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OS 소설 아닌데요-36화 (36/170)

미래는 변한다 (3)

프로생활을 하면서 상당히 많은 선수를 봤지만 이 친구는 그중에서도 특히 닉네임이 강렬한 축에 속했다.

닉네임 헤븐메이커, 본명 제레미 스티브.

나이 열여섯. 클래스는 무도가였다.

현재 콜로세움 마스터 리그 526등이란 소개와 함께 리플레이 영상을 통해 실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이가 어려서 그런지 몸이 유연하고 동작이 빠릿빠릿해 한 번 불러보고 싶었다. 포텐셜이 좋은 친구였다.

“너무 어리지 않나? 너무 어리면 아무래도 케어하기 힘들 텐데.”

코치는 프로필을 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팀 막내인 나와 제리, 빌의 나이가 열여덟이다. 이 친구는 우리보다도 두 살이나 어렸다.

너무 어린 친구들은 감정을 컨트롤하는 능력이 약하기에 팀 적응에 애를 먹을지 모른다는 말을 꺼냈다.

물론 코치의 말도 일리는 있다. 어린 친구들은 감정 기복이 심하고 멘탈도 약한 편이다.

하지만 어린 천재들이 게임을 익히는 속도 하나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 나이대의 친구들은 무얼 가르쳐주든지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몸에 익힌다.

때문에 나는 프로 입문 최적의 나이를 열다섯 전후로 보는 편이었다.

지금이야 당장 즉시 전력을 찾고 있으니 선수 나이대가 성인에 가깝지만 2년 후, 3년 후가 되면 이 어린 친구들이 성장해 프로리그를 지배하게 될 터였다.

자세한 건 더 확인을 해봐야 알겠지만 이 녀석이라면 내년, 늦어도 내후년이면 충분히 팀의 메인 딜러를 담당해줄 수 있을 듯 했다.

사이클론이 팀을 빠져나간 시점에 난 내년 밑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아직 올 시즌이 끝나지 않았기에 누군가 내 머릿속을 들여다본다면 오만하다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내 기준에서 S.솔리드의 올해 우승확률은 99퍼센트에 가까웠고 자신도 있었다.

사이클론이 갑작스레 빠져 내년 월드 챔피언십이 조금 위태롭긴 했으나 적어도 우리팀 실력이 올해 무너질 정돈 아니었다.

크랙이나 마찬가지인 나의 존재, 어느 라운드에 내보내도 1승을 확실히 챙길 수 있는 무도가를 지닌 팀이 우승컵을 들어 올리지 못한다?

프로 1군 무대에서 6년을 보낸 선수로서 받아들일 수 없는 얘기였다.

‘템포를 올릴까.’

미래는 이미 변했다.

초대 챔피언십 우승자 타이틀을 가져야 하는 사이클론은 S.솔리드를 떠났고 몇 년 뒤에나 나와야 할 조합이 리그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그 동안은 내가 알고 있는 정보의 유효기간을 늘리기 위해 몸을 적당히 사리는 플레이를 해왔다.

더 화려하게, 압도적으로 상대를 찍어누를 수 있음에도 상하원패턴만으로 상대를 꺾는다든지 하는 행동으로 리그 수준을 선도하지 않기 위해 애를 썼다.

나는 꾹 눌러둔 능력 제한을 조금 더 풀기로 했다.

설령 그것이 내가 크랙으로 뛸 수 있는 시간을 단축하게 되더라도 지금은 그리 해야 할 것 같았다.

*

검토 결과, 총 네 명의 후보를 대상으로 심층면접을 진행키로 했다.

내가 추천한 무도가를 포함, 버서커, 엘레멘탈 마스터, 웨폰마스터가 한 명씩 초대 명단에 올랐다.

전부 딜러 클래스, 코치는 이 중 가장 실력이 좋은 한 명만 뽑을 거라고 귀띔했다.

입단테스트 자리엔 기존 S.솔리드 팀원 열한 명이 전부 참여했다.

나나 제리, 케빈이나 데니스처럼 엔트리를 하나씩 잡은 선수들의 얼굴은 그저 평온하기만 했다.

케빈은 힐러인데다 실드나이트인 데니스도 개인라운드에 나갈 일이 거의 없지만 이들은 5라운드라는 확실한 자리가 있었다.

반대로 어쩌다 가뭄에 콩 나듯 경기에 출전하는 애덤이나 마이클 같은 경우, 테스트 보러 온 친구들을 잡아먹을 듯 노려봤다.

특히 내가 추천한 헤븐메이커에게 쏟아지는 시선은 상당히 뜨거웠다.

이들에겐 밥그릇이 달린 문제였다.

무대 위에서 뛰고 싶지 않은 프로선수는 없다.

사이클론의 무단 탈퇴로 딜러 자리가 하나 비었으니 이제야 경기 좀 뛰어보겠구나 싶었을 거다. 그런데 신규 팀원 테스트를 이렇게 일찍 하게 됐으니 그들로선 악재였다.

“누가 나설래?”

가이아 프로팀 입단 테스트는 쉽고 직관적이다.

기존 팀원들이 직접 나서 일대일로 겨뤄 실력을 알아보면 금방 체크가 가능하다.

코치의 물음에 아무도 손을 드는 이가 없었다.

나는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는 게 좋았고 제리는 귀차니즘, 다른 팀원들은 혹시나 하는 생각에 몸을 사렸다.

이제 막 입단 테스트를 보러온 지원자에게 지기라도 했다간 망신도 그런 개망신이 없다.

“쯧. 자신감들이 이렇게 없어서야.”

코치는 혀를 차더니 존을 콕 집어 가리켰다.

존 테일러, 주 클래스는 버서커. 스물두 살로 우리 팀 최연장자였다.

“존 니가 좀 도와줘라.”

“예.”

존은 내키지 않는단 기색으로 걸어나와 커스텀 게임 준비에 나섰다.

“애덤! 마이클! 너희도 준비해.”

테스트는 본래 여러 명이 봐줘야 한다. 상성 문제도 있고 데이터야 많을수록 좋으니까.

그런 뒤 코치는 나와 제리를 슬쩍 쳐다봤다. 테스트하고 싶냐는 물음이 말소리 없이 입 모양으로 전해졌다.

“괜찮습니다. 혹시···제가 필요한 상황이 있으면 나갈게요.”

주변에 동료들이 많아 말끝을 흐렸다.

내가 필요한 상황은 저 셋이 입단 테스트 희망자들에게 박살 나는 경우뿐이었다.

솔직히 우리 팀 실력이 그 정도로 바닥은 아니었다.

“음. S.솔리드 코치를 맡고 있는 브라이언 코치라고 한다. 이제부터 테스트를 진행할거야. 방식은 간단해. 맵은 정령의 화산 고정, 여기 있는 우리 팀원들이랑 돌아가면서 일대일 매치를 할 거다. 테스트 목적이 승리에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부담없이 게임을 하면 된다. 질문 있는 사람?”

버서커 지원자가 손을 번쩍 들었다.

“테스트 중에 대화해도 됩니까?”

“실제 리그에선 선수 간 대화 금지거든. 웬만하면 대화 없이 가는 거로 하자.”

대화를 해도 되냐고 물어본 저의가 무엇일까.

욕으로 멘탈이라도 흔들려고 했던 걸까. 궁금증을 남긴 채로 테스트가 시작됐다.

우측에서 좌측으로, 서 있는 순서대로 테스트를 진행하기로 했는데 헤븐메이커의 순서는 맨 마지막이었다.

입단 희망자들을 테스트해줄 솔리드 팀원들의 관심사는 웨폰마스터에 쏠려 있었다.

그는 그랜드마스터 리그 순위 311위로 최근 콜로세움을 뛰지 않아 순위가 내려간 솔리드 팀원 대부분을 압도했다.

떨어지겠는데.

나는 마지막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헤븐메이커를 보며 그리 생각했다.

나는 장래 가능성을 보고 저 친구를 추천했지만 감독이나 코치는 즉전감을 노리고 있었다.

나이를 고려했을 때 열여섯 살 어린 소년이 마스터 리그 입성을 한 것만 해도 대단한 성과지만 그랜드마스터 친구들에 비하면 빛이 바래는 게 사실이었다.

아마 당장 시합을 붙여보면 웨폰마스터 쪽의 압승으로 끝날 확률이 높았다.

게다가 오늘 참가자 중 마스터 레벨은 헤븐메이커가 유일했다.

나머지 참가자는 전부 그랜드 마스터 리그에 속해 있는 상태, 이 친구를 면접 테스트에 올려준 건 순전히 내 입김이라고 봐야 했다.

제일 우측에 서있던 버서커 클래스의 테스트가 시작됐다.

정령의 화산은 장애물이 적지만 나름 밸런스 맵으로 평가되는 곳, 어느 직업이 나서던 제 몫을 해야하는 전장이다.

버서커 vs 버서커.

팀의 맏형인 존 테일러. 그는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게걸음을 밟으며 상대를 주시했다.

서로 시선을 교환한 뒤엔 대검을 머리 위로 세워 언제든 공격을 나갈 수 있는 자세를 취했다.

사이클론이 있을 때만 해도 우리팀 딜러진이 워낙 탄탄해 존은 경기에 나설 일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S.솔리드 전력분석팀이 직접 추천한 인재, 존의 기본기는 탄탄했다.

“소드 슬래셔!”

쿠구궁하는 소리와 함께 대검의 궤적이 셋으로 나뉘더니 땅을 연달아 찍는다.

버서커는 묵직한 공격을 넣는 클래스, 일단 맞추기만 하면 체력을 크게 도려낼 수 있다.

당연히 공격을 받는 입장에선 어떻게든 피해야 한다.

강공을 정타로 맞으면 경직까지 들어와 후속타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일단 연계기에 제대로 걸리면 그냥 그 게임은 터지는 거나 마찬가지, 연계 스킬에 체력이 절반 넘게 빠지는 경우도 흔했다.

그러나 상대는 존의 공격을 전혀 피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맞공으로 상대하겠다는 듯 몸을 비틀어 대검을 뒤쪽으로 두고 기를 모으듯 상체를 웅크렸다.

그 자세를 보는 순간 난 존에게 공격을 캔슬하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버서커 전용의 전설급 스킬, 데스카운터가 틀림없었다.

본래 공격특화 클래스는 공격력이 강한 만큼 방어력이 낮기 마련인데 데스카운터는 그 공식을 정면으로 뒤집는 스킬이다.

1.5초간 상대가 퍼붓는 공격을 등으로 그대로 받아낸 뒤 대검을 휘둘러 반격하는데 그 위력은 상대의 공격이 강할수록 치솟았다.

데스카운터의 약점이라고 하면 유지시간이 1.5초 정도로 짧다는 것뿐인데 그 틈새로 소드슬래셔가 정확히 들어갔다.

“어어?”

상대 등을 향해 대검을 찍은 존은 승리를 확신했지만 순간 붉은빛과 함께 카운터가 들어왔다.

소드슬래셔를 잡아먹은 아주 매서운 반격이었다.

“큭.”

뭔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정말 마지막 순간에 존은 대검을 세로로 세워 방어를 하긴 했다.

그러나 체력은 이미 절반 가까이 날아간 뒤였다.

처음 보는 스킬에 어이없이 승리를 내준 존의 어깨는 보기 안쓰러울 만큼 처졌다.

이건 솔직히 어쩔 수 없는 경기였다.

원래 동 클래스 경기는 스킬 적중 한방으로 승패가 갈리는 경우가 빈번해 변수가 많은 편이었다.

게다가 존은 오늘 데스카운터를 처음 본 것일 테니 이해할 수 있는 결과였다.

“젠장···휘둘러 치기인 줄 알았어.”

대검을 뒤로 당겼다가 휩쓰는 스킬인 휘둘러치기는 데스카운터와 동작이 비슷했다.

아마 다시 붙으면 존이 이길 확률이 높지만 코치는 곧바로 다음 경기를 붙였다.

애덤과 마이클이 차례대로 나서 버서커의 테스트를 도왔다.

프로라면 한 번 당한 공격에 웬만해선 또 당하지 않는다. 애덤은 존의 희생으로 데스카운터를 예의주시했고 진땀승을 따냈다.

마이클의 경우엔 애덤보다 더 쉽게 승리를 얻어냈다. 원래 마법 딜러에게 백색계열은 상성상 불리했다.

“1승 2패라···.”

차트를 들고 서 있던 브라이언 코치는 분석팀과 의논하더니 항목들을 체크해나갔다.

다들 테스트 결과를 분석하기 바쁠 때 난 속으로 버서커에게 B- 를 매겼다. 내가 주는 알파벳 등급은 저 선수의 모든 잠재력이 터졌을 때를 가정해서 주는 점수다.

비록 지긴 했지만 애덤을 구석으로 몰 때의 발놀림이나 스킬 사용법은 나쁘지 않았다. 그렇기에 주는 B- 였다.

내 마음 속 점수 체계는 은근 깐깐한 편이어서 웬만한 재능이 아니고선 높은 점수를 주지 않았다.

최근 성장세로 볼 때 우리팀에서 재능이 만개했을 때 A급이상을 받을 선수는 나를 제외하고 셋이었다.

케빈, 데니스, 제리.

제리는 확실히 요즘 폼이 좋은 편이지만 A+ 이상을 주긴 아직 애매했고 데니스나 케빈은 각자 클래스에서 충분히 S급에 도달할만한 재목이었다.

버서커를 시작으로 엘레멘탈 마스터, 웨폰마스터의 테스트도 곧바로 이어졌다.

테스트를 지켜본 결과 엘레멘탈 마스터는 B, 웨폰마스터는 B+, 운 좋으면 A- 까진 노려볼만 했다.

다만 내가 전투력 측정기는 아니기 때문에 이건 그냥 감에 불과했다. 감이 조금 잘 맞긴 했지만 말이다.

웨폰마스터의 테스트가 끝났을 때 테스트를 도운 팀원들의 안색은 처음보단 조금 나아보였다.

아니, 조금 나은 정도가 아니라 되려 득의양양한 표정도 엿보였다.

존은 처음 패배의 충격 때문인지 이를 악물고 원수 대하듯 테스트에 임했고 다른 팀원들도 전력으로 입단 희망자를 몰아붙였다.

그 결과 3명을 테스트하며 얻은 패배는 첫 게임에서 존이 당한 1패뿐이었다.

“후-. 살짝 위험했네.”

애덤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여유를 부린다.

이게 아마와 프로의 차이다라고 말하고 싶은 듯했다.

사실 테스트 결과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다수 게임이 상당히 팽팽히 흘렀었기에 저렇게 자신만만할 건 아니었다.

이들은 아직 아마추어 아닌가. 조금만 경험치를 쌓아주면 금방 실력을 올릴 수 있었다.

그렇게 테스트는 막바지로 접어들었다.

본래라면 이자리에 올 일도 없었던 마스터 등급, 코치가 내 요구를 단칼에 자르기 애매해 끼워맞추기 식으로 데려온 어린 친구 헤븐메이커였다.

솔직히 나조차도 별 기대를 안 하고 있었다.

이제 겨우 마스터 리그, 일반인 눈높이에선 하늘 높은 레벨이지만 프로 선수가 보기엔 별거 아닌 그런 레벨이다.

애초에 내가 이 친구를 지목한 이유는 장래성을 기대해서였지 당장 즉전감으로 올리려던 게 아니었다.

팀 동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들 하나 남은 꼬마 무도가에 대해선 경각심이 누그러진 상태였다.

그렇게 마지막 네 번째 테스트가 시작됐을 때 작은 주먹에서 벼락이 터졌다.

“이런 젠장!”

존의 날카로운 비명이 모두의 나른함을 잡아 찢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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