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OS 소설 아닌데요-30화 (30/170)

예기치 못한 파도를 타는 법 (3)

정령의 화산은 몸을 숨길만 한 장애물이 거의 없는 맵이다.

검게 변한 바위가 몇 개 있긴 하지만 마법으로 충분히 치울 수 있는 것들이다.

불의의 일격을 당한 우리 팀은 허리를 굽히고 웅크리면 간신히 몸을 숨길 수 있는 바위 뒤에서 태세를 정비했다.

“대체 뭐야?”

제리는 아직도 믿기지 않는단 기색이었다.

방패를 들고 방어에 들어간 실드나이트의 체력이 순간 80퍼센트가 날아갔다.

방어했는데도 그 정도면 다른 클래스는 한 방에 즉사란 뜻이다.

“스나이퍼 조합이야.”

“스나이퍼?”

상대 클래스 구성을 파악했을 때 느꼈던 불안함, 그 원인은 한 때 메타를 리드했던 강력한 조합이었다.

원거리 공격을 담당하는 포격사와 버프를 가동할 수 있는 클래스 셋을 조합해 만드는 스나이퍼 조합은 7년 이상 지속된 가이아 프로리그 모든 조합 중 최상위에 속하는 공격력을 지녔다.

문제는 어떻게 벌써 조합을 완성했느냔 거지.

수많은 게임이 누적됐던 전생의 프로리그 5라운드에선 별의별 조합이 다 등장했다. 그러나 당장 따라 하기 쉽지 않은 조합이 아주 많았다.

단순히 클래스만 같다고 따라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특수한 장비와 레어리티 스킬을 모두 갖춰야 시너지가 나오는 조합이 많은 탓이다.

당장 S.솔리드에서 포격사와 하이프리스트, 음양사를 갖추고 상대와 같은 구성을 짠다 해도 저 위력을 뽑아낼 수 없었다.

본래 포격사는 다수의 적을 몰이 사냥하는데 특화된 클래스라 웬만해선 엔트리에 올라올 일이 없다.

포격사란 클래스 자체가 필드사냥 전용으로 사람들의 인식에 박혀있다. 일대일 딜링이 탁월한 것도 아니고 데미지를 분산해 천천히 딜을 넣는 클래스는 PVP에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 포격사는 공격 형태를 바꿔주는 저격 라이플 장비를 갖춘 상황, 스나이퍼 조합의 시작점이지만 얻기 힘든 레어 장비다.

그나마 다행인 건 B급 라이플이란 점이다. A급 대물 저격총을 들고 왔으면 아무리 실드나이트가 방패를 들었어도 버프 없이 맞았으면 한방에 리타이어 했어야 한다.

‘설마 나 말고 또 다른 사람이 있나···?’

본래 스나이퍼 메타는 앞으로 3년 뒤에나 쓰인 조합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각 직업이 갖춰야 할 스킬을 전부 준비하고 라이플 장비를 맞춰 스나이퍼 조합을 이 시기에 굴리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여러 가능성을 더듬자 나 말고도 과거로 돌아온 사람이 또 있을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상대 팀 조합을 누가 짜 왔는진 몰라도 의견을 낸 사람이 있을 터, 어쩌면 그 사람도 나처럼 과거로 돌아온 사람일지 모른다.

그럼 상대방은 어떨까.

만약 그가 정말 과거로 돌아왔고 나처럼 특별한 능력을 손에 넣었다면, 그도 나를 보며 생각하지 않을까.

저 녀석도 과거로 돌아왔구나 라고.

“한솔, 어떻게 할 거야.”

마법을 쏟아내는 마법사들의 공세에 몸을 숨긴 바위는 너덜너덜해진 상태, 당장 움직여야 했다.

문제는 몸을 빼는 순간 포격사의 총구가 우릴 날려버릴 거란 점이다.

“잠깐만 생각 좀 할게.”

“빨리하는 게 좋을걸.”

케빈이 중얼거렸다. 이제 곧 바위가 무너지면 버틸 재간이 없었으니까.

나는 데뷔 이후 가장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본래 스나이퍼 조합의 약점은 기동력을 이용한 동시 공격, ‘저격모드’ 라는 특별한 스킬과 장비의 조합을 사용중인 포격사는 제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한다.

만약 이동하거나 다시 자리를 잡으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빠른 기동력을 우위로 각기 다른 방향에서 들어가 일단 붙기만 하면 그다음엔 게임을 유리하게 끌어갈 수 있다.

스나이퍼의 무서움은 거리 밖에서 날아오는 공격이지 근접전이 아니다.

‘근데 붙는 게 쉽지 않지.’

제대로 맞대응하기 위해선 이쪽도 다크레인저 같은 은신 특화 클래스를 보유해야 한다.

접근하려면 포격사의 살벌한 공격, 엘레멘탈 마스터의 화망을 뚫어야 하고 그 뒤로는 음양사의 결계가 기다리고 있다.

괜히 반년 가까이 리그를 호령한 조합이 아니다.

약점은 존재하나 약점을 뚫기 위한 준비도 만만찮은 상황.

그래도 아예 시도 조차 못해볼 정도로 단단하진 않을 것이다.

스나이퍼 조합이 3년 뒤에 뜬 이유는 약점이라 지적되는 부분을 커버하기 위한 장비와 스킬이 그쯤 해서 풀린 탓이다.

완성도 낮은 조합을 실전에 올릴 만큼 한국 프로 무대가 만만한 곳은 아니다.

그 말인즉, 지금 레전드 크루가 들고 온 조합은 급조라는 뜻.

“제리. 갖다 박자.”

“박으라고? 진짜 그거면 돼?”

척하면 척이다. 나는 지금 제리에게 드래곤 웨이브를 부탁했다. 공중으로 날아 유성처럼 떨어지는 드래곤 웨이브라면 저 진형을 대번에 박살낼 수 있다.

“데니스. 제리 데리고 거리 조금만 더 좁혀줘. 케빈. 부활 판단은 네 자유에 맡길게.”

플랜은 간단했다.

드래곤 웨이브가 최대 파워를 내는 지점까지 실드나이트를 앞세워 거리를 좁힌다.

화려한 이펙트와 함께 제리가 하늘로 날아오르면 적의 시선이 분산될 테니 그 틈을 노리고 내가 좌측으로 빙 돌아 적 진형을 유린 하는 전략.

매우 간단하고 지금 당장 우리가 낼 수 있는 것 중 최선의 수였다.

“간다.”

우리를 막아주던 검은 바위가 전부 무너졌을 때, 데니스는 방패를 들고 전진했다.

“파워 실드!”

순간 방패의 방어를 크게 끌어올린 뒤 뛰기 시작하자 마법이 쏟아져 날아왔다.

파워 실드는 어떤 공격이든 열 발까지만 위력을 줄인다.

엘레멘탈 마스터의 견제가 실드를 걷어내자 바로 뒤를 이어 포격사의 강공이 방패를 때렸다.

하지만 이번엔 방패도 꿈쩍하지 않았다.

어떤 공격이라도 1퍼센트 이상 체력 피해를 줄 수 없게 하는 전설급 스킬, 철의 방패가 둘러진 것이다.

“지금이야. 달려!”

철의 방패 지속시간은 5초, 스킬 한계 시간까지 거리를 좁혔을 때 제리의 몸이 불길과 함께 공중으로 날아올랐고 나 역시 왼쪽으로 빠져 부동보를 밟았다.

2초가 채 안 됐을 때 공중을 환하게 밝히며 불빛이 흩날렸다. 스킬을 시전 중이던 제리가 공중에서 폭사한 것이다.

온갖 버프를 받아 한 방 위력을 높인 포격사의 스나이핑은 공중에 있는 제리를 정확히 관통했다.

위력이 강하긴 하지만 유도 기능은 없을 텐데 용케 제리를 맞췄다.

대구경 탄창을 재장전하고 다시 날 겨누는데 아무리 빨라도 2초, 나는 장전이 끝날 때를 맞춰 그림자 서곡의 은신효과를 발동했다.

모습을 완전히 지울 수 있는 시간은 3초, 정령의 화산은 지면이 딱딱해 흙자국이 남지 않는다.

날 향하던 포격사의 총구가 멈칫 하고 길을 잃은 사이, 되살아난 제리가 시선을 끌기 위해 견제를 펼쳤다.

화력대 화력으로는 아크위자드가 엘레멘탈 마스터를 압도한다. 모습이 보이지 않는 나를 찾기 위해 쏟아지던 화망이 다시 팀원들을 향한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된다 싶을 때, 청색 도깨비들이 튀어나왔다.

음양사의 소환수, 식신이다.

고작 둘이지만 생각보다 날렵하다. 결계랑 식신으로만 먹고사는 직업이 그것마저 약하면 누가 하겠는가.

그러나 그건 평범한 유저 수준에서의 이야기, 리그 최상위 속도를 지닌 암살자에게 닿기엔 부족했다.

용의 충격이 좋은 점은 손과 발을 가리지 않고 뿜어낼 수 있으며 마력소모가 적다는 점, 무엇보다 기술 준비시간이 없다는 점에 있다.

크기가 3미터를 족히 넘는 식신의 무릎을 밟고 튀어올라 주먹과 발을 턱에 꽂자 커다란 몸뚱이가 넘어질 듯 휘청거린다.

“이익.”

마음대로 조종이 되지 않는 게 분했는지 음양사는 아랫입술을 깨물고 열심히 손을 놀린다.

자율 행동으론 도저히 나를 잡을 수 없다고 여긴 모양, 그러나 직접 명령을 내려도 마찬가지다.

음양사가 식신을 마음대로 움직이려면 일단 내 움직임을 보고 식신을 그에 맞춰 컨트롤 한다.

나는 보고 움직일 필요 없이 직접 손발을 뻗으면 된다.

몇 초 남짓한 사이에 식신 둘을 완벽히 무력화시킨 나는 옆구리, 어깨너머 틈새로 보이는 포격사를 예의 주시했다.

저 자식 무서운 놈이다.

제리, 데니스를 보는 척 하면서도 눈깔이 매직아이처럼 움직인다. 명백히 나를 견제하고 있는 눈치다.

식신을 방패 삼지 않았으면 이미 한방 쐈겠지.

이건 참을성 싸움이다.

부활스킬 도움으로 살아난 제리는 일대일 화력싸움에서 상대 엘레멘탈 마스터를 압도하는 상황, 케빈의 힐을 받으며 방패를 견고히 들어올린 데니스가 점점 거리를 좁혀주고 있다.

저격용 자세를 잡은 포격사는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한다. 시간이 십 초만 더 있어도 제리는 유의미한 타격을 포격사에게 뿜을 수 있다.

포격사도 그것을 알고 있지만 쏘지 못하는 이유는 순전히 나 때문이다.

데니스를 비롯한 제리 쪽에 탄을 쏘는 순간 내가 움직일 걸 알고 있기에 한 발을 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거다.

자, 어떻게 할래.

내가 열심히 밥 먹이며 던전을 돌아준 값을 제리가 톡톡히 하고 있는 상황.

눈알을 굴리던 포격사는 제리 쪽이 점점 접근하자 결단을 내렸다. 대구경 탄환은 데니스의 방패를 때려 흔들었고 빈틈으로 엘레멘탈 마스터의 마법이 쏟아졌다.

“아! S.솔리드! 순식간에 실드나이트와 아크위자드를 잃었습니다!”

“위기네요. 비숍도 체력 상태가 엉망입니다. 전력 외라고 봐야죠.”

-이건 힘들지.

-너네 썰 모르냐? 솔리드 5라운드는 무적임.

-유니크 신격화임?

-아예 물 위를 걷는다고 하지;;

S.솔리드는 절대 5라운드를지지 않는다. 유니크가 무너지지 않기 때문이다.

비프로스트를 포함한 프로들, 솔리드와 스크림을 겪은 선수들이 종종 입에 담았던 괴소문.

지금껏 리그 일정을 치르며 S.솔리드가 5라운드를 처음 하는 건 아니지만 유니크 혼자 해결해야 하는 상황은 이번이 처음이다.

소문의 진위를 궁금해하는 모든 시선이 내게 쏠렸을 때, 반쯤 시체나 다름없는 식신을 포격사에게 밀었다.

항마장을 터트려 그 거대한 몸뚱이를 밀자 포격사는 당황해하며 스킬을 풀었다.

우리를 괴롭히던 스나이퍼 모드가 해제되는 순간, 단숨에 달려가 목을 치려 했는데 좌우로 협공이 들어왔다.

왼쪽은 엘레멘탈 마스터의 원소 마법이, 오른쪽은 음양사의 부적이 소나기처럼 쏟아진다.

-와아아!

-이건 못 피하지!

부동보를 전력으로 밟으며 도저히 안 될 것 같은 순간은 이형환위의 짧은 회피 시간을 이용해 넘겼다.

-···?

-지금 뭐 본거임?

-저게 15퍼 너프먹은 캐릭의 움직임이라고?

-소름;;

투두두두-

자세를 푼 포격사의 화력지원까지 더해지자 체력 바가 확실히 깎이기 시작했다.

본래 콜로세움이 일대일 능력을 겨루는 전장이기에 일대다는 확실히 어려웠다.

처음 해링턴 대표의 눈에 들었을 때, 스크림에서 무적의 포스를 보였던 건 경험과 캐릭터가 지닌 무력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리그가 시작되고 어느 정도 육성기간을 거친 지금은 저들과 의 차이가 전만큼 큰 건 아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스탯 성장세는 둔화되고 저들도 실전 경험치를 꽤나 먹었다. 거기다 속도 15% 너프도 상당히 아팠다.

‘그래도 아직까진 내 턴이다.’

아래서 치고 올라오는 녀석들에게 자릴 물려주기엔 너무 이르다.

쏟아지는 마법에 항마장으로 맞섰다.

항마장은 제대로 된 원거리 공격이 아니기에 이런 식으로 마법을 커트하면 마력 소모가 컸다.

엘레멘탈 마스터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희희낙락했지만 내가 끝내 마법을 전부 막고 달려들자 숨을 집어삼켰다.

미친놈인가? 왜 마력이 안 닳아?

교룡뇌조와 용의 충격 연계에 당한 엘마의 눈빛이 그리 말하는 것 같았다.

A급 장비를 둘둘 말고 있는 내 마력은 프로 레벨 클래스와 비교해도 족히 몇 배는 더 앞서는 상황, 밑천이 모두 끝나기 전에 나는 곧장 음양사에게 달려들었다.

“힐! 히-일!”

얼마나 다급했는지 음양사 녀석은 앵무새처럼 힐만 외쳐댄다.

하이프리스트, 힐러 전직이며 버프와 중규모 힐을 담당하는 클래스다. 중간급 힐을 담당한다는 건 순수 힐량만 놓고 보면 비숍에 밀린다는 뜻이다.

다 클래스에 버프까지 주면서 힐량까지 높으면 누가 비숍을 하겠는가.

“힐! 힐!”

“시발!”

힐을 넣던 프리스트가 욕지기를 뱉는다.

양손에서 터져나온 권법과 조법이 힐 커버를 뛰어넘어 음양사를 찢어놨으니까.

“S.솔리드 유니크! 엄청난 공격력으로! 경기를 뒤집어 놓습니다!”

“어어어어어! 이러면 무도가가, 무도가가 잡아냅니다. 더블킬!”

관중과 중계진이 한몸으로 놀라는 순간, 포격사의 회심의 일격을 코앞에서 피해낸 나의 몸은 공중에서 한 바퀴 돌아 상대의 턱을 후려쳤다.

쩍하는 소리와 함께 고개가 돌아간 포격사는 그대로 주저앉아 사망을 알렸다.

“유니크-! 트리플킬!”

“터졌습니다. 완벽하게 터졌어요. 레전드 크루, 거의 다 잡은 경기였는데 이제 힐러밖에 안 남았어요!”

혼자 남은 힐러는 멍하니 날 쳐다보더니 체념했다는 듯 노란 균열을 향해 제 발로 걸어들어갔다.

불기둥이 솟아나는 균열에 힐러가 스스로 몸을 던지는 것을 끝으로 S.솔리드의 살짝 험난했던 스무 번째 경기가 마무리됐다.

하향 패치 속에서도 믿기 힘든 위력을 선보이며 슈퍼스타의 입구를 밟은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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