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OS 소설 아닌데요-34화 (34/170)

미래는 변한다 (1)

레전드 크루 코치가 한국인?

전생의 나는 이맘때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다. 가이아를 하지 않았기에 정보가 너무 없었다.

어쩌면 이 모든 게 순리대로 가는 중일 수도 있었다.

어린 레이저가 그랜드마스터를 유지 중인 것도 그런 증거 중 하나다. 난 그가 이렇게 초창기부터 게임을 했을 줄은 전혀 몰랐다.

한국은 세계 어디서든 게임 실력으론 알아주는 나라다.

이 시기에 북미팀 코치 중 한두 명이 한국인인 건 딱히 이상한 일이 아니다.

“너 혹시 다른 팀으로 이적할 생각은 아니지? 전화가 걸려온 적도 없고?”

조금 뜬금없는 질문이 들어왔다.

“전혀요. 갑자기 왜요?”

애초에 S.솔리드와 계약할 때 팀을 갈아타려거든 최소 북미 팀은 아니어야 한다고 해링턴 대표가 못을 박지 않았던가.

나는 그러겠다고 했고 최고수준이란 말로도 부족한 대우를 받았다. 이제 막 데뷔한 선수에겐 있을 수 없는 좋은 조건을 말이다.

불만 없는 선수는 다른 팀 이적을 고려하지 않는 법이다.

“그쪽에서 번호를 알려줄 테니 네 걸 알려달라더라.”

“특이하네요.”

상대 팀 코치에 관한 정보를 묻자 그쪽에서 내 번호를 요구했단 얘기였다.

브라이언 코치는 날 믿고 번호를 교환했다고 한다.

그렇게 내 손에 한국인 출신이라는 레전드 크루 한국인 코치의 번호가 들어왔다.

물론 상대 코치에게도 내 개인 폰번호가 저장돼 있겠지만.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요. 대체 제 전화번호는 왜 물어본 걸까요? 제가 정보를 알아봐달라고 했던 거 저쪽에 얘기하신 건 아니잖아요?”

“나도 그게 좀 이상하더라고. 근데 그냥 네 번호가 알고 싶었나 봐. 정보를 교환한 친구가 나랑 세븐스타부터 인연이 있던 친구거든. 더 알고 싶은 게 있으면 그 코치에게 직접 전화하라면서 네 번호를 요구했고, 교환했지.”

보통 팀 코치들이 타 팀 선수 신변 정보에 관심을 가지는 건 영입을 염두에 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는 그럴 생각이 없지만 만약 내가 이번 일로 교류를 통해 레전드 크루로 이적하기라도 하면 브라이언 코치는 자리가 날아갈 것이다.

“한 번 전화 걸어보게?”

“음. 아니요. 지금은 그냥 가지고만 있을게요.”

“절대 다른 생각 하면 안 된다. 너는 우리팀 에이스야!”

저렇게 불안해할 거면 대체 번호 교환은 왜 한 거야?

나는 슬며시 웃으며 절대 그럴 일 없다며 코치를 안심시켰다.

***

가이아 프로리그는 각 팀과 10차전을 치르는 긴 일정이다.

5주차, 스물한 번째 경기. 리그가 두 바퀴를 돌자 강팀과 약팀의 경계가 구분되기 시작했다.

시즌 초, 관계자들이 예상했던 강팀은 S.솔리드, 레드불스, 슈퍼호넷이었고 실제 리그는 그런 흐름으로 가고 있었다.

다만 어느 순간부터 치고 올라오는 팀이 있었으니 레전드 크루였다.

3주차 때 PG게이밍을 5라운드 풀타임 접전 끝에 패퇴시킨 것을 시작으로 서서히 상승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 5주차 첫 경기 슈퍼호넷이 스나이퍼 조합에 무릎을 꿇었다.

“저건 안 당해본 사람은 모르지.”

우리 팀은 1경기를 일찌감치 마치고 모니터링 중이었는데 포격사의 치명타가 슈퍼호넷의 마법사를 자르자 제리가 중얼거렸다.

경기 당시 제리는 드래곤 웨이브를 시전하다 공중에서 폭사당했다.

레전드 크루의 조합과 인원구성은 저번과 다르지 않았다.

우리와 싸울때와 정확히 똑같은 조건이었다. 하지만 슈퍼호넷은 나처럼 발 빠른 선수가 없었고 부활 스킬 또한 없었다.

케빈이 어느 상황에서든 당황하지 않고 제때 힐을 넣어주는 S급 힐러인건 분명하지만 만약 부활 같은 중요스킬이 없었다면 코치는 그를 최종전 명단에 넣지 않았을 것이다.

가이아에선 그만큼 PVP에 유리한 스킬의 보유 유무가 중요하다. 스킬 하나로 적이 야심차게 준비해온 조합을 카운터 낼 수 있는 게임이다.

나는 자신감에 찬 레전드 크루 선수들의 표정을 보며 이 팀의 상승세는 당분간 멈추지 않으리라 판단했다.

분명 3주차 이전 레전드 크루는 강팀이 아니었다.

오히려 승률 5할을 밑도는 약팀, 그런 팀이 이렇게 한순간에 달라질 수 있는지 놀라울 정도였다.

“그래도 아직 우리 상대는 아니지!”

“암. 우리 전승 우승이야~.”

경기 모니터링이 끝나자 팀원들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간식을 찾기 위해 1층으로 우르르 내려갔다.

하지만 내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조금 전 경기, 레전드 크루의 스나이퍼 조합은 불과 며칠 전보다 분명 다듬어져 있었다.

머릿속에 붉은 경고등이 켜졌다.

저 팀은 전력이 계속 오르는 중이지만 우리팀은 정체구간에 걸렸다.

나와 함께 더블 에이스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데려온 사이클론은 긴 슬럼프에 오늘도 1패를 기록했다.

전생의 북미스타였던 그가 이 시기에 슬럼프를 겪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냥 두고 볼 문제가 아니었다.

15퍼센트 속도 너프가 암살 클래스에게 치명적이긴 했지만 지금 사이클론이 보여주는 경기력은 그 여파 이상으로 최악이었다.

그리고 진짜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었다.

“같이 연습할래?”

“아니. 좀 피곤해서.”

사이클론은 같이 연습하잔 제안에도 고개를 젓고서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내 제안만 거절한 게 아니었다. 다른 선수들과의 교류가 눈에 띄게 줄어있었다. 월드클래스 선수도 슬럼프는 겪기 마련이지만 주변의 도움을 거절하면 더욱 빠져나오는 데 걸리는 시간이 길어진다.

이미 반쯤 물에 가라앉은 난파선, 그게 사이클론의 상태였다. 별다른 터치 없이 방관하던 코치는 사이클론을 다시 엔트리에서 제외시켰다.

15퍼센트 너프가 수정이 되든지, 사이클론 본인이 의욕적으로 출전을 희망하는 게 아니면 당분간 쓰지 않으려는 모양이었다.

이렇게 놔둬도 되나 싶었지만 여기서 더 참견하는 건 선을 넘는 행동이란 생각이 들었다.

일단 같은 선수 입장이고 프로 선수들은 대게 프라이드가 강하다. 같은 클래스 동료가 진심으로 조언한다 한들 당장은 자존심 때문에 들리지 않을 터였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 때 일이 터졌다.

***

“야! 일어나!”

안대를 휙 벗겨내고 단잠을 깨운 제리는 내 손을 잡더니 쭉 앞으로 당겼다.

“무슨 일인데.”

“마커스 튀었어!”

“튀었다고?”

“바람좀 쐰다고 나가서 안들어왔대.”

시즌 도중에 튀는 선수라니, 방출이 아니고서 제 발로 야반도주를 하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성적이 나쁜 하위팀 연습생들은 간혹 그런 경우가 있다곤 하나 S.솔리드는 하위팀도 아니고 환경도 최고이지 않은가.

거실로 나가니 코치와 감독, 프런트, 분석팀이 전부 모여 회의 중이었고 뒤늦게 소식을 안 선수들이 눈을 비비며 진짜 튄 거냐고 소식을 주고받는 중이었다.

“니들 아무도 몰랐어?”

감독이 선수들에게 다가와 물어보지만 다들 고개만 저었다.

감독은 욕설을 섞으며 사이클론을 마구 씹었다.

선수관리를 어떻게 하기에 선수가 도망가냐는 소리를 들을 테니 짜증이 날 만했다.

당장 잡아 데려와야 한다며 으르렁 거리던 감독의 시선이 순간 나를 스쳤다.

그의 눈빛엔 많은 의미가 담겨있었는데 그 중 그 친구, 너가 데려오지 않았느냐 하는 뜻만은 읽을 수 있었다.

내가 터질 줄 알고 데려온 것도 아니고 솔직히 나도 억울했다. 겨우 이 정도도 못 버티고 도망갈 놈인 줄 알았으면 팀에 추천 했겠는가.

그나마 데니스와 케빈이 제 몫을 해주고 있어서 천만다행이었다. 저 둘의 실력은 연일 성장을 거듭해 팀전에선 1인분 이상을 해주는 키카드의 위치에 올랐다.

세 명을 추천해서 두 명이 팀 기둥을 맡고 있으면 체면치레는 한 셈이다.

한바탕 바람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 존은 날 따로 불렀다.

“혹시 뭐 알고 있던 거 없니.”

“전혀요. 요즘 저랑 대화를 나눈 적도 별로 없거든요. 자존심 때문에 그러려니 생각했죠.”

“음.”

“계약 문제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박차고 나갔으니 올 시즌은 브레이크지. 팀 차원의 방출이면 다른 팀과 계약이 가능하지만 무단 이탈은 전혀 다르니까. 지금 팀에선 계약금과 일부 지급한 연봉 반환 소송을 넣을지 논의 중이었다.”

“논의하실 게 있나요? 당연히 토해내라고 해야죠.”

존은 내 반응이 의외란 기색이다.

“그래? 우린 네가 추천한 선수여서 신경 쓰고 있었거든. 큰 금액이 아니기도 하고, 그것보단 당장 네 컨디션이 중요하니까.”

“저는 괜찮습니다. 본보기 차원에서라도 꼭 소송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원래 사이클론은 S.솔리드 영입 명단에 없던 녀석이다.

최고의 선수를 모아 드림팀 한 번 만들어보잔 생각에 추천을 하긴 했지만 이런 식으로 물을 흐려놨으니 커버해주고 싶은 맘은 전혀 없었다.

나중에야 알게 됐지만 사이클론이 계약금 명목으로 받은 금액이 2만 달러, 분할 지급한 저번달 연봉을 합치면 7만 달러라고 했다.

양심 없는 새끼란 말이 절로 나왔다.

일단 돈이 들어왔으면 최선을 다해야 할 거 아닌가. 솔직히 일대일 연습을 제안했을 때 나는 어느 정도 사이클론의 폼을 회복시킬 자신이 있었다.

제 발로 복을 찬 거지.

그동안 스킬도 사고 돈을 제법 쓴 거로 알고 있는데 돈을 전부 갚으려면 고생깨나 할 듯 싶었다.

어쨌거나 너프 직격탄을 맞기 전엔 팀의 필승 카드로 쓰였던 친구, 자리가 하나 빠졌으니 새로운 선수를 다시 키워야 했다.

전승인 나를 제외하고 승률이 팀 내 승률이 가장 높은 사람은 제리였다.

어제 치른 공식전을 포함해 현재 8할 가까운 승률을 기록중이었다.

문제는 제리 이외엔 딱히 부각되는 카드가 없단 점이었다.

데니스나 케빈은 퓨어탱커와 퓨어 힐러, 개인전에서 활약하는 클래스가 아니다.

실드나이트가 개인전에 나오는 경우가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탱커 계열에서 개인전에 쓸만한 전투력을 지닌 클래스는 버서커, 아크나이트 까지였다.

“오늘부터 팀내 교류전 다시 시작한다. 순위 추려서 선발 엔트리에 출전시킬 거니까 개인전 클래스 하는 애들은 정신차리고 연습해.”

나와 사이클론, 제리에 가려 개인전을 뛸 기회를 거의 받지 못했던 선수들은 눈에 잔뜩 힘을 주고 기세를 올렸다.

“한솔아.”

브라이언 코치는 집중하는 선수를 놔두고 잠시 모니터링실 뒤편으로 날 불러냈다.

“애들 연습하는 거 보고 의견 좀 말해줄래.”

“제가요?”

“너 눈썰미 좋은 거 모르는 사람 없어.”

최종 엔트리 결정은 감독과 코치가 하지만 내 의견을 귀담아들어 주리란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알겠다고 하자 코치는 한 가지 부탁을 더 꺼냈다.

“그리고 계속 열한 명으로 갈 순 없잖아.”

각 프로팀 1군 등록가능 인원은 열두명까지. 올 한해는 이 열두명으로 일정을 치러내야 한다.

“다시 인원 채워도 된다고 운영측 허가 떨어졌어. 그래서 머릿수 채우려는데 애매한가 봐. 너도 알다시피 그랜드 마스터 상위권 선수 중에 쓸만하다 싶은 애들은 전부 소속이 정해졌어. 2군이 없는 팀은 여기밖에 없으니까.”

현재 북미 프로팀은 총 열 개. 그중 2군이 없는 곳은 우리 팀 뿐이었다. PG게이밍 같은 곳은 3군까지 굴린단 이야기도 들렸다.

다른 게임과 달리 시즌 도중 1, 2군 인원을 교체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아녀서 2군 비중이 그리 크지 않은 게임이긴 해도 S.솔리드는 이례적인 경우였다.

“요즘 필드 플레이도 많이 뛰고 있잖아? 게임 하다가 쓸만한 친구 있으면 추천 좀 해달라고 그러시더라.”

“감독님이요?”

브라이언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하다. 분명 감독은 사이클론 때 내 안목을 의심하는 눈치였는데.

내 표정에서 무언갈 읽었는지 코치가 말을 덧붙였다.

“부담가지지 말고 그냥 가볍게 추천해주면 돼. 솔직히 성적 상위권 선수가 야반도주 하는 건 프로생활하면서 나도 처음 봤다. 그런 놈이 어디 또 나오겠냐.”

“예. 찾으면 알려드릴게요.”

“그 친구는···어때? 전에 얘기 들어보니까 가끔 같이 플레이하는 친구 한 명 있다며.”

무슨 소린가 했더니 코치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민준이 이름이 나왔다.

“아-. 그 친군 아직 어려서 안 돼요. 그리고 원래 운동선수라 가끔 시간 내서 게임하는거라 프로는 힘들죠.”

“그래? 가끔 하는 거라고···.”

플레이타임이 짧은 나이 어린 유저.

그런 친구가 이미 그랜드마스터 등급에 올라있다는 사실은 팀 입장에서 군침돌만한 이야기였다.

그 기색에 나는 단호하게 손을 저었다.

“복싱프로 선수 지망하는 친구라 아무튼 안 돼요.”

“아쉽네. 그래도 한 번 얘기는 해 봐.”

“예.”

응. 얘기 안 할 거야.

레이저는 내가 오래전부터 찍어둔 선수다. 아무리 S.솔리드라고 해도 넘겨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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