2:1 마크를 하시겠다?

본래 팀전은 네 명이 똘똘 뭉쳐 힘싸움을 겨루거나 딜러진이 상대 딜러 한 명씩을 맡아 개인전을 펼치는 양상으로 흐르는 게 일반적.

체력바가 얼마 남지 않은 후반이 아님에도 2:1을 시도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2:1 불균형 마크는 상대 팀에 막기 버거운 톱클래스 유저가 있을 때 시도하는 작전이다.

제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상대 역시 프로, 2:1을 하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다.

물론 한 명에 두 명을 붙이면 나머지 반대편이 수적 열세에 시달리지만 2:1보단 2:3이 할만하기에 나온 전략이다.

아크나이트랑 비숍 하나.

유니콘스의 전략은 제법 쓸만했다.

마력을 폭발적으로 펌핑하는 맵 특성을 이용해 마딜러 둘이 세명을 마크하는 사이 힐러의 전담 지원을 받는 아크나이트로 에이스를 격파하는 작전이다.

무장 버프를 받은 아크나이트가 방패를 앞세우고 미끄러지듯 달려들었다.

새로 들어온 녀석이네.

작년에 본 적 없는 얼굴인 데다 나를 보며 조금도 긴장하는 기색이 없었다.

전형적인 패기 넘치는 신인의 모습이었다.

“하압!”

기합과 함께 내지르는 검 끝에 풍압이 모여든다.

암살계는 기본적으로 방어력이 약하다.

상대 역시 프로, 이런 공격을 정타로 허용하면 체력이 순식간에 바닥나 버린다.

마환지를 맞추자 검의 궤적이 틀어졌다.

그와 동시에 자세를 숙여 상대의 하체를 손가락으로 찍었다.

겉으로 보기엔 그저 툭 하고 갖다 댄 것뿐인데 불꽃이 튀더니 금속 때리는 소리가 쾅하고 울린다.

“이런 미친···.”

커스텀 게임은 말 몇 마디 섞는다고 경고를 줄 심판이 없다.

아크나이트는 조금 전 공격으로 깎여나간 체력을 확인하고선 깜짝 놀라 거릴 벌렸다.

역시 쓸만해.

조금 전 아크나이트의 체력을 토막 낸 지법은 열양지, 간만에 마켓에서 공수한 전설급 지법이었다.

녀석이 힐러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면 조금 전 공격으로 다리를 절었을 테고 심할 경우 통증에 정신이 팔려 연타를 넣을 수 있었다.

하지만 힐러가 고통을 줄여주는 버프와 즉시 체력을 회복해줬기에 곧장 승부를 낼 수 없었다.

예상 밖으로 강한 위력에 긴장하는 아크나이트를 향해 양손의 검지를 쭉 뻗었다.

같은 전설급 스킬인 교룡뇌조와 열양지의 차이점, 바로 사정거리다.

마환지처럼 멀리 뻗진 못하더라도 열양지는 어느 정도 떨어진 상대를 공격하는 것도 가능했다.

오른손은 상대의 미간을, 왼손은 상대의 고간을 노렸다.

안타깝게도 가이아에서 급소 공격금지 규칙은 없다.

어차피 알이 터져나가는 것도 아닌데 뭐.

나의 공세에 순간 고뇌하던 아크나이트는 재빨리 방패로 아래를 가렸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이마에서 가루가 철철 넘친다.

전체 연령가 게임인지라 반짝이는 빛이 피를 대신해 흩날렸다.

“아악.”

엄살은.

다른 친구들이 맨몸으로 버틸 때 이 녀석은 고통 경감 버프를 받고 있다.

그런데도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다니.

참을성이 부족한 친구였다.

“빨리 끝내고 합류해야 해! 마력은 넉넉하니까 분발하라고!”

힐을 밀어주는 하이프리스트가 목에 핏대를 세우고 소리친다.

마력이 풍부한 맵이라 힐러도 마력이 차고 넘쳤다.

힐러의 마력이 충분하면 체력은 계속 풀로 유지된다.

그 누구라도 힐러를 붙인 아크나이트가 질 거라곤 생각 못 할 상황이다.

“클린히트를 못해도 차곡차곡 데미지를 넣으라고! 갉아먹기 싸움을 하란 말야!”

“젠장.”

다시 방패를 다잡은 녀석이 저돌적으로 돌진해 들어온다.

공격 전략이 바뀌었다.

다소 고통을 받더라도 감수하고 상대의 체력을 뜯어낼 생각이다.

녀석이 방어를 도외시하고 달려들 때마다 나의 주먹이 금빛과 함께 튀어나갔다.

망치로 바위를 때리는 것 같은 소리가 연이어 주변을 울렸다.

“으, 으윽.”

한 대, 두 대, 세 대, 네 대.

용의 충격이 정통으로 터질 때마다 녀석의 표정이 걷잡을 수 없이 일그러진다.

아파서 못 견디겠단 표정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게 나는 지금 모든 능력을 개방해 전력으로 상대를 후려치고 있었다.

이번 시즌 들어 새롭게 추가된 공헌도 시스템.

막대한 공헌도를 바탕으로 장비를 개조하면 고유의 강화효과, 특수한 버프를 얻는 것도 가능하다.

과연 자연의 기운이 공헌도 사용에도 적용이 될지 궁금했다.

안되더라도 서버에서 가장 많은 공헌도를 쓸어담고 있는 게 우리 길드였으니 적어도 다른 팀보단 성능을 예쁘게 뽑아낼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적용이 되더라고.

주먹이 금빛을 요란하게 울리며 한 번 상대를 강타했다.

“허윽!”

“일어나 인마! 일어나라고!”

도저히 버틸 수 없었는지 외마디 신음과 함께 아크나이트가 무릎을 꿇고 말았다.

힐러는 꽥꽥거리며 소리치기 바쁘다.

아마 지금 경기를 분석 중인 유니콘스 관계자들이 보면 깜짝 놀랐고 있겠지.

내 공격력이 작년하곤 차원이 다를 테니까.

진(眞) 용의 충격.

칭호의 힘을 받아 한층 더 강렬해진 주먹이 아크나이트의 전신을 난타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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