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는 변한다 (5)
공기를 가르고 뻗어 나간 주먹은 바람벽을 뚫고 날아들어 팡 소릴 울렸다.
적중하지 않았지만 주먹 끝 풍압만으로도 체력이 미세하게 떨어지는 걸 볼 수 있었다.
“와아···와!”
닉네임 헤븐메이커, 제레미는 내 주먹을 힘겹게 피해내며 연신 와 소리 내기에 바빴다. 이렇게 빠른 공방을 해본 적이 없어 버거워하는 모습이다.
그럼에도 이 녀석 웃고 있었다.
초근접거리 공방을 주고받는 게 너무나 즐거워 못 견디겠단 얼굴이다.
나도 덩달아 기분이 즐거워졌다.
풀컨택트 공방을 즐길 줄 아는 친구와 공방을 주고받는 플레이는 언제 해도 짜릿하다.
원래는 원 패턴으로 혼쭐을 내주려고 했다.
상체 or 하체의 단순한 패턴이지만 아직 제대로 막아낸 선수가 없는 공격이다.
그러나 오늘 찾아온, 아직 프로팀 입단조차 하지 않은 꼬마의 원패턴 대응은 상상이상이었다.
“이야.”
“저걸 막아.”
“운빨이지. 운빨.”
처음 내 로우킥을 막았을 때, 팀원들은 운이 좋다며 감탄했다. 무수한 프로를 고꾸라트린 기가 막힌 하단 공격이다.
그러다 다시 한 번 파고드는 주먹을 받아내며 로우킥을 피했을 땐 다들 표정이 묘했다.
“설마···아니지?”
“에이. 당연하지.”
“한솔아! 봐주지 마라! 우리도 체면이 있다!”
그렇게 공격을 연거푸 다섯 번을 막자 팀원들의 얼굴은 귀신이라도 본 듯 굳어있었다.
“···제기랄.”
명백하게 보고 막았음을 깨달은 애덤은 신참의 놀라운 재능에 슬픈 욕을 하고 말았다.
간신히 남아있던 주전 딜러 자리에 대한 희망이 훨훨 날아가는 순간이었다.
선수들 실력이 꾸준히 상향되고 있었기에 언젠가 원패턴만으로 이기지 못하는 순간이 오리라곤 생각했다.
하지만 그 첫 번째가 아마추어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도 궁금한 건 마찬가지기에 잠시 멈추고 제레미에게 물었다.
“어떻게 막았는지 궁금한데. 혹시 내 공격이 보여?”
“음···아니요. 형이 뻗는 주먹이나 발차기는 솔직히 보고 못 막겠어요. 다른 사람보다 살짝 더 빠르다고 해야 하나. 대신에 어깨가 열려요.”
제레미의 대답에 난 진심으로 놀랐다.
원패턴을 넣을 때 어깨를 아주 살짝 여는 건 내가 일부러 심어둔 페이크였다.
어깨를 조금 열면 내가 교룡뇌조를 상체로 꽂을 테니 상단 잘 막으라는 힌트였다.
실전의 긴장감 때문에 눈이 흐려졌는지 아니면 상대 분석팀이 월급도둑인지 몰라도 이제껏 힌트에 반응한 선수는 없었다.
그런데 이제 겨우 열여섯 꼬마 친구가 처음으로 나의 힌트를 읽어냈다.
“그럼 보고 막은 건 아니네?”
“그래도 주먹이 날아오기 전에 어깨가 열리는 건 보이니까···.”
“그게 거짓말이면? 내가 너 속이려고 일부러 그런 거면?”
“···정말이요?”
내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제레미는 도저히 못 믿겠단 표정이다.
귀를 쫑긋거리며 듣고 있던 동료들도 저게 뭔 개소리냐는 얼굴이다. 그만큼 현실감 없는 소리였다.
눈으로 쫓기도 힘든 그 찰나의 순간에 페이크를 넣어가며 상대를 교란하는 것은 현재 레벨에서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경지였다.
“정말인지 확인해 보면 되지.”
다시 충분히 거리를 벌리고 게임을 재개했다.
제레미는 조금 전 대화를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부릅뜨고 달려들었다.
양쪽의 교룡뇌조가 부딪치며 푸른 불꽃이 튈 때 제레미의 시선은 온전히 내 어깨에 집중된 상태였다.
절대 페이크에 걸리지 않겠다는 의지가 엿보일 정도.
나는 슬며시 어깨를 열었다.
그리고선 그대로 드래곤 테일로 하단을 긁었다.
“아!”
정말로 페이크였단 사실에 놀라는 것도 잠시, 나는 빠른 연타로 혼을 빼놨다.
어깨를 여는게 페이크였는지 아닌지 판단을 할 수 없도록, 생각이 마비될 정도의 빠른 연계였다.
눈빛만 봐도 어지러워 하는 게 보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어깨만 집중하면 패턴을 가늠할 수 있었는데 자신이 알던 단서가 쓸모없단 사실을 알게 돼 패닉에 빠진 것이다.
고속 공방전에서 머릿속이 어지러우면 목을 빼고 나 죽여주시오 하는 거나 마찬가지, 순식간에 체력이 빠진 제레미는 무자비한 난타의 폭풍 속으로 잠겨 들어갔다.
센스가 좋아서 내 공격을 은연중에 가드하려 들었는데 덕분에 한 대 때려서 끝낼 걸 두 대, 세 대 때려야 했다.
얼마나 찰지게 때렸는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제레미를 견제하던 동료들이 벌렁 누운 녀석을 일으켜 세울 정도였다.
“난 솔직히 조금 봐줄 줄 알았는데.”
“나도. 근데 우리랑 할 때보다 더 심하네.”
니들이 괜히 못살게 굴까봐 그런거다. 어찌 됐건 당초 목적은 달성한 듯했다.
약간 넋이 나간 듯 보이는 제레미의 어깨를 팀원들이 두들기며 환영의 인사를 건넸다.
“S.솔리드에 온 걸 환영한다. 꼬마야!”
“감독님. 이 녀석이 우리 열두 번째 맞죠?
“어, 어어. 그렇지.”
“다른 참가자들도 고생했습니다. 안녕히들 돌아가세요!”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는 참가자들을 끝으로 팀원 선발전이 막을 내렸다.
***
-야 소식 들었어? 벌써 사이클론 대타 구했다함
-벌써? 누구?
-무도가라는데 열여섯이래
-그럼 그냥 키우려고 뽑아둔 건가?
-솔직히 개 뻘짓아님? 2군이나 굴리지 무슨 유망주를 1군에 넣어. 내가 더 잘하겠다.
-그건 아니고;;
나는 간편하게 허기를 채울 수 있는 빵을 입에 물고 가이아 커뮤니티를 정독했다.
프로중에선 커뮤니티를 보는 선수와 보지 않는 선수로 갈리는데 난 기사를 빠짐없이 읽는 쪽이었다.
선수가 커뮤니티를 전혀 둘러보지 않는 경우는 악플이 주된 이유다. 거 경기 드럽게 못하네. 오늘 똥만 온종일 싸더라 같은 댓글에 영향을 받는 친구들은 이런 거 보면 안 된다.
날때부터 멘탈이 약한 친구들은 그런식으로 외부 의견을 원천 차단하는 편이 도움이 된다.
물론 나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악플도 덤덤하게 넘기는 성격이다보니 모든 가이아 기사를 편히 읽을 수 있었다.
게다가 전생 이후론 욕을 먹어본 적도 거의 없었다.
유니크를 게임 실력으로 까는 사람은 없었으니까.
가끔 악플을 다는 종자들은 타팀 팬들인데 응원팀 승리에 가장 큰 걸림돌이 나였기에 그 정돈 애교로 넘어갈 수 있었다.
그나저나 대체 정보가 어디서 샜을까.
이번에 왔던 참가자들도 내가 그랬던 것처럼 비밀유지조항이 담긴 서류에 싸인을 받았다고 했다.
참가자 중 한 명이 계약서 무서운 줄 모르고 입을 놀렸나?
그리 생각하며 슬쩍 모니터를 쳐다보니 제레미가 마법을 피해 땅을 구르는 모습이 보였다.
제레미의 재능은 분명 뛰어나지만 아직 원석 상태에 가까웠다.
팀에선 스탯과 장비, 스킬의 밸런스를 일정 레벨 이상 끌어올리기 전엔 엔트리에 올리지 않을 거라 말했고 제레미는 연일 전력으로 훈련에 임했다.
원석이라고 평하긴 했지만 지금도 웬만한 프로선수와 충분히 겨룰 수 있는 레벨, 조율 작업이 끝나면 제레미는 분명 1승 카드 이상의 힘을 지닐 터였다.
-천재 유망주래도 당장 즉시 전력감은 아닐걸?
-그건 그럼
-당장 마스터리그 이상에 어린 친구들 몇 명 보이는데 솔직히 프로레벨은 아님
-님들 레이저 앎? 그 친구는 진짜 프로레벨임;;
아니 여기서 또 레이저 얘기가?
슬슬 녀석의 진가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일반인들의 입에 오르내릴 정도면 각 팀 전력분석원, 스카우트들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한국으로 복귀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대략 일 년 반, 그사이 다른 곳으로 새지 않도록 나는 정성을 담아 안부 메시지를 전송했다. ^^ 웃는 이모티콘을 붙여가며 말이다.
-그러니까 사이클론 빠진 S.솔리드는 해볼 만한 상대라니까?
메시지를 쓰는 동안에도 우리 팀 떡밥은 식을 줄을 몰랐다. 온종일 팀 성적 얘기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이 게시판에만 만 명 정돈 되리라.
-아니 그래서 누가 이길 수 있는데
-베팅확률도 안보세요? 역으로 가면 10배도 넘는구만
-그럼 님 돈 걸어보실?
-도박충 out
-S.솔리드를 무릎꿇릴 팀은 바로 레드불스를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곁눈질로 대진표를 보니 마침 오늘 상대가 레드불스와의 3차전이었다.
나는 치열하게 다툼을 벌이는 게시판에 댓글을 남겼다. 그러자 뒤를 이어 나와 똑같은 댓글들이 구호처럼 이어졌다.
-어우솔
-어우솔
-어우솔
어우솔, 어차피 우승은 솔리드란 뜻이었다.
***
S.솔리드와의 3차전, 프로리그 28번째 경기를 앞둔 레드불스의 대기실은 후끈 달아올라 있었다.
선수들을 독려하고 분위기를 열심히 띄우는 것은 코치였다.
“자! 드디어 오늘이 왔다. 오늘이 너희가 S.솔리드를 무릎 꿇리는 날이다.”
최근 솔리드의 기세는 사이클론의 탈퇴로 주춤한 게 사실이었다.
지금껏 S.솔리드의 주요 승리 공식은 5라운드였다.
5라운드는 일단 3인분 가까이 해내는 유니크가 날뛰는 바람에 도저히 답이 안 나왔다.
그러나 5라운드로 가려면 1에서 4까지 이어지는 개인 라운드 중 최소 2승을 거둬야 한다.
유니크가 아무리 미친 기량을 보여도 혼자 두 게임을 뛸 수 없으니 최소 1승은 다른 팀원이 해줘야 하는데 지금까진 사이클론이 그 역할의 중심을 맡았다.
만약 사이클론이 무너진다 해도 2차 안전장치인 아그니가 버티고 있기에 이전의 S.솔리드는 토나올 정도로 단단한 팀이었다.
사이클론과 아그니가 같은 날 2패를 기록하는 일은 지금껏 단 한 번도 없었다.
만약 그랬으면 유니크가 너프로 인해 파업하기 전에도 한 번쯤은 무릎을 꿇렸을 것이다.
“자신 있지!”
“예!”
불스 선수들의 목소리는 우렁차기 그지없었다.
이렇게 기합이 잔뜩 들어간 건 팀차원의 전폭적인 투자가 있던 덕이다.
다른 팀도 마찬가지겠지만 오늘 불스의 전략은 제리를 꺾자였다.
유니크전을 제외한 개인라운드 3:1을 만들어 최종 라운드 전에 결착을 짓는 것.
그것을 위해 지금 불스 선수들 몸엔 마법방어에 탁월하다 알려진 고가의 장비, 스킬을 왕창 사들였다.
대(對) 마법사전 만큼은 반드시 잡아내겠단 의지가 돋보였다.
“가자!”
“불스!”
“이기자!”
“불스!”
“GO!”
양 팀 선수들이 콜로세움에 오르자 엄청난 환호가 쏟아졌다. 응원이 전부 S.솔리드를 향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레드불스는 팬층이 두터워 솔리드와 경기하는 날이면 응원으로 밀리지 않았다.
보통 한 팀이 압도적인 독주를 펼치면 시장의 팬 파이가 붕괴하는 경우가 생기곤 하는데 레드불스는 팬 친화적인 방송시스템 안착으로 다수의 팬을 확보했다.
아레나에 모인 6만 명이 동시에 지르는 함성은 흡사 전쟁터를 연상케 한다. 이 환호의 중심부에 서면 저도 모르게 몸이 오싹오싹해진다.
그리고 힘겹게 이겼을 때, 극적인 승리를 맛볼 때 팬들은 선수와 함께 기쁨을 나눈다.
이 느낌은 실제로 겪어보지 않으면 설명하기 힘들 정도의 중독성이 있다.
기량이 떨어지고, 퇴물 됐다고 욕을 먹어도 어떻게든 무대에 남는 이유 중 하나다.
“레드불스팀이 입장하고 있습니다.”
순위가 낮은 팀이 먼저 입장하는 게 원칙이기에 레드불스가 먼저 무대에 올랐다.
“오늘 엔트리를 소개합니다. 레드불스의 심장! 강철의 방패, 비프로스트! 아크나이트 소인! ···.”
한 명 한 명 선수의 이름이 불릴 때마다 경기장이 무너져라 환호성이 울린다.
경기장 수용인원에 한계가 있으니 더 큰 함성은 힘들겠지 싶은데도 S.솔리드의 차례가 되자 귀를 닫고 싶게 만드는, 족히 두 배는 큰 함성이 터졌다.
‘왔구나.’
“S.솔리드의 기둥! 의심할 여지 없는 가이아 프로리그의 지배자! 단 한 번도 진 적 없는 무패의 무도가~! 팀을 승리로 이끄는 행운의 여신! 아니 전신! 유니크 선수입니다!”
중계진도 유니크가 등장할땐 왠지 모르게 멘트가 길어진다.
S.솔리드에겐 대체 할 수 없는 에이스, 다른 팀에겐 재앙을 선사하는 독보적인 레벨의 선수.
레드불스 팀원들은 눈에 힘을 잔뜩 주고 유니크를 노려봤다. 시선으로 구멍을 낼 수 있으면 유니크는 지금쯤 전신에 구멍이 송송 뚫려 응급실행이었다.
‘오늘따라 따갑네.’
언제는 안 그런 날이 있는가 하면 그건 아니지만 오늘 불스 선수들 눈에선 레이저가 쏟아지는 중이었다.
그러든지 말든지 한솔은 손을 흔들어 팬들의 환호에 답했다.
-오빠 나죽어!
-나죽어!
-그냥 죽어!
-우.승.마.렵.다!
감당이 안 될 정도로 빠른 채팅의 물결.
특이하게도 가이아 관전 시스템은 육성 응원과 채팅 응원을 동시에 지원했다.
처음엔 관중들도 이 방식이 어색했지만 곧 재미를 느끼고 빠르게 적응했다.
옆자리에 붙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관중석 어디에서나 사람들의 의견을 볼 수 있고 멀리 떨어진 상대 팀 응원단을 채팅으로 두들겨 패는 것도 묘미였다.
“오늘의 두 번째 매치! 레드불스와 S.솔리드의 3차전 경기를 시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