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OS 소설 아닌데요-35화 (35/170)

미래는 변한다 (2)

프로바닥은 생각보다 좁다. 그건 미국처럼 땅덩어리가 큰 나라라도 마찬가지였다.

가이아 이야기를 하러 모인 커뮤니티에선 온통 사이클론의 무단 탈퇴 이야기가 화제였다. 그 과정에서 온갖 루머가 생겨났다.

감독에게 대들었다가 잘렸단 이야기, 엔트리에 불만을 품었단 이야기, 팀 동료들과의 불화설 등등 증명되지 않은 소문들이 사람들 사이로 오갔다.

간혹 진실에 근접한 이야기도 있었지만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이야긴 보다 자극적인 쪽이었다.

-사이클론이 유니크 때문에 탈퇴한 거라던데

-왜?

-유니크 혼자 잘하니까 열등감이 폭발했던 거지

-솔직히 유니크는 신계 수준인데; 인간은 인간계 최고로 만족해야지

-욱해서 유니크한테 덤볐다가 전치 12주래

-항마장이라도 맞았대?

-ㅇㅇ

-미친ㅋㅋㅋ 현실 무도가인줄 아나

이건 무슨···.

댓글을 읽다가 노트북을 덮은 난 아침 접속을 준비했다.

글로리아 퀘스트 진행도 진행이지만 코치 말대로 새로운 전력을 찾긴 해야 했다.

싹수 있는 선수는 이미 다 계약을 맺었다고들 하지만 매일 수만 명씩 신규 유저가 쏟아져 들어오는 판이니 인내심을 갖고 찾으면 좋은 선수를 발굴할 수 있을 터였다.

프로 1군이 되면 좋은 게 하나 있는데 바로 코인지급 시스템이었다.

본래 결투장 코인은 스킬을 얻을 수 있는 주 획득 재화로 가이아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코인을 얻기 위해선 시간을 들여 콜로세움을 통해 랭크 매치를 계속하는 수밖에 없는데 프로 1군 엔트리에 소속된 모든 유저는 예외였다.

1군 선수들에겐 2주에 한 번씩 코인이 자동지급되는데 그 양이 제법 풍족해 더는 랭크게임을 하지 않아도 숙련도 풀버프, 적당한 양의 스킬상자를 여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그리고 그 코인을 가장 많이 획득중인 팀은 당연 전승중인 S.솔리드였다.

풀버프를 달고도 스킬 상자 수백 개를 열 수 있는 코인이 내 수중에 있었다.

수백 개라고 하면 많은 것 같지만 가이아의 상위 스킬 확률은 생각보다 낮아서 사실 많은 건 아니다.

나야 자연의 기운이 있으니 맘만 먹으면 초월급, 전설급 스킬을 얼마든지 뽑아낼 수 있지만 다른 유저들은 초월급 스킬 하나를 뽑기 위해 평균적으로 상자 천 개를 뜯어야 한다.

때문에 많은 프로 선수들이 경기 외에 연습하고 남는 시간을 이용해 랭크게임을 뛰었다.

오히려 콜로세움 경기를 거의 뛰지 않는 우리 팀 선수들이 특이한 경우였다. 딱히 팀 차원에서 금지하는 게 아닌데도 말이다.

사과쨈이 발린 햄치즈 토스트를 꿀꺽 삼키고 일과를 시작했다.

***

“와우! 홀리 갓!”

체격 좋은 친구가 날 보더니 격한 반응을 보인다.

이른 아침, 랭크 게임에서 나와 한팀이 될 거라곤 생각지 못했던 모양.

“와. 진짜 유니크 맞아요? 여기 마스턴데.”

하도 오래동안 게임을 안했더니 랭크가 많이 떨어졌다.

기왕 코인도 주는거 그랜드마스터 정도는 유지해줘도 되지 않나?

남성 유저 둘이 펄쩍 뒤며 좋아할 때 구석에 있던 여성유저 한 명은 입을 양손으로 가리고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나를 바라봤다.

예쁘면 얼굴값 한다는 얘기가 있는데 입을 가리고 있어도 그 미모를 숨길 수 없을 정도였다.

반응으로 볼 때 아마 내 팬 같은데 이런 미녀가 내 팬이라니, 기분 좋은 일이었다.

“유니크입니다. 오늘 게임 잘 부탁드립니다.”

“어쩌다 갑자기 랭크게임 하세요?”

“그···팀에 자리 한자리 비었다던데 혹시?”

이래서 눈치 빠른 애들은 싫다니까.

각자 자기소개를 하는데 솔직히 남자 녀석들 얘긴 귀에 잘 안 들어왔다.

“채린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본명이겠지? 살짝 흔들리는 갈색 머리 뒤로 후광이 비치는 기분이 들었다.

빼어난 미모에 한눈 팔린 것도 잠시,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난 본연의 모습으로 들어가 선수들을 관찰했다.

난 일부러 마지막 순서를 자청했다.

만약 저들이 3게임을 내리 지면 내가 나설일은 없다. 랭크를 올리려고 뛰는 게임도 아니고 인재를 찾는 시간이라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너는 탈락.

1라운드 주자로 나선 아크나이트는 재고의 여지도 없는 마스터 하위 레벨이었다.

심지어 뭔가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에 압박을 느꼈는지 몸놀림도 무척 둔해보였다.

2라운드 주자로 뛴 음양사 친구는 훨씬 상태가 좋았다. 유저가 워낙 많긴 해도 마스터 리그에 들려면 웬만큼 잘하는 실력으론 어렵다.

전체 유저 분포 0.1퍼센트. 유저 천만 명이 가이아를 즐긴다고 하면 그 중 겨우 1만 명이다.

문제는 너무 무난하단 점.

사실 음양사는 돈을 아주 많이 먹는 클래스다. 소환물을 부려야 하기에 장비와 스킬을 제대로 갖추지 않으면 위력이 크게 줄어든다.

즉 자본이 부족한 일반인이면 첫 클래스로 굴리기 부적합하단 이야기다.

상대는 버서커, 무도가 만큼은 아니지만 피지컬 영향을 꽤 받는 클래스다.

식신이 휘두른 몽둥이를 땅을 굴러 피한 버서커가 대검을 횡으로 휘두르자 식신이 터져나간다.

-눈갱 뭐야.

-유니크 보러 왔는데 웬 마스터리그? 수준 너무 낮자너;

-여기 채팅치는 애들 99퍼 저기 데려다두면 개발림

-님들. 저 그마에요 :(

내가 콜로세움을 돌린단 얘기가 이곳저곳에 퍼졌는지 순식간에 관전 인원이 빠르게 치솟았다.

처음엔 까대기 바쁘던 관중들도 마스터 유저의 플레이에 점점 칭찬하는 쪽으로 돌아섰다.

-버서커 회피 개쩌네;

-갓스터 리그;

하나 남은 식신의 공격을 대검으로 카운터 해내고 전방으로 구른 버서커가 음양사의 몸을 세로로 쪼개버렸다.

빛가루로 음양사가 펑 터지며 2라운드도 패배.

“정말 제가 3라운드 나가도 돼요?”

“네.”

그녀는 다시 한 번 내 의사를 물었지만 난 3라운드에 나갈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2패 상태라 내 순서는 승패와 전혀 상관이 없었다.

내가 3라에서 이겨도 4라운드를 지면 결과는 똑같으니까.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귀엽다. 귀여워.

내 나이가 회귀해서 열여덟이긴 한데 정신연령은 지금 스물일곱의 어딘가를 헤매고 있다.

살아있었으면 곧 아저씨 소리 들을 나이다.

그녀의 클래스는 웨폰마스터. 공교롭게도 팀을 박차고 나간 사이클론과 같았다.

무기를 들고 있으면 버서커와 비슷해 보이는 클래스지만 플레이 방식은 차이가 많았다.

버서커는 한방 한방에 중점을 둔 공격특화 클래스라면 웨폰마스터는 날카로운 고속 공격, 틈새를 파고드는 난전의 달인이다.

[3라운드 - 망자의 광장]

[블루팀 아크나이트 vs 레드팀 웨폰마스터]

-오 저친구 누구냐. 예쁘네.

-채린이 모름? 유명함. 마스터리그 여신임.

-개나 소나 여신이래. 근데 이쁨;

웨폰마스터, 이름 그대로 웬만한 무기를 거의 다 다룰 수 있는 클래스. 그녀는 낭창낭창 휘는 연검을 쏘아냈다.

실제 연검이면 저렇게 극명하게 휘진 않을 텐데 가이아는 게임이기에 그 변화가 실로 무쌍했다.

몸놀림은 좋은데 공격력이 약하네.

초반 30초는 그녀의 우세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밀리는 모습이 드러났다.

관전자들은 채린을 보며 거품이라고 까대기 바빴지만 내가 볼땐 공격력이 부족했다.

그녀가 쓰는 스킬 중 가장 높은 레어리티가 상급이었다.

피지컬로 극복 못할 게임은 없지만 마스터 레벨쯤 되면 중요한 순간에 꺼낼 초월급 스킬 하나 정돈 있어야 한다.

안그럼 매판 피곤해서 게임 하기 힘들다.

‘스킬만 부족한 게 아닌 것 같은데.’

분명 그녀는 몇 번이나 방패 너머의 빈틈을 향해 유효공격을 넣었다.

그러나 원래 예상했던 것에 못 미치는 데미지가 나왔다.

저런 경우는 스탯 부족이 제일 컸다. 실력이 좋아도 상대가 마스터쯤 되면 공격을 완벽히 막긴 힘들다.

훨씬 더 많은 유효타를 넣었음에도 체력바 상태는 불리하게 돌아갔다.

-아 유니크 경기 하는거 봐야하는데!

-채리니 일어나!

-아아아안돼에에에!

웨폰마스터가 열세에 몰리자 관중들은 탄식을 흘렸다. 갑자기 나타난 관중 9할은 날 보러 온 사람들이라 당연한 반응이었다.

결국 그들의 예상대로 경기는 3:0 일방적인 흐름으로 끝나고 말았다.

“죄송합니다···.”

“형님! 한 번만 기회를!”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이고 얼굴을 들지 못했고 제일 형편없던 아크나이트는 기회를 한 번만 더 달라며 부탁했다.

조금은 뻔뻔한 면도 있어야 실력도 팍팍 붙고 팀 생활하는 데 좋긴 한데 그래도 넌 아니란다.

셋 중 제일 나은 사람을 꼽으라면 생각할 필요도 없이 웨폰마스터를 다룬 그녀였다.

당장 현 프로팀 가용전력으로 삼기엔 부족한 실력이지만 성장가능성은 제법 있어보였다.

스탯이 부족한 건 남들에 비해 게임을 시작한 지 얼마 안됐단 뜻이다. 즉, 실력이 제법 괜찮기에 리그 평균 스탯에 못 미치는 캐릭을 가지고도 마스터까지 올라왔다는 결론이 나온다.

“채린님.”

“네?”

“스킬만 좀 갖추면 지금보다 훨씬 잘하실 것 같아요.”

“아, 감사합니다.”

“다른 분들도 즐겜하세요.”

싹수가 있긴 해도 침 발라 놓을 정도 인재는 아니기에 나는 곧장 랭크매치를 종료했다.

사실 여성 프로게이머는 상당히 힘든 직업이다. 잘하는 선수일수록 남자 게이머와 비교를 당한다.

여성부 리그가 따로 있는 게임은 좀 낫지만 내가 총 맞고 죽기 전까지도 가이아는 여성리그가 따로 생기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 중 최상위 레벨에 도달한 선수들은 남성들과 동일 선상에서 대결하게 되는데 그런 선수조차 대부분 팀 마스코트 역할 이상을 해내지 못했다.

이스포츠 역사상 팀의 1승 카드를 맡을 정도로 강한 여자 프로게이머는 존재하지 않았다.

타고난 신체 능력 차이 때문인진 몰라도 파이가 큰 게임일수록 최상위는 전부 남성 유저의 몫이었다.

저 채린이란 유저, 잘 키우면 여성부에선 독보적인 실력을 뽐낼지 몰라도 지금의 프로리그에선 다수의 그랜드마스터 중 한 명으로 끝날 확률이 높기에 프로 대신 즐겜을 하길 바랐다.

***

“좀 더 이렇게 진지한 표정으로. 아 왜~ 게임할 땐 잘하든데!”

“이, 이렇게요?”

“훨씬 좋네요. 잠시만요.”

S.솔리드 홍보팀 누나가 얼굴 코앞에다 미니캠을 두고 나를 찍었다.

짧은 인터뷰와 달리 이런 밀착 촬영은 영 어색했다.

어제 있었던 나의 마스터 리그 탐험기는 결국 실패로 끝났다. 열다섯 게임을 치르는 동안 다양한 현지인들이 나를 스쳐 갔지만 사이클론을 대체할 인원은 쉬이 보이지 않았다.

야반도주라는 충격적인 일을 벌이긴 했어도 녀석의 재능만큼은 진짜배기였다.

랭크게임 암행어사는 인재발굴 방법으론 영 꽝이라고 생각했을 때 새로운 돌파구를 홍보팀이 제시했다.

“우리도 공개모집 한 번 해보면요?”

“공개모집?”

감독이 수염을 쓰다듬었다.

“계약조건은 물론이고 저희 선수 복지는 사실 최고수준이잖아요.”

나는 전적으로 동감했다.

세계적 호텔체인의 지원을 받는 PG게이밍을 제외하면 숙소도 이곳이 최고일 터였다.

“그리고 프로리그 최고의 선수가 함께하는 팀이고요. 영상 편집 잘해서 커뮤니티에 공개모집 한다고 글을 올리면 반응은 있을 것 같은데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괜찮은거 같은데? 손해볼 거 없으니까 바로 추진해 보자고.”

감독과 프런트 싸인이 떨어지자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그 결과가 이 미니캠이었다.

이 팀에서 가장 효과가 좋은 홍보모델이 바로 나였다.

“스마일. 좀 더 이렇게 입꼬리 살짝~.”

“스마일···.”

팬들에겐 포스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내 생각과 전혀 다른 홍보물이 나올 판이었다.

나만 죽을 수 없지.

앞에서 소리 없이 배를 잡고 웃고 있던 제리를 다음 희생양으로 지목했다.

“아니 나는 왜···.”

“닥쳐.”

“그래요. 제리 선수도 우리 팀 에이스니까. 둘이 같이 나가게끔 편집할게요.”

“아냐. 한솔이 단독! 제리는 다음 서브!”

무조건 메인은 한솔이어야 한다며 감독이 손사래를 쳤다.

나는 아차 싶어 제리를 바라봤다.

커뮤니티 댓글란에서 봤던 이야기 중 하나, 사이클론은 유니크에 대한 열등감을 이기지 못한 나머지 팀을 뛰쳐나갔다는 그 말.

어쩌면 나는 높은 확률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프로라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다들 자존심이 똘똘 뭉친 발현체니까.

그 녀석,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날 은근히 견제했었지.

이 와중에 제리까지 같은 코스를 밟는다?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잘나가던 1위 팀이 하루아침에 소년가장 팀으로 바뀔 테니까.

다행히도 제리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자신의 편집 영상을 보며 낄낄거리기 바빴다.

정말이지 이 친구 신경이 무딘 편이라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

밤을 세운 홍보팀의 노력으로 공개 모집 프로젝트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나와 제리의 인터뷰, 연습게임 스틸컷, 우리팀의 여러 장점을 담은 모집 영상이 곳곳에 업로드됐다.

그리고 영상이 올라가기 무섭게 많은 지원자들이 자신의 인게임 영상을 리플레이로 담아 메일로 보냈다.

최소 지원 자격을 마스터 이상으로 잡았음에도 천 통 넘는 메일이 들어왔다.

“자, 새 팀원을 데려오는 일이니 너희도 같이 확인 좀 하자.”

코치의 말에 따라 우리는 동시에 메일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코치님.”

“마음에 드는 친구 좀 찾았어?”

영상을 훑은지 두시간 째, 내 눈에 플레이어 한 명이 눈에 들어왔다.

“이 친구. 다음 면접때 한 번 넣어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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