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OS 소설 아닌데요-51화 (51/170)

챔피언 로드 (3)

메테오 밤의 속도는 전설급 스킬 치고 그리 빠른 편은 아니다.

일단 속도는 평범한 덕에 당하는 입장에선 알멩이를 피해 충격파의 영향만 받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더원은 그런 느린 운석으로 제리를 용케 맞췄다.

조금만 타이밍이 늦었어도 불가능했을 텐데 말이다.

프로 1년차가 이 정도로 정교하게 스킬을 다루는 걸 보면 역시 최고의 선수 중 하나임은 틀림없었다.

하늘에서 운석에 강타당한 불의용은 돌 파편을 흩뿌리며 강으로 떨어졌다.

강속에 빠진 제리의 체력은 그대로 쑥 빠지더니 패배, 레전드크루 선수들의 얼굴에 안도의 빛이 번졌다.

자칫 4:0으로 흐를 수 있던 게임이 더원의 승부수로 팀전으로 가는 길이 열린 것이다.

“젠장. 그걸 맞추네. 미안하다.”

“아니야. 잘했어.”

“수고했어! 이제 나한테 맡겨.”

팀원들은 내려오는 제리에게 괜찮다 말했고 나는 제리의 어깨를 두드리며 곧장 무대 위로 올랐다.

드디어 내 차례였다.

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관중들이 한목소리로 유니크를 외쳤다.

-유니크!

-유니크!

-유니크!

“경기장에 유니크 선수를 부르는 목소리뿐이군요.”

“리그 최고의 슈퍼스타의 인기가 어느정도인지를 실감케 합니다.”

가이아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 내 팬들 뿐만 아니라 중계진, e스포츠 기자, 방송국 관계자들까지 모두가 나를 천재라 불렀다.

게임 역사상 다시는 보기 힘들 슈퍼 스타의 탄생!

나도 내가 다시 보기 힘든 선수라는 말엔 적극 동의했다.

프로 무대를 오가며 쌓은 7년간의 경험치, 게다가 최고 반열에 오른 선수들과 어깨를 견줄 최강의 피지컬, 지치지 않는 체력까지.

아마 나 같은 1년 차 게이머는 앞으로도 없지 않을까 싶었다.

관중석을 향해 손을 흔들자 환호가 더욱 커졌다.

비록 퍼펙트 경기는 물 건너 갔지만 나는 이들의 환호에 걸맞은 멋진 경기를 보여줄 참이었다.

개인 라운드, 팀전과 달리 선수 개인의 실력만 확실하다면 운적인 요소가 많지 않은 경기다.

상대 팀 아크위자드는 이미 승리에 대한 마음을 비운 것처럼 보였다.

야야. 그럼 안 되지!

무릇 명경기란 상대도 손바닥을 마주쳐야 가능한 법이다.

상대가 저렇게 맥빠진 채로 있으면 아무리 내가 용을 써도 멋진 경기는 무리다.

4라운드 맵은 벽람 초원.

전력으로 달려 거리를 좁히자 상대가 화들짝 놀라며 지팡이를 겨눴다.

장애물이 없는 무한맵, 의욕도 없는 상대를 가지고 노는 건 경기를 응원하러 온 팬들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굳이 은신 능력을 쓸 필요도 없었다. 나는 날 듯 마법을 피한 뒤 강렬한 니킥을 상대 얼굴에 꽂았다.

아직 전신 접속기가 아닌 걸 다행으로 알아라.

그랬으면 극한의 고통이 뭔지 온몸으로 느꼈을 테니까.

“맙소사! 유니크 선수, 일방적인 공세로 몰아붙입니다.”

“숨쉬기도 힘들겠는데요?”

-와 줌인으로 땡기고 있어도 제대로 안보여

-이건 손놓고 있어도 무죄임

-전보다 더 빨라진 거 같지 않음?

-진짜 빨라진거 맞아. 강화칭호 개사기;;

-속도 15퍼센트였나?

-유니크는 퀘스트 원 참여자라 30퍼

-일대일은 그냥 넘사벽 그자체 ㄷㄷㄷ

용의 충격과 교룡뇌조를 섞어가며 연타를 쏟아내는 와중에 상대는 허우적거리며 마법을 난사했다.

그러나 눈도 제대로 못 뜨고 날리는 마법에 맞아줄 선수는 없었다.

강렬한 일격으로 턱을 후려치자 나무토막처럼 굳은 상대가 힘없이 뒤로 넘어갔다.

“세상에 보이십니까? 16초입니다! 16초 만에 유니크 선수가 팀을 매치포인트로 이끕니다!”

매치포인트. 승부를 마무리 짓는 마지막 1점을 뜻한다.

S.솔리드 입장에선 팀전을 단 한게임만 따면 우승할 수 있는 상황.

스코어 3:1, 뒤집기 쉽지 않은 격차지만 관중은 되려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드디어 팀전인가?

-솔직히 기대된다.

-스나이퍼 나가신다!

최근 팀 매치에서 레전드크루는 엄청난 괴력을 발휘했다.

무적의 조합이라 불릴 정도로 팀전에서 만나는 상대를 깔끔하게 완파했다.

어차피 레전드크루가 S.솔리드를 상대로 개인전을 압도할 거로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팀전이야말로 매치의 꽃, 팀매치 게임의 준비시간은 3분이지만 양 팀 모두 레디를 마쳤단 신호가 들어왔다.

“양 팀 모두 번개처럼 빠르게 준비를 마쳤습니다.”

“이런 경우는 극히 드문데 말이죠. 지금 선수들이 입장합니다!”

스피디한 진행에 환호하던 관중들은 S.솔리드의 구성이 다른 때와 다르단 걸 깨달았다.

-실무아비가 아닌데?

-제리! 우리 제리 어디갔어!

-1승 카드를 놔두고 엘레멘탈 마스터를 지금 쓴다고?

-마이클이라니. 불안한데;;

상황을 파악한 중계진은 제리대신 들어온 마이클에 대한 정보를 훑으며 변화에 대한 추측을 하기 바빴다.

파격적인 기용이다. S.솔리드가 스나이퍼 조합의 약점을 찾은 게 아니냔 의견이 물밀 듯 쏟아졌다.

웅성거리는 관중을 뒤로 한 채 팀은 결전의 의지를 불태웠다.

“이번 라운드에 끝내보자!”

데니스가 의욕적으로 외침과 동시에 무대가 전장으로 변화했다.

“퍼킹!”

마이클이 눈을 부릅뜨고 분노했다.

잔잔한 바람이 불어오는 초원, 이번 전장은 4라운드와 같은 벽람초원이었다.

하필이면 레전드크루를 상대로 가장 불리한 맵이 걸렸으니 분노하는 것도 무린 아니었다.

스나이퍼 조합을 보다 수월하게 상대하려면 맵에 장애물이 있는 편이 좋은데 초원맵은 유일하게 장애물이 없었다.

“일단 해보자! 뭉쳐!”

욕을 할 게 아니라 일단 게임을 해야 했다.

벌써 상대 선수들이 저편에서 포격사를 중심으로 버프를 돌리기 시작했다.

3클래스의 버프를 받은 포격사가 우릴 겨눴다.

투쾅!

방패를 묵직하게 때리는 소리와 함께 데니스의 피가 4할가량 빠졌다.

마이클이 보호 버프를 걸었는데도 이정도였다.

“진짜 엿 같은 조합이다.”

데니스 뒤에 바짝 붙은 마이클이 중얼거렸다.

방패를 믿고 거리를 좁히기 시작하자 상대는 올테면 와보라는 듯이 피하지도 않고 연사를 하기 시작했다.

한 번 공격할 때마다 피를 절반 가까이 뺏어가니 케빈이 쉴 새 없이 힐을 넣어야 했다.

어쩌다 치명타라도 터지면 나까지 힐을 도왔다.

힐에 들어가는 마력이 적지 않지만 버티려면 어쩔 수 없었다.

그에 비해 상대 포격사는 기본 사격에 마나가 들지 않으니 시간을 끌수록 불리한 상황.

이대로 가다간 상대에게 접근하기도 전에 마력이 다 빨릴 판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상대가 뒷걸음질 치진 않는단 점이었다. 미리 설치한 음양사의 결계를 이용할 생각이어서 그런지 레전드 크루는 거리를 벌리기보단 핀포인트 저격에 집중했다.

‘언제가냐 한솔아.’

‘빨리 쫌.’

말 한마디 하기 힘들어할 정도로 팀원 모두가 초집중한 상태, 그들은 나를 곁눈질하며 언제 이니시를 걸거냐는 신호를 계속 보냈다.

신경을 곤두세운 이유는 바로 더원의 메테오 밤 때문이었다.

언제 떨어질지 모르지만 스킬이 떨어지는 순간에 포메이션을 착착 맞춰야 하기 때문에 모두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살얼음판 같은 균형을 무너트릴 열쇠가 바로 나였다.

포격사의 날카로운 저격과 마법 포화를 뚫고 접근할 수 있는 선수는 리그를 통틀어 내가 유일했다.

이 긴장감이 관중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됐는지 관중들까지 숨을 죽이고 이 모습을 지켜봤다.

“정말 팽팽한 긴장감입니다.”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기만 한 탓에 S.솔리드의 상황이 매우 좋지 않은데요. 과연 어떻게 타개할지···아! 말씀드리는 순간 유니크 선수가 사라졌습니다!”

나의 몸이 바람에 녹아들어 자취를 감춘다.

공격 개시의 시작이었다.

*

“놈이 사라졌다.”

매의 눈으로 상대를 주시하고 있던 더원이 포격사에게 정보를 전했다.

저격을 피하기 위해 다들 실드나이트 뒤에 꽁꽁 붙었지만 발부분을 잘 보면 누가 사라졌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리그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움직인다고 알려진 유니크, 놈이라면 3초 만에 아군 결계 근처까지 도달하는 것도 가능했다.

더원은 주저함 없이 각을 재고 있던 운석을 소환했다.

풀이 기이하게 꺾이는 자리가 눈에 띄었다.

유니크가 지나간 자리가 틀림없었다.

더원은 일부러 조금 당긴 위치에 운석을 떨어트렸다.

아무리 빨라도 운석을 피하려면 뒤나 옆으로 피할 수밖에 없도록 말이다.

미리 예정된 동작이었던 것처럼 상대팀원들을 겨누고 있던 포격사의 라이플 끝이 메테오 밤이 떨어진 쪽을 향했다.

유니크의 은신이 풀리는 즉시 헤드샷을 날릴 참이었다.

‘놈의 장비 은신 시간은 3초.’

이건 이미 여러 경기에서 데이터가 누적된 확실한 정보였다. 그러나 속으로 3초를 세도 유니크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뭐야. 제대로 본 거 맞아?”

유니크가 나타나질 않자 포격사는 더원에게 물었다.

중상위권에 머물던 팀을 결승전까지 끌어올리는 덴 한국에서 건너온 슈퍼루키의 힘이 주효했다.

하지만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고 하지 않던가. 어쩌면 더원이 잘못 본 걸 수도 있었다.

유니크는 여전히 방패 뒤에 숨어 있고 우린 헛되이 스킬만 날렸을 가능성, 그러나 더원은 그럴 리 없다며 고갤 작게 흔들었다.

‘분명 갈라져 나왔는데?’

하지만 팀원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갈라져 나왔다면 지금쯤 진즉 모습을 드러내야 했다.

유니크의 은신 한계 지속 시간은 최대 3초였으니까.

믿기 싫지만 이번엔 자신이 실수했을지도 모른단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찌르르르 하고 고음의 종소리가 울렸다.

“놈이다!”

음양사가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결계안에 적이 침입했을 때 나는 소리였다.

레전드크루 팀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머리가 곤두섰다.

지금 보이지 않는 적이 결계 안으로 들어왔음을 깨달은 것이다.

“스캔!”

더원의 손에서 쏟아져 나온 빛가루가 결계 안을 뒤덮었다.

이윽고 가루가 불쑥 뭉치는 지점이 있었다.

대체 무슨 수를 썼는지 몰라도 빛이 왜곡된 그곳에 놈이 있었다.

“망할!”

포격사는 총구 끝을 끌어당기며 날렵하게 방아쇠를 당겼다.

FPS게임을 했으면 프로팀에 불려 올라갈 정도의 기민한 조준이었다.

음속을 돌파하며 탄환이 튀는데 빛가루가 묻은 유니크의 몸이 기이하게 꺾였다.

50미터 거리에서 쏜 저격을 피하는 괴물.

“본대부터 쏴!”

더원이 포격사를 다그친다.

어느새 방패를 들고 접근하던 S.솔리드 본대가 결계 근처까지 접근해 있었다.

유니크에게 주의를 끌린 사이 전력으로 내달린 것이다.

“혼자 막을 수 있겠어?”

“날 믿어.”

더원은 간단히 답하고 스캔을 한 번 더 뿌리며 유니크를 향해 달려들었다.

어차피 여기서 놈을 저지하지 못하면 게임이 터지는 상황.

리그에서 1등, 2등을 다투는 각 팀 에이스의 격돌, 더원의 지팡이가 불을 뿜었다.

‘어디 실력 좀 보자.’

유니크, 가이아 프로리그의 모든 관계자가 입을 모아 칭송하는 천재 플레이어.

원래 더원은 이번 결승전에서 1라운드에 나설 생각이었다.

인터뷰 당시 1라운드에 나가지 못하도록 수작을 부렸단 느낌을 강하게 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엔트리를 조율하는 감독은 반드시 1승을 챙길 수 있는 순번에 넣어야 한다며 자신의 1라운드 출전을 반대했다.

아니나 다를까 1라운드에 올라온 건 S.솔리드 딜러진에서 전투력이 가장 떨어진다고 평가받는 엘레멘탈 마스터였다.

이쪽도 가장 전력이 떨어지는 음양사를 내보냈으니 팀적으론 무승부인 셈이지만 기분이 좋지 않았다.

똑같이 1라운드에서 발을 뺐는데 더원은 유니크를 피해 물러난 겁쟁이, 유니크는 더원의 발을 묶은 지략가가 돼버렸으니 말이다.

뇌격계 마법을 피한 유니크의 모습이 서서히 진해지더니 마침내 은신을 풀고 튀어나왔다.

무슨 수를 썼는진 모르지만 3초 이상 은신할 방법을 얻은 게 틀림없었다.

모습이 드러나자 결계 내를 지키던 덩치큰 식신들이 무기를 들고 유니크를 향해 달려들었다.

더원은 눈을 반짝이며 유니크가 식신을 상대하는 틈을 노려 날카로운 마법을 심었다.

엇박자로 들어오는 위력적인 마법에 관중들이 숨을 집어삼켰다.

유니크의 경기를 시즌 내내 지켜본 팬들조차 지금이 가장 위험한 상황임을 느꼈다.

사실상 2:1의 전투, 유니크는 음양사의 식신을 항마장으로 밀어내는 한편 몸을 미끄러트리며 마법을 피했다.

어찌나 빠른지 잔상이 그 자리에 그대로 남을 정도였다.

“유니크 선수! 이형환위로 시간차 공격을 매끄럽게 넘깁니다!”

“언제봐도 놀라운 대처능력입니다.”

원래 격투기 게임 프로 출신인 숀 해설은 말문을 잊고 유니크의 플레이에 감탄하기 바빴다.

관중이 환호하는 사이 식신을 전투불능으로 만든 유니크가 더원을 향해 날았다.

“아이언 아머.”

“스톤 스킨.”

“레지스트 업.”

그 짧은 시간에 3종 버프를 건 더원은 물러서지 않고 유니크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는 리그에서 몸놀림이 가장 좋은 엘레멘탈 마스터, 어떤 상황에서도 근접전을 꺼려하는 법이 없었다.

달라붙는 암살계 클래스를 상대로 뒤로 빠지려고 하면 되레 더 큰 피해를 입는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물리 공격에 대한 방비를 단단히 해뒀으니 한 방에 쓰러지는 일은 없을 터, 더원은 매서운 일격을 준비했다.

리그의 지배자라 한들 한 방 맞으면 고꾸라질 수밖에 없는 그런 공격, 더원의 손에 홍염의 불꽃이 피어올랐다.

엘레멘탈 마스터의 화계속성 최강의 대인마법, 인페르노였다.

‘어디 한 번 들어와 봐!’

이미 준비 기간동안 상대전력에 관해 분석을 마친 뒤였다.

놈의 공격스킬 중 위협적인 것은 용의 충격, 교룡뇌조, 항마장 뿐.

그 세 가지 스킬 중 인페르노를 뛰어넘는 위력을 가진 건 없었다. 정면으로 충돌하면 자신이 무조건 이기는 싸움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무표정했던 유니크의 얼굴에 변화가 생겼다.

‘이 상황에 웃어?’

인페르노를 터트리려는 순간 유니크의 모습이 흐릿해지더니 다시 한 번 자취를 감췄다.

생각지도 못한 2차 은신에 더원의 손끝에 맺힌 홍염은 갈 곳을 잃고 말았다.

볼 수 없는 상대를 감으로 맞추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 마력 손해를 감수하고 스킬을 거둬들이는데 뒤쪽에서 고개를 돌리게 만드는 목소리가 울렸다.

“교룡뇌조!”

입으로 스킬 명을 외쳐가며 쓰는 법이 없던 유니크가 보란 듯이 스킬명을 외치며 포격사의 머리를 후려쳤다.

저격자세에 있던 포격사는 켁 소릴 내며 쓰러졌다.

더원과 음양사를 믿고 마크를 맡겨둔 상태였던 포격사는 작은 대응조차 할 수 없었다.

‘너희는 아직 나한테 안 돼.’

시선을 마주친 유니크의 눈웃음은 꼭 그리 말하는 것 같았다.

“유니크 선수! 레전드크루를 벼랑 끝으로 몰아붙입니다!”

“압도적인 경기력입니다. 결국 둘로 유니크를 막지 못했습니다!”

-우승으로 가버려!

-S.솔리드 우승!

-아직 우승 안했어 미친놈들아! ㅋㅋㅋㅋ

-우승이 눈앞이다!

혼자 결계안을 휘젓고 다니는 무도가.

극강의 포스를 자랑했던 스나이퍼 조합은 너무나 빠른 속도로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뜻밖의 제안

수만 관중이 Go! Unique! 를 외치는 가운데 경기는 끝을 향해 내달렸다.

손끝에서부터 터진 날카로운 공격은 레전드크루의 목을 거세게 졸랐다.

쓰러진 포격사를 구하기 위해 하이프리스트는 있는 힘껏 힐을 넣었다.

그러나 하이프리스트는 비숍과 달리 다수에게 힐과 버프를 주는데 특화된 클래스, 내 손아귀에 붙잡힌 포격사를 구하기엔 힐량이 부족했다.

퍽하는 소리와 함께 포격사가 완벽히 리타이어 했을 때, 하이프리스트를 비롯한 레전드 크루 인원의 얼굴은 크게 일그러졌다.

주력딜러가 퇴장하는 순간, 그들은 이 게임을 뒤집을 수 없음을 깨달았다.

전의를 상실한 음양사와 힐러가 아군 공격에 연달아 쓰러졌다.

의욕이 꺾이면 몸도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 법이다.

그러나 더원은 달랐다.

그는 이대로 끝내지 않겠다는 듯 끈질기게 게임을 이어나갔다.

더원은 4:1을 펼치면서도 기어이 마이클을 한 번 다운시켰고 무너지기 전까지 딜을 폭발시키며 에이스가 어떤 존재인지를 증명했다.

그야말로 상처 입은 호랑이, 궁지에 몰려 이빨을 드러낸 맹수의 숨통을 끊은 건 나의 주먹이었다.

[YOU WIN!!]

용의 충격이 비어있는 옆구리를 뚫으며 남아있는 더원의 체력을 모두 깨트렸을 때 관중석과 무대를 가로막고 있던 차단막이 사라졌다.

나를 비롯한 팀원들은 깜짝 놀라 귀를 틀어막았다.

우레와 같은 함성이 고막을 흔든 탓이다.

-솔리드!

-솔리드!

-솔리드!

“다시 한 번 큰 박수로 축하해주시기 바랍니다. 가이아 프로리그 최초의 우승팀! S.솔리드입니다!”

다시 한 번 휘몰아치는 함성, 나는 전신을 관통하는 전율에 압도당했다.

긴 프로생활 동안 단 한 번도 서보지 못했던 정상의 자리.

팀원들은 우두커니 선 나를 끌어당기며 무대 중앙에 나타난 트로피를 번쩍 들어 올렸다.

타 팀 선수들이 우승할 때마다 눈물을 터트리는 걸 보며 어떤 기분일까 싶었는데 직접 겪어보니 눈물이 나올 만 했다.

몇 년씩 이 험난한 프로세계에서 버티고 버텨 드디어 우승한 거다.

이건 안 우는 녀석이 이상한 놈이었다.

올해까지 치면 자그마치 8년, 프로게이머 인생 첫 우승은 내게 너무나도 큰 의미로 다가왔다.

“한솔아! 포즈 한 번 잡아봐!”

“멋있게! 멋있게!”

펄쩍펄쩍 주변을 뛰던 팀원들이 트로피를 건넨다.

-역사상 최고의 선수!

-킹니크!

-적이지만 멋진 새끼···.

-ㅅㅂ 내년엔 이적 쫌 안될까;

-S.솔리드 팬으로서 고맙다 ㅠㅠㅠㅠ

-우승 축하해!!!!!!

사방에서 울리는 관중의 환호성과 축하, 우승을 위한 폭죽 세리머니까지.

트로피를 양손을 잡아 머리 위로 번쩍 들어 올렸다.

“와아아아-!”

아마 오래도록, 어쩌면 영원히 잊지 못할 순간이었다.

***

결승전이 끝난 뒤엔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밥이 어디로 들어가는지도 모른단 말을 쓰곤 하는데 딱 그 기분이었다.

인터뷰를 어떻게 했는지도 전혀 기억 안 날 정도로 당시엔 그냥 머리가 띵했다.

천만다행으로 내가 운 사실을 눈치챈 관중은 없었다.

전신접속기였으면 내 얼굴이 울음바다가 된 걸 그대로 표현했을테지만 헤드기어형 접속기는 그런 점에선 리얼리티가 조금 떨어졌다.

-형! 우승 축하해!

-오빠! 너무 멋있는 경기였어요. 우승 축하드려요! >.<

새벽임에도 꼬박 경기를 시청하고 우승 축하 메시지를 보내온 팬클럽 회장과 부회장에게 답장을 돌렸다.

접속을 끝냈을 땐 기다리고 있던 대표, 단장, 사무국장에 이르는 모든 분의 축하를 받았다.

기회만 엿보고 있던 ESBN 인터뷰어는 짤막하게 멘트만 몇 개 따자며 계속 마이크를 앞에 붙였다.

부재중 통화가 한 통 찍혀 있기에 집에도 연락을 넣었다.

경기를 쭉 지켜보셨을 텐데 아들 목소리가 듣고 싶어 전활 거셨던 모양이다.

통화는 금방 연결됐다.

내가 직접 육성으로 우승했다고 소리치자 부모님은 더할 나위 없이 기뻐하셨다.

살아생전에, 아니 지금도 살아있으니까 표현이 이상하긴 하지만 죽기 전에 진즉 이렇게 좋은 소식 한번 못 전해드렸던 게 못내 아쉽게 느껴졌다.

너무 큰소리로 통화한 게 아닌가 싶어 슬쩍 주변을 둘러보니 다른 동료도 거의 비슷했다.

숙소의 열기는 좀처럼 사그라들 줄을 모르고 늦은 밤까지 이어졌다.

괴성을 지르며 돌아다니는 제리, 벌써 왕창 술판을 벌인 마이클과 애덤, 다른 때 같았으면 적당히 하라며 주의를 줬을 코치도 오늘만큼은 간섭하지 않겠다는 듯 각자 놀기 바빴다.

“한솔이 보기와 다르게 주량이 엄청 세구···나.”

쿵 소리와 함께 감독의 이마가 테이블로 추락했다.

“어라? 감독님?”

정신을 차려보니 내 주변엔 쓰러진 사람들뿐이었다.

멀쩡한 사람은 뒤쪽에서 열심히 요리를 만들며 글라스를 정리하고 있던 숙소 셰프 뿐이었다.

한잔 하라며 축하주를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은 나였는데 모두 나보다 먼저 뻗어버린 것이다.

‘이런 젠장!’

체력이 좋아 조금 늦게 취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 무적의 육체는 간 기능도 슈퍼맨이 됐는지 전혀 취기가 올라오지 않았다.

좋게 생각해도 되는 거겠지···?

술에 취하진 못해도 적어도 술 때문에 사고 칠 일은 평생 없어졌으니 말이다.

쓰러진 자들을 놔두고 와인병을 몇 개 들고 방으로 올라갔다.

대표님이 준비한 고가 와인이라는데 와인 문외한인 내가 느끼기에도 그 맛이 기가 막혔다.

음료처럼 마신 걸 알면 누군가 좀 놀라겠지만 날이 날이니만큼 이해해 주리라.

[괴물이 지배했던 가이아 프로리그. 그 화려한 마무리]

[S.솔리드 그 전설의 시작]

[e스포츠 역사상 최강의 플레이어. 유니크 특집 1탄]

경기 후 올라온 우리 팀 영상과 기사는 대형 포탈 e스포츠 지면을 가득 채웠다.

와인으로 목을 축이며 우승 관련 기사를 읽는 건 생각보다 재밌는 일이었다.

우승이 가로막혔다고 분을 터트리는 레전드크루 팬 댓글을 볼 땐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오늘만큼은 가이아 모든 커뮤니티가 S.솔리드 팬들의 축제 현장이었다.

나는 슬쩍 끼어들어 댓글 놀이에 동참했다.

-오늘 S.솔리드 선수들 너무 멋있더라.

ㄴ그중에 유니크 너모 멋지지 않음?

내가 쓴 댓글을 읽으며 킬킬거리는 모습, 누가 보면 살짝 미친 놈인 줄 알겠지.

-지금쯤 선수들 뭐하고 있을까?

-광란의 클럽파티 벌이는 중일 듯

ㄴ클럽파티는 고사하고 얌전히 숙소에서 포도주 먹고 잡니다

ㄴ님이 S.솔리드 선수냐고오~

ㄴ맞워요 ^ㅅ^

ㄴ사칭충 한 번 혼나볼래?

기껏 솔직하게 답변해줬더니 어그로가 끌려버렸다.

이제 그만 사라지려고 하는데 책상 옆에 놔둔 폰이 울렸다.

연락 올 사람이 없는데?

집에서 또 전활 걸었나 싶어 확인하니 생각지도 못한 번호가 떠 있었다.

전에 브라이언 코치에게 부탁해 정보를 알아봐 달라고 했을 때 저장해둔 레전드크루 코치의 번호였다.

뭐지? 자정을 향해 가는 시각에 전활 걸어오다니.

축하 전화라 하기에도 늦은 시간 아닌가.

게다가 왠지 축하하기 위한 통화는 아니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받을까 말까 고민하던 난 숨을 한 번 내쉬고 전활 받았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어?”

난 전활 잘못 받았나 싶어 잠시 폰을 떼고 액정을 재차 확인했다.

분명 레전드크루 코치 번호가 확실했다.

내가 잠시 머뭇거린 이유는 목소리의 주인이 여성인 탓이었다.

게임계에 여성 관계자가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드문 건 확실했다.

‘실력 있다던 레전드크루 한국인 코치가 여자였어?’

그런데 이 목소리, 같은 한국인이라 그렇게 느꼈는지 몰라도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았다.

내가 머뭇거리자 저쪽에서 내 전화가 맞는지 재차 확인했다.

“제 전화 맞습니다.”

“레전드크루 코치 백은하입니다. 오늘 우승 축하드려요.”

“누구시라고요?”

“레전드크루 코치요. 저에 대해 알아보신다고 했던 것 같은데 벌써 잊으셨나 보네요.”

올해 들어 가장 놀란 순간임이 틀림없었다.

백은하? 그 이름을 듣는 순간 내 두뇌 회전이 멈추고 말았다.

너무 많은 퍼즐이 한꺼번에 맞춰지느라 생긴 부작용이었다.

“···아뇨. 기억하고 있습니다. 잠시 생각난 게 있어서요.”

스나이퍼 조합을 들고 온 레전드 크루의 코치가 백은하였다.

이제야 모든 게 이해가 됐다.

전생에 스나이퍼 조합을 처음 썼던 건 일성생명 산하 원라이프.

32년도 당시 그녀의 나이 스물다섯, 백은하는 원라이프의 코치였다.

e스포츠 판이 타 스포츠와 비교하면 감독, 코치진의 나이가 낮은 편이긴 하나 그녀는 확실히 젊은 편에 속했다.

어린 여성 코치, 팀 내에서 문제가 제기될 법도 하건만 원라이프에선 어떤 기미도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원라이프는 일성생명이 만든 게임단이고 그녀는 일성그룹 재벌 3세였다.

게다가 그녀는 단순히 배경으로 자릴 꿰차고 들어온 경우도 아니었다.

코치의 주된 역할은 선수의 컨디션 관리, 전략 설계 등인데 그녀의 판을 짜는 능력은 의심할 여지 없는 국내 1티어였다.

특히 다양한 선수를 섞어 조합으로 시너지 내는 걸 즐겨했고 스나이퍼 조합 역시 그녀의 작품 중 하나였다.

실제로 당시 원라이프는 중상위권에 머물다 백은하의 가세 이후 급성장을 이루며 한국 프로리그 최고의 팀으로 도약했다.

이거 완전 올시즌이랑 똑같잖아?

만약 올해, 지금 내가 이 자리에 없었더라면, 북미 초대 우승팀은 레전드크루가 됐을 거다.

다만 내가 리그에서 뛰지 않았더라면 그녀 역시 북미 시장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확률이 높긴 했지만 말이다.

실제로 그녀가 원라이프에 직접 관여하기 시작한 건 31년도.

내가 1군으로 콜업될 때에 그녀에 대한 기사가 쏟아졌었기에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다.

즉, 지금 그녀가 업계 전면에 나선 건 분명히 과거엔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다.

이것도 나 때문에 생긴 변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에 대해 알아보고 있다고 하길래 번호를 남기면 연락해올 줄 알았어요.”

“아.”

“그런데 실수했죠. 오늘까지 연락이 안 올 거라곤 꿈에도 생각 못 했거든요.”

당시엔 스나이퍼 조합을 짠 게 어떤 사람일지 궁금해서 알아봐 달라고 한 것뿐이었다.

그 외에 별다른 뜻은 없었는데 연락이 올 줄 알았다고 하는 걸 보면 그녀가 오히려 내게 관심이 있던 모양이다.

“지금껏 레전트크루 벤치에선 한 번도 못 뵌 것 같은데요.”

“제가 이 팀을 돕고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흥미 위주라서요. 화면에 얼굴 비출 일은 없었죠. 전담 코치가 아니었거든요. 그래도 누구 덕분에 제대로 한 번 해볼 마음은 들었어요.”

“그 누구가 접니까?”

“글쎄요.”

“제 연락을 기다리신 것 같은데 왜죠?”

질문을 받은 그녀는 자신의 생각을 담담한 어조로 풀었다.

“전 협동을 요구하는 스포츠에서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음. 맞는 말 아니에요?”

“그런데 그 생각이 오늘 흔들렸어요. S.솔리드를 팀전에서 한 번 잡아보겠다고 제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면 아마 놀랄걸요.”

메테오 밤 입찰 경쟁이 붙었을 때, 어떤 미친 인간이 이렇게 값을 올리나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게 백은하였다면 충분히 이해가 가는 행동이었다.

그녀의 게임에 대한 열정, 개인 자산 규모를 생각하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해링턴 대표도 날 참 좋아하긴 하지만 아직까지 그는 가이아를 사업아이템의 하나로 보는 반면, 그녀는 좀 더 이곳에 깊이 발을 담그고 있는 느낌이었다.

사업가의 눈높이가 아닌 선수의 눈높이에 가까운 쪽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솔직히 더원 선수까지 불러왔을 땐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부족하더라고요. 마지막에 은신 2연타는 솔직히 사기적이었죠.”

사기라니, 기왕이면 열심히 준비한 거라고 해주지.

그래도 목소리로 보아 기분이 크게 나쁜 건 아닌 모양이었다.

“제가 돌려 말하는 걸 잘 못 하거든요. 그러니까 툭 터놓고 얘기할게요.”

“예.”

“내년까지 S.솔리드에 묶여있다고 들었어요.”

정확히 말하면 묶인 게 아니라 내 의지로 내년까지 뛸 생각이지만 굳이 바로 잡을 필요는 없어보였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정보지만 내년엔 한국에서도 프로리그가 열려요.”

“오. 그래요?”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라 조금 놀란 척을 했는데 살짝 어색한 톤이 나왔다.

“일성생명 아시죠.”

알다마다. 그리고 당신이 그곳 코치로 갈 것도 알고.

“일성생명에서 프로팀을 꾸릴 예정이에요. 더원 선수도 올해를 끝으로 한국으로 돌아갈 거고요. 저희랑 같이 갈 생각 없어요?”

천하의 원라이프가, 한국에서 가장 우승을 많이한 프로리그 최고의 명문팀이 내게 스카웃 제의를 한다.

그것도 팀의 브레인이라 불리는 백은하를 앞세워서 말이다.

내 위상이 크게 올랐음을 느끼는 대목이었다.

로테이션 1군 선수일 때에 비하면 엄청난 발전.

더원을 비롯한 각 클래스 최고 레벨의 선수들과 게임을 하는 건 분명 기대할 만한 일이었다.

안 그래도 국내 탑클래스로 군림했던 원라이프에 내가 가세하면 극강의 팀이 되겠지.

“어때요? 물론 대우도 최상으로요. S.솔리드의 조건보다 더 좋을 거에요. 한국에 같이 간다면 계약에 걸린 모든 문제를 말끔히 해결해 드릴 테고요.”

일성생명이 지원하는 프로팀, 톱클래스 선수들과 함께 최고 수준의 대우로 계약하잔 말을 거절할 선수는 아마 거의 없을 거다.

그러나 난 그녀와 함께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제안은 정말 감사하지만 아무래도 어렵겠는걸요.”

“어째서죠? 이 팀은 유니크 선수가 원하는 모든 걸 맞춰줄 수 있어요.”

내가 이렇게 빨리 답할 거라곤 생각지 못했는지 그녀의 목소리에선 살짝 당황한 기색도 묻어나왔다.

내가 함께할 수 없는 이유?

간단하다. 그녀의 말과 달리 원라이프는 내게 모든 걸 맞춰줄 수 없는 팀인 걸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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