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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OS 소설 아닌데요-40화 (40/170)

미래는 변한다 (7)

언뜻 보면 뱀처럼 보이기도 하는 보랏빛 스킬의 이름은 ‘히드라 스피릿’.

내가 저 무서운 스킬을 처음 본 건 프로생활 3년 차였다.

암살클래스 공용인 히드라 스피릿을 손에 넣은 건 당시 VT 스타즈의 간판선수였던 이세준이었다.

6할 후반대 승률을 기록하던 탑급 선수.

이 스킬의 위력이 당시 얼마나 무서웠는지 스킬을 장착한 이세준의 승률은 즉시 20퍼센트 이상 뛰었다.

프로씬에서 6할 후반이면 더 오를 곳이 없는 고승률이다.

그런데도 2할이 더 올랐다.

몸을 오라처럼 두른 아홉 개의 머리는 의지와 동시에 적을 공격하는데 그 궤적이 아주 매서웠다.

아홉 번의 공격 중 단 한 번이라도 물리면 맹독이 전신에 퍼져 체력을 불태우는데 해독 스킬도 독 중첩 횟수가 세 번을 넘어가면 감당이 안 됐다.

근데 왜 이런 괴물 스킬이 벌써 나와?

당시 히드라스피릿은 가이아 스킬 데이터베이스에도 시간이 좀 지나서야 등록된 완전 신규스킬이었다.

앞으로 4년은 더 있어야 나올 스킬이 지금 풀렸다. 그것도 적의 손에.

침을 꼴깍 삼켰다.

히드라스피릿에 반격도 못하고 고꾸라진 프로를 줄 세우면 족히 수백 명을 넘는다.

물론 당시엔 스킬의 주인이 한국 탑급 무도가로 불리던 이세준이었지만 그렇다고 지금 공략이 만만한 건 절대 아니었다.

저 뱀 대가리가 얼마나 무서웠는지 VT스타즈를 제외한 모든 프로팀이 히드라스피릿 스킬을 연구하고 분석했다.

스킬을 공들여 관찰하면 대처방안이란 게 나오기 마련, 위력은 말할 것도 없고 마력 소모비도 적어 무결점의 스킬 같았던 히드라스피릿의 공략은 궤적이었다.

먹이를 노리는 뱀처럼 빠르고 날카로운 궤적을 그리며 날아드는 아홉 머리의 히드라, 히드라스피릿은 항상 같은 궤적으로만 날아들었다.

용의 충격처럼 손이나 발을 이용해 아무렇게나 넣는 게 아니라 유효거리 2미터 이내에서 상대를 정해진 루트로만 물어뜯는 스킬이었다.

스킬이 분석되자 그 즉시 각 팀 딜러와 탱커진은 히드라스피릿 방어연습을 시작했다.

딜러라면 치고 들어오는 히드라 머리를 타이밍에 맞게 쳐내고, 탱커라면 방패까지 써서 막았다.

당시 나는 아크나이트로 서브딜러겸 탱커를 책임지고 있었기에 무던히도 궤적 방어 연습을 해야 했다.

실전에서 3스택 이상 쌓이면 곧장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기에 목표는 2스택 이하로 막기였다.

그렇게 딱 보름을 연습실에 틀어박혀 연습하자 2스택 이하로 방어가 되는 횟수가 늘기 시작했다.

확률은 30%.

당시 이세준의 장비와 스탯을 생각하면 3할 방어조차 어떻게 기록했는지 의문이었다.

아직 한창 성장중인 불스 선수 스펙이 당시의 이세준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다.

심지어 난 지금 무도가라 방패도 없다. 방패로 막던 걸 이제는 주먹으로 다 막아야 한다.

마환지, 항마장. 내가 가진 원거리 스킬을 떠올렸다.

원거리 스킬을 통해 히트 앤드 런이 가능할지 잠시 가늠해봤는데 잊혀진 사원은 그리 넓은 맵이 아니다.

상대도 암살자인 이상 바닥을 깨며 달라붙으려고 들면 얼마든지 거리는 좁힐 수 있었다.

결국 결론은 다 막아내는 것뿐이었다.

“유니크 선수, 갑자기 주춤하는 데요?”

“락사스 선수가 처음 보는 스킬을 두르고 있거든요. 신중하게 접근할 모양입니다.”

신중하게 가자. 스탯은 내 쪽이 우위야.

광채의 신전은 너무 많이 돌아 이제는 지겨울 정도, 상대가 누구든 나보다 스탯 육성을 더 했으리라곤 생각하기 어려웠다.

그 말인즉 같은 스킬을 써도 이쪽의 속도가 더 빠르단 소리다.

저놈은 이세준이 아니다.

내가 급히 방향을 틀어 뒤로 빠지는 바람에 갈피를 못 잡고 머뭇거리는 상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놈도 나만큼이나 당황한 얼굴.

강한 이미지로 머릿속에 남아있던 이세준의 그림자가 빠르게 흩어졌다.

정신차리자.

저놈은 이제 막 첫 시즌을 보내는 풋내기 선수다.

놈은 여전히 나를 두려워하고 있다.

“아, 다시 움직입니다!”

“유니크 선수. 바람처럼 빠릅니다!”

걱정을 덜어내자 해야 할 일이 명확히 보였다.

결정을 내렸으니 신속하게 움직인다.

마환지를 던지며 거리를 좁힌 나는 상대의 영역 안으로 곧장 들어갔다.

히드라 스피릿이 발동하며 아홉 개의 머리를 가진 괴물이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스스스-!

오른쪽 위를 꺾으며 들어오는 1타를 시작으로 나의 손이 번개처럼 움직여 공격을 받아쳤다.

파바바바바밧!

그야말로 전광석화 같은 공방, 히드라의 독니를 용의 충격으로 모조리 쳐낸 난 곧장 교룡뇌조를 이었다.

-와아!

-저게 뭐야.

-방금 제대로 본 사람?

-줌인으로 당겨서 보고 있었는데 모가 몬지 모르겟서;;

-뭔가 지나가긴 했음.

-우리솔;

강렬한 일격에 몸이 무너지기 시작한 락사스는 도무지 상황이 이해가 가질 않는단 표정.

내가 왜 쓰러지고 있지? 마치 그런 얼굴이었다.

적당히 놀라운 퍼포먼스였다면 환호성이 화산처럼 터졌을 텐데 조금 전 공방의 진가를 알아본 사람이 거의 없어서 되려 웅성거리는 분위기가 강했다.

가장 놀란 락사스는 눈만 꿈뻑거렸다.

스킬이 아주 퍼펙트하게 막히리라곤 꿈에도 몰랐겠지.

솔직히 나도 완벽히 자신이 있던 건 아니었는데 의외로 민첩 스탯 차이가 제법 컸는지 막을 만 했다.

이런 무식하게 설계된 스킬은 대부분 하이리턴, 하이리스크를 동반한다.

히드라 스피릿의 경우는 반발작용이 리스크였는데 상대가 공격을 완벽히 막아내면 방출하지 못한 히드라의 독이 시전자의 체내로 퍼진다.

뻣뻣하게 굳어가는 몸으로 내 공격을 받아낼 프로선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건 원래 스킬의 주인이었던 이세준이라도 불가능한 일이다.

퍽하는 소리와 함께 턱이 돌아가는 것으로 락사스의 몸이 완전히 쓰러졌다.

[YOU WIN!!]

“2라운드 종료-! 유니크 선수가 균형추를 다시 맞춥니다!”

“세상에, 여러분! 방금 저 놀라운 플레이를 보셨습니까? 유니크가 락사스 선수의 스킬을 완벽하게 카운터 냈습니다!”

“팬분들도 저도 제대로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숀 해설이 제대로 설명 한 번 해주시죠.”

“이게 어떻게 된 거냐 하면 말이죠. 조금 전 스킬···.”

경기가 끝나자 관중과 중계진의 음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랭크매치에선 이따금 진동이나 소리가 완벽하게 차단이 안 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프로리그는 예외다.

관중의 함성, 해설 등등 선수의 판단 외에 불필요한 정보가 개입될 여지를 주지 않는 것이다.

평소 경기가 끝나면 귀가 떨어질 만큼 커다란 환호가 울리곤 했는데 오늘은 달랐다.

관중들이 환호성 대신 박수를 쳤다.

흔히 있는 일은 아니기에 나는 눈을 깜빡거렸다.

뭔가 실수했나? 싶었는데 이렇게 갑작스레 경기가 끝날 줄 몰랐던 관중들이 박수를 치고 본 것이었다.

-일단 박수 쳐야 될 거 같음;

-대체 어케 이긴건지 모르겠는데 일단 박수;

-방금 뭘 몇 번 쳐냈다는거임?

-내가 그마인데 6번 움직였음

-나도 그마인데 12번 막던데?

-그마는 개나소나 다는 줄 아냐고 ㅋㅋ

무대 아래로 내려가자 코치와 동료들이 손을 번쩍 내민다.

하이파이브를 나눌 때마다 그들이 못 참겠다는 듯 물었다.

“방금 뭐야 대체?”

“손이 파바밧~하니까 락사스 눕던데 마법 썼냐?”

“마법이 아니고 카운터 낸 거야.”

“존! 올라가자.”

신규 스킬을 어떻게 카운터냈는지 간단히 설명하고 있을 때 코치는 존에게 올라갈 것을 주문했다.

이제 우리팀이 낼 수 있는 선수는 존과 제리 뿐, 버서커로 아크위자드를 잡으려면 맵이 잘 나오기만을 바라야 했다.

*

“미친 새끼···.”

“내 말 맞지? 저 새끼 핵이라니까?”

“진짜 핵이야?”

“지오에 문의 넣어야 되는 거 아냐?”

락사스는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고 팀 동료들도 진심으로 분개했다.

해설과 관중도 의외라는 반응을 보인 2라운드 락사스 출전은 사실 철저하게 계산된 수였다.

오늘 락사스는 괴물의 왕이라 불리는 유니크를 잡기 위해 준비한 비장의 수였다.

랭크매치를 돌리던 락사스가 며칠 전 새로운 스킬을 얻었을 때 레드불스의 모든 관계자가 크게 놀랐다.

“이거 완전 개사기 스킬 아냐?”

스킬을 발동한 뒤 적과 거리를 좁히기만 하면 알아서 적을 공격하는 아홉 머리의 히드라.

스킬을 쓰는데 준비가 따로 필요한 것도 아니고 스킬을 유지하는데 마력이 많이 드는 것도 아니었다.

유일한 단점이라면 궤적이 일정하다는 것뿐인데 그마저도 단점이라 보기 애매했다.

아홉 개의 히드라가 쏟아내는 공격은 정말 엄청나게 빨랐다.

궤적이 일정하다는 걸 알면서도 막는 게 불가능할 정도였다.

S.솔리드의 피닉스와 함께 최고의 탱커로 꼽히는 팀 리더, 비프로스트도 방어 연습에 매진했지만 2스택 이하로 공격을 막기 버거워했다.

수많은 시뮬레이션과 연습 경기를 통해 레드불스는 락사스가 의심할 여지 없는 1승 카드가 됐음을 깨달았다.

“코치님. 이거라면 유니크 잡을 수 있겠죠?”

“이건 누구도 못 막아.”

S.솔리드와의 경기를 앞둔 저녁, 락사스는 스킬을 점검하며 코치와 대화를 나눴다.

유니크를 잡을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였다.

유니크, 데뷔하기 전부터 괴물의 왕이라 불리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진 적이 없는 리그의 지배자.

미쳤다는 말로도 설명이 부족한 파괴력을 지닌 선수지만 이번엔 놈도 어쩔 수 없으리라.

항상 같은 궤적으로 온다는 걸 알고 있는 팀 선수들조차 제대로 막지 못했다.

단 3스택, 아니 2스택으로도 충분했다.

아홉 개의 독니 중 두 번만 박히면 괴물의 왕은 신화 속 마수의 독에 쓰러지리라.

“솔직히 나도 여러 게임 전전하며 많은 선수들을 봤지만 그런 놈은 처음이다. 유니크는 그냥 가이아를 하라고 태어난 놈이야. 워낙 엄청난 녀석이라 스킬에 대한 대처법을 만들어낼 수도 있지. 경험이 쌓인다면 말이야.”

언젠가 히드라 스피릿 대처법을 유니크가 들고 나올 수도 있다. 녀석은 하늘이 내린 재능을 가진 선수니까.

하지만 적어도 이번 경기는 아니었다.

선수들이 수백 번 이상 연습했음에도 방어확률 2할에 불과한 스킬, 그마저도 깔끔하게 막지 못하고 2스택을 허용한다는 전제하에서다.

이런 스킬을 처음 본 순간 막아낸다고?

가이아의 신이 아닌 이상 불가능했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놈은 락사스의 스킬을 완벽히 카운터 해냈다.

이건 정말이지 어이없음을 넘어 개똥 같은 일이었다.

이를 꽉 깨물고 있던 코치가 소리쳤다.

“얘들아! 집중해! 아직 게임 안 끝났다. 두 번만 이기면 5라운드 까지 안가고 마무리 지을 수 있어.”

분하긴 코치도 마찬가지지만 지금 당장 그의 역할은 어수선한 분위기를 다잡고 경기를 마무리 짓는 일.

코치의 말에 불스 선수들은 입술을 깨물고 눈을 부릅떴다.

지금은 화를 가라앉히고 경기에 집중해야 했다.

“저 비겁한 놈들. 오늘 한 번 잡아보자!”

“예!”

*

내가 락사스를 잡아내며 맞춘 승부의 균형추는 3라운드가 끝났을 때 다시 불스 쪽으로 기울었다.

3라운드, 불스는 우리의 예상과 달리 엔트리를 또 한 번 꼬았다.

둘 남은 아크위자드 중 하나가 나올 거로 생각했는데 정작 3라운드에 나온 건 비프로스트였다.

버서커와 실드나이트의 대결, 창과 방패의 대결이었다.

양쪽 선수를 보는 순간 브라이언 코치는 이마를 때리더니 한숨과 함께 얼굴을 쓸었다.

비프로스트는 리그 S급으로 통하는 최상위 탱커, 클래스가 방어에 특화된 면이 강해서 그렇지 같은 근접계 클래스와 일대일은 생각보다 훨씬 할만한 게 실드나이트다.

모두의 예상대로 게임은 처음부터 끝까지 비프로스트 쪽으로 흘렀다.

공격을 아무리 퍼부어도 상대의 방패를 넘을 수 없었고 결국 존의 패배가 결정됐다.

그렇게 시작된 개인전 마지막 라운드, 제리는 병사들이 창을 들고 뛰어다니는 오림의 성채에서 적 아크위자드를 맞이해 격렬히 마법을 난사했다.

내 예상대로 오늘 불스는 마법 저항력에 상당한 신경을 쓴 상태임이 틀림없었다.

평소보다 제리의 딜이 줄어든 게 눈에 보였다.

하지만 그 정도론 제리를 막을 수 없었다.

필드 고정팟 한 자리를 차지한 제리의 장비는 리그 평균을 뛰어넘는 레벨.

상대가 마법 저항을 신경 쓴 만큼 이쪽은 마법 자체의 공격력이 강했다.

게다가 몸놀림이 좋은 제리는 성채 병사들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피하는데 반해 불스쪽 아크위자드는 쏟아지는 창날에 넋이 나가기 직전이었다.

이렇게 되면 5라운드다.

연장전으로 갈 것 같은 예감에 나는 품에서 미개봉 스킬 박스를 하나 꺼내 만지작거렸다.

내 옆에서 경기를 관전 중이던 케빈이 흥미를 보이며 물었다.

“그거 뭐야?”

“이거.”

아주 좋은 거.

얼마 전 겪었던 스나이퍼 조합도 그렇고 오늘은 히드라스피릿까지 나타났다.

내가 알던 미래, 흐름은 이미 많이 달라졌다.

내가 너무 강한 나머지 가이아가 스스로 밸런스를 맞추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어찌 됐건 모든 스킬과 밸런스는 가이아의 슈퍼 AI에 의해 조절되니 말이다.

진실이 뭔진 몰라도 가만히 당해줄 순 없지.

정규 게임때 엔트리를 제출하면 클래스를 변경할 순 없지만 본인 게임이 진행중인 게 아니라면 장비세팅, 스킬세팅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나는 만지작거리던 스킬박스를 개봉했다.

밸런스를 고려해 한동안 꽁꽁 숨겨뒀던 스킬, 전설급 혼돈 스킬 여신의 은총이 스킬란에 이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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