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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OS 소설 아닌데요-37화 (37/170)

미래는 변한다 (4)

벼락을 동반한 위력 있는 조법, S.솔리드 선수라면 누구나 맞아봤다는 전설급 스킬 교룡뇌조가 존의 옆구리를 덮쳤다.

정타를 허용한 존의 얼굴이 크게 일그러졌다.

교룡뇌조의 무서움은 견제형 공격기답지 않은 강력한 데미지, 그리고 추가 경직에 있었다.

벼락 때문인지 뇌속성 저항을 갖추지 않으면 다음 동작에 반드시 딜레이가 생겼다.

존은 세상 억울한 표정이었다.

교룡뇌조를 가진 무도가는 상위권이라 할 수 있는 마스터 리그 이상을 다 세어봐도 한 손으로 헤아릴 만큼 적었다.

그만큼 보기 드문 스킬이다.

그런 희소성 높은 스킬을 모두 염두에 두고 플레이하는 유저는 없다. 움직임을 스스로 제약하는 꼴이다.

그러나 이번엔 그 실수가 결정적이었다.

팀 내에서 연습 경기가 있을 때면 동료들은 나와 거리를 벌리기 바빴다.

근접 거리에서 쏟아지는 교룡뇌조가 너무 매서운 탓이다.

지금 존과 헤븐메이커 사이의 거리, 무도가가 가장 좋아하는 거리였다.

팔을 뻗으면 닿는 근접 전투. 제한 없는 풀컨택트 공방에 존의 체력은 두부처럼 썰려 나갔다.

“답답아! 빠져!”

“아침 안 먹었냐!”

팀원들이 소리치지만 당사자는 외부 소리를 듣지 못한다.

“프로체면 다 구기네.”

“어린애 상대로 저게 뭐냐?”

다음 차례인 애덤과 마이클은 존을 욕하면서도 상대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했다.

상대가 1티어에 드는 전설급 스킬을 가지고 있는 경우 자칫 실수 한 번으로 게임이 무너질 수 있다. 존의 패배는 이제 거의 확정적, 상대를 너무 우습게 본 대가였다.

존이 다리를 휘청였다. 너무 맞아 제어권이 무너진 것이다.

짧은 시간에 연속으로 난타를 당하면 의지와 상관없이 캐릭터의 육체 제어가 잠시 기능을 상실하는 경우가 생긴다.

때문에 맞을 땐 맞더라도 계속 맞지 말라는 말이 생겼는데 상대 센스가 생각보다 좋았다.

눈앞에서 자신의 키만 한 대검이 휘둘러지는데도 긴장하지 않고 허리를 숙여 하단 공격을 넣는 대범함은 프로레벨에서도 쉽게 보기 힘들었다.

존은 패배를 직감했는지 회심의 일격을 준비했다.

“어스크래쉬.”

S.솔리드 선수라면 누구나 전설급 스킬 하나 이상은 가지고 있다. 팀 입단 초기에 LGE마켓을 통한 스킬 구매를 추천한 덕이다.

전설스킬을 두르고 성적을 내는 모습을 몸소 보여줬으니 다들 아끼지 않고 스킬과 장비를 사들였다.

어스크래쉬는 땅을 찍어 반경 수미터에 강한 타격을 주는 버서커의 필살기. 발동시간이 빠른 데다 드래곤 웨이브 못지않은 위력이 담겨 있었다.

단점이라면 하단, 지면 쪽을 중심으로 데미지가 쏠린다는 점. 때문에 어스크래쉬를 제대로 쓰려면 상대가 몸을 띄우지 못하도록 발을 묶어두거나 그로기 상태에 몰아넣고 쓰는게 정석이었다.

“끝났네.”

“그래. 이게 프로지···어?”

어스크래쉬가 화산지대를 때리는 순간 나는 존의 패배를 직감했고 애덤은 나의 말을 잘못 알아들었다.

그는 존이 이길거라고 생각했던 모양, 헤븐메이커는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움직임이 좋고 스킬 데미지도 위력적이었다.

발을 묶어두지 못했으니 어스크래쉬의 데미지가 거의 들어가지 않을 거로 확신했고 예상대로였다.

바람을 밟듯 부드러운 움직임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저게 풍운보였나. 천리보였나.’

워낙 많은 스킬을 머리에 담고 있다 보니 보법쪽 초월급 이하 스킬은 기억이 살짝 애매했다.

딜링 스킬을 외우는 것만 해도 상당한 일이었다.

무사히 공격을 피해낸 헤븐메이커는 강공의 반동으로 몸이 굳은 존의 몸에 무자비한 타격을 꽂았다.

그야말로 소나기 같은 공격, 체력이 팝콘처럼 터진 존의 앞에 패배를 알리는 시스템 창이 떴다.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 존이 무너진 자세 그대로 멍하니 땅을 바라보고 있으니 주변도 무척이나 조용했다.

감독, 코치, 전력분석팀은 존이 또 질 줄 몰랐기에 충격이었고 팀 동료들도 마찬가지였다.

오늘 지원자 자격으로 온 세 명은 이러다 오늘 떨어지는 것 아닌가 하고 불안해했다.

안중에도 없던 애송이가 놀라운 경기력을 선보였다.

“뭐 이런 걸로 그래. 연습하다 보면 질 수도 있지! 게임 다시 해보면 존이 이길 거야. 안 그래?”

“그렇지.”

“존이 방심을 해서 그래.”

어색한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애덤이 손뼉을 치며 무대에 올랐다. 다들 존이 예상치 못한 전설급 스킬 때문에 당했다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내 판단은 조금 달랐다.

교룡뇌조를 가지고 있는 건 의외였지만 녀석의 게임 센스는 진짜였다.

나는 주먹을 꾹 쥔 애덤을 보며 이번 게임도 쉽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모두가 주시하는 가운데 두 번째 경기가 시작됐다.

애덤의 주력 클래스는 다크레인저.

몸을 숨기고 어둠속에서 적을 저격하는 원거리 딜러, 나같은 경우 A급 장비인 그림자 서곡의 특수효과를 이용해야 짧게나마 모습을 감출 수 있지만 다크레인저는 초월급 스킬로도 얼마든지 은신이 가능했다.

그렇다고 공격력이 약한가 하면 그건 아니었다.

묵직한 청광(靑光)이 창처럼 뻗어 날아들자 바위가 순식간에 무너져 내린다.

그런 강공을 모습을 감추고 쏘아내는 무서운 클래스다.

쾅쾅!

규칙적으로 들리는 폭발, 동료들은 애덤을 응원했다.

우린 한 팀이지 않은가. 갑자기 들어온, 그것도 어린 애송이에게 당하면 팀 전체 체면이 깎이는 일이었다.

“너는 추천을 해도 어떻게 저런 애를 추천하냐? 반응 소름 돋네.”

“나도 저 정도일 줄 몰랐지.”

다들 흥분한 가운데 나와 제리만 조용히 디테일에 집중했다.

헤븐메이커의 손은 정확히 포인트를 집어 화살을 비껴내고 있었다. 화살 끝을 눈으로 보지 못하면 할 수 없는 일.

순발력에 이어 동체 시력도 좋음을 확인했다.

이대로면 흐름이 곧 바뀐다.

가이아의 모든 스킬은 위력에 비례해 마나를 소모한다.

가끔 아닌 것들이 있긴 한데 그런 스킬은 다른 쪽으로 패널티가 걸렸다.

애덤은 헤븐메이커를 확실히 몰아붙이고 있었지만 유효타를 넣지 못했다.

더 가까이 접근하면 동체시력이 좋아도 정타를 맞출 수 있을지 모르지만 존이 샌드백처럼 얻어맞는 걸 봐서인지 접근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너라면 어떻게 상대할 거 같아?”

“음.”

내 질문을 받은 제리는 고민하며 말했다.

“저렇게 빠른 친구들은 딱 질색이야.”

재빠른 상대에게 마법을 맞추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민첩한 암살 클래스들은 속도전으로 마법사에게 우위 상성을 점한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싸워야 하면 시간 끌기로 가야지.”

정령의 화산은 시간초가 다 되어갈수록 지면의 변화와 함께 불길이 치솟는 맵이다.

제리는 시간 끌기 전략과 함께 디버프를 넣는 게 차라리 좋은 공략법이라 판단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프로라면 승리를 위한 공략법이 무엇이건 간에 부끄러워해선 안 된다.

문제는 헤븐메이커가 평범한 아마추어, 그것도 어린 유망주라는데 있었다.

애덤도 시간을 끝까지 끌며 장기전을 노릴 생각은 없는 듯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마력을 쏟아낼 리 없었다.

“이거···.”

“애덤이 지겠는데.”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애덤의 공세가 약해졌고 그 틈을 헤븐메이커가 파고들었다.

애덤은 이를 악물고 공격을 이어보지만 한 줌 남은 마력으로 꺼내는 스킬로는 무도가의 돌진을 막기 힘들었다.

결국 애덤 역시 교룡뇌조에 쥐어 뜯겨 존과 같은 엔딩을 맞이했다.

경기장은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해졌고 헤븐메이커의 수고하셨습니다 소리만 들렸다.

벌써 2패, 프로리그 1위 팀 선수 2명이 고작 열여섯 신인한테 깨졌다.

“마이클. 너 팀 체면 회복할 수 있겠어?”

“어···그게 말이죠. 코치님.”

안 그래도 불리한 상성 매치인데 저쪽은 앞선 두 명을 상대로 좋은 모습을 보여 기세가 올랐다.

마이클은 잠시 머뭇거리다 힘들 것 같다며 한계를 인정했다.

“네가 볼 땐 어때. 테스트 더 할 필요 있겠냐?”

“없죠.”

질문을 받은 제리는 생각할 가치도 없다며 곧장 답했다.

“입단 테스트 보는 애들 중에 2승 한 친구는 저 친구밖에 없잖아요. 마지막 순번이라 스킬이 일부 눈에 익었을 거고 유리한 점도 있었겠지만 경기 전개 양상도 가장 좋았고요.”

에라이, 접자.

코치는 그리 생각한 모양이다.

더 망신 당하기 전에 저 친구를 팀으로 받으면 되는 문제였다. 추가 검증이야 정식 입단 후에 내부 랭킹전으로 해도 된다.

지금은 바깥에서 온 친구들도 있으니 굳이 사서 망신을 당할 필욘 없었다.

“잘됐네. 저 친구 네가 추천했잖아. 자, 그럼 이쯤에서 오늘 일정을 마치는 거로 합시다. 참석해주신 분들도 다들 수고하셨···.”

“코치님.”

“음?”

입단 테스트를 마무리하려던 코치는 손을 번쩍 든 헤븐메이커에 의해 잠시 멈출 수밖에 없었다.

“저 아직 한 경기 더 남았는데요?”

이 어린 친구는 아직 자신이 가진 걸 더 보여주고 싶은 기색이다. 어른의 체면 같은 걸 신경 쓰긴 힘들 나이다.

그냥 게임을 이기는 게 재밌을 테지.

“아, 그게 우리 팀 선수들이 어제 야간 연습을 해서 컨디션이 안 좋거든.”

잠자코 입을 다물고 있던 감독조차 이번 변명은 듣기 거북했는지 콧잔등에 주름이 패인다.

멀쩡히 잘 하던 테스트가 2패 후 멈췄다. 누가 봐도 개망신 당하기 전에 멈춘 거 아닌가.

야간 연습은 핑곗거리로 너무 옹색했다.

“남은 한 게임 마무리 누가 지어줄래.”

감독이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대자 선수들은 땅만 쳐다봤다. 여기서 또 지면 쪽팔림은 둘째 문제고 감독의 분노를 홀로 받아내게 생겼다.

“네가 나가볼래?”

“꼬맹이 상대로 시간 끌기는 좀 그런데···.”

슬쩍 제리한테 공을 넘겨보려고 했는데 별로 내키지 않아 했다.

제리가 이길 확률은 아마 9할 9푼. 누가 나가든 상관없는 경기였지만 내가 추천해 올린 선수니 직접 마무리를 짓기로 했다.

“제가 하겠습니다.”

“오 그래. 역시 한솔이야. 자 다들 박수.”

내가 앞으로 나서자 감독 얼굴이 환하게 밝아진다. 우리팀 관계자들은 날 너무 좋아해서 문제다.

“마지막 게임은 내가 할 건데 괜찮지?”

“네, 형.”

지금 형이라고 한 거야?

한국에선 나이로 형동생 하는 문화가 일반적이지만 해외에선 아니지 않은가.

이유를 물어보니 가이아를 시작하기 전부터 주변에 알고 지내는 한국인이 많아 이런 일에 익숙하다고 했다.

“형이 마스터 리그 매칭 돌린다고 했을 때도 계속 같이 돌렸는데 한 번도 못 만났어요.”

“감히 한솔이를 상대로 저격을 노렸다고?”

“저런 말 다시는 못 나오게 해줘! S.솔리드의 저력을 보여달라고!”

제리가 열심히 손을 머리 위로 흔들며 응원하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맵은?”

“라플라타나 십만 대산이요.”

테스트 맵을 바꾼다고 해서 뭐라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맵은 십만 대산으로 할게. 내가 어떤 전설급 스킬을 가지고 있는진 알아?”

“네. 용의 충격이랑 교룡뇌조, 항마장이요.”

“혹시 우리팀 선수들이 어떤 스킬 가지고 있는지도 다 파악했어?”

“네. 평소에도 리그 챙겨보면서 파악했어요.”

어쩐지 잘도 피하더라니, 상대 스킬을 알고 피하는 것과 모르는 상태에서 피하는 건 난도 면에서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심하다.

아직 입단도 안 한 지원자가 팀원 스킬을 꿰고 있단 말에 되려 코치가 놀랐다.

“내가 스킬을 전부 쓰면 공정한 게임이 안 될 것 같으니까 나도 전설급은 교룡뇌조 하나만 쓸게.”

보통 이렇게 얘기하면 어린아이의 치기로 다 써도 상관없다고 할 텐데 이 친구는 웃으며 냉큼 ‘예’라고 답했다.

어지간히 날 이기고 싶어하는 눈치다.

카운트와 함께 주변 풍경이 기암절벽으로 변한다.

산바람을 맞으며 나는 절벽을 박차고 튀어 올랐다.

내 양손에서 고리 모양 탄환이 다발로 쏟아지자 헤븐메이커는 당황하며 다른 절벽으로 몸을 날렸다.

“교룡뇌조만 쓴다면서요!”

“이거 전설급 아닌데?”

“아···.”

세상 억울한 표정을 보아하니 장거리 대응 스킬은 마땅히 없는 모양, 나는 무서운 웃음을 흘리며 부동보를 밟았다.

이대로 팀에 들어가면 분위기도 서먹할테니 매운 신고식을 치러줄 참이었다.

이쯤에서 좀 당하는 모습이 나와야 팀원들이 너도 우리와 같은 운명이라며 챙겨줄 터였다.

“흐흐. 긴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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