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OS 소설 아닌데요-45화 (45/170)

유니크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4)

북왕국군 병사 1만 명을 지휘하는 장군.

이번 퀘스트의 핵심은 적 장군을 얼마나 빨리 처치하는가에 달려 있었다.

무장한 부관과 병사로 만들어진 인간 바리케이드를 향해 제리의 몸이 날아올랐다.

거대한 불의용.

공격력부터 체력에 이르기까지 온갖 스탯 버프를 두른 제리의 드래곤웨이브가 왕국군의 결계를 뚫고 들어가 대폭발을 일으켰다.

필드사냥이나 랭크매치 플레이땐 파티 인원이 네 명뿐이라 받을 수 있는 지원에 한계가 있지만 지금은 열 명이 넘는 마법사들이 서로 다른 버프를 제리에게 걸었다.

하늘 높이 치솟는 불기둥에 진형이 순식간에 붕괴했다.

불의 여파로 열린 길을 타고 들어가자 흉흉한 눈빛을 발하는 부관들이 검을 뽑아들었다.

조심하라고 말하기도 전에 성질 급한 마스터 레벨 유저 한 명이 대검을 치켜들고 달려들었다.

일반 유저들이 보기엔 마스터도 정말 까마득한 세상의 강자지만 부관은 너무나도 가볍게 버서커의 대검을 쳐내더니 놀라운 속도로 몸통을 찔러 반격했다.

-ㄷㄷㄷㄷ

-저거 장군 아니라 호위병 아님?

-부관이 저 정도면 장군은 어떻게 잡음?

억소릴 내며 무너지는 버서커를 구한 건 데니스였다.

시종일관 유저를 압도하던 부관의 검이 방패에 처음으로 밀렸다.

장군의 호위 부관을 상대하려면 최소 그랜드마스터 레벨은 돼야 했다.

부관의 숫자는 최소 쉰 명 이상, 뚫고 전진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리고 호위 부관 뒤쪽에 칼을 차고 선 대장군.

매서운 눈빛으로 전장을 주시하는 장군의 기백은 날이 선 상태였다.

일대일이 아니면 솔직히 자신 없을 정도로 대단한 무위를 지닌 캐릭터였다.

“죽을 뻔했네!”

달려드는 부관들 틈바구니에서 용케 도망친 제리는 십년감수 했단 표정으로 숨을 돌렸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부활을 아낄 수밖에 없었는데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마스터 분들은 최대한 주변 확보에 신경 써주세요. 적 엘리트는 우리가 맡겠습니다.”

“예!”

미리 추린 마스터 이상의 정예 멤버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전진!”

내 외침을 시작으로 S.솔리드 12인이 호위 부관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화살을 막아내는 실드나이트의 방패 뒤에 숨어있던 내가 항마장을 날림과 동시에 부관들 사이를 비집었다.

사방에서 검이 쏟아지는 위험천만한 상황, 치명상을 입을 수 있는 중요 급소만 보호하는 형태로 적의 목줄을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체력이 순식간에 5할 아래, 3할까지 떨어지는 위험한 상황이 반복됐다.

-어어.

-죽어?

-죽는다!

시청자들이 연신 채팅을 쏟아냈지만 내가 쓰러지는 일은 없었다.

데니스에게 보호를 받는 케빈은 오직 내게 집중해 칼같이 힐을 넣었다.

아차!

뒤에서 날아드는 파공음을 들은 순간 머리털이 곤두섰다.

나를 가장 위험하다고 판단한 부관들이 순간 눈을 맞추더니 일제히 달려들었다.

도저히 피할 수 없어 부활을 염두에 둘 때 용의 충격이 터지며 활로가 뚫렸다.

“목숨 1스택 적립이요.”

구원의 손길을 내민 건 최근 기량이 터지기 시작한 제레미였다.

프로게이머에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재능이 있는 선수는 나이가 많든 적든 괴물 같은 실력을 발휘한다.

제레미는 입단 테스트 때부터 최상위 선수가 될 자질이 있었다. 다만 가이아를 플레이한 시간이 짧아 스탯이 부족한 게 흠이었는데 최근 숙소생활을 통해 약점을 많이 보완한 상태였다.

“고맙다!”

-저 친구 누구임? 못 보던 얼굴인데.

-혹시 사이클론 대신 들어왔다던 새로운 친군가?

-저 친구 맞음. S.솔리드 홈페이지 들어가면 프로필 사진 있음.

-귀여워;;

-저 친구도 속도가 장난 아닌데?

용의 충격은 정해진 투로로 뻗는 스킬이 아닌 자유로운 기술이기에 게임 센스가 높은 선수일수록 더 빛을 발하는 스킬이다.

나와 제레미가 등을 맞대고 주먹을 뻗자 부관들도 섣불리 달려들지 못했다.

S.솔리드의 그랜드마스터 12인을 필두로 부관의 발이 묶이자 잠자코 전황을 살피던 장군이 몸을 움직였다.

2미터의 거구답지 않은 날랜 움직임으로 녀석이 공중을 밟고 붕 떠올랐다.

“조심해!”

언제나 주변을 살피는 건 탱커의 패시브, 갑자기 달려드는 장군을 발견한 데니스가 경고했지만 한발 늦었다.

수십 미터를 몇 걸음 만에 좁힌 장군의 검이 존의 등을 찔렀다.

“어억.”

자신의 가슴을 찌르고 들어온 검을 보며 아연실색한 존이 한 방에 죽고 말았다.

전체연령가 게임이라 피는 안 튀었는데 그래도 무서운 건 마찬가지다.

-헐;

-방금 장군 움직임 뭔데;

-저걸 잡으라고?

엘리트 NPC의 무서움.

녀석들은 스탯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플레이어는 아무리 날고 기어도 5천 이상 기본스탯을 올릴 수 없지만 NPC는 말도 안되는 체력과 스킬로 무장이 가능하다.

“주제를 모르는 오만한 대적자들아. 물러나라!”

장군은 커다란 외침과 함께 다음 먹잇감을 찾아 눈동잘 굴렸다.

한방에 터진 존 다음은 릭 차례였다.

릭 홀트, 클래스는 실드나이트. 데니스에 가려 엔트리에 들진 못하지만 그도 엄연히 S.솔리드의 1군 선수다.

그런 그가 장군의 검격 한 방에 수 미터를 날아가 미끄러졌다.

그 한 번의 공격으로 릭의 체력은 2할 아래를 알리는 레드 라인으로 곤두박질쳤다.

방어력으론 둘째가라면 서러운 실드나이트가 이 정도면 다른 클래스는 일단 맞으면 사망 확정이다.

“오만한 새낀 너다. 이 자식아.”

애초에 이번 연계퀘스트는 타국의 침범에 저항하는 글로리아 왕국을 돕는 것 아니던가.

침략자 주제에 아주 거만하기 짝이 없다.

그림자서곡의 은신 효과를 이용해 단숨에 부관의 벽을 뚫고 들어간 내가 교룡뇌조를 터트리자 장군의 자세가 잠깐 휘청였다.

“한솔이가 붙었다. 막아!”

나를 향해 부관들이 달려드려 하는 걸 동료들이 몸을 던져가며 저지했다.

“겨우 이 정도로 내게 도전한 건가.”

교룡뇌조를 정타로 맞으면 뇌격효과에 의해 잠시 경직이 발생해야 하는데 이 덩치 놈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살벌하게 검을 휘두른다.

분명 대검인데도 녀석의 체격이 워낙 좋아 평범한 노멀소드처럼 보였다.

머리 위를 간발의 차로 스치는 공격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마이클이 헤이스트를 비롯한 속도 강화 버프를 걸어주지 않았다면 피하지 못했을 정도로 빨랐다.

체력은 얼마나 남았지?

분명 교룡뇌조를 정타로 맞췄음에도 흠집 수준밖에 나지 않았다.

스킬의 위력이 약한 게 아니라 놈의 체력 게이지가 불합리할 정도로 많았다.

애초에 이 대장군은 혼자 잡으라고 만든 녀석이 아니다.

내가 녀석의 발을 묶어두기만 하면 분명 부관과의 승부는 아군에게 유리했다.

버티기만 하면 협공으로 잡아낼 수 있단 뜻이다.

날아드는 검의 옆면을 용의 충격으로 때린 나의 눈빛이 반짝였다.

버틴다!

*

적장의 공격을 홀로 받아낸 지 10분, 승부는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전투의 전체 양상을 위에서 들여다보면 북왕국군이 우세를 점한 듯 보이지만 양측의 주력싸움에선 아군이 승기를 잡았다.

쉰 명이 넘던 부관이 피를 뿌리며 쓰러지자 남은 지휘관은 얼굴을 일그러트린 대장군뿐이었다.

“이미 오래전에 기력을 잃은 대지에 이런 힘이 남아있을 줄은···.”

나는 정신적 피로가 상당해 대꾸 없이 재차 주먹을 뻗었다.

자연의 기운이란 사기적 능력을 얻은 뒤 웬만하면 지치는 법이 없었는데 대장군과의 결전은 정신적 피로가 상당했다.

그만큼 한계에 가까운 능력을 요구했던 대결이었다.

장군이 사기적인 스펙을 지닌 것과 달리 난 스치기만 해도 치명상, 정타를 허용하면 무조건 죽음이었다.

정타를 단 한 번만 허용하면 실패하는 벼랑 끝 전투에서 나는 무려 15분을 버텨냈다.

-이걸 해낸다고?

-나였으면 10초 컷이었다.

-10초가 뭐임 1초지.

-유니크···기어이 신이 돼버린 남자···.

-오늘 이 방송을 실시간으로 본 내가 승자다

-놀라움을 넘어 이젠 인간이 맞는지 의심스러운데;;

콜로세움 최상위 랭커들은 한 번 승기를 잡으면 놓치지 않는다.

리스크가 다소 있더라도 할 땐 해주는 플레이가 필요하다.

전장의 유저들에겐 지금이 바로 그때였다.

홀로 남은 대장군을 향해 상위 랭커들의 공세가 쏟아졌다.

-아직 안 끝났습니다. 응원해주세요!

-존 죽고 여기 온 거? ㅋㅋㅋㅋㅋㅋㅋㅋ

-개 웃기네 ㅋㅋㅋㅋ

-존인지 어떻게 앎?

-닉네임 황금색 ㅋㅋㅋㅋ

이제는 10만 명을 돌파한 시청자들, 사망패널티를 받고 눈물을 흘린 존이 한마음으로 전투를 응원했다.

그리고 마침내 놈의 무릎이 꺾였다.

끝을 모르던 체력도 결국 바닥을 드러낸 것이다.

녀석은 검에 의지에 숨을 헐떡였다. 복잡한 감정을 눈에 담은 장군이 결국 고갤 숙였다.

“죽여라.”

말 안 해도 죽일 거야. 이 자식아.

망할 놈이 생각보다 오래 버티는 바람에 팬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나는 폼잡을 생각 없이 용의 충격으로 단번에 놈의 숨통을 끊었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장군의 거구가 뒤로 넘어가자 북왕국군의 움직임이 급격히 나빠졌다.

지휘체계의 전멸, 전의를 상실한 북왕국군이 퇴각하기 시작하자 유저들이 머리 위로 손을 번쩍 들고 환호했다.

-시발 기어이 이걸 깨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락사스 뭔데

-위에 락사스임?

-바로 로그아웃 ㅋㅋㅋ

-엿보다가 걸렸죠?

-몰래 방송 보고 있는 타팀 선수들 개많을 듯 ㄹㅇ루.

-네놈추. 스샷 찍었다

“뭐에요. 무슨 일 있었어요?”

장군의 죽음 이후 한숨 돌린 나는 시청자 반응을 살폈다.

-갓니크!

-오늘 플레이 지려버렷자너;;

-지금껏 이런 첫방송은 없었다···.

-첫방송이 아니라 올타임으로도 없을 듯 ㅇㅈ?

[솔리드팬티장수 님이 20달러를 후원!]

-덕분에 오늘 물건 잘 팔고 갑니다.

-ㅋㅋㅋㅋㅋㅋ팬티장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누가 보고 가셨구나. 그럴 수도 있죠. 왜 기를 죽이고 그러세요.”

킬킬거리는 시청자들과 잠시 대화를 나눈 뒤 나는 살아남은 생존자들 앞에 섰다.

대체 어떻게 한 건지 제리와 마법사들이 흙 단상을 또 만들어놨다.

나는 진즉 마력이 고갈돼 이를 악물고 버텼는데 힘이 남아도는 모양이다.

단상 위로 올라선 나는 양손을 번쩍 들고 외쳤다.

“여러분! 도와주셔서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와아아아아-!”

처음 퀘스트를 시작한 인원의 절반도 채 되지 않았지만 함성은 훨씬 컸다.

그리고 몇 초 뒤, 퀘스트 성공을 알리는 메시지와 함께 유저들 머리 위로 작은 오색 빛 폭죽이 터졌다.

-보여줘!

-보여줘!

-플래티넘 퀘스트 보상임?

-아직 아닐거임. 연계 퀘스트로 알고 있음.

살아남은 유저들의 환호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나는 시청자들에게 퀘스트 보상을 자랑했다.

보상을 확인한 시청자들은 비명을 지르며 벌떡 일어섰다.

◆초월급 업적 - 글로리아의 영웅

북왕국 스카라의 마수에서 글로리아 왕국을 지켜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왕국은 영웅의 업적을 영원토록 기릴 것입니다.

보상 : 강화 효과 글로리아의 영웅 부여. 클래스 주력 스탯 +25%

-미친 ㄷㄷㄷㄷㄷㄷㄷ

-25퍼센트라고? 25···?

-이런 법이 어딨냐!

-개미쳤네 ㅋㅋㅋ 25퍼ㅋㅋㅋㅋㅋ

-ㅋㅋㅋㅋ 저 정도면 거의 A급 장비 하나 더 달고 있는 급임;;

그러나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퀘스트를 같이 공유한 사람들도 서브 강화효과를 받았단 사실이 알려지자 시청자들의 배아픔이 극에 달했다.

의외로 강화효과를 주는 퀘스트가 별로 없는데다 10퍼센트 이상의 버프를 주는 퀘스트는 정말 드물었다.

-지금 유니크 도우러 간 사람들 전부 주력스탯 15퍼 버프 받았다고 함.

-으악!

-아, 주말 출근 망할···.

-한 시간 전의 나 새낀 뭐한 거냐. 죽어 ㅆㅂ!

-님들 그게 문제가 아님. 콜로세움 등수 1만등 밀리게 생김 ㅠㅠ

-응 난 마스터라 1만등 안 밀려~

-ㅂㄷㅂㄷ;

-아 방송 괜히 봤어.

극도의 우울함을 호소하는 팬들에게 난 온화한 미소로 동아줄을 흔들어 보였다.

“여러분. 아직 끝난 거 아닙니다.”

-정말로?

-놀리는 거면 솔리드 팬 탈퇴합니다 ㅠ

-패자부활전?

-모임? 안 끝났단 소리 듣고 다시 의자 앉음;;

“제가 여러분을 왜 놀리겠습니까. 글로리아 연계 퀘스트는 후반 전투가 두 번이거든요. 왕국마도사가 그렇게 말했으니 한 번 더 남았다고 봐야죠.”

-키아아아

-언제 해요?

-아 오늘 진짜 안되는데 ㅠㅠㅠㅠㅠㅠㅠㅠㅠ

-미뤄주세요 제발;

-지금 함?

-초원으로 달려갑니다.

시청자들이 우수수 빠지기 시작하자 나는 재빨리 말을 이어나갔다.

“잠깐만요. 잠깐만요! 한국말은 끝까지!”

-한국말은 끝까지래 ㅋㅋㅋ

-미국말도 끝까지임

“오늘 도와주신 분들이 정말 많거든요. 2차전은 다음 주 주말에 시작할 예정입니다. 그럼 오늘 쓰러진 분들도 대부분 다시 참여할 수 있겠죠?”

-이것이 참 방송인!!

-일주일 준비 잘해오라고 기회 주자너 ㅋㅋㅋ

-운영진도 안하는 이벤트를 유저가 하네 ㅋㅋㅋㅋㅋ

-무조건 간다.

-뒤져도 감;

2차 대전투면 못해도 1차 전투급 보상은 줄 것 아닌가.

어느덧 12만 명을 돌파한 시청자가 군침을 흘리기 시작했다.

“오늘 저희 첫 방송을 이렇게나 많은 분이 함께 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자주 좀 와.

-최근 본 가이아 방송 중에 젤 재밌게 봤음.

-스케일이 멱살 캐리했다

-벌써 감?

-아니 방송 두 시간 정도밖에 안했자너

재밌게 봤다는 의견과 벌써 끝이냐는 채팅이 엄청나게 올라왔다.

“아 더 오래하고 싶지만 오늘 전투 참여해주신 분들하고 인사도 나눠야 해서요.”

-아 그런 거면 이해해줘야지

-코어 팬들 잘챙기네 ㅋㅋ

-ㄹㅇ 챙겨줘야함. 죽으면 며칠 접속 못할거 각오하고 달려간 사람들임.

-이집은 메인요리부터 디저트까지 못하는 게 없네

-2차 때도 팬 관리 잘해줄거로 믿겠음

-그때 사람 미어터질거 같은데 팬미팅 개 헬 ㅋㅋㅋ

“많이들 오세요. 전부 사진도 찍고 싸인도 해드릴게요.”

-ㅋㅋㅋㅋ

-약속 함부로 하다가 골로 가는 거 모름?

-이 형. 성급하네 ㅋㅋㅋㅋㅋ

-몇 명이나 올 줄 알고 ㅋㅋㅋㅋ

솔직히 생각보다 많이 올까 봐 걱정되긴 했다.

그렇다고 이 분위기에서 모양 빠지게 많이 오면 못한다고 할 순 없잖아?

“그럼 여러분.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다음 주에 봐요.”

-솔.바

-솔.바

-또 봐!

방송은 끝났지만 아직 내 할 일은 남아있었다.

“사진 찍으실 분?”

신이 나서 기다리는 팬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내려간 나는 2차 미팅을 시작했다.

***

그야말로 평화로운 월요일 오전이었다.

스탯을 전부 찍어 시간이 많이 비긴 했다.

어제 퀘스트 진행으로 강화효과를 얻은 덕에 팀 분위긴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1만 명의 인원이 함께했지만 퀘스트 공유를 받으러 온 사람 중 타 팀 선수는 없었다.

이번 전력증가로 S.솔리드는 다시 한 번 격차를 벌린 셈이 됐다.

초콜릿 발린 도넛을 먹으며 침대에 늘어졌다.

다른 팀 선수들은 아마 열심히 훈련에 박차를 가하고 있을 시간이다.

그러나 내겐 어서 연습 안하냐고 재촉하는 사람이 없었다.

왜? 알아서 잘하니까.

어제 팬미팅을 열심히 해서일까.

오늘은 왠지 게으름을 부리고 싶어져서 조금 늘어졌는데 노크소리가 울렸다.

“들어오세요.”

감독도, 코치도 아닌 존이었다.

“전화 좀 받아볼래.”

어디서 걸려온 전화냐고 입 모양으로 물었는데 그는 대답 대신 받아보면 알 거란 말만 했다.

존은 통화내용을 들을 수 있도록 스피커 폰 모드를 켜고 핸드폰을 건넸다.

“여보세요?”

“S.솔리드, 유니크 선수. 맞으신가요?”

“네. 맞는데요.”

맞다고 확인해주자 폰 너머로 생각지 못한 답이 돌아왔다.

“가이아 운영 3팀에서 근무하는 니콜라이라고 합니다. 잠시 통화 가능하십니까?”

게임은 게임일 뿐?

가이아 운영팀이 나를 찾은 이유가 뭘까.

뜯기만 하면 레어리티가 올라가는 스킬 상자? 장시간 플레이에도 전혀 지치지 않는 피지컬?

초조한 마음으로 다음 말을 기다렸더니 전혀 생각지도 않던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최근 며칠간 유니크 선수의 플레이에 부정행위가 있었는지 운영팀 차원에서 조사가 있었습니다.”

“부···정행위요?”

이게 무슨 개소리야.

“혹시 최근 커뮤니티 동향을 살펴보신 적 있습니까?”

“예. 어느 정도는요.”

“저희 쪽에서 유니크 선수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담은 글이 주기적으로 올라오는 걸 포착했습니다.”

나는 어떤 내용인지 어렴풋이 감을 잡았다.

요즘 들어 나를 까고 다니는 프로 선수들이 있다는 얘긴 들었다.

문제는 개인방송에서 은근슬쩍 그런 이야길 흘린다는 거지.

혼자만 그런 생각을 하는 건 문제가 없지만 방송으로 내 이미지를 나쁘게 하는 건 묵과할 수 없는 문제다.

안 그래도 팀 차원에서 대응을 해야 되지 않나 싶어 이야기가 오가던 참이다.

“플레이에 부정 프로그램이 사용된 흔적은 없는지 조사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레드불스에서요?”

나를 찔렀을 만한 가장 유력한 후보는 레드불스였다.

솔직히 처음 리그에 등장한 히드라 스피릿을 막아낸 건 내가 생각해도 조금 너무한 게 아닌가 싶었다.

열이면 열, 처음 보는 유저면 당할 수밖에 없는 스킬을 완벽하게 카운터 냈으니 레드불스 입장에선 의심스러울법했다.

“···그 부분에 관한 정보는 알려드릴 수 없는 점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반응을 보니 굳이 확답을 받지 않아도 대답을 들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조사 결과는 어떻게 됐나요.”

“아,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무 문제 없었다고 알려드리려고 이렇게 연락드린 겁니다.”

“겨우 그 이야길 하려고 연락하셨다고요?”

목소리를 살짝 내리깔자 니콜라이가 미안하단 말을 덧붙였다.

“유니크 선수 플레이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걸 우리도 잘 알고 있습니다. 명실공히 가이아 프로리그 최고의 스타 아닙니까. 유니크 선수의 명성에 흠이 가는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각 팀에 공문을 전달할 예정입니다.”

“그건 다행이네요.”

앞으로 방송에서 내 이니셜을 언급하며 핵이니, 치트니 하는 개소릴 더는 보지 않아도 된단 뜻이다.

“그래서 말인데 아예 의혹을 지우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저희가 따로 작은 기획을 준비했습니다.”

“기획요?”

운영팀이 준비한 기획은 가이아 탑급 선수들의 실제 피지컬은 얼마나 대단할까 라는 짧은 영상을 촬영하는 것이었다.

가이아 이외의 컨텐츠를 준비해 선수들의 신체능력을 유저들에게 보여주자는 것이다.

“공문을 돌리는 거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다른 프로팀에서 유니크 선수의 험담을 공개 장소에서 하는 일은 없겠지만 여전히 의혹을 가진 시청자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저희가 특별히 유니크 선수의 뒤를 봐주고 있다는 그런 이야기 말이죠.”

그 이야긴 나도 들은 적 있다.

유니크는 지오에서 특별히 선택한 플레이어로 티 나지 않게 좋은 장비와 스킬을 밀어주는 게 아니냔 의혹이다.

물론 내가 운이 좋은 건 밀어주기가 아니라 자연의 기운 때문이지만.

“음. 프로선수가 다른 스포츠에서도 활약하는 영상을 찍으면 부정프로그램에 관한 의혹은 풀리겠네요. 하지만 제가 운영진의 특혜를 받는단 의혹은 오히려 커질 수도 있는데요?”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번 영상 제작에 참여하는 선수는 유니크 선수 혼자가 아니거든요.”

***

운영팀의 연락을 받은 지 사흘 뒤.

여느 때와 다를 게 없던 평범한 오후, 특별한 손님이 숙소를 찾았다.

“안녕하십니까.”

점심시간에 딱 맞춰 들이닥친 가이아 운영팀은 촬영장비를 세팅하며 손님을 우리에게 소개했다.

하얀 이를 드러내며 씩 웃는 손님은 키는 그리 크지 않지만 몸이 아주 다부져 보였다. 식사하기 위해 부엌으로 가던 제레미는 손님의 얼굴을 알아보고선 소리쳤다.

“세상에! 제프 페티스!”

깜짝 놀라 달려온 제레미는 손님과 악수하더니 연신 호들갑을 떨었다.

반면 나를 포함한 다른 친구들은 아무도 손님의 정체를 모르는 눈치였다.

“형들. 이분 몰라요? AFC 라이트급 챔피언! 제프 페티스라고요.”

“이분이 프로 격투기 챔피언이시라고?”

대체 이거 기획한 자식이 누구야?

어떤 컨텐츠로 영상을 찍는진 끝내 말을 안 하기에 소소한 피지컬 측정 이벤트라도 하는 줄 알았다.

격투기 챔프를 데려와 할만한 이벤트는 한정적이다.

나는 오늘 어떤 일이 벌어질지 대강 눈치챘다.

물론 이것도 어떻게 보면 운동능력 측정이긴 하지만 솔직히 이런 과격한 방법은 내 예상범주에 없던 것이었다.

“반갑습니다. 유니크 선수는 TV로 보던 거랑 똑같네요.”

챔프는 S.솔리드 선수들 중 나를 콕 집어 바라보더니 손을 내밀었다.

얼떨결에 악수를 했는데 악력이 장난 아니었다.

훈련 때문에 가이아를 자주 하진 못해도 프로리그를 보는 건 좋아한다고 밝힌 제프는 S.솔리드의 팬이라고 했다.

“설마 오늘 촬영한다는 이벤트가···.”

“당연히 스파링이죠. AFC 챔피언과 나누는 공방전! 그림 나오지 않습니까.”

그림 좋아하네. 숙소 액자에 모가질 걸어버릴까 보다.

이제 와서 무를 수도 없어 속으로 한숨을 팍팍 쉬고 있는데 준비 다 됐다며 촬영 시작하자는 소리가 들렸다.

“자. 유니크 선수 이쪽으로 오세요. 긴장하지 마시고.”

오늘 이벤트 진행을 맡은 MC는 밝은 미소로 날 샌드백 앞에 세웠다.

“스파링을 하기 전에 앞서 간단한 동작들을 배워볼 겁니다.”

내가 멍청한 표정으로 MC를 바라보자 어렵지 않다며 내 어깨를 두드리는 게 아닌가.

난 그제야 내가 격투기를 배운 적이 없는 열여덟 소년이란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했다.

머리로는 다 알고 있는 기본 동작이지만 갑자기 다 아는 척을 하면 이상하게 여길 터였다.

내가 달리 운동을 한 적이 없다는 건 이미 존이 우리집에 들러 계약서를 작성할 때 다 까발려진 사실이다.

MC의 진행에 맞춰 챔피언 제프의 숙달된 시범이 있었다.

깔끔한 원투 잽, 스트레이트 펀치, 미들킥까지. 총 3개 동작이었다.

근데 이걸 왜 알려주는 거지. 스파링 할 때 기술 배우자마자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텐데.

AFC팬인 제레미는 옆에서 박수치기 바빴고 다른 팀원들은 곧 제물이 될 나를 상상하며 해맑게 웃는 중이었다.

이때가 아니면 언제 내가 뒹구는 걸 보겠느냔 반응이다.

“시합할 때 보니까 동작이 아주 깔끔하더군요. 보는 내내 감탄했습니다.”

아니 저기요.

내가 격투기를 배운 건 사실이지만 그건 게임 스킬이고요.

스탯 보정이 떡칠 된 전사의 육체라고!

이런 운동 해본 적 없는 고등학생 몸뚱이가 아니라!

“다른 팀 선수들도 다 비슷했습니다. 부담 갖지 말고 한 번 해봅시다.”

“쩝.”

나는 아쉬움 섞인 입맛을 다시며 샌드백 앞에 섰다.

부담 없이 하라고 말은 해도 다른 팀 선수보다 더 좋은 결과물을 보여주지 못하면 웃음거리만 될 뿐, 이번 영상을 찍는 의미가 없다.

“자, 주먹은 가볍게 말아쥐고 눈높이까지 올려주세요.”

“후.”

될 대로 되란 심정으로 난 가볍게 원투부터 질렀다.

팡- 하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렸는데 주변에서 올~ 하는 감탄사가 들린다.

“잠깐만요. 다시 한 번 쳐보시겠습니까?”

제프는 뭔가 마음에 안들었는지 재차 주문을 했고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한 번 잽을 뻗었다.

나 역시 뭔가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다시 한 번 샌드백을 울리는 경쾌한 소리에 나는 깨달았다.

이 소리, 마른 육체에서 낼 수 있는 소리가 아니었다.

근력이 오버 업했다?

처음 자연의 기운을 받을 때만 해도 쉽게 지치지 않는 강철의 정신력, 지구력을 얻은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지금 내 잽의 기묘한 빠르기, 제프가 느낀 위화감은 아마 여기에 있을 터였다.

운동을 달리 한 적 없어 보이는 소년이 속도와 파워를 겸비해 잽을 넣고 있었다.

“한솔이 잘한다!”

격투기 문외한인 동료들은 그저 잘한다고 박수치기 바빴다.

“유니크 선수. 혹시 복싱을 배운 적 있습니까?”

“배운 적은 없고 그냥 가끔 영상을 본 적은 있죠.”

“배운 적 없다고요?”

이해할 수 없단 표정을 짓는 제프를 놔두고 난 곧장 스트레이트로 이어나갔다.

어깨를 부드럽게 돌려 샌드백을 치는데 그 느낌이 제법 묵직했다.

다음은 미들킥.

유니크가 용의 충격으로 상대를 유린하듯 날랜 킥으로 샌드백을 후려친다.

잡아주겠다고 나섰던 MC는 억소릴 내며 바닥에 넘어졌고 동료들도 슬슬 이상함을 느꼈는지 입을 다물기 시작했다.

“유니크씨. 진짜 운동한 적 없어요?”

제프는 암만 봐도 못 믿겠단 표정이다.

이건 초보자의 폼이 아니다.

물론 눈썰미가 아주 좋은, 재능을 타고난 사람의 경우 몇 번 보는 것만으로 그 동작을 재현해 낼 수 있긴 하다.

소위 천재라 불리는 사람들이 그런 일을 해내는 걸 제프도 몇 번 본 적 있었다.

하지만 파워까지 겸비하는 건 말이 안됐다.

파워는 몸을 먼저 만들지 않고선 낼 수 없다.

초보자가 미들킥을 교본에 실릴 법한 자세로 파워있게 찬다?

말 그대로 게임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죠? 초보자가 이렇게 찰 수도 있어요?”

앞서 다른 프로팀을 들르며 한 번도 넘어진 적 없던 MC는 제프에게 물었다.

그러나 제프는 답을 내놓지 못했다. 이런 경우는 그도 처음일테니까.

남은 건 스파링 뿐, 글러브와 헤드기어를 착용하자 제프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들어오란 제스쳐를 취했다.

복싱글러브가 아니라 AFC에서 쓰는 오픈 핑거 글러브.

주먹을 쥐었다 펴길 세 번, 나는 팔을 슬쩍 올려 자세를 잡았다.

챔피언이 알려준 기본 가드 자세가 아니었음에도 폼은 아주 그럴듯했다.

프로리그, 유니크가 상대를 노릴 때 쓰는 바로 그 자세였다.

어쩌면 이 육체라면 게임 속 동작을 따라할 수 있지 않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그런 일이 가능한 지 확인하기 위해 나는 부동보를 밟듯 바닥을 박찼다.

***

토요일. 프로리그 일정이 마무리되는 날.

경기 잘 봤다며 유저들이 저마다 후기를 남기고 있을 때 커뮤니티에 새로운 화제글이 올라왔다.

-채널 고정하셈. 스페셜 비하인드 영상 나오고 있음.

-ㄹㅇ?

정규 방송 시간이 끝나 다른 때 같았으면 경기 프리뷰, 하이라이트 재탕이 나올 차례인데 오늘은 특이하게도 새로운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게 대체 뭐하는 상황이야?

-프로선수들 데리고 운동했나 봄.

-이거 운영진이 직접 찍은 영상이지?

-ㅁㅊ 저사람 누군지 암? 제프 페티스임. AFC 챔피언.

TV로 영상을 보기 시작한 사람들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갔다.

“가이아 프로 선수의 피지컬이 얼마나 좋은지 확인하는 시간입니다! 정확한 평가를 위해 AFC 현 챔피언. 제프 페티스씨를 모셨습니다.”

무엇을 위한 영상인지 알게 된 유저들 사이엔 한바탕 난리가 났다.

-ㅋㅋㅋㅋㅋㅋㅋ

-이게 무슨 상황이냐 ㅋㅋㅋ

-운영진 돌았음?

-현실과 게임을 구분 못함.

-더 발전한 VR게임은 가능할지 몰라도 고작 헤드기어 쓰는 게임으론 무리수.

-근데 컨셉은 재밌긴 한데?

처음엔 그저 웃긴 영상인 줄 알았다.

게임 속에선 놀라운 무용을 선보이는 선수들이 실제 스파링에서 허우적거리자 게시판은 배꼽 잡는 시청자들로 도배되다시피 했다.

그러나 팀을 이동하며 화면이 전환할 때마다 선수의 대응 수준이 올라갔다.

그렇게 레드불스의 차례가 되었을 때, 사람들은 웃음을 멈추고 흥미진진한 시선으로 의견을 나눴다.

-솔직히 저 정도면 개쩌는거 아님?

-비프로스트 원래 NFL 유망주 출신이잖아.

-와 개지린다. AFC 챔프 상대로 버티네.

-인간병기;;

방송에서도 여러 번 과시했지만 그의 피지컬은 탈 일반인이었다. 몸만 보면 비프로스트가 챔프보다 2배는 크게 느껴졌다.

일방적으로 얻어맞던 다른 선수와 달리 비프로스트는 민첩한 위빙으로 가드와 공방을 어느정도 선보였다.

결국엔 챔프가 압도하는 그림으로 끝났지만 그가 보여준 모습은 분명 선방이라고 할 만했다.

-이 영상의 진짜 목적이 이거임?

-현실 피지컬이 게임에도 영향을 미친다?

-에이. 비프로스트는 원래 프로 스포츠 지망생이었으니까 일반인이라고 하긴 좀 그렇지 않냐?

-야. 아직 안나온 팀 어디냐.

-S.솔리드 아직 안나옴.

-설마···아니지?

그리고 잠시 뒤, S.솔리드의 숙소 전경이 등장하며 선수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자 전 커뮤니티가 활활 타기 시작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기 선수 장례식 열린다고 해서 왔습니다.

-배치 순서 보면 모름? 더 멋진 모습을 보여줄 거시다!

-격투기는 체격 빨임 ㅉㅉ

“자. 유니크 선수 이쪽으로 오세요. 긴장하지 마시고.”

유니크가 S.솔리드의 대표로 발탁된 걸 확인한 유저들은 무서운 속도로 반응을 쏟아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이건 좀

-사탄 : 한 수 배우고 갑니다.

-운영진 솔리드에 악감정 있냐?

-한솔이 살려!

멸치는 아니지만 빈말로도 덩치가 크다고 말할 수 없는 체격, 검은 무복을 입고 전장을 바라보는 유니크는 그렇게 존재감이 클 수 없었는데 현실의 유니크는 그냥 평범한 남학생에 불과했다.

-아 이건 못보겠다.

-마지막에 유니크를 배치한 참된 뜻을 모르겠느냐.

-알지. 시청률 인질.

유저들이 기대를 접을 무렵, 한솔의 깔끔한 원투 잽이 샌드백을 때렸다.

-올~

-생각보다 좀 치네 ㅋㅋㅋㅋㅋ

-그냥 귀엽죠? ㅋㅋ

-빨리 스파링이나 보여줘라.

하지만 잽에 이어 스트레이트, 미들킥까지 찼을 때 유저들은 연신 물음표를 올렸다.

-생각보다 잘하는데?

-뭔소리임. 개잘하는거임.

-킥복싱 3년했다. 폼은 교과서 급임.

-유니크가 현실 피지컬도 괴물이라고?

-CG일수도 있다. 눈 크게 뜨고 잘 봐.

양 선수가 보호장구를 전부 차고 스파링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자 유니크의 몸이 먼저 움직였다.

바닥을 박차고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는 그 모습에 시청자들로 프로리그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챔피언을 향해 뻗는 주먹, 조금 전에 연습했던 스트레이트였다.

제프의 가드가 올라가는 순간 뻗던 주먹이 원래 자리로 되돌아간다.

챔프의 얼굴에 당혹감이 어린다.

주먹은 페인트 동작, 진짜 목표는 비어있는 옆구리.

챔프를 상대로 페인트를 말끔히 성공한 유니크는 기어이 미들킥을 터트렸고 그와 동시에 모든 커뮤니티도 함께 터져버렸다.

앞으로도 영원히 프로게이머입니다.

찰진 미들킥 소리가 옆구리에서 울릴 때, 제프의 표정이 크게 일그러졌다.

‘일났군.’

제프는 맞는 순간 부상임을 직감했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유니크는 격투기를 배운 적이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방심이라든지 그런 문제가 아니었다.

샌드백을 칠 때부터 유니크의 기세가 예사롭지 않기에 나름 신경을 기울이고 있던 찰나에 당해버렸다.

지금 이 클린히트는 순전히 유니크, 정한솔의 독보적인 재능이었다.

제프는 이를 악물었다.

여기서 그만두자고 하면 챔피언으로서의 꼴이 말이 아니게 된다.

하지만 이 상태에서 무리하게 움직이면 부상이 얼마나 더 심해질지 모르는 상황.

게다가 스파링을 계속한다고 해서 더 험한 꼴을 겪지 않는단 보장도 없었다. 정한솔, 실로 무서운 재능이었다.

결국 제프는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이거 스파링은 여기서 멈춰야 할 것 같습니다.”

제프가 거리를 벌리며 물러나자 추가 공격을 준비하던 한솔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자세를 거뒀다.

이렇게 쉽게 챔프가 물러날 거라곤 미처 생각지 못했다.

-뭐야 끝난 거야?

-S.솔리드만 너무 싱거운 거 같은데

시청자들은 어설픈 결말에 불만을 품었지만 이내 제프의 입이 다시 열리자 언제 그랬냐는 듯 방송에 집중했다.

“아무래도 갈비 쪽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아서요. 하하···.”

“예?”

부상으로 스파링을 중단한다는 이야기에 시청자들은 깜짝 놀랐다.

간단한 스파링이라곤 하지만 프로게이머가 실제 프로격투기 챔피언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것이다.

-????????????

-이거 진짜야? 조작 아니야?

-아무 것도 모르네. 제프 페티스가 누군줄 알고 조작함;;

-제프 3개월 뒤에 챔프 방어전해야되는데 저거 ㄹㅇ이면 큰일인데.

-이쯤 되면 유니크 정체가 궁금하다. 인간맞음?

-프로게이머가 격투기 챔피언을 이겼다고?

화면 속에선 비상시를 위해 대기하고 있던 의사가 제프를 봐주고 있었다.

자세한 건 검진을 해봐야 알겠지만 미세골절이 의심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ㅁㅊ;

-현실에서 용의 충격 때려버렸네;

-이게 말이 되냐고. ㅋㅋ

-제프 이거 방송 그대로 나간거 보면 빡치겠는데?

딱히 운영측에서 악의적인 편집을 한 건 없었다.

있는 사실 그대로를 내보낸 것뿐이지만 챔피언인 제프는 손해 볼 수밖에 없는 그림이었다.

이런 상황은 처음이었는지 얼떨떨하게 서있던 MC는 싸인을 받고 부랴부랴 마무리 각을 잡았다.

“지금까지 스폐셜 비하인드 영상이었습니다. 시청해주신 여러분,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이게 뭐야 ㅋㅋㅋㅋㅋㅋㅋ

-급방종 지렸다.

-근데 유니크는 진짜 탈인간이네

-굳이 프로게이머 안 해도 됐다는 거 아냐.

-운으로 공격 한 번 맞춘 거 가지고 뭔 그리 호들갑들을 떠시나.

-운이라고? 니가 제프랑 붙으면 운으로 한 대라도 때릴 수 있을거 같음?

스페셜 비하인드 영상 공개 이후 출연자들에 관한 반응은 아주 뜨거웠다.

특히 유니크, 제프 두 사람에게 관심이 집중됐다.

처음엔 가이아 유저들 안에서만 도는 찻잔 속의 태풍이었지만 한솔이 제프에게 일격을 먹이는 영상이 양산되더니 온갖 커뮤니티로 퍼지기 시작했다.

평소 스포츠 이야기에 관심 있는 남자면 유니크란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조회수 냄새를 맡은 기자들은 ‘AFC챔피언, 프로게이머에게 망신을 당하다?’ 등의 자극적인 제목을 달아 기사를 쏟아냈다.

이런 기사가 대형 포털 사이트 스포츠란을 도배하기 시작했다.

“프로게이머가 격투기 선수를 이겼다네?”

“그냥 선수도 아니고 챔피언이요. 챔피언.”

남자들이 모이는 곳이면 꼭 한 번쯤은 한솔과 제프의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어떻게 프로게이머가 격투기 선수를 이길 수 있지?”

대중이 흔히 떠올리는 프로게이머의 이미지는 왜소한 체격을 지닌, 운동과는 거리가 아주 먼 부류다.

“격투기 프로 선수라는 것도 생각보다 별거 아니네.”

“그런가?”

이런 대중의 반응에 AFC측은 잔뜩 열이 받았는데 설상가상, 제프의 부상이 간과할 수 없는 정도라 3개월 뒤에 잡혀있던 경기를 치를 수 없단 보고가 올라왔다.

“그 자식은 몸 관리를 대체 어떻게 하는 거야!”

AFC단체를 이끄는 수장, 짐 로스는 얼굴이 벌게져서 노기를 드러냈다.

3차 방어전을 치르는 동안 화끈한 KO승으로 한창 주가를 올리던 챔피언이 이벤트 활동을 하다 변을 당했다.

차라리 훈련중에 부상을 당했다면 이만큼 열이 받진 않았을 텐데 프로게이머 따윌 상대하다 골절을 당했다고 하니 그로선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유니크란 녀석에 관한 정보, 모조리 가져와. 작은 단서 하나 빠트리지 말고 전부!”

이대로 있다간 제프뿐만 아니라 다른 선수들까지 싸잡아서 병신이 될 판이다.

짐 로스는 직원들에게 대책 마련을 지시하는 한편 유니크가 어떤 녀석인지 직접 확인에 나섰다.

제일 먼저 본 건 조회수가 실시간으로 가파르게 치솟는 문제의 영상이었다.

가드를 올리는 제프의 얼굴을 보자마자 짜증이 확 올라왔지만 이내 그의 표정은 더없이 진지해졌다.

“유니크···.”

검지로 책상을 두드리며 영상을 몇 번이고 돌려볼 때 하나둘 요구한 자료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격투게임 가이아의 제왕, 킹오브몬스터라 불리는 유니크의 활약상이 담겨있는 자료였다.

게임 속에서 전투를 치르는 유니크의 모습은 가히 환상적이었다.

비록 게임이기에 가능한 움직임이라곤 하지만 영상을 돌려본 그는 알 수 있었다.

‘스타가 될 자질을 타고난 녀석이야.’

나이가 어리다고 무시할 게 아니었다.

극히 드물지만 AFC엔 스무 살이 되기 전 챔프 업적을 달성한 선수도 있었다.

게임 영상 다음에 그가 관심 있게 본 건 유니크의 인터뷰 영상이었다.

말주변도 나쁘지 않았다.

격투기 선수로서 팬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우선 실력이 중요하지만 그 외의 요소도 무시할 수 없다.

실력이 같다면 착한 이미지보단 적절히 상대를 도발할 줄 아는 트래쉬 토커쪽이 훨씬 인기가 높았다.

물론 트래쉬 토크를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어떤 이들은 인기를 위해 나쁜 선수를 흉내 내곤 하지만 팬들은 귀신같이 어색한 연기를 알아차린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으면 대번에 티가 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삼십 분 가량 메일과 영상을 살피던 짐 로스는 전화기 버튼을 눌러 비서실을 연결했다.

“홍보팀이랑 프런트 올라오라고 해.”

***

“허잇!”

“흐윽!”

스페셜 비하인드 영상 방영 이후, S.솔리드 숙소엔 기이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니들 뭐해.”

“보면 모르냐. 후우.”

“운동. 헛. 하잖아.”

평소에 체력단련이라곤 담을 쌓고 살던 녀석들이 고강도 트레이닝을 시작했다.

곧 숨넘어갈 기세로 아주 열심이었다.

“무리하지 말고 차근차근해야지. 그러다 다쳐.”

“걱정 안 해도 되거든?”

“혼자만 꿀 빨려고 말이야···헉.”

말도 안 되는 이벤트를 바로 옆에서 지켜본 친구들은 강도 높은 체력 훈련이 게임을 잘하는 비결 중 하나라는 결론을 내렸다.

물론 아주 틀린 건 아니지만 근력 훈련보단 격투기나 검술처럼 반사신경을 단련할 수 있는 훈련이 훨씬 도움이 됐다.

조언을 좀 해줘야 하나?

S.솔리드에 평생 있을 것도 아닌지라 팀 운영에 너무 신경 쓰지 말자는 주의였는데 구슬땀을 흘리는 녀석들을 보고 있노라니 조금 안쓰럽게 느껴졌다.

이들은 지금 효율이 나쁜 훈련을 하고 있었다.

매주 격투기 트레이닝 시간을 도입하자고 의견을 건의하려는데 코치가 나를 찾는 소리가 들렸다.

제법 급한 목소리였다.

인터넷이 온통 시끄러운 걸 빼면 더 일어날 일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조금 전에 올라온 영상이야.”

코치는 조금 심각한 표정으로 내게 태블릿을 건넸다.

태블릿에 떠오른 건 AFC 수장, 짐 로스의 개인 SNS에 올라온 영상이었다.

양복을 빼입은 짐은 능숙한 언변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AFC를 사랑해주시는 전세계 팬 여러분. 짐 로스입니다. 최근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화제의 영상을 보게 됐습니다. 많은 분들이 놀라셨을 거로 생각합니다. 자칫 AFC의 명성이 크게 훼손될 수도 있는 일이죠. 하지만 저는 다른 관점에서 이번 일을 바라봤습니다. 이건 결코 당사자인 제프나 열심히 훈련중인 우리 선수의 문제가 아니란 사실을 먼저 말씀드립니다.”

무슨 얘길 하려고 이렇게 뜸을 들이지.

설마 내가 문제란 건가?

“이번 일은 불행한 사고였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제프 페티스는 3개월 뒤에 4차 챔피언 방어전이 예정돼 있었죠. 훈련에 박차를 가하던 그에겐 안 좋은 일이지만 이번엔 운이 너무 없었다고 봐야겠죠. 프로게이머로 알려진 유니크는 챔피언의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의 잠재력을 지닌 다이아몬드 원석이었습니다.”

“다이아몬드?”

“립서비스 좀 할 줄 아는 양반인가?”

“한솔이가 가이아에선 슈퍼다이아몬드이긴 한데···.”

어느새 주변으로 다가온 팀원들은 함께 영상을 보며 저마다 의견을 내놓았다.

“AFC에선 논의 끝에 대형 유망주를 영입하기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유니크 선수, 우린 당신을 받아들일 준비가 됐습니다. 이 영상을 본다면 주저하지 말고 연락하세요.”

영입? 날 영입하겠다고?

이번 일로 AFC의 체면이 깎인 터라 내게 악감정을 품진 않았을까 생각하던 차에 터져 나온 영입 발언.

나만큼이나 동료들도 놀란 눈치였다.

“가이아가 잘 나가는 게임이라곤 해도 스포츠적 측면에서 아직 AFC보다 훨씬 작은 곳입니다. 당신의 재능을 다 받아줄 수 있는 장소가 아니죠. 하지만 여기선 당신이 원하는 것들, 부와 명예, 모든 걸 손에 쥘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영상을 보고 있다면 연락해주시기 바랍니다.”

SNS를 통한 공개 러브콜, 짐 로스를 통해 풀린 영상의 조회수는 이미 가파른 상승을 거듭 중이었다.

“한솔아. 설마 이적하는 거 아니지?”

“내가 이적을 왜 해.”

“AFC 선수 수입이 얼만 줄 아세요? 컨텐더급 선수는 경기 한 번에 못해도 500만 달러는···.”

“다들 조용히 해! 한솔이 너는 잠깐 얘기 좀 하자.”

팀원들을 향해 눈을 부라린 코치는 나를 데리고 감독실로 향했다.

커피를 홀짝이고 있던 감독은 우울해 뵈는 얼굴로 말했다.

“AFC에서 정식으로 만남을 요청했다. 계약에서 발생하는 비용은 전부 자기네들이 대겠다고 자신만만하더구나. 이런 경우엔 선수 개인 의사가 제일 중요하니까.”

낯빛이 안 좋은 걸 보니 내가 떠날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대체 그렇게 생각한 이유가 뭐야?

“감독님.”

“어, 어 그래.”

“저, 팀 떠날 생각 없는데요.”

“정말이냐?”

“코치님도 감독님도 제가 AFC로 갈 거라고 생각하셨어요? 저는 오히려 그 이유가 더 궁금한데요.”

다들 머쓱한 표정을 짓는다.

“양쪽 무대가 워낙 규모 차이가 나기도 하고···걸린 액수가 다르잖냐. 네가 계속 팀에 남아있겠다고 해서 천만다행이지만 만약 AFC로 갔다면 엄청난 돈을 벌어들일 거다.”

“제프 페티스에 대해 알아보니까 보통 선수가 아니더라. 무패의 챔피언이라 스타성도 장난 아니야. 이벤트였다곤 해도 너는 그런 선수를 이긴 거야. AFC에서도 분명 성공할걸?”

프로는 돈으로 말한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수입이 중요한 가치이긴 하다.

그러나 나는 돈보다 만족도를 더 우선시하는 인간이다.

먹고살 만한 밑바탕은 충분히 갖춰두기도 했고.

게다가 가이아는 이제 막 떠오르는 별 아닌가.

앞으로 시장이 얼마나 커질지, 그 모습을 직접 지켜본 나를 제외하면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5년 내로 가이아의 시장 규모가 AFC를 압도하게 될 거란 사실을 나는 굳이 말하지 않았다.

“돈이 전부는 아니죠. 그건 그렇고 감독님, 코치님까지 그렇게 생각하실 정도면 팬들도 걱정을 많이 하겠는데요.”

“커뮤니티는 지금 난리도 아니야.”

슬쩍 반응을 살펴보니 유니크 떠나면 더는 S.솔리드 응원을 하지 않겠단 글부터 이적하면 인생을 저주하겠단 글까지 다양한 반응이 보였다.

“제가 빨리 답을 해야겠네요.”

“어떻게 하려고? 우리도 SNS로 답장 준비할까? 공식계정에 올리면 되니까.”

“개인 방송을 열까 하는데요. 영상은 나중에 녹화본 클립따서 업로드 하면 될테고요.”

“되고말고.”

내 의견에 따라 일사천리로 세팅이 진행됐다.

벽에 의자를 하나 두고 앉은 나를 카메라가 잡는다.

왠지 어색한데. 게임 안에서 열 걸 그랬나?

“셋 세고 들어갈게. 셋, 둘, 하나. 카메라 ON.”

***

안 그래도 뜨겁던 게시판은 짐 로스의 영상 이후 잿더미로 변했다.

-유니크 진짜 이적하면 가이아 어떻게 됨?

-반토막 날 듯.

-닥쳐. 우리 형 아무데도 안 가.

-제프 페티스 대전료 얼만지 봤음? 천만 달러임. 시합 한 번에 그 큰돈을 벌 수 있는데 뭐하러 게임함? 게임은 취미로 해도 되지.

-차라리 이적했음 좋겠다. 그래야 팀 간 밸런스가 맞지

-부모님 안부 묻기전에 모두 닥쳐!

-유니크는 아무데도 안감. 내일 우리랑 글로리아 퀘스트 해줄 거임 ㅠ

간혹 유니크 이적을 옹호하는 글이 올라오면 무수한 비추천이 쏟아졌다. 거의 S.솔리드 팬들이었다.

욕설과 함께 분노의 채팅을 쏟아내고 있던 그때, 유니크의 방송 시작 알람을 받은 인원이 일제히 외쳤다.

-유니크 방송 떴다!

-ㄹㅇ이네.

순식간에 수만 명에 달하는 유동인원이 N캐스트 문턱을 넘었다.

앞다투어 방에 들어가자 사복차림의 유니크가 나타났다.

-솔하~!

-솔하!

“어서오세요. 방송켠지 30초도 안됐는데 엄청 많이 오시네.”

[UNIQUE. Live 8915명]

“지금 시각이···열한 시를 조금 넘었네요. 조금 늦은 시간인데.”

-ㄴㄴㄴㄴㄴ괜찮음

-우린 신경 안 써도 됨.

-이적하는거 아니지?

-빨리 안 간다고 해줘.

[유니크팬클럽회장 님이 200달러를 후원!]

-가지마세요 제발 ㅠㅠ

-사복차림 유니크 위화감 개쩜. 갑자기 교룡뇌조 쓸거 가틈;

“여러분 게임이 이렇게나 위험합니다. 교룡뇌조 당연히 못쓰구요. 현실과 게임을 구분하는 사람이 됩시다. 안그럼 큰일나요.”

-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

-용의 충격은 썼자너 ㅋㅋㅋ

“오늘 방송은 정말 짧고 굵게 할 예정입니다. 일단 여러분이 가장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할게요.”

-옙.

-무릎 꿇고 경청하겠습니다. 선생님;

-다들 조용히 해.

-쉿. 유니크님 말하신다.

거꾸로 떨어져 내리는 폭포마냥 채팅이 몰아쳤다.

“늦은 시간에 방송을 켠 이유는요. 다들 아마 아실거라고 생각하지만 AFC 이적 관련한 이야길 하려고요. 오늘 AFC 사장님이 개인 SNS로 제게 러브콜을 보내셨거든요.”

-짐 로스인지 짐 로스트인지 맘에 안듬.

-감히 우리 스타를 넘봐?

-무슨 일 있었음? 방송 켜져서 왔는데 분위기 왜 이럼?

-인터넷 오늘 연결함? 가서 추천글 정독 ㄱㄱ

“아, 모르는 분도 계셨네요. 일단 제 재능을 좋게 보시고 제안을 주신 짐 로스 사장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아, 안 돼!

-가지마!

-헐.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라!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야 한다.

나는 들끓기 시작한 팬들을 진정시켰다.

“제안은 감사하지만 저는 앞으로 쭉 가이아를 할 예정입니다. 제 무대는 여기입니다. 저는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프로게이머입니다.”

-형···.

-ㅠㅠㅠㅠ

-믿고 있었다고!

-난 처음부터 안 갈 줄 알고 있었음.

-근데 왜 눈물이 나지?

-앗아. 유니크 뽕이 차오른다.

[솔리드팬티장수 님이 20달러를 후원!]

-영원히 함께야!

-ㅜㅜㅜㅜㅜㅜㅜㅜ

정말 우는 건 아니겠지만 채팅창은 차오른 눈물로 거의 바다였다.

“저를 비롯한 S.솔리드를 그리고 가이아를 사랑해주시는 모든 팬 여러분께 감사하단 말씀을 드리며 방송을 마칩니다. 편안한 밤 되시기 바랍니다.”

처음에 말한 것처럼 정말 짧고 굵은 방송이었다.

감독과 코치는 잘했다며 어깨를 두드렸고 십분 뒤엔 살려줘서 고맙다는 니콜라이의 전화가 걸려왔다.

이번 해프닝으로 상당히 시달렸던 모양이다.

내가 진짜 자릴 옮겼으면 어떻게 됐을까. 모르긴 몰라도 니콜라이의 자리는 없어지지 않았을까?

폭발하던 게시판은 방송을 기점으로 크게 진정됐고 나와 우리 팀에 관한 좋은 이야기들이 많이 올라왔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내가 사기친단 소린 많이 줄어들 것 같았다.

*

어느새 달려온 기자들이 밤새 양산형 기사를 찍어내는 사이 S.솔리드는 주말을 맞이했다.

약속했던 글로리아 연계 퀘스트의 최종장.

영상의 여파인지 퀘스트를 공유 받기 위해 몰려든 유저의 숫자는 내 예상을 까마득히 넘어섰다.

무려 21만 명.

글로리아 초원을 가득 채운 유저들은 왕국을 노리던 적국의 야욕을 단숨에 박살 냈다.

우리 파티가 플래티넘 퀘스트를 달성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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