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OS 소설 아닌데요-46화 (46/170)

포스트시즌 돌입 (1)

글로리아 연계 퀘스트의 최종장.

S.솔리드 팬뿐만 아니라 강화 효과를 받고자 하는 유저들이 전부 몰려 21만 명이란 숫자를 기록하자 운영진은 부랴부랴 촬영을 개시했다.

오픈 1년도 안 된 게임에서 이런 그림이 어디 흔하게 나오겠는가.

글로리아와 엔다미르의 NPC까지 포함하면 전투 참여자만 25만에 이르는 초대형 전투.

서버 역량의 극한을 보여줄 수 있는 계기였고 영상은 운영진 생각대로 화려한 비쥬얼로 뽑혀나왔다.

퀘스트 시작 전 소소한 해프닝도 있었다.

초원에 모인 유저들은 대부분 스탯 버프가 탐이 나 모인 경우였는데 개중에 타 팀 선수들이 섞여 들어왔던 것이다.

아무리 퀘스트를 쉽게 깨려고 하는 일이라지만 다른 팀에게까지 강화 효과를 나눠줄 순 없었다.

남을 위해 좋은 일 하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혹시 주변에 다른 팀 선수들이 보이면 손을 번쩍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미리 말씀드렸지만 타 팀 선수 분들에겐 퀘스트를 공유해드릴 수 없습니다.”

솔직히 없을 줄 알았는데 손을 드는 사람들이 있었다.

모른 척 서 있던 선수들이 금방 발견된 것이다.

심지어 미리 공지까지 했는데, 대단한 사람들이었다.

이렇게 될 줄 미처 몰랐는지 그들은 얼굴을 붉히며 치욕스런 퇴장을 해야 했다.

사람들이 양심이 있어야지 말이야.

저래놓고 나 때문에 체면 구겼다고 욕할 사람들이다.

물론 이런 경우 함께 작업하는 경우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팀에 공식 요청을 하는 경우엔 이쪽도 그에 맞춰 성실한 답변으로 YES or NO를 결정한다.

그리고 대부분 그 경우엔 우리 쪽에 스킬등의 보상을 안겨주는 식으로 딜을 하기 때문에 성사되는 경우가 제법 많다.

즉, 쫓겨난 친구들은 보상만 날로 먹으려다 걸린 얌체였다.

실제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레전드 크루팀의 경우, 지금은 매물이 없어 구할 수 없는 전설급 스킬을 보조하겠다며 먼저 연락을 해왔다.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 팀은 대체로 환영하는 편이었지만 나는 이 딜에 반대였다.

장비나 스킬은 돈 주고 살 수 있어도 특급 강화효과는 돈 주고도 구할 수 없단 말이 있다.

어디서 구해왔는지 레전드 크루가 준비한 전설급 스킬은 10개, 하나같이 상위 티어에 드는 귀한 물건임엔 확실했다.

하지만 최근 기세가 크게 오른 팀과 강화 효과를 공유하는 건 호랑이에게 날개를 다는 격이다.

스나이퍼 조합 때 느꼈지만 저 팀에겐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었다.

그 무언가가 S.솔리드가 북미를 제패하는 데 있어 분명 발목을 한 번은 잡을 거란 촉이왔다.

최대의 걸림돌이 될지 모르는 팀을 알고도 도와주는 것만큼 멍청한 짓은 없다.

내가 반대 의견을 피력하자 결국 팀은 거래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1티어 스킬은 선수라면 누구나 탐을 내는 보물.

말은 안해도 팀원들은 많이 아쉬운 기색이었다.

하지만 퀘스트가 종료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밝은 분위기를 유지했다.

자그마치 주력스탯 30퍼센트 강화효과, 다들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

[운영진도 못한 대형 이벤트를 만들어낸 화제의 유저]

[‘유니크’ 그는 누구인가]

[S.솔리드의 리그 독주는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치즈가 뚝뚝 떨어지는 피자를 흡입 중인 팀원들 옆에서 나는 e스포츠 기사란을 탐독 중이었다.

어느덧 시즌도 후반기로 접어들었다.

10개 팀이 펼친 치열한 레이스의 끝이 보이는 가운데 슬슬 가을에 갈 팀들의 윤곽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현재 압도적인 승률로 독주 중인 S.솔리드는 당연히 1위.

2위 자릴 놓고 레드불스와 슈퍼호넷이 치열하게 싸우는 가운데 4위로 레전드크루가 올라왔다.

와일드카드 자격을 받는 5위는 현재 블랙이글스의 차지지만 6, 7위와 승점 차이가 크지 않아 방심할 수 없었다.

리그 흥행 측면에선 잘 된 일이었다.

너무 결과가 뻔하면 후반기 흥행도가 조금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가을티켓의 향방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으니 계속 관심이 유지됐다.

6만석의 VIP관람석은 언제나 매진, ESBN의 가이아 채널 하루 평균 시청 인원은 450만을 넘어섰다는 기사가 연일 쏟아져 나왔다.

정확한 수치는 기억나지 않지만 현재 시장 성장 속도는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분명 빨랐다.

그리고 이 변화를 불러온 원인은 아마도 나였다.

슈퍼스타가 리그에 미치는 영향은 언제나 막대하다.

과거 이 시기엔 슈퍼스타라 할만한 선수가 사이클론 정도밖에 없었다.

그런 사이클론도 재능을 개화해 주목받기 시작한 건 내년 2회차 프로리그와 월드챔피언십 우승 이후였다.

그에 비하면 내 활약도는 압도적.

노린 건 아니지만 이번 AFC 챔피언 제프와의 해프닝도 나의 인지도를 넓히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내 인지도는 게이머를 넘어 일반 대중에게까지 서서히 퍼지는 단계였다.

S.솔리드의 평균 시청률이 다른 팀의 몇 배에 이른다고 했다.

이렇게 리그 흥행에 효자노릇을 톡톡히 하자 바뀐 것도 있었다.

가이아 운영팀이 팀에 연락을 하는 빈도가 잦아졌다.

주로 니콜라이가 연락통 역할을 했는데 불편한 건 없는지 등을 물어보며 차후 패치 방향에 대해 종종 귀띔해주고 가기도 했다.

가이아 프로리그는 따로 대회 클라이언트를 쓰는 게 아니기 때문에 패치의 영향을 당일 받는다.

속도 너프 때처럼 변화가 클 경우 각 팀에 미리 전달을 하는 건 일반적인 일이지만 니콜라이를 통해 들어오는 정보는 적어도 다른 팀에 비해 하루이틀 이상 빠른 것이었다.

[레전드크루의 약진, 3강구도 붕괴의 신호탄?]

팀원들이 하도 맛있게 먹기에 나도 피자를 한 조각 집어 드는데 신경 쓰이는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현재 순위 4위의 레전드 크루.

리그 첫주, 이 팀의 순위는 8위였다.

열 개 팀 중에서 8위, 약팀으로 분류되던 팀이 4위까지 올라왔다. 그것도 치열한 2위싸움을 벌이는 팀들과 승점 차이도 얼마 되지 않았다.

실제로 레드불스나 슈퍼호넷은 최근 라운드에서 레전드크루에가 나란히 일격을 맞았다.

S.솔리드만 아니면 어느 팀과 붙어도 승산이 있는 강팀이 된 것이다.

좀 더 파워업 해둘 필요가 있겠는데···.

1티어급 스킬만 좀 더 구비하면 무난하게 우승할 수 있을 듯했다.

강화효과로 주력스탯 30퍼센트를 얻은 게 불과 엊그제다.

우리가 스킬이 부족하단 얘기를 다른 팀이 들으면 욕심이 끝도 없다 하겠지.

그러나 왕좌는 원래 욕심 부리는 녀석이 가져가는 법이다.

스킬을 둘러볼 겸 LGE마켓에 들어갔다.

초월급, 전설급 스킬은 오픈 초와 비교해 값이 몇 배나 뛰었다.

몽땅 묻어둔 계약금을 생각하면 기분 좋은 포만감이 느껴졌다.

스크롤을 내리며 신규 전설급 스킬에 매물이 없나 찾아보는데 조금 전에 올라온 매물이 눈에 띄었다.

메테오 밤. 엘레멘탈 마스터 전용의 전설 스킬.

티어로 따지면 제리의 드래곤 웨이브보다 한 끗발 높게 쳐주는 물건이다.

위력은 조금 부족하지만 이 스킬엔 압도적인 장점이 있었으니 바로 기절이었다.

운석이 떨어지는 충격파를 맞으면 짧게는 1초, 길게는 3초 정도의 경직이 생긴다.

눈 깜짝할 사이에 승부가 갈리는 프로리그에서 평균 2초면 목 빼놓고 나 죽여주쇼 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실제로 현재 5위 싸움 중인 블랙이글스는 메테오 밤을 장착해 리그에서 막강한 위력을 발휘한 바 있었다.

즉, 실전에서 검증된 스킬이란 얘기다.

그 때문이었을까.

현재 메테오 밤의 경매가는 15만 달러까지 오른 상태였다.

한화로 따지면 2억을 훌쩍 넘는 거액이다.

LGE마켓엔 수도 없이 많은 매물이 올라오지만 모든 주요 스킬이 프로팀으로 가는 건 아니다.

돈 많은 개인 플레이어들이 스킬을 사는 경우도 많았다.

이제 막 15만 달러, 얼마나 더 오를지도 모르는 상황.

무도가를 쓰는 마당에 다른 때 같았으면 그냥 지나쳤을 테지만 이번엔 아니었다.

“감독님!”

“왜?”

“스킬 지원 좀 받을 수 없을까요?”

“매물이 있어?”

요즘은 프로팀 관계자들도 매일 같이 LGE마켓을 훑는다.

팀에 도움이 되는 물건이면 일단 산 다음에 선수와 추가 계약을 하는 방식이다.

연봉에서 일부 부담을 한다든지, 팀 탈퇴 때 캐릭터를 양도받는 식으로 말이다.

“메테오 밤 올라왔는데요.”

“블랙이글스 엘마가 쓰는 그거?”

“네.”

“지금 얼마야?”

“15만 달러요.”

즉시 가격을 확인하려던 감독은 15만 달러라는 소리에 다시 나를 바라봤다.

“으음.”

확실히 부담되는 가격이다.

한두 푼도 아니고 15만 달러를 지출하려면 결재라인이 대표에게까지 도달한다.

심지어 이게 이제 진행 중인 가격인 점도 문제였다.

막말로 이게 15만에서 끝날지, 30만 달러가 될 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조금 가격이 쎄긴 하네. 한솔이 네가 쓸 스킬이면 군말 없이 지원해주실 것 같은데···.”

감독이 어렵다는 뜻을 비친다.

엘레멘탈 마스터 전용이다 보니 당장 스킬을 가져오면 주인은 마이클이 된다.

마이클이 못하는 선수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최상위급 선수는 아니다.

최근 2개월 동안 전력증강 차원에서 S.솔리드가 스킬을 지원하는데 투자한 비용은 100만 달러를 가볍게 넘었다.

상위 스킬은 시세가 10만 달러를 왔다갔다 하니 몇 개 집으면 지원금이 눈 녹듯 없어진다.

그나마 우리 팀은 양반이다. 투자한 만큼 성적이 나오니까.

스킬을 안 살 수도 없고 돈은 돈대로 드는데 성적이 안 나와 숙소 분위기가 살벌한 팀도 적지 않았다.

“어려울까요?”

“한 번 알아는 보마. 경매 몇 시간 남았다고?”

“36시간요.”

감독은 즉시 코치와 분석팀을 호출해 기획서 준비를 시작했다. 아무리 팀에 돈이 많아도 수십만 달러를 그냥 주세요 할 순 없다.

특히 모기업이 대기업일수록 이런 결재를 받는 게 생각보다 빡빡했다.

머리를 싸매고 투자대비 효율을 검토하기 시작한 인원을 조용히 지켜보며 나는 저장된 번호로 연락을 한 통 넣었다.

신호음이 몇 번 울리더니 활기찬 목소리가 들린다.

“오. 한솔 군. 이 시간에 웬일인가.”

“대표님. 통화 가능하세요?”

“잠시 쉬었다 가지.”

“어디가! 자네 차례야!”

지인분들과 친목을 도모하고 계셨던 모양이다.

드라이버가 공을 때리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

“저 다름이 아니라 팀에 도움이 될만한 물건이 시장에 올라왔는데 가격이 좀 나가서요.”

“아, 마켓에 스킬이 또 올라왔나 보지? 지금 얼만가.”

“36시간 남았고 지금 15만 달러입니다.”

“자네가 쓸 물건인가?”

“아니요. 마이클이 쓸 물건이요.”

“그래?”

“메테오 밤이라고 아주 좋은 스킬인데···.”

스킬 이름을 언급하자 해링턴 대표는 아! 소릴 냈다.

“진작 말하지 그랬나. 그거 블랙 이글스에서 쓰는 운석 스킬 아닌가. 나도 알 건 다 아네.”

“아! 빨리 와!”

“잠깐 기다려! 중요한 통화야! 요즘 경기 꼬박꼬박 챙겨보고 있네. 필요한 물건은 사야지. 지원금 걱정하지 말고 감독에게 결재 올리라고 하게.”

“감사합니다. 대표님. 바쁘실 텐데 죄송했습니다.”

“무슨 그런 서운한 소릴 해. 그런 얘기 있으면 언제든지 전화하게. 하하.”

인자한 웃음소리와 함께 통화를 마친 난 회의실 문을 열었다. 이거 힘들겠단 얘길 하다 말고 모두가 날 바라봤다.

입모양으로 왜?를 말하는 사람들.

“액수 신경 쓰지 말고 결재 올리시랍니다.”

“···?”

어리둥절하던 사람들은 이내 내가 대표 찬스를 썼다는 걸 깨닫고서 크게 웃었다.

“브라보!”

“역시 우리 에이스! 아주 좋았어!”

“내가 이래서 한솔이를 좋아한다니까.”

시커먼 아저씨들이 내가 좋다고 부비려는 걸 잽싸게 피했다.

하마터면 그 날 이후 억누르고 있던 미들킥을 쓸 뻔 했다.

“대표님이 프리 결재 올리라고 했으면 이건 뭐 다 끝난 게임이지.”

솔리드 테크놀러지 회장을 지낸 해링턴 대표는 일반인은 상상하기 힘든 부를 축적한 재력가였다.

LGE마켓의 메테오 밤 입찰가가 즉시 30만 달러로 뛰었다.

어중간하게 입찰을 쓰면 경쟁자가 계속 붙어 더 큰 지출을 하게 된다.

한 번에 값을 두 배로 올렸으니 기선 제압으론 확실했다.

스페셜 지원을 받게 됐단 소식에 마이클은 펄쩍 뛰더니 진행 경과를 듣고선 나를 부둥켜안았다.

“고맙다. 한솔아!!”

이 정도로 지원을 받으면 당분간 주력엔트리 승선은 확정이니 마이클의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마이클의 행복함, 아니 우리 팀의 행복함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5시간 뒤 저녁, 메테오 밤의 입찰란엔 40만 달러가 찍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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