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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OS 소설 아닌데요-47화 (47/170)

포스트시즌 돌입 (2)

스킬 하나에 40만 달러라고? 중동 부자라도 되나?

가이아가 확실히 시장에 자리를 잡고 모든 VR 컨텐츠 전반을 장악하기 시작할 때쯤엔 시세가 더 오르겠지만 지금은 아직 오픈 일 년도 안 된 시기다.

돈 자랑을 이런 식으로 하나 생각하고 있을 때 감독은 힘겹게 입찰란의 숫자를 바꿨다.

“···올린다.”

찰칵하는 소리와 함께 40만 달러가 50만 달러로 바뀐다.

백지 수표라지만 이러다 골로가시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설마 또 오르진 않겠죠?”

여기서 제일 속이 타는 건 마이클이었다.

그는 연신 제발을 외치며 똥 마려운 소릴 냈다.

이 스킬 하나로 6인 엔트리에 드느냐 못 드느냐가 갈리니 그럴 만 했다.

“LGE마켓 최고 거래액을 살펴봐도 50만이면 거의 따냈다고 봐야지.”

코치가 옆에서 한마디 거들었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달랐다.

입찰란 너머에서 우리와 경쟁중인 녀석은 왠지 여기서 멈추지 않을 거란 예감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몇 시간이 채 지나기 전에 메테오 밤의 가격은 70만 달러로 치솟았다.

50만 달러땐 감독 재량하에 곧장 결정을 내렸지만 70만 플러스는 또 다른 얘기였다.

폰을 붙잡고 전전긍긍하는 감독에게 내가 한마디 거들었다.

“연락해서 물어보시려고요?”

“그래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지 말고 그냥 올리세요. 액수 신경 쓰지 말고 지르라고 하셨으니까.”

“하, 이거 참.”

내가 이렇게까지 메테오 밤을 밀어붙이는 이유는 스킬의 가치 때문이었다.

과거 한국 프로리그 2년차 시즌은 메테오 밤을 장착한 엘마가 팀에 있는가로 승률이 널뛰기를 하던 시절이었다.

그만큼 한방 임팩트가 강력한 스킬이다.

만약 저 입찰자가 돈 많은 개인이 아닌 타 팀 관계자라면 이건 어떻게서든 지금 반드시 잡아야 했다.

지금은 아직 리그 레벨이 낮아 나홀로 캐리가 가능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것도 어려워질 테니 말이다.

감독을 격려해 입찰가를 끌어올리는 한편 대표에게 SOS를 쳤다.

대표도 스킬 하나가 이렇게 비쌀 줄은 몰랐는지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곧 가격을 올려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졌다.

상한 100만 달러, 감독은 상한선을 듣자마자 냅다 입찰란에 맥시멈 액수를 꽂았다.

LGE마켓에 가이아 게시판이 신설된 이후, 단일 스킬로는 최고액이었다.

100만 달러라는 거액.

시장이 확대된 과거에도 스킬 하나에 100만 달러를 쓰는 건 드문 일이었다.

전설급 스킬을 몇 개는 살 수 있는 액수.

그러나 경매가 마감됐을 때 메테오 밤의 주인은 우리가 아니었다.

최종 낙찰가는 220만 달러, 포기할 수밖에 없는 액수였다.

해링턴 대표는 더 신경 써주지 못해 미안하단 문자를 보내왔다.

무도가 스킬 매물이 뜨면 꼭 구해다 주겠단 말까지 덧붙여가며 말이다.

미안하다니, 난 오히려 대표에게 고마웠다.

200만 달러까지 입찰액을 넣어준 것만으로도 그의 진심이 잘 전달됐다.

다만 내 상상을 초월하는 경쟁자가 문제였다.

“대체 뭐하는 자식이야.”

브라이언 코치는 우울한 얼굴로 모니터를 응시했다.

저게 어떤 미친놈일진 몰라도 프로팀만 아니라면 아무 상관 없었다.

“젠장. 경쟁 팀만 아니길 바라자.”

감독은 이미 지나간 일, 잊어버리자며 분위기를 환기했다.

***

메테오 밤을 둘러싼 해프닝이 기억에서 잊힐 즈음 포스트 시즌을 치를 상위 5개팀이 결정됐다.

S.솔리드, 레드불스, 레전드크루, 슈퍼호넷, 유니콘스.

유니콘스가 5위로 치고 올라온 건 의외였지만 레전드크루의 상승은 예정된 바였다.

약점을 점차 보완해가는 스나이퍼 조합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1~4 라운드를 치르는 동안 3:0 셧아웃 시키면 저 무서운 조합을 볼 일이 없지만 레전드크루를 상대로 3:0을 따낼 만한 팀은 우리뿐이었다.

나와 제리, 제레미로 이어지는 3대 딜러 라인이 가동된 이후, 우리팀은 5라운드를 보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야말로 무적 포스를 자랑하는 가이아 최강의 팀이었다.

일부 팬들은 한 팀이 너무 독식해 리그 보는 재미가 떨어진다고 툴툴거렸지만 정작 프로리그는 연일 성장을 거듭했다.

포스트 시즌에 돌입했기 때문에 우리 팀은 충분히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1위로 정규시즌을 마치면 결승전만 치르기 때문에 누가 올라오는지만 지켜보면 된다.

“저놈들만 아니면 좋겠다.”

쇼파에 대자로 퍼진 제리가 하이라이트 영상을 보며 중얼거렸다.

리그의 최강 팀을 꼽아보라면 이견없이 우리를 첫 번째로 꼽지만 ESBN 채널에서 가장 많은 하이라이트 지분을 차지하는 팀은 우리가 아니었다.

레전드크루, 5라운드 만큼은 S.솔리드에 꿇리지 않는단 평가를 들을 만큼 그들의 경기는 보는 재미,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누가 올라오려나.”

가이아 프로리그 첫 포스트 시즌.

준플레이오프 진출 팀을 가리는 4, 5위 팀간의 와일드 카드 결정전은 생각보단 낮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유니콘스는 지루한 경기 스타일에 스타 선수라 할만한 인재가 없어 팬층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기존 3강에 드는 슈퍼호넷이 상대라 그나마 선방한 셈이었다.

경기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슈퍼호넷과 유니콘스는 등수는 1계단 차이지만 힘의 차이는 까마득했다.

스코어 3:0.

유니콘스는 변변한 저항 한 번 해보지 못하고 무릎을 꿇고 말았다.

“호넷 컨디션은 좋아보이네.”

“호넷이 쭉 이겼으면 좋겠다.”

그렇게 시작 된 레전드크루와 슈퍼호넷의 준플레이오프.

우리 팀은 한 명도 빠짐없이 슈퍼호넷을 응원했다.

3, 4위 팀이 치르는 준플레이오프 부턴 룰에 변화가 생긴다.

기존의 5판 3선승제였던 경기는 7판 4선승제로 늘어나게 된다.

1~4라운드가 개인 라운드인 건 변함이 없지만 5라운드부턴 전부 팀전으로 진행 된다.

풀세트 접전일 경우 4:4 팀전을 세 번이나 해야 한단 뜻이다.

팀전만큼은 가장 강한 축에 든다고 평가받는 레전드크루.

다른팀도 마찬가지겠지만 팀전 비중이 높아지는 포스트시즌에서 절대 만나고 싶지 않은 상대였다.

“기사 떴는데? 레전드크루 오늘 선수 새로 영입했대.”

이 시기에 선수 교체라니, 흔한 일은 아니다.

선수를 새로 데려오기 위해 기존에 있던 선수를 내보내려면 계약 기간 동안 남은 연봉을 전부 줘야 하는 것은 물론 지오에서 정한 위약금을 따로 물어야 한다.

선수를 소모품처럼 사용하지 못하도록 보호 조항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선수 교체를 강행했다는 건 금전적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데려올 만한 재능있는 선수이거나, 수시로 문제를 일으켜 방출하는 경우였다.

“선수에 대한 정보는 없어?”

“다른 건 없고 닉네임만 있네. 더원?”

“뭐?”

생각지도 못한 이름이 나오자 나는 깜짝 놀랐다.

더원이라고? 아닐 거야. 동명이인이겠지.

놀란 가슴을 가라앉히는 데 불안함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The One. 본명 김용재.

과거 소속팀은 일성생명 산하 원라이프.

한국 프로리그에 한 획을 그은 엘레멘탈 마스터, 실력으로 리그를 대표했던 톱플레이어다.

다만 시기적으로 맞지 않았다.

그의 데뷔는 빨라도 한국에서 프로리그가 신설되는 내년이다.

나는 설마하는 심정으로 준플레이오프 시작을 지켜봤다.

그저 이름이 같은 우연이길 바랐다.

더원이란 닉네임, 그렇게 드문 닉네임도 아니지 않은가. 여러 게임을 하다 보면 어디에나 있을법한 그런 이름이다.

그러나 양 팀 벤치에 앉아있는 선수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는 순간 나는 신음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막 리그에 합류했음에도 긴장감이라곤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얼굴, 올백으로 머리를 넘긴 내 기억속의 더원이 레전드크루 벤치에 있었다.

몇 년 후에나 등장했어야 할 스나이퍼 조합이 북미 리그를 휩쓸더니 팀의 주력으로 밀려던 사이클론이 도주, 이젠 한국의 초특급 선수가 포스트 시즌에 맞춰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도 제일 까다로운 팀 소속으로 말이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1라운드를 레전드크루 쪽에서 가져갔다.

경기시작 35초 만에 호넷의 아크나이트가 무릎을 꿇은 것이다.

-와.

-팀전 가서 이기는 그림일 줄 알았더니 개인전에서도 발리겠는데?

-레전드크루 개인전이 이 정도였나?

아니, 원래 이 정도는 아니었다.

스나이퍼 조합으로 반격의 신호탄을 쏜 이후 레전드크루측 선수의 기량은 꾸준히 상승해왔다.

경기를 보는 시청자도 이런 느낌인데 실제로 당하는 선수의 압박감은 오죽하랴.

한 번 무너진 기세를 되찾아오는 건 프로레벨에서도 쉬운 일이 아니다.

순식간에 3:1로 개인라운드가 마무리됐다.

-이건 끝났네.

-슈퍼호넷이 이렇게 가나;;

-레전드크루 살벌하다.

팀전만큼은 최고라 불리는 팀, 개인라운드에서 슈퍼호넷은 이기려면 개인전만큼이라도 우위를 점했어야 했는데 그마저도 실패했다.

이건 이길 수 없다란 감정이 호넷 선수들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다.

가이아는 서로 얼굴을 맞대고 겨루는 게임, 최대한 속내를 감추는 게 유리하지만 아직 경험이 미숙한 선수들은 그런 부분까지 신경 쓰지 못했다.

솔리드 동료들이 눈을 떼지 못하고 화면에 시선을 집중할 때 나는 눈을 비비며 냉장고로 향했다.

5라운드 엔트리에 더원이 올라갔으니 결과는 정해져 있었다.

-와아아아!!!

-미쳤다 레전드크루!

-우승까지 가라!

“압도적인 경기력입니다. 레전드크루!”

“그 누가 슈퍼호넷이 이렇게 일방적으로 무너질 거라고 상상했겠습니까.”

시원한 탄산을 채워 돌아왔을 때, 하늘을 가르고 붉은 운석이 슈퍼호넷 머리 위로 떨어지는 광경이 보였다.

200만 달러를 입찰하고도 가져오지 못했던 메테오 밤.

그것이 더원의 손에 있었다.

*

최근 워낙 경기력이 좋아 설렁설렁 일하는 듯 보였던 분석팀은 머리를 싸매고 야근에 돌입했다.

슈퍼호넷이 처참하게 발리는 꼴을 보니 대강 준비했다간 당할 수도 있단 위기의식이 발동됐다.

원래 전력분석이라는 게 파고들면 들수록 할 거리가 많은 일이다.

전력분석을 가장 잘 도입했다고 알려진 유럽축구의 경우 상대 선수의 자잘한 습관, 킥모션 등을 빠짐없이 분석해 선수에게 전달한다.

패스는 어떻게 하는지 볼터치 습관, 방향 빈도는 어떤지를 낱낱이 분석해 정리하는 셈인데 이 작업을 하기 위해선 당연히 엄청난 돈이 들어간다.

영상을 구하고 선수들이 바로 접할 수 있게 정리하는 작업에 들어가는 인력과 시간을 고려하면 충분한 지원 없인 불가능한 일이다.

한국에서도 2회차 시즌에나 들어서야 도입한 시스템, 그 작업을 지금 S.솔리드가 해내고 있었다.

내가 추천한 게 아니었다.

전력 분석팀의 스케일을 키우기로 한 건 해링턴 대표의 지시였다.

원래 스포츠에 관심이 많던 양반답게 이런 분야에선 빠삭한 면모가 있었다.

타 스포츠에서 활약하던 전문 인력을 데려와 순식간에 몇 배나 큰 전력분석팀을 꾸렸는데 모르긴 몰라도 아마 메테오 밤 입찰 때보다 더 큰 액수가 들었을 터였다.

“회장님, 아니 대표님 잔뜩 벼르고 계셔. 아마 지면 난리 날 거다.”

“저번 입찰 때문에 독이 바짝 오르신 거 같던데요.”

“염병. 입찰자가 레전드크루인줄 알았으면···.”

거기까지 말한 감독은 끝을 우물거렸다.

어차피 결정은 대표가 하는 거니 알았어도 달리 뾰족한 방도는 없었다.

스킬 하나 때문에 우승을 못 한다고 칭얼거리면 자신의 무능을 드러내는 것밖에 더 되겠는가.

한숨쉬는 감독을 뒤로하고 코치는 우릴 불러모아 팀전에 대비한 의견을 교환했다.

아직 레드불스와 레전드크루의 경기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팀의 포커스는 온통 레전드크루와의 팀전에 쏠려 있었다.

경기 상대를 잘못 예측해 전혀 다른 결과를 얻는 경우는 스포츠판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지만 적어도 이번만큼은 탁월한 선택으로 보였다.

분명 레전드크루가 올라오리란 촉이 강하게 왔다.

그리고 일주일 뒤, 우리의 결승전 상대가 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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