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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OS 소설 아닌데요-56화 (56/170)

운명의 소용돌이 (5)

까마득한 점수차, 갑자기 1위로 치고 올라온 S.솔리드의 등장에 가이아 커뮤니티가 크게 들끓었다.

비법을 알고 싶어하는 유저들은 제발 방송 좀 켜달라며 애원했지만 애석하게도 S.솔리드의 방송은 켜지지 않았다.

“죽을 것 같아···.”

무너진 고룡의 사체 옆, 진이 빠진 팀원들은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만약 이번 공략을 방송했다면 채팅창이 수십 번은 술렁일 정도로 힘든 전투였다.

처음 공략을 시작했을 땐 열두 명이었는데 지금 자리에 남아있는 인원은 여덟 명뿐, 네 명이나 데스패널티를 받았다.

케빈이 부활로 살려내는 건 하루 한 번이 한계인지라 어쩔 수 없었다.

서리고룡 둥지는 이번 시즌에 처음 등장한 던전으로 본래 20인 기준에 맞춰 설계된 던전이다.

인원수가 같다고 가정하면 광채의 신전보다 한 단계 윗줄의 고위 던전, 그런 곳을 프로라곤 해도 열두 명으로 돌파했으니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초월급 업적 - 고룡 살해

대규모 던전, 고대의 서리고룡 둥지를 최초로 공략하였습니다.

보상 : 원하는 장비 1개에 고룡의 분노 부여 가능.

고룡 둥지 격파로 얻은 업적을 보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초월급 업적이긴 해도 현시점에선 거의 전설급 업적에 준하는 보상이었다.

고룡의 분노 효과는 짧게 연타를 이어나갈 때 추가 데미지를 부여한다.

공격의 딜레이가 제법 긴 버서커 같은 친구를 제외하곤 모든 딜러가 갖고 싶어하는 효과 중 하나다.

운이 좋다고 밖엔 말 못하겠는걸.

레어 던전은 매 시즌 위치가 바뀌기 때문에 과거의 정보를 알고 있다고 해서 찾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줄기차게 레이드를 뛰었던 한국 2년차, 3년차 던전의 위치는 기억하고 있지만 이 당시 하지도 않았던 북미 서버의 던전위치를 알 순 없었다.

다만 가이아의 숨겨진 던전을 찾는 덴 나름의 비법이 있었다.

모든 상위 던전은 험준하고 지역의 깊은 곳에 숨겨져 있다는 점, 누가 굳이 둘러볼 이유가 없는 절벽 아래를 꼼꼼하게 살핀 게 이번 원정의 큰 행운으로 작용했다.

“잠깐만!”

성급하게 장비에 부여 효과를 바르려는 애덤을 뜯어말렸다.

이게 얼마나 좋은 효과인데 아무 장비에나 바른단 말인가.

S급 장비야 아직 등장시기가 멀었으니 그렇다고 쳐도 광채의 신전을 파밍하며 얻은 장비에 바르긴 솔직히 아까웠다.

같은 A급이라도 대규모인지, 소규모인지, 오래된 장비인지, 신규 장비인지에 따라 스펙이 천차만별이다.

새 시즌이 이제 막 시작됐으니 곧 상위 장비를 파밍할 수 있었다.

최소한 몇 개월은 쓸 장비에 사용해야 덜 아깝지 않겠는가.

“그럼 아이템 루팅해도 될까?”

“안 돼!”

로이 베스트, 팀에 새로 들어온 하이프리스트가 보스에게서 아이템을 거둬들이려 하자 팀원들이 버럭 소리 질렀다.

“똑똑히 기억해 둬! 우리 팀의 장비 개봉은 무조건 한솔이 몫이다!”

데니스가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찌나 팀원들이 큰 소리를 내는지 로이는 잔뜩 쫄아 뒤로 물러섰다.

장비 수거야 아무나 해도 되는 일 아닌가.

이런 게 텃세인가 싶어 그는 시무룩한 얼굴이 됐다.

그런 로이의 어깨를 제리가 두드렸다.

“너무 신경 쓰지 마.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거니까.”

“이유···?”

“우리 팀엔 한솔이가 루팅하면 장비 레어리티가 오른다는 속설이 있거든.”

“속설이 아니라 팩트지.”

“그렇고말고.”

새로 들어온 친구들은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하는 얼굴이다.

하지만 무수한 실전 파밍을 통해 꿀 같은 혜택을 누린 장본인들 눈빛은 달랐다.

“미다스의 손이시여. 개봉해주십시오!”

“에헴. 모두가 고대하던 시간입니다.”

모두의 기대를 받으며 고룡의 사체에 손을 대자 커다랐던 고룡이 빛으로 변하며 장비를 쏟아냈다.

대규모 던전 보스답게 그 양도 소규모 던전 보스와 비교가 되지 않았다.

시즌 첫 대규모 던전 공략, 슬쩍 자연의 기운을 좀 썼더니 여지없이 월척이었다.

난 매의 눈으로 장비를 훑었다.

보스가 어떤 장비를 쏟아냈는지 0.1초 만에 파악을 마치는 건 1군 꼴찌 밥 좀 먹어본 선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잡기였다.

있구만.

내 관심은 온통 무도가용 장비에 쏠려 있었는데 광택 없이 촘촘한 검은 비늘이 박힌 장갑이 내 눈길을 끌었다.

이건 누가 봐도 최상급 장비였다.

하지만 지금은 팀에 나 말고도 무도가가 한 명 더 있었다.

제레미, S.솔리드만 아니라면 어느 팀을 가더라도 무도가 에이스, 팀 전체 에이스를 노릴 수 있는 유능한 친구다.

[아이템 - 서리고룡의 비늘 장갑]

등급 : A

종류 : 장갑

특수 효과 : 근접스킬의 위력이 12퍼센트 상승한다.

[민첩 +122] [근력 +80]

내가 기운을 너무 많이 불어넣었나? 이건 A급 탈을 쓴 상위 장비다.

민첩이야 모든 직업이 중요하게 여기는 스탯이고 마딜러를 제외하면 누구나 선호하 근접스킬 위력 증가까지 붙었다.

이번엔 양보할 수 없다는 듯 우리 팀 근접 딜러들이 우르르 튀어나와 낙찰 경쟁에 가세했다.

장비하나를 두고 사람이 몰렸을 땐 코인으로 경매를 하는 룰이 있긴 하지만 매일 얼굴을 마주보는 프로 팀, 정규 공격대에선 주사위를 더 선호했다.

코인이 남아도는 것도 아니고 운으로 결정하는 게 더 낫다는 합의만 있으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내가 대표로 장비를 추리자 모두 접속을 종료했다.

긴장을 놓지 않고 장시간 플레이한 탓에 다들 지쳐 있었다.

주사위 대결은 숙소 거실에서 이뤄졌다.

패널티로 리타이어한 친구들도 주사위를 던져야 하기 때문이다.

하루 필드 사냥을 못 뛰는 것도 억울한데 장비 순번에서까지 밀리는 건 불합리했다.

“똑같은 눈이 나오면 한 번 더, 눈이 높은 사람이 오늘 나온 장비 중에 먼저 선택할 우선권을 가진다.”

더블은 국룰, 고개를 끄덕인 팀원들이 주사위를 던지기 시작했다.

한 번 던질 때마다 다들 희비가 엇갈린다.

“으으. 망할!”

“좋았어!”

다들 괴성을 지르며 주사위를 던졌다.

이 상황이 재밌는지 코치와 분석팀 역시 흥미로운 표정으로 우릴 지켜본다.

지금까진 13이 제일 높은 상황, 나는 출발선에 선 치타처럼 느긋하게 팀원들을 지켜봤다.

미안하지만 이번엔 양보할 수 없다.

나라고 매번 능력을 쓰는 건 아닌지라 태클을 거는 친구는 없었다.

투둑-

주사위가 땅에 떨어지며 6, 6 더블이 됐다.

13눈의 주인이던 존은 머리를 쥐어뜯었다.

“안돼에!”

“그럼 잘 받아갑니다!”

***

스타팅 포인트를 중심으로 가장 진척이 느렸던 북방대륙 개척은 S.솔리드의 질주 이후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특히 이번 시즌 처음 도입된 대규모 던전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S.솔리드가 클리어한 던전은 과연 얼마나 어려울지 많은 이들이 궁금해했다.

던전 위치만이라도 알려달라는 문의는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졌다.

레어 던전의 위치는 각 팀에서도 제법 귀하게 여기는 정보, 하지만 S.솔리드는 팬을 위한다는 명목하에 서리고룡 둥지의 위치를 공개했다.

어차피 아주 깊은 곳에 숨겨진 것도 아니고 마스터 레벨 이상 유저들이 북방에 엄청나게 유입된 상황이라 길어도 한 달이면 알려질 터였다.

팀 인지도와 팬을 위해 선공개하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런 결정 밑바탕엔 알려줘도 깨지 못할 거란 계산 또한 깔려 있었다.

실제로 S.솔리드조차 첫날 트라이 이후 고룡 둥지 방문을 잠정 중단한 상태였다.

분석팀이 내놓은 결과에 따르면 사망자 없이 클리어하기엔 아직 던전 난이도가 너무 높다는 결론이었다.

한 번 죽기 시작하면 패널티는 시즌이 리셋되기 전까지 풀리지 않는다.

장비 파밍을 꾸준히 해야하는 프로 입장에선 위험을 감수해가며 월척을 노리기보단 안정성을 높여 꾸준히 클리어할 수 있는 던전을 선호했다.

이런 속사정을 알 리 없는 각 프로팀, 그리고 콜로세움 상위 유저들은 공격대를 구성해 던전 클리어에 나섰다.

결과는 당연히 참패, 심지어 길드 레벨을 5까지 높여 인원을 20명으로 채우고 도전했는데도 실패한 파티 숫자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다.

그나마 2군까지 돌리는 프로팀의 경우 대량의 사망자를 내가며 클리어에 성공하긴 했다.

멘탈이 탈탈 털린 유저들은 이건 지금 넘볼 던전이 아니다, S.솔리드가 독이든 사과를 선물했다 등의 후기로 플레이 소감을 전했다.

가이아의 유저들이 새로 풀린 상위 던전에 헤딩하고 있는 사이, 우리팀은 잠시 기어를 낮춰 하위 던전 사냥에 주력했다.

남들은 클리어 엄두조차 못 내는 최상위 던전을 공략할 여력이 있음에도 굳이 중급 유저들이 뛰노는 던전으로 발길을 돌린 건 길드 레벨 확장 때문이었다.

나는 세력의 확대를 위해 길드 레벨업에 필요한 재료를 모을 것을 주장했다.

S.솔리드는 프로 팀 중 2군 팀을 돌리지 않는 몇 안 되는 팀이다. 필드 사냥에서 파티 효과를 받으려면 12명 인원으로도 충분했기에 팀에선 내 진의를 알 수 없었다.

길드 레벨 만렙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25레벨.

최대 레벨에 도달하면 길드 인원으로 무려 100명을 채울 수 있었다.

길드에서 이렇게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이유는 향후 오픈되는 전쟁 지역 때문이었다.

전쟁지역이란 필드에서 전쟁을 할 수 있는 지역, 소위 PK라 부를 수 있는 유저간 전투를 치를 수 있는 필드다.

그리고 전쟁지역을 차지하는 길드에겐 막대한 혜택이 주어진다.

길드는 성장도에 따라 점점 증축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향후 전쟁을 대비한다면 미리 레벨을 올려둘 필요가 있었다.

“한솔이가 하자는 일을 해서 손해 본 적은 없었으니까.”

이번 시즌에 효과를 보게 될 길드 증축, 당장 12인으로도 공략에 큰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지만 팀원들은 내 의견을 적극적으로 들어줬다.

실제로 우리 말고도 길드 레벨 증축에 신경을 쏟는 곳은 의외로 제법 있었다.

프로팀보단 주로 상위 유저 집단에서였다.

길드 덩치를 키워서 좋은 점은 아직 미개척 지역인 필드를 뚫는 데 필요한 전투력을 늘릴 수 있단 점이 컸다.

새 시즌이 시작 되고 일주일 동안 서버 전체의 개척 진척도는 4퍼센트 남짓, 나머지 96퍼센트는 먼저 먹는 팀이 임자였다.

길드 레벨이 올라감에 따라 우리는 새로운 인원을 필요로 했다. 수용 인원이 늘었으니 자릴 비워둘 수 없는 노릇이었다.

어중이떠중이를 받을 순 없기에 수면 아래서 은밀히 면접이 진행됐다.

내가 민준이나 채린이 같은 친구들을 아는 것처럼 팀원들 또한 각자의 인맥이 따로 있었다.

그중 마스터 레벨 이상의 유저를 추리니 생각보다 인원수급은 어렵지 않았다.

-이번에 우리가 길드원을 찾고 있는데 생각 있어?

-당연하죠. 근데 저는 플레이 시간이 짧은데 괜찮아요?

-시켜만 주시면 무조건 할게요!

-괜찮아. 가끔 도와달라고 지원 요청하는 날이 있긴 할 테지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지 뭐.

내가 아는 몇 안 되는 인맥들은 플레이 타임은 짧지만 실력은 출중했다.

이렇게 사람들을 하나둘씩 모으자 S.솔리드 길드는 금세 탄탄한 상위 유저 라인을 갖출 수 있었다.

사람이 모이면 자연스레 활동량이 늘어나는 법, 자유롭게 길드 건물을 드나들기 시작한 길드원들은 같이 던전을 돌거나 필드 보스를 사냥하며 길드 성장에 앞장섰다.

리그 최강의 팀이 길드에서도 최강의 자릴 따내는 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S.솔리드의 이름이 길드 랭크 페이지 최상위에 오르는데 걸린 시간은 고작 3일이었다.

본격적으로 길드를 앞세워 미개척 지역을 밀기 시작하자 다른 길드를 압도하는 공헌도와 쓸만한 정보가 끊임없이 쏟아졌다.

나도 몰랐던 연계 퀘스트의 단서라든지 레어 던전 위치에 관한 것들이었다.

*

순조롭게 개척 공략을 이어가던 길드 활동에 브레이크가 걸린 건 날씨가 따뜻해지기 시작한 봄날이었다.

수면 안대를 쓰고 단잠을 자고 있던 나를 케빈이 거세게 흔들었다.

“한솔아! 일어나!”

“뭐, 뭔데?”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세차게 흔들길래 설마 누가 또 도망갔나 싶었다.

그 때는 제리가 날 깨웠지만 말이다.

다행히 그건 아니란다. 하지만 그 뒤에 나온 말은 내가 인상을 쓰게 만들기 충분했다.

“우리 길드가 당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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