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OS 소설 아닌데요-50화 (50/170)

챔피언 로드 (2)

결승전의 향방을 점칠 수 있는 1라운드.

우리 팀은 첫 번째 주자로 더원이 나올지 아닐지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만약 레전드크루 감독, 코치의 성향이 위험을 무릅쓰는 편이 아니라면 1라운드에 더원이 나올 확률은 낮았다.

나, 제리, 제레미, 마이클로 이어지는 딜러 라인은 명실상부한 리그 1위팀에 걸맞은 화력을 지녔다.

더원이라면 나를 제외한 우리 팀 누구와 붙어도 우세를 점할 실력.

그러나 바꿔 말하면 우리 팀원들도 더원만 아니면 1승을 충분히 거둘 수 있었다.

개인라운드에서 무조건 1승을 얻어 팀전까지 끌고 가야 하는 레전드크루 입장에선 더원을 나와 붙이고 싶지 않을 터였다.

그리고 잠시 뒤, 1라운드 엔트리가 전광판에 공개됐다.

[1라운드 - 망자의 광장]

[S.솔리드 엘레멘탈 마스터 vs 레전드크루 음양사]

“이런 젠장.”

정보를 확인한 브라이언 코치가 험한 소릴 뱉는다.

음양사, 상성으로 볼 때 엘레멘탈 마스터인 마이클에게 불리할 것 없는 매치지만 맵이 문제였다.

망자의 광장은 마력조성 1레벨, 음양사도 마법사 취급이긴 해도 엘레멘탈 마스터에 비하면 공격하는 데 있어 마력이 적게 드는 편이었다.

음양사가 소환한 식수가 거대한 몽둥이를 들고 움직이며 묘비를 부수기 시작했다.

마이클은 다급히 파편을 피하며 마법을 난사했는데 마력이 부족한 맵 탓에 위력이 평소답지 않았다.

-양쪽 다 머리 쓰네

-ㅋㅋㅋㅋ 유니크랑 더원 둘다 1라운드 걸렀음

-근데 누가 이길거 같음?

-루미너스가 유리함. 식신은 마력조성 레벨 딸려도 위력 별로 안줄어.

-지금 S.솔리드 지면 무조건 팀전 한 게임은 하는거 맞지?

-ㅇㅇ 맞음.

개인전의 시간제한은 3분.

처음 예상과 달리 마이클은 음양사를 상대로 선전 중이었다.

1분이 흘렀지만 식신은 여전히 제대로 공격을 맞추지 못했고 체력면에서 마이클이 약간 우위를 보였다.

마이클은 정말 최선을 다해 식신의 공격을 피했다.

몽둥이를 한 대만 맞아도 체력이 나락으로 갈 뻔한 상황이 계속 연출되자 심드렁하던 관중들도 금세 집중모드에 들어갔다.

본래 마법사는 육성과정에 민첩스탯이 잘 붙지 않는 클래스.

암살자에 비하면 몸놀림이 느릴 수밖에 없는데 마이클은 거의 종이 한 장 차이로 공격을 피하고 있었다.

일주일의 시간이 헛되지 않았음이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있는 힘껏 마이클을 응원했다.

마이클은 지난 일주일 동안 누구보다 열심히 훈련에 임했다.

제리나 제레미가 게이머의 재능을 타고난 편이라면 마이클은 노력파에 가까웠다.

그만큼 훈련이 더 힘들었을 텐데 그는 내색하지 않고 묵묵히 내 지시를 따라 오늘을 준비했다.

스스로 칭찬하려니 겸연쩍지만 내 근접 공방전 실력은 리그에 둘도 없는 하이레벨이다.

상하 원투 컴비네이션 만으로 수십 게임을 따낼 정도다.

그런 내 공격을 마이클은 일주일 동안 몸으로 겪었다.

물론 전력을 다하면 훈련이 전혀 안되니 약간 손대중을 하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도 리그에선 보기 드문 레벨이다.

그 결과, 마이클은 회피의 비결을 일부 깨달았고 지금 그 밑천이 지금 발휘되는 중이었다.

식신의 공격을 눕듯이 피한 마이클이 손 끝에 걸린 지팡이를 휘두른다.

레이저처럼 쏘아진 불덩이가 상대를 향해 날았다.

공격은 전부 식신의 커다란 몸뚱이에 가로막혔다.

음양사는 강력한 식신을 둘 소환해 하나는 마이클에게 붙이고 나머지 하난 자신의 곁에 둬 견고한 방어를 구축했다.

이렇게 보면 음양사야 말로 무적의 클래스처럼 보이지만 명백한 약점이 있었으니 바로 체력관리였다.

식신은 음양사와 운명공동체.

식신이 공격을 받으면 체력이 같이 줄어들었다.

마이클은 식신의 공격을 피함과 동시에 꾸준히 데미지를 넣었다.

어느덧 시간이 60초밖에 남지 않자 상대 얼굴에도 초조함이 엿보였다.

“놀라운 광경입니다! 마이클 선수가 아직까지 식신의 공격을 피하고 있습니다.”

“엘레멘탈 마스터의 움직임이라곤 전혀 생각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속을 들여다보지 않아도 음양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훤히 보였다.

대체 왜 안 맞지 싶겠지. 답은 장비세팅에 있었다.

보통 마법 클래스는 데미지 증가를 위해 마력 스탯을 중시하는데 마이클은 장비 서브옵션으로 속도에 공을 들였다.

리그 1년 차, 마법사를 다루는 많은 프로들이 마력을 챙기기 바빴지만 난 팀원들에게 항상 속도 스탯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적어도 상대의 공격을 피할 수 있는 최소한의 속도를 갖추란 조언이었다.

“맙소사! 엄청난 일이 벌어졌습니다!”

“루미너스 선수! 이 좁은 소형 맵에서 엘레멘탈 마스터를 상대로 타임오버를 당하고 맙니다!”

-아! 저런 멍청한 놈

-와;; 망자의 광장에서 식신 두 마리 풀고 법사한테 지는 게 말이 되냐?

-버러지 자식아!

레전드크루의 승리, S.솔리드의 몰락을 바라는 팬들 모두가 음양사를 욕하기 바빴다.

그러나 S.솔리드의 우승을 바라는 팬들의 기세도 만만찮았다. 북미리그에서 가장 많은 팬을 거느린 팀이 아니던가.

-스윕 가자!

-4:0 각 나왔다!

-S.솔리드는 구멍이 없다 진심 ㄷㄷㄷ

회피와 공격을 동시에, 탄탄한 경기력으로 승리를 쟁취한 마이클을 칭찬하는 사이 2라운드 맵이 공개됐다.

[2라운드 - 십만 대산]

-와오!

-끼요오오오옷!

-우승 가자!

암살자를 물만난 고기로 만드는 전장, 십만 대산.

나는 2라운드에 올릴 선수로 제레미를 적극 건의했다.

십만 대산은 발을 디딜곳이 마땅치 않아 이동시 극한의 컨트롤을 요구하는 맵이다.

물론 프로쯤 되면 움직이다 낙사하는 경우는 없지만 그건 멀쩡히 이동에만 전념할 수 있을 때의 이야기.

솟아오른 바위 봉우리 위를 건널 때 공격이 쏟아지면 아무리 프로라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지곤 하는 곳이 십만 대산이다.

코치는 전광판으로 레전드크루 명단을 확인했다.

오늘 결승전에 레전드크루는 아크나이트, 엘레멘탈 마스터, 아크위자드, 음양사, 포격사, 하이프리스트 구성을 들고 나왔다.

이중 포격사나 하이프리스트는 개인라운드에서 영 힘을 못 쓰는 클래스니 제외, 패배한 음양사를 빼고 나면 아크나이트,엘레멘탈 마스터, 아크위자드 중 한 명이 나오는 상황이다.

“아마 아크나이트가 나올 거 같은데. 제레미 자신있지?”

“코를 납작하게 만들고 오겠습니다!”

제레미는 힘차게 답하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십만 대산이면 상대가 더원이라도 해볼 만했다.

그 정도로 제레미의 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느는 중이었다.

자신감에 가득 찬 얼굴로 제레미가 2라운드 무대를 밟았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아크나이트를 상대로 제레미는 압도적인 경기력을 선보이며 41초만에 승리를 거뒀다.

벌써 2:0, 오늘이 S.솔리드의 제삿날이라며 목놓아 외치던 상대 팬들도 기세가 크게 꺾이고 말았다.

-더러운 새끼들. 게임 존나 비겁하게 하네.

-칭찬 고맙다

-비겁하대 ㅋㅋㅋㅋㅋ 우냐? 야. 이새기 운다!

-게임에 비겁한게 어딨냐? 불법 아니면 전략이지 ㅋㅋㅋ

-레전드크루 벤치 봐. 멘붕 온 표정임

일방적으로 몰리기 시작한 레전드크루 벤치는 표정이 어두웠다.

이제 우리팀에 남은 선수 중 개인전에 나설 거로 생각되는 멤버는 나와 제리 뿐, 제레미도 최근 두각을 보이고 있긴 하지만 S.솔리드의 기둥은 오래 전부터 우리 둘이었다.

가뜩이나 스코어도 밀리는데 상대는 가장 강하다고 평가받는 인간들만 남았으니 레전드크루 표정이 썩을 수밖에 없었다.

“상대는 더원하고 패닉 둘만 남았다. 어떻게 할래. 한솔이 네가 나갈래?”

갑자기 포격사나 아크프리스트를 내보내는 미친 짓만 아니라면 이제 레전드크루에 남은 클래스는 엘마 아니면 아크위자드였다.

누가 나오든 상성상 유리한 매치였다.

이제 남은 개인라운드는 두 번, 더원을 저격할 확률 50퍼센트.

코너에 몰리긴 했지만 레전드크루가 동전던지기로 순서를 정하진 않을 터, 난 그들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기로 했다.

목이 바싹바싹 마르는 와중에도 승리할 가능성을 찾는 게 프로다.

‘나라면 3라운드보단 4라운드에 나선다.’

랜덤으로 맵이 정해지는 3라운드, 그리고 맵을 보고 나설 수 있는 4라운드, 여기엔 생각보다 큰 차이가 있다.

맵을 알고 게임을 시작하면 짧게나마 경기 양상을 머릿속에 그려볼 수 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스킬과 장비세팅을 바꾸는 게 가능하다.

상대가 무도가라면 투지를 강화해 물리 내성을 올리거나, 맵이 십만 대산이면 민첩 스탯을 맞춰 움직임을 보다 수월하게 하는 식의 대처가 가능해진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상대가 3라운드에 나올 수도 있는 문제. 더 생각하면 머리가 아플 것 같아 난 4라운드를 자청했다.

그렇게 제리의 출전이 결정되고 무대 위로 양 팀 선수가 오르는 순간 관중의 호응이 들끓었다.

-더원!

-더원!

-더원!

위기를 타개할 에이스의 등장에 레전드크루 팬들은 목이 터져라 더원의 이름을 불렀다.

너무 꼬아서 생각했나?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으니 이제 제리를 열심히 응원해야 했다.

[3라운드 - 라플라타]

[S.솔리드 아크위자드 vs 레전드크루 엘레멘탈 마스터]

맵이 공개되자 관중이 벌떼처럼 시끄러워졌다.

-라플라탘ㅋㅋㅋㅋㅋㅋㅋㅋ

-마법사 둘 붙여놨는데 하필 제일 작은맵이네

-배 터지겠는데

-가이아팁 : 라플라타는 맵 파괴 불가 속성이 있다.

거대한 강에 떠 있는 나룻배, 기껏해야 10미터 남짓한 좁은 배는 상대를 피할 공간이 없어 마법사가 가장 기피하는 맵이다.

전장에 소환된 제리와 더원, 둘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정확히 동시에 상대를 향해 달려들었다.

보통 마법사끼리 벌이는 전투는 거리를 두고 마법을 연사하기 바쁜 양상으로 흘러가는데 이 둘은 마치 근접계 클래스처럼 거리를 좁히고 지팡이와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근접거리에서 터지기 시작한 마법, 순간 균형을 잃은 더원의 몸이 주르륵 밀려 난간에 걸쳐졌다.

물에 빠지면 체력이 크게 소모되기 때문에 배 밖으로 밀려나면 사실상 진거나 마찬가지였다.

상황은 제리에게 조금씩 유리하게 돌아갔다.

근접전에서 제리가 미세하게나마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계속해서 일대일 훈련을 계속 봐준 성과가 나오고 있었다.

영상으로 봤을 때 더원의 마법 조준실력은 제리보다 나았지만 라플라타는 너무 좁은 맵이라 조준실력이 의미가 없었다.

거기다 녀석이 자랑하는 메테오 밤을 쓸 수도 없었다.

운석의 충격파는 적과 아군을 가리지 않고 때리기 때문에 메테오 밤을 쓰면 자신이 먼저 죽을 판이었다.

부유마법을 시전해 튀어오른 더원의 몸을 중심으로 푸른빛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마이클도 가지고 있는 스킬, 마나드라이브였다.

마력을 태우며 순간 공격력을 극대화하는 스킬이라 가만 놔두면 일방적인 딜교환을 당한다.

제리는 즉시 더원의 공격력을 약화시킬 목적으로 디버프를 퍼부었다.

그러나 상체 회피로 타겟지정을 피한 더원이 날카롭게 마법을 쏘아냈다.

마법을 피하고 반격하는 실력은 프로 3년차라고 해도 믿을 수준이었다.

무지개빛 광선이 제리의 몸을 뚫자 체력이 뭉텅이로 깎여나갔다.

공격력만 놓고 보면 아크위자드가 우위여야 하는데 마나드라이브가 걸린 엘레멘탈 마스터의 공격력은 대인 공격의 대가인 아크위자드를 압도했다.

본래 저렇게 제 살 깎는 스킬을 상대로는 시간을 끄는 게 최선이다.

마력이나 체력을 고갈시키는 조건부 증폭기의 경우 유지시간은 아무리 길어도 30초 남짓.

방어를 잘 굳히고 있으면 제풀에 쓰러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번엔 맵이 너무 좁았다.

도망칠 곳이 없기에 제리는 반격할 요량으로 몸을 불로 덮었다.

고오오- 소릴 내며 하늘로 날아오른 화염의 드래곤이 날개를 펼쳤다.

아크위자드 스킬 중 가장 강한 위력을 지닌 드래곤 웨이브, 드래곤이 포효하며 떨어지는 건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다.

일전에 레전드크루 전에서 공중 저격을 당한 적도 있긴 하지만 그땐 자그마치 3버프를 받은 포격사의 스나이핑이었다.

평범한 공격이라면 드래곤을 포착하기도 전에 공격이 끝난다.

그러나 더원의 얼굴엔 여전히 자신감이 어려있었다.

나는 설마 싶었다.

마법으로 마법을 맞추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게 드래곤 웨이브처럼 고속 마법이면 더욱 그랬다.

더원이 가이아 프로선수 중 톱클래스에 들었다곤 하나 아직은 신입 아닌가.

하지만 더원은 이때만 기다렸다는 듯 대마법을 전개했다.

바람을 가르며 떨어지는 용의 머리 위로 구름을 뚫고 나온 운석이 정확히 강타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