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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OS 소설 아닌데요-33화 (33/170)

퀘스트로 스텝 업 (3)

“저 녀석 인생 2회차인지도 몰라.”

나는 이온음료를 마시다 말고 사레가 들려 콜록거렸다.

스무 시간 가까운 강행군을 마치고 쉬고 있는데 대뜸 마이클이 그런 이야길 꺼냈다.

솔직히 깜짝 놀랐다. 2회차란 말에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뭘 알고 말한 건가?

그 말을 들은 제리가 옆에서 킬킬거렸다.

“한솔이가 2회차면 난 3회차다.”

“그게 아니면 이게 말이 되냐고! 비밀 퀘스트가 그렇게 쉽게 찾아지는 거야?”

게임단 내의 인게임 플레이는 전력 향상을 위해 항상 모니터링된다.

이번 글로리아 퀘스트의 진행 역시 숙소 사람들이면 한 번 이상은 확인한 상태였다.

던전도 10시간을 넘기는 법이 없는데 필드 플레이로 스무 시간 접속을 강행하고 있으니 없던 관심도 생길 수밖에.

그들이 무엇보다 놀란 건 이번에 우리가 얻은 업적 수확이었다.

주력 스탯 20퍼센트 상승.

아무리 비밀 퀘스트 영향이라곤 하지만 말이 안 나올 정도로 좋은 보상이었다.

분석 해보면 잠을 좀 못자서 그렇지 마차 열 대 호위한 거밖에 없다.

스탯 20퍼센트를 올릴 수 있다고 하면 20시간이 아니라 이틀 밤샘도 견딜 유저가 줄을 섰다.

“솔직히 나도 그건 좀 궁금한데?”

이야기를 듣고 있던 코치까지 합세했다.

퀘스트 시작이야 정보사이트를 통해 알아낼 수 있어도 비밀 퀘스트의 유무까지 적혀있을 린 없다.

왜냐하면 방금 우리 일행이 해냈던 퀘스트 같은 경우, 한 번 선점하고 나면 다른 팀은 도전할 방법이 없는 가이아 유일의 퀘스트였다.

당장이라도 수레에 병구류를 싣고 글로리아로 가려던 솔리드 동료들은 이 사실을 알고선 세상 억울한 듯 가슴을 두드렸다.

“대체 어떻게 안 거야? 플레이를 보면 마치 알고 있었던 것 같았는데.”

“그럴 리가요. 그저 퀘스트를 할 때 좀 더 몰입해서, 그들 입장에서 생각하면 새로운 길이 보이는 법이죠.”

“···?”

“진심···?”

솔직히 내가 들어도 개똥 같은 소리였다.

그래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고 할 순 없기에 이렇게 둘러댈 수밖에 없었다.

“몰입해서 생각하면 누구나 그런 말을 할 수 있다 이거지~?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면 평생 먹···억!”

제리는 날 따라 하다 내가 날린 발에 비명과 함께 쓰러졌다.

때리지 않으면 못 배길 만큼 얄미운 성대모사였다.

***

월요일. 등교 혹은 출근, 저마다의 사정으로 바쁜 날에도 가이아 커뮤니티는 다 읽어보기 힘들 정도의 많은 글이 쏟아진다.

관짝에 잠든 암살자 언제 꺼내주느냔 글, 프로들은 주말에 뭐 하고 지내는지 궁금하다는 글, 이번 주 프로팀 성적을 예측하는 글, 여러 가지 글이 오가는 가운데 유독 조회수가 높은 글이 있었다.

노란색으로 관심도 업 마크를 받은 게시물의 제목은 S.솔리드 선수들 봤다였다.

-어디서 봤는데?

-님들 백경해안 어딘지 들어봄?

-거기 관광지 아님?

-와. 설마 이 시간에 연습 안하고 여자친구랑 해변으로 놀러감? 1위 팀이라고 여유 부리네.

-여자친구 얘기 아님. 앞서나가지 마시구요. 암튼 거기 왕국 주변에 솔리드 팀 선수들 돌아다님.

-거기서 뭐함?

-거기 할 거 하나도 없는데.

유저 수가 수백만 명에 달하는 가이아는 게임을 즐기는 방법이 사람마다 다르다.

그래도 종류별로 묶어 분류 했을 때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캐릭터 성장에 재미를 느껴 던전 탐험에 나서는 모험가들이다.

성장에 중점을 둔 유저들이 볼 때 글로리아 왕국은 들를 일이 없는 장소였다. 입소문난 던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냥하기 좋은 필드도 없다.

있는 거라곤 연인끼리 손잡고 찾기 좋은 백색 해변뿐, 대체 그런 곳에서 프로선수가 뭘 할 수 있을까.

일반 유저들이 플레이 동선을 짤 때 던전과 편의성 좋은 도시 위주로 방향을 잡는다면 프로는 이쪽 방향의 극한을 달리는 자들이다.

좀 나쁘게 말하면 게임에 미친 인간, 숙련 경험치를 쌓기 위한 던전과 소모품 보충을 위한 도시 외의 다른 장소를 거의 들르지 않는다.

게임을 업으로 삼아 먹고 사는 사람들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스탯의 성장은 리그 승패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혹시 신규 던전이라도 발견했나?

-진짜임? 나두 알려줘!

프로들이 도는 던전이면 당장 손대기도 힘들만큼 어려운 곳임이 뻔하다.

그럼에도 눈에 불을 켜고 정보를 듣고 싶은 게 게이머 마음이다.

-던전이 아니고 도적 잡으러 다니던데···.

-도적?

-그게 대체 무슨 말이야?

프로라면 너 나 할 것 없이 콜로세움, 최상위 던전에서 스탯과 장비 파밍에 열중하는 시기에 도적잡이가 대체 웬 말인가.

궁금한 게 있으면 그것을 해결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은 글로리아 왕국으로 향했다.

시간이 좀 지나자 다른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진짜네. 도적 청소중임. 퀘스트 때문이래.

-무슨 퀘스트?

-왕국 재건 퀘스트인데 도와주면 싸인도 해줌;

-ㅋㅋㅋㅋ 게임 속에서 싸인 받아서 뭐할건데

-집에 걸어둘거임;;

최근 가이아에선 게임 내에 집을 꾸미는 사람들이 늘기 시작했다. 1년 뒤에 서버 단위 리셋이 될 예정이란 소리에 굳이 집까지 마련할 필요가 있나 싶던 사람들도 막상 집을 사보니 꾸미는 재미가 있어 최근 수요가 늘고 있었다.

현실에선 가지기 힘든 저택도 이곳에선 조금만 노력하면 마련이 가능했으니 일종의 대리만족이었다.

-음. 직접 만날 수 있는 건 솔깃한데?

-무료 팬미팅이라고 생각하면 개이득이자너

-언제까지 함? 일 마치고 가면 없을래나

-오늘 하루종일 한댔음.

-개꿀.

S.솔리드의 인기는 선수들이 느끼는 것보다 훨씬 많은 편이었다. TV로 보던 프로와 직접 게임을 같이할 수 있다는 말에 사람들이 속속 글로리아 왕국으로 향했다.

***

“와! 실물이랑 TV에 나온거랑 소름돋게 똑같네요.”

이것은 칭찬인가 욕인가.

그러나 욕도 칭찬으로 듣고 생긋생긋 웃는 게 내 역할이다.

“치-즈.”

옆에 있던 제리가 마법도구를 이용해 어깨동무를 한 사진을 즉석 인화해 넘겨주자 팬은 고맙다고 연신 고개를 숙였다.

입소문이 나면 우리 팬들이 어느정돈 와줄거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예상보다 그 속도가 훨씬 빨랐다.

사진 한 번 찍고 대화좀 나누고 싶어 찾아온 팬을 줄 세웠더니 슬슬 줄 꼬리가 안보일 정도로 늘어지기 시작했다.

어딘지 어색한 웃음으로 즉석 팬미팅을 진행하고 있는 내 모습을 옆에선 케빈과 데니스가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다.

궁정마도사에게 받은 왕국 재건 퀘스트 내용은 치안이 엉망이 된 왕국의 기강을 바로잡는 일이었다.

그 중 가장 시급한 일은 왕국 곳곳을 어지럽히는 도적 소탕이었다.

마도사가 도적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자 재건 퀘스트의 곁가지로 새로운 서브 퀘스트가 생성됐다.

<글로리아 궁정마도사의 도적 소탕 의뢰>

등급 : 실버

이제 막 눈을 뜨기 시작한 작은 왕국은 그대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각지에 퍼져있는 도적을 소탕해 무너진 치안을 바로잡아야 한다.

도적 : 0 / 21488

나를 제외한 팀원들은 퀘스트에 적힌 도적 수를 보고선 기겁했다. 자그마치 이만일천사백팔십팔 명이다.

무슨 왕국에 도적이 이렇게 많은진 둘째치고 도무지 넷이 해결할 인원수가 아니었다.

도적의 전투력이야 일대 다수로 붙어도 별거 아니지만 다 찾으러 다니려면 세상 깜깜한 숫자였다.

“걱정하지마. 나한테 좋은 방법이 있으니까.”

“방법?”

가이아 커뮤니티에 S.솔리드 선수들이 도적을 잡고 있단 정보를 흘린 건 바로 나였다.

우리 팀 인기 좋은 거야 다들 알고 있으니 최소 수십 명 정돈 얼굴 보러 와주리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오전임에도 내 예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고 그 결과가 퀘스트를 공유받은 사람들과의 단체 팬미팅이었다.

사실 사람을 모으기로 따지면 개인방송을 켜는 게 더 확실했다.

웬만해선 방송을 하지 않는 S.솔리드, 그중에서도 무패를 기록중인 팀 에이스가 최초 방송을 켜면 얼마나 어그로가 많이 끌리겠는가.

그러나 굳이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너무 과한 사람이 몰리지 않길 바라서였다.

도적 소탕은 재건의 시작일 뿐, 앞으로 마도사가 내주는 과제를 계속 해결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너무 많은 인원이 몰리면 재건 퀘스트의 가장 큰 걸림돌인 주변 국가에서 어떤 액션을 취할 가능성이 있었다.

게임 속 설정이긴 하지만 그들은 글로리아 왕국이 무너지길 오래전부터 기다리는 중이었다.

해안에 여행객이 들르는 정도는 신경쓰지 않겠지만 갑자기 도적을 소탕하며 대규모의 유저가 들락거린다면 분명 움직임이 있을 터였다.

애초에 궁정마도사가 내준 퀘스트에 들어있는 도적 중 일부는 타 국가에서 파견한 바람잡이였다.

글로리아의 황폐화를 가속화할 작정으로 도적으로 위장한 병사들.

“자, 줄 좀만 바로 서주세요. 예예. 다 해드립니다.”

제리는 음성증폭 마법으로 흐트러지는 줄을 바로잡았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예상보다 조금 더 많이 오긴 했지만 이 정도면 훌륭한 결과였다.

서브퀘스트 공유를 통해 도적을 잡기 시작한 지 6시간이 됐을 때 소탕 숫자는 10퍼센트를 훌쩍 넘었다.

2천 명 이상의 도적이 박살 났단 뜻이다.

“도적의 증표 10개면 5초 아이컨택, 20개 이상 싸인, 30개 즉석사진입니다. 줄서요 줄.”

“50개는요!”

“50개 허그 받습니다.”

“저 70개에요 70개! 아이컨택 35초 하게 해주세요!”

“응. 안 돼. 돌아가세요.”

“힝.”

저건 내 아이디어 아니다.

즉석에서 증표 숫자로 팬미팅 등급을 조절한 건 순전히 제리의 의견이었는데 효과는 탁월했다.

사실 이 정도로 관심을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포옹도 얼마든지 해주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제리는 절대 안된다며 딱딱히 고개를 저었다.

생각보다 빠르게 소탕 숫자가 오르고 있긴 한데 마냥 좋은건 아니었다.

누가 봐도 나보다 나이 많을 것 같은 아저씨가 형!을 외치며 껴았았을땐 나도 모르게 용의 충격을 넣을 뻔했다.

“한국 파이팅! 유니크 파이팅!”

“최종병기여고생님 감사합니다.”

“형! 경기 또 보러 갈게요!”

오묘한 표정의 내 얼굴을 보며 제리는 엄지를 척 치켜들고서 눈을 찡긋했다.

오늘 일은 기억해 두겠다.

***

던전과는 달리 연계퀘스트는 며칠 이상 시간을 들여 깨야 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특히나 스케일이 큰 글로리아 퀘스트는 말할 것도 없다. 어쩌면 한 달 이상 걸릴 수도 있는 작업.

그러나 프로는 퀘스트 유무와 상관없이 매주 반복되는 프로리그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

사실 주말에 이렇게 자유행동을 하게 해주는 S.솔리드가 특별한 경우다.

한국에서 생활했을 당시엔 평일도 주말도 삼엄한 모니터링 속에 질리도록 연습게임을 해내야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2군으로 보내져 자리를 잃는다.

닭장 속에서 펼쳐지는 무한 경쟁의 승자만이 무대에 오를 기회를 받게 된다.

정말이지 한국에 비하면 이곳은 천국이었다.

물론 독보적인 1위, 전승 가도를 달리는 팀 성적도 이런 자유행동을 가능케 하는 중요 지분이겠지만 팀 관리자들의 마인드가 다른 건 분명했다.

퀘스트를 위해 팀 경기에 소홀하면 본말전도가 되는 법, 화요일 오전부터 감을 되찾기 위한 훈련에 들어갔다.

되찾는다기 보단 가장 날카로운 상태로 감을 끌어올리는 작업이라는 표현이 정확하다.

마침 가장 선호하는 1경기가 잡혔다.

차례가 올때까지 기다리기보단 먼저 경기를 끝내고 다른 팀 경기를 관전하는 게 훨씬 편하다.

“마이클. 반응속도 조금 느슨하다. 파워실드 보고 대응할 수 있잖아.”

“애덤! 에임 벌어진다. 정신 안 차릴래?”

잔뼈가 굵은 브라이언 코치는 목소리를 높이며 연습실 분위기를 잡았다.

연승으로 더할 나위없이 분위기가 좋긴 하지만 누군가 이렇게 잡아주지 않으면 게임단이 해이해질 염려가 있다.

선수단 평균 나이 열아홉, 아직 어린 친구들이다.

자칫 방심할 수 있는 상황을 코치는 정확한 지적으로 미연에 방지한다.

“한솔이는 잘하고 있어. 그렇게만 해.”

“예.”

“제리! 캐스팅 때 집중하라고 했지! 지연되는 거 안 보여?”

“아, 코치는 왜 저한테만 그래요.”

“어쭈? 왜 저한테만 그래요?”

“아니 그게 아니구요.”

으르렁대는 코치에게 제리가 깨갱대고 있을 때 나는 접속기를 벗고 건너편 팀원의 안색을 살폈다.

눈을 중심으로 코를 살짝 가리는 접속기 탓에 얼굴을 전부 확인할 순 없지만 굳게 다문 입술은 며칠째 그대로였다.

최근 사이클론은 컨디션 난조가 길어지고 있었다.

슬럼프였다. 팀이 연승 중이니 대부분 밝은 얼굴로 숙소 안을 돌아다니는 데 비해 그의 얼굴은 항상 굳어 있었다.

어느 게임이든 다 그렇지만 정상급 레벨의 선수들은 멘탈의 동요가 곧장 실력으로 직결된다.

이런 훈계로 해결할 게 아니라고 판단했는지 코치도 사이클론에겐 쓴소리를 피하는 편이었다.

내가 어떻게 도와줄 수 없는지 고민하고 있을 때 코치가 다시 다가왔다.

“접속 풀었구나. 그 저번에 네가 물어봤던 거 있잖아?”

“어떤거 말씀이세요?”

“레전드 크루 포격사조합, 누가 기획했는지 알아봐 달라고 했던 거 말이야.”

“아, 네.”

“그 팀 코치라더라.”

“코치요?”

조합 아이디어가 아주 뛰어난 기획자가 레전드 크루에 들어왔나? 그리 생각하고 있을 때 코치가 말을 덧붙였다.

“시즌 중에 합류했다는데···한국인이라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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