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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OS 소설 아닌데요-60화 (60/170)

어서 이 손 잡으시죠? (2)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나는 즉시 정수 형과 연락처를 교환한 뒤 복합 체육관 등록을 도왔다.

일 년 동안 프로리그를 뛰지 못하는 관계로 체력 트레이닝을 시킬 참이었다.

생활 체육이 아닌, 시합 출전을 노리는 하드 코스!

내 주머니에서 일 년 어치 수강료가 한 번에 이체되자 관장님은 본인이 지을 수 있는 최대한의 미소로 우릴 맞이했다.

“건강한 육체로 만들어 드리죠!”

시합 출전을 노리는 하드 트레이닝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체육관엔 실전을 방불케 하는 훈련으로 구슬땀을 흘리는 프로 선수들도 더러 있었다.

프로게이머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텐데도 정수 형은 전혀 따지는 법이 없었다.

이번에 맺은 계약에 따르면 올해 계약금이 3천, 향후 팀이 만들어지지 않아 데뷔가 무산 돼도 2년간 추가 연봉을 지급하기로 했다.

제 발로 계약을 파기하지 않는 이상 3년간 9천만 원은 확정이었다.

계약 조건이 너무 좋은 탓인지 형은 여러 차례 반신반의했다.

이런 좋은 기회가 어떻게 자신에게 왔는지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대체 왜 자신이냐는 그의 질문에 나는 간단히 답했다.

“느낌이 좋아서요. 제가 예전부터 감이 좋았거든요.”

감이 좋긴 개뿔이.

아마 그랬으면 총 맞을 일도 없었을 거다.

오히려 감이 좋은 건 정수 형이었다.

중국에서의 짧은 프로 생활을 마무리 짓고 XG게이밍으로 간다고 했을 때 유럽행을 만류했던 건 다름 아닌 정수 형이었으니까.

내가 그때 형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아니, 잠깐.

총에 맞는 최악의 결말을 맞이하긴 했지만 지금 내 인생은 프로게이머로선 더할 나위 없을 만큼 호황이다.

이건 운이 좋다고 봐야 하나?

어찌 됐건 정수 형은 내가 이상한 사람이 아니란 건 믿어주는 낌새였다.

아직 저녁 약속 전까진 시간이 남는 관계로 나는 운동을 같이할 겸 몸을 풀었다.

“형. 이제 운동 열심히 하셔야 해요. 체력이 곧 실력이에요.”

“예.”

“말 편하게 하시라니까요. 저는 이미 형을 같은 팀으로 생각하는데.”

“그, 그래.”

“그럼 가볍게 팔굽혀 펴기부터 콜?”

***

프로게이머는 개인 시간이 거의 없는 직업이다.

공부보단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기에 개꿀 직업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게임이 직업이 되는 순간 그리 즐겁지만은 않다는 걸 바로 깨닫게 된다.

강제로 하루에 열여섯 시간씩 게임을 하다 보면 내가 이 짓을 왜 하고 있지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S.솔리드라면 모를까 한국 프로팀에서 느긋한 개인 일과란 어림도 없다.

다만 이런 와중에도 능력을 발휘하는 이들이 있으니 우린 그들을 초능력자라 불렀다.

“들었냐?”

“뭘요?”

“진수. 애인 생겼다더라.”

“진짜요? 재주도 좋네!”

여기서 유의해야 할 건 진수란 친구가 잘생기지도 않았으며, 말끔하게 꾸미고 다니는 인간이 아니란 점이다.

프로게이머를 하다 보면 대부분 숙소에선 절어 있기 마련인데 그 친구 역시 마찬가지였다.

세상에 반바지에 늘어진 티셔츠, 슬리퍼나 찍찍 끌고 다니는데 대체 어떻게 여자친구를 사귈 수 있단 말인가.

이쯤 되면 왜 우리가 여자친구가 있는 팀원을 초능력자라 불렀는지 십분 이해가 갈 것이다.

될 놈 될, 안될 안.

현실이 암만 시궁창이어도 될 놈은 된단 뜻이다.

그때 다짐했다.

언젠가 내게 저들과 같은 행운이 찾아온다면 나는 절대 저런 꼬락서니로 만나러 가진 않겠다고.

물론 전생엔 끝내 기회가 찾아오지 않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이곳에 앉기 전, 나는 택 떼고 걸친 새 옷으로 무장했다.

티 나진 않겠지?

“오빠!”

문이 열리는 소리에 내가 가볍게 손을 흔들자 채린이가 잰걸음으로 달려와 앉았다.

어쩌면 진심으로 내게 팬 이상의 호감을 갖고 있는 건 아닐까.

활짝 웃는 얼굴을 보니 나도 모르게 김칫국을 떠올리게 된다.

주변에 앉아있던 사람들의 힐끔거리는 시선이 느껴진다.

저 사람들의 미의 기준 역시 나랑 비슷한 모양이다.

“오래 기다리셨어요?”

“아니? 5분 전에 왔어.”

사실 20분도 전에 와서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었지만 부담 줄 생각은 없었다.

빨리 오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고 정수 형이 너무 빨리 퍼지는 바람에 일찍 온 것 뿐이었다.

정말이다.

“오빠 배고프세요?”

“네가 고픈 거 아냐? 배고프다고 얼굴에 써져 있네. 밥부터 먹을래?”

마침 나도 가볍게 뛰고 왔더니 식욕이 당겼다.

공교롭게도 오늘 채린이와 만나기로 한 이곳, 용산은 내가 제법 잘 아는 곳이었다.

가이아 프로리그를 뛸 당시 용산 e스포츠 아레나를 문턱이 닳도록 드나든 덕이다.

채린이가 소속된 기획사도 용산에 자리 잡고 있다고 했다.

나야 뭐 주는 대로 잘 먹으니 메뉴 선택 권한은 채린이에게 넘겼다.

“진짜 아무거나 괜찮아요?”

“그렇다니까.”

“가리는 음식 없어요?”

“없어.”

“나중에 딴소리하거나 웃으면 안 돼요.”

뭘 고르려고 그러지?

흔히 스파게티, 파스타, 리소토 뭐 그런 음식들이 떠오르는데 말이지.

“그럼 고기 먹어요.”

“고기?”

“저는 밥을 먹어야 힘이 나거든요.”

“소? 돼지?”

손가락을 좌우로 흔들며 묻자 당당한 외침이 울린다.

“돼지!”

*

그날 저녁 식사는 데이트 같은 낭만과는 거리가 좀 멀었다.

그것은 양껏 배를 채워 에너지를 만들어 내고야 말겠단 몸부림에 가까웠다.

흑심이라곤 한 점 없는 채린이의 순수한 팬심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암튼 잘 먹는 거 보니 좋네.

“오빠도 한 잔!”

누가 들으면 음주로 오해할라.

정신연령은 술 좀 들이켜도 아무 문제 없지만 아직 열아홉은 혼자 술을 마실 수 없는 나이다.

한 살 어린 채린인 말할 것도 없고.

시원한 사이다를 마시고 있을 때 갑작스레 예상치 못한 공격이 들어왔다.

“아까 민준이가 자기도 오겠다는 거 제가 오지 말라고 그랬거든요? 오빠랑 둘이서만 보려고요. 잘했죠.”

“응?”

이건 무슨 뜻이지? 아침부터 여러 번 헷갈리는데···.

내가 이래서 연애를 못 한 건가.

“겨울에 오빠랑 둘이 밥 먹었다고 민준이가 얼마나 약올렸는데요. 기회만 오면 꼭 갚아준다고 생각했거든요.”

“아, 그래?”

“다른 생각 하셨어요?”

“아니? 안 했어.”

“저 소원권 아직 남아있는 거 기억하세요?”

그림자 발자국.

현재 가이아에 풀려 있는 최강의 스킬 중 하나.

전생엔 사이클론이 획득한 이후 한참 뒤에야 풀렸던 스킬인데 이번 생엔 채린이의 도움으로 내 손에 들어왔다.

당시의 충격을 생각하면 잊을 리 없다.

“당연히 기억하고 있지. 그래서 말인데 오늘 써도 되는데.”

“오늘은···패스!”

대체 뭐지? 뭔가 내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긴 한 눈치인데 오늘은 안 된단다.

“어려운 거 부탁 안 할 거니까 다음에 할래요.”

“그, 그래.”

소원권 유통기한이라도 만들어둘까 하는 찰나, 채린이가 날 보며 배시시 웃었다.

세상에, 이건 심장에 위험한 장면이다.

조금 전까지 전투적으로 고기를 먹던 친구 맞나?

뇌리를 대번에 날려버리는 새하얀 미소에 나는 그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

S.솔리드의 비시즌 기간 훈련은 기본적으로 자율이다.

사실 성적이 잘 나오는데 굳이 빡빡하게 터치를 할 필요는 없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아무리 팀에서 배려를 봐주려고 해도 꼭 지켜야 할 기본선이란 게 있다.

게다가 지금은 이미 비시즌 기간이 아니다.

시즌이 한 달여 밖에 남지 않은 시기, 선수들은 전투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빡빡하게 커스텀 게임에 매달리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내가 한국에 오래 있으면 화합을 해치는 게 된다.

오늘 저녁 비행기를 잡아놓고서 나는 정수 형과 2일 차 훈련에 돌입했다.

근육통으로 빌빌거리는 사람을 붙잡아 온종일 데굴데굴 굴렸다.

처음엔 조용히 지켜보기만 하던 관장님도 어느새 나를 보는 눈빛이 묘했다.

도무지 일반인에게서 찾아보기 힘든 강철 체력의 소유자였던 탓이다.

“이상하네. 몸을 보면 운동을 한 것 같지 않은데 체력은 완전 선수급이란 말이야.”

자연의 기운을 얻은 이후 무한 체력을 가졌지만 헐크 같은 근육질 몸으로 변한 건 아니었다.

평생 운동을 해 온 관장님이 보기엔 위화감이 들 수밖에 없었다.

“···살려줘.”

“관장님. 저는 저녁엔 다시 미국 가야 하거든요.”

“미국요?”

“예. 제가 미국에 직장이 있어서요.”

“아, 그래요? 완전 인텔리한 친구네.”

“그건 아니고요. 아무튼 저 없어도 꼭 이렇게 ‘빡’세게 훈련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수 씨. 진짜 선수 하려고?”

관장님은 조금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정수 형의 의견을 구했다.

처음엔 농담 삼아 대회코스로 맞춰달라는 줄 알았다.

그런데 운동 강도를 보니 진짜 선수를 노리고도 남을 정도였다.

“형. 쉬면서 들으세요.”

바닥에 대자로 누워 헉헉거리는 형은 눈이 반쯤 풀려 있었다.

이제 이틀째인데 너무 몰아붙였나?

“진짜 많이 힘들겠지만 일 년만 버텨요. 그럼 내가 형을 세계 최고의 팀으로 데려가줄 테니까.”

내 말에 관장님이 관심을 보였다.

“그거 무슨 얘긴지 궁금하구만.”

“게임 얘깁니다. 게임.”

“아, 게임. 우리 아들도 요즘 게임에 푹 빠졌는데. 가이아라고 아시려나 모르겠네.”

가이아의 인기는 내가 알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이런 때일수록 더욱 준비를 튼튼히 해야 했다.

그나저나 혼자서 힘들 텐데.

지금 형에겐 의지할 동료, 팀원이 따로 없었다.

K퀘스트에 있을 적엔 힘든 일도 많았지만 그래도 같이 어려움을 나눌 팀원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엔 훈련을 함께할 동료가 없는 상황, 힘든 훈련을 혼자서 해내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형을 잘 챙겨주십사 관장님께 따로 봉투를 챙겨드렸다.

아무래도 운동하다 보면 먹는 게 늘고 돈 쓸 일이 생길 수도 있었다.

다달이 계약금을 보낼 예정이지만 집안 사정이 넉넉지 않은 걸 알기에 이런 거로 신경 쓰게 하고 싶진 않았다.

비행기를 타기 전, 훈련을 조금 일찍 마치고 민준이를 불러 자릴 만들었다.

내가 소개하지 않으면 아무래도 단둘이 만나긴 어색할 테지.

“서로 인사해요. 내년엔 한솥밥 먹을 식구니까. 이쪽은 김민준, 이쪽은 정수 형.”

“안녕하세요. 김민준이라고 합니다. 중학교 3학년입니다.”

“중학교 3학년이라고?”

정수 형은 이렇게 어린 친구와 한배를 탈 줄은 생각도 못 했던 모양이다.

“근데 이분은 안색이 많이 안 좋아 보이시는 데요.”

“괜찮아. 운동 열심히 해서 그래. 내가 어제부터 체육관 등록시켜 드렸거든.”

“아 진짜요? 진작 말하시지. 우리 체육관으로 오셨으면 싸게 해드렸을 텐데.”

“체육관은 집에서 가까운 게 최고지.”

“그건 그렇죠.”

“한솔아. 이 친구도 감이 좋아서 영입한 거야?”

“아뇨.”

형한텐 미안하지만 민준이는 감이란 핑계를 댈 필요 없는 가이아 최고의 인재 중 한 명이다.

“이 친구는 당장 1군에 넣어도 제 몫을 할 친구예요.”

그 말에 형은 왠지 의심하는 듯한 기색을 보였다.

“진짜예요. 북미서버에선 이미 그랜드 마스터 상위권 찍을 만큼 실력 있는 친구니까.”

“세상에 그랜드 마스터?”

진심으로 놀란 기색이었다.

아무리 서버 간 격차가 있다고 해도 마스터 레벨에서 아직 벽을 넘지 못한 자신과 비교하면 압도적 재능 차이였다.

“내가 정말 이 팀에서 잘할 수 있을까? 너무 민폐일 것 같아서 그래.”

한 명은 열여섯의 나이에 그랜드 마스터를 찍을 정도의 재능, 다른 한 명은 포털 검색에서 기사가 주르륵 뜰 정도의 슈퍼 스타.

여기가 내 자리가 맞나 싶은 속내가 얼굴에 다 드러난다.

“이제 시작인데 벌써 걱정하고 그래요. 아까도 말했지만 훈련만 잘 따라와 주면 형도 어디 가서 밀리지 않을 실력은 돼요.”

전생에서 선수 김정수의 능력은 나보다 좀 더 나은 정도였다. 자질로 보면 그저 흔한 선수 중 한 명이지만 나는 형의 실력을 한 단계 높여줄 자신이 있었다.

장미칼의 클래스는 아크나이트, 과거에 내가 배웠던 것처럼 이번엔 내가 그를 도와줄 차례였다.

“그래서 말인데, 민준아. 너 이제 그만 한국 서버로 옮기자.”

“그럼 더 이상 길드활동 같이 못하는데요?”

“어차피 시즌 들어가면 전처럼 자주 못 할 거 아냐. 그리고 부탁할 것도 있고.”

사람은 자신 보다 뛰어난 사람과 붙어 있어야 더 빨리 배운다.

내가 없는 동안 민준이에게 정수 형을 부탁할 참이었다.

운동이라면 그 또한 일가견이 있으니 참으로 적절한 스승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형은 왜 한국에 돌아오려고 하는 거예요? S.솔리드 세계 최고의 팀이잖아요.”

“세계 최고 팀이지. 그런데 그게 영원할까?”

적어도 올해까진 리그와 월드챔피언십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다.

그러나 북미에 계속 붙어 내 프로게이머 수명이 끝날 때까지 정상을 지킬 자신은 없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하나둘 대단한 선수들이 모습을 드러낼 터였다.

그리고 그런 대선수가 제일 많이 나는 곳이 이곳, 한국이었다.

“민준이 너는 내가 S.솔리드에 자릴 만든다고 하면 올 거야?”

“저야 당연히 가고 싶죠. 부모님이 허락해주시면요.”

“네가 오면 누군간 우리 팀에서 나가야 해. 정수 형까지 영입한다치면 두 명을 내보내야겠지?”

내가 노리고 있는 영입 후보는 민준이 뿐만이 아니다.

당장 정수 형부터 시작해 각 분야 최고레벨의 선수를 눈독 들이고 있는데 그때마다 기존 선수를 죄다 내보낼 순 없다.

사람 좋은 해링턴 대표도 멀쩡히 잘하는 선수를 바꾸고 싶어 하진 않을 거다.

결국 내가 예정해둔 엔트리를 맞추려면 한국에서 다시 시작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적기가 바로 내년이고.

리그 1회 우승과 2회 연속 우승은 무게감이 다르다.

월드 챔피언십 또한 마찬가지다.

전세계 프로팀의 격돌, 수천만 명의 시선이 집중될 무대의 권위는 얼마나 대단할 것인가.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되기 위해선 반드시 가져와야 하는 트로피였다.

“내가 꿈 얘기한 적 있었나? 내 꿈은 누구나 인정하는 전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되는 거야.”

“형은 지금도 최곤데요?”

“북미에서만 보면 그렇지. 북미 말고 전 세계! 그리고 지금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기억될 선수가 되는 게 내 꿈이야.”

“닉네임이 유니크였지? 잘 어울리네.”

“한솔이 형 서브 캐릭터 닉네임은 엠퍼러에요. 이 정도면 그냥 세트죠.”

치킨을 앞에 두고 콜라를 번쩍 든 내가 호기롭게 외쳤다.

“닉 값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 다들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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