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기치 못한 파도를 타는 법 (2)
경기 출전을 중단한 지 3일이 지났다.
오랜만에 식사나 한번 하자고 해링턴 대표의 호출이 들어왔다. 세 번째 단독 식사였다.
애리조나의 야경을 볼 수 있는 3층짜리 식당, 나는 열심히 스테이크를 썰었다. 먹음직스러운 때깔 좋은 고기였다.
“경기는 꼬박꼬박 챙겨보고 있네. 정말 잘하더군. 숙소생활 하는 데 불편한 건 없나?”
“아주 좋습니다. 아무 문제도 없고요.”
“음. 자네 생각엔 출전 보류가 장기화될 것 같은가?”
“아닙니다. 늦어도 이번 주 마지막 경기 전엔 나갈 참이었습니다.”
존이 보고를 올렸겠지만 이번 건에 대해 한소리 들을지도 모른단 생각을 했다.
돈을 받았으면 돈값을 하는 게 프로다.
아무리 너프가 심해도 해보기도 전에 엔트리 제외 요청을 한 건 충분히 문제 삼을만한 일이었다.
그러나 해링턴 대표는 내가 경기를 쉬고 있는 것에 그 어떤 불만도 표시하지 않았다.
“자네를 나무랄 생각은 전혀 없네. 그래도 경기를 쉬겠다고 한 이유는 궁금하군.”
그는 입가에 살짝 묻은 소스를 닦아내며 물었다.
“첫째는 과한 밸런스 조정에 대한 항의죠.”
“두 번째가 있다는 이야기로군.”
“두 번째는 시선 집중입니다.”
“시선 집중?”
프로무대는 팬이 있어야 만들어진다.
그렇게 무대가 만들어지면 그다음은 성장의 단계, 이 성장 과정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존재가 바로 슈퍼스타다.
팬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 존재.
호수 위로 떨어져 다시 태어났을 때,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프로게이머를 하리라 맘먹었다.
전생엔 그리 주목받는 선수가 아니었지만 내가 아는 정보와 경험을 살리면 그토록 원하던 스타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
프로 무대에 조금이라도 미련이 남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나와 같은 선택을 했으리라.
“제 목표가 슈퍼스타거든요.”
“슈퍼스타. 슈퍼스타라···.”
대표는 어감이 마음에 들었는지 슈퍼스타를 되뇌었다.
“우리 팀에서 리그를 대표하는 스타가 나온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일이지. 금전적 이익은 뒤로하더라도 그 이미지로 발생하는 효과가 아주 크거든. 자네 혹시 조던에 대해 알고 있나?”
“조던이요? 농구 선수 말씀이십니까?”
농구엔 취미가 없지만 이름 정도는 들어봤다. 농구 경기를 본 적도 없는 내가 알 정도면 현역 시절엔 굉장한 선수였겠지.
“그가 내 또래의 젊은 시절을 대표하던 슈퍼스타였지. 그런 선수가 되는 일은 정말 힘들겠지만 프로 선수로서 그보다 더 뛰어난 영예를 누리긴 힘들 거야. 이 판이 더 커지면 그런 선수가 나올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생각하네.”
해링턴 대표는 눈을 반짝였다.
“지금 시점에선 자네가 가장 유력해 보이는군.”
“감사합니다.”
“시선집중은 현재 상황을 자넬 돋보이게 만들 장치로 이용한다는 뜻이겠지?”
“예.”
현재 암살 클래스의 공식전 승률은 패치를 기점으로 처참하게 박살 났다.
잘못된 패치라는 걸 알리기 위해선 나도 그 대열에 동참하는 게 더 낫겠지만 무패신화가 깨지면 나를 두르고 있던 아우라도 같이 벗겨지게 된다.
팬들 상당수는 등을 돌리겠지.
그저 강한 선수를 쫓아 내 팬을 자청하는 팬들도 상당수 있는 상황, 지금 무패가 깨지면 매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음. 내가 자네 경기를 쭉 봤는데 말이야.”
와인을 들이킨 대표는 조용히 말했다.
“드라마가 좀 아쉬워.”
“드라마요?”
“사람들이 자네에게 빠져들 수 있는 그런 요소, 이야깃거리 말이야. 자네 경기는 너무 압도적이거든. 일대일에선 그 저력을 정확히 볼 수 없지. 그저 승률 100퍼센트라는 숫자만이 자네를 보여주지.”
그게 거의 전부 아닌가? 프로는 승률로 말한다.
아무리 멋있는 퍼포먼스를 선보여도 승률이 낮으면 B급 선수도 못 된다.
반대로 성실한 플레이로 재미는 없어도 승리를 밥 먹듯 가져오면 서서히 주가가 오른다.
물론 재미없는 스타일로 어중간한 승률을 거두면 문제가 있지만 나는 아직 무패다.
사이클론도 전승이 깨진 마당, 경기 횟수가 10번 이상인 선수 중 전승가도를 달리는 선수는 이제 나뿐이었다.
절대 지지 않는 프로 선수, 그런 선수는 스타일의 단조로움을 얼마든지 커버하고 시선을 끄는 존재다.
“자네도 사람인 이상 리그를 전승으로 마무리 지을 순 없겠지.”
밑천을 드러내면 적어도 올 한 해는 끄떡없다 말하고 싶었지만 입을 꾹 다물었다.
“나는 슈퍼스타의 탄생엔 반드시 극적인 드라마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네. 자네의 생각을 알았으니 한 번 준비해보도록 하지.”
“어떤 준비를 하신다는 건지···.”
“오늘 오전에 지오에서 내게 연락을 해오더군. 자넬 출전시켜 달라는 이야기로.”
지오가 대표에게 직접 연락했을 줄이야.
속내를 짐작해 보면 일단 이번 패치에 대한 실수를 자신들도 인지하고 있다는 것, 그래도 하루아침에 손바닥 뒤집어 롤백하기엔 자존심 상하니 일단 불만을 키우는 원인 중 하나인 나를 리그로 불러들이려는 계산이 아닐지 생각됐다.
“그럼 내일부터 경기에 나서야 할까요?”
“괜찮네. 자네 출전은 토요일이라고 따로 전하지. 그래 봤자 모레 아닌가.”
대표가 신임해준다는 사실이 이렇게나 든든할 줄이야.
매번 오늘 엔트리를 들 순 있을지, 감독 이전에 코치의 신임을 얻기 위해 밤을 새가며 연습해가던 때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올 지경이다.
“여론을 보니 이번 패치에 불만이 많은 유저들이 상당히 많더군.”
그냥 평범한 불만이 아니다.
지오 정도의 초거대 기업이 아니었으면 진즉 사과문 걸고 롤백하겠다고 했을 정도로 상황이 뜨거웠다.
“자네를 5라운드에 내보내도록 조치하지.”
“5라운드 말입니까?”
“마지막에 주인공처럼 등장해 팀을 승리로 이끌면 그림이 좋지 않은가.”
우리 대표님, 은근 이런 거 좋아하시는 모양이다.
하지만 팀이 4라운드 전에 승리할 수도 있었다. 내가 빠진 뒤 S.솔리드의 3게임 전적은 2승 1패.
승률은 좋은 편이었다.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대표가 말했다.
“뭘 고민하고 그러나. 그럼 자네 출전은 다음 주로 미뤄지는 거지. 하하.”
***
주말 토요일 경기가 열리는 프로리그 콜로세움 아레나.
6만석 규모인 경기장은 팀을 막론하고 항상 매진을 기록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빨리 자리가 매진되는 팀, S.솔리드.
관중석에 앉아있던 유저들은 서로 의견을 주고 받으며 사담을 나누는 중이었다.
오늘 마지막 순서로 배치된 S.솔리드 상대 팀은 레전드 크루.
-오늘도 유니크 안나오나.
-솔직히 거품 꺼진거지. 강캐충 언제까지 빨아줄 건데. 밸런스 맞추니까 코빼기도 안보이는구만.
-너 호넷빠지.
-아닌데 크루 팬인데.
-저새끼 내가 어제 봄. 호넷 빠임.
-호넷 팬들은 다 왜 저러냐? 존나 극성임.
-호넷 애들 방송하는거 보면 답 딱 나오잖음. 킹니크한테 열등감있음.
관중들의 웅성거리는 소리를 뚫고 캐스터의 음성이 장내에 퍼진다.
“오늘의 다섯 번째 매치! 레전드 크루와 S.솔리드의 경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캐스터가 안내를 하는 사이 엔트리를 받아든 숀 어빈은 조금 놀란 톤으로 말했다.
“팬분들에겐 기쁜 소식일 텐데요. 오늘 S.솔리드 출전 명단에 유니크 선수가 있습니다.”
그 말에 관중들은 신이나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물론 전부 신난 건 아니었다.
-좋단다. 솔리드 새끼들.
-오늘이 느그니크 제삿날이야.
소수 팬들이 구시렁거렸지만 솔리드 팬들은 전혀 개의치 않고 파도타기를 하며 분위기를 띄웠다.
-왜 이제야 왔어~ 기다렸자나~
-내 친구가 그러는데 유니크가 A급 던전 혼자 루팅한다더라.
-아무리 그래도 적당히 믿을만한 말을 해야지. 어쨌든 그동안 폐관수련하고 온건 사실인 듯. 오늘 뭔가 보여주나?
-구라 아니야!
흐느적거렸던 경기장 분위기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불타올랐다.
“유니크 선수가 5일만에 경기를 출전하는군요. 의도적인 엔트리 제외로 그간 말이 좀 있었는데 오늘은 과연 암살 클래스 너프에 대한 해결책을 준비했을지 기대가 되네요. 어떻게 보시나요.”
“지금 커뮤니티나 프로팀 의견을 종합해 봐도 15% 너프는 너무 과하단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경기에 나선 모든 암살계 유저가 전부 승률이 엉망이 됐거든요? 아무리 유니크 선수라도 힘의 근간을 흔드는 패치였기에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모두가 시선이 쏠린 가운데 경기가 시작됐다.
1라운드는 아그니, 제리의 몫이었다.
광채의 신전에서 끈기있게 단련해 낸 제리의 스탯은 서버 마도사 가장 윗줄에 있었고 몸놀림도 아주 좋은 상태였다.
팀원들의 응원을 받으며 무대 위에 선 제리는 아크위자드 맞대결에서 팀에 승리를 안겼다.
2라운드 맵은 십만 대산.
브라이언 코치는 구석에 앉아있던 한솔을 바라봤다.
최근 승률이 5할 이하로 떨어진 사이클론은 이미 엔트리에서 제외된 상태, 한솔은 오늘 양 팀을 통틀어 유일한 암살 클래스였다.
그만큼 암살계 유저는 플레이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었다.
“으음···.”
본래라면 십만 대산에 암살 클래스를 출전시키는 게 최선이지만 5라운드를 맞이하기 전엔 한솔을 쓰지 말라는 오더가 있었다.
코치는 눈만 몇 번 깜빡이더니 고개를 돌려 마이클에게 턱짓했다.
“마이클. 2라운드를 맡아라.”
“예.”
닉네임 오디세이아.
엘레멘탈 마스터를 다루는 마이클은 제리와 함께 팀내 1, 2위를 나란히하는 마딜 장인이다.
“아! S.솔리드에서 유니크 선수 대신 겟아웃 선수를 내보내는군요?”
“십만 대산은 암살 클래스 전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맵입니다. 여기서 유니크 선수 대신 다른 선수를 기용하는 건 조금 이해가 안 되네요.”
-이해가 안되긴 뭐가 안돼. 토템이네.
-벤치 승리요정 ㅋㅋㅋㅋㅋㅋㅋ
-아무것도 모르면 조용히해. 다 작전임.
-무슨 작전인데~십만대산 좆살계 상성맵 아니냐~?
-7위따리 주제에 뭘 알려고 그래!
-ㅇㅈ. 7따리가 토템 타령하고 있네. 역겹게.
양팀 팬이 이를 악물고 서로를 뜯는 가운데 두 번째 경기가 시작됐다.
***
“···한솔아. 한솔아?”
“네?”
“정신을 어디다 팔고 있는 거야. 준비됐냐고.”
“예.”
코치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잠시 잠겨있던 상념에서 깨어나 눈을 떴다.
스코어 2:2.
제리와 마이클, 두 마법사가 라운드를 가져왔지만 3, 4라운드를 연달아 내주는 바람에 승부는 5라운드에 돌입했다.
-유.니.크!
-유.니.크!
-유.니.크!
귀가 먹먹할 정도, 관중들이 한목소리로 내 이름을 외치고 있었다.
관중의 함성은 게임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경기가 시작되면 완벽히 차단되지만 이런 대기시간, 작전시간엔 있는 그대로 소리가 들렸다.
“팬들이 너 부른다. 자신 있지?”
“예. 문제없습니다.”
“다들 올라가!”
코치는 오늘 명단에서 네 명을 뽑아 올렸다.
실드나이트, 아크위자드, 무도가, 비숍으로 구성된 밸런스 조합이었다.
우리가 무대 위에 서자 응원소리가 더욱 커졌다.
-와아아아!
-기다렸다고!
-왕이 돌아왔다. 길 터라.
-킹니크 갓!
일방적인 응원에 레전드 크루 선수들은 재수 없는 꼴 본다는 듯 우릴 노려봤다.
“저쪽 조합 이상하지 않아?”
아직 무대가 전장으로 변하기 전, 상대의 얼굴을 유심히 살핀 제리가 말했다.
이제 프로 무대를 꽤 치렀기에 상대 얼굴만 보고도 어떤 캐릭을 들고 나올지 예상이 가능했다.
상대 조합은 엘레만탈 마스터, 음양사, 포격사, 하이프리스트로 구성된 기이한 조합이었다.
3마딜인데다 포격사까지?
상대 조합을 본 순간 나는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뭔가 기억이 날듯말듯한 가운데 콜로세움이 마지막 게임을 위한 전장으로 변화했다.
[5라운드 - 정령의 화산]
시간이 지날수록 발 밑에서 불이 치솟는 전장.
몸을 숨길 곳이 많지 않아 3마딜을 선택한 레전드 크루에 웃어주는 맵이었다.
어디선가 날아드는 불티를 시작으로 전장에 내려섰을 때 우리는 상대 팀과 시선을 마주했다.
“쟤들 뭐 잘못 먹었나?”
우릴 보며 웃는 크루 선수들을 보며 제리가 떨떠름하게 말했다. 5라운드에서 단 한 번도 져본 적 없는 S.솔리드는 최종전의 제왕이라는 별명이 생겼을 정도.
그간 호되게 당한 팀들이 수두룩했기에 저런 여유로운 반응은 참신하다 못해 어딘가 수상하단 생각을 들게 했다.
눈 한 번 깜빡이는 사이, 상대가 먼저 진형을 취해 자리를 잡았다.
포격사를 가운데 두고 삼각형 포지션을 취하는 레전드 크루의 모습에 난 오싹한 한기를 느꼈다.
“방패!”
잽싸게 고갤 돌려 외쳤다.
방패 뒤로 모이라는 신호에 팀원들이 달려오던 찰나 둔탁한 무언가가 실드나이트의 방패를 강타했다.
그리고 크게 폭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