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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OS 소설 아닌데요-28화 (28/170)

예기치 못한 파도를 타는 법 (1)

S.솔리드가 프로리그 첫 승리를 거둔지 어느덧 2주가 지났다. 가이아 프로리그는 일요일과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진행된다.

지난 2주 동안 팀은 10전 전승을 기록하며 순항 중이었고 그에 비례해 우리 팀에 쏟아지는 관심은 날이 다르게 커졌다.

다른 팀들은 머리를 맞대고 S.솔리드 대응책 만들기에 열을 올렸지만 아직 이렇다 할 대책은 없었다.

나와 사이클론이 완벽하게 상대를 제압하는 카드로 자리매김하다 보니 초반엔 상성 우위를 위해 아크나이트 같은 탱커를 기용하는 팀이 많았다.

그러나 상성 상 유리한 클래스를 보내도 계속 깨지기만 하자 그들은 작전을 바꿨다. 암살계 기용을 늘리는 쪽으로.

이번엔 즉각 반응이 왔다.

각 게임단이 암살 클래스 기용률을 올리자 5라운드 풀접전이 벌어지는 빈도가 늘어났다.

내가 전생의 6년 경험치를 접어두고 탱커 대신 암살계를 택한 이유를 다른 팀도 깨달은 것이다.

이 시기의 암살 클래스는 민첩 스탯으로 인한 속도 보정이 살짝 과해 흔히 OP(Over Power)로 취급되는 부류였다. 사기를 치는 것도 아니고 원래 강한 캐릭터가 있는데 쓰지 않을 프로팀은 없다.

트렌드를 선도하는 프로 선수들이 암살 클래스에 힘을 주자 랭크 매치에도 암살자가 대거 득세하기 시작했고 해당 장비와 스킬 가치가 상당히 치솟았다.

여기까진 전생에서도 익히 알고 있던 흐름이라 딱히 이상할 게 없었는데 문제는 그 후에 발생했다.

리그 2위 레드불스와의 대결에서 승리를 거두고 15연승을 올린 평화로운 주말, 브라이언 코치는 당황스러운 기색으로 선수들을 불러모았다.

“모두 모여!”

코치뿐만 아니라 감독도 표정이 어두웠다.

대체 무슨 일이기에···? 웬만한 일엔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던 나도 코치가 건넨 자료를 보고선 눈썹을 모았다.

“이거 언제 적용이래요?”

사이클론이 답답한 기색으로 물었다.

“오늘 자정 긴급 패치라더라. 뭐 이런 날벼락이···.”

진짜 날벼락이었다. 코치가 가지고 온 건 다음주 개발측에서 긴급픽스란 명목하에 행하는 패치 내용이었다.

열 가지가 넘는 항목이 차주에 업데이트되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 1번 항목이었다.

<민첩스탯에 따른 모든 클래스 속도 상승 폭을 15% 하향 적용할 예정입니다. 데이터 수집 기간을 두고 향후 수치를 재조정할 수 있습니다.>

풀이하자면 민첩 스탯에 의존하는 암살계의 힘을 줄이겠단 뜻이었다. 당장 패치가 적용되면 최고 스피드가 1할 이상 줄어든단 뜻인데 프로 레벨에선 말도 못할 차이였다.

사이클론은 현재 전승을 달리고 있지만 패치가 적용되면 전승은 어림없었다.

지금도 실력있는 탱커를 상대로 종이 한 장 차이 승부를 가져온 게 다섯 게임은 되는데 패치가 적용됐다면 그 게임은 전부 진 거나 마찬가지였다.

나 때문에 미래가 바뀐 건가?

암살 클래스의 전성기는 내가 알던 과거에서 최소 일 년은 지속되는 메타였다.

가이아란 게임 자체가 밸런스 패치를 자주 하는 게임도 아니었다.

1년 마다 서버의 맵 데이터를 리셋 하는 것만 해도 엄청난 대작업이다.

패치는 보통 서버를 새로 오픈하는 연초에 한 번 하거나 6개월에 한 번 찔러넣는 식이다.

긴급 패치란 명목하에 급하게 이뤄진 밸런스 조정은 내 기억 속에선 없던 경우였다.

게다가 이 하향 폭.

전생에서도 약 10% 조정을 했던 거로 알고 있는데 패치 핵심인 15%와 비교하면 하늘과 땅 만큼이나 차이가 났다.

“이거 미리 적용할 수 있어요?”

“필드 사냥은 안 되지만 커스텀 게임에선 미리 적응할 수 있도록 조정해준다고 연락 왔다.”

“지금 접속할게요.”

배를 채우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듯 사이클론은 손에 집고 있던 빵을 내려놓고 당장 게임에 접속했다.

우리 팀에서 암살 클래스를 다루는 선수는 나와 사이클론을 포함해 총 셋, 너 나 할 것 없이 팀원들은 콜로세움에 접속해 커스텀 게임을 시작했다.

다들 사태의 심각성을 느꼈는지 암살 클래스 연습을 도와주는 데 최선을 다했다.

결과는 끔찍했다. 암살계 당사자는 말할 것도 없고 도와준 팀원들도 이게 얼마나 큰 너프인지 피부로 느꼈다.

“이건 밸런스 조정이 아니라 대놓고 칼질이잖아. 적당히 해야지!”

애덤은 접속을 끊고 나와 탄산을 들이키며 분을 풀었다.

나는 뒷목을 주무르며 연습을 도와준 데니스에게 물었다.

데니스는 내가 팀에 직접 영입을 추천한 최상급 실드나이트다.

“어땠어.”

“체감이···많이 되더라.”

자리를 건너뛰고 옆에서 애덤이 씩씩거리고 있어서인지 그는 의견을 밝히기 조심스러워했다.

아마 내 속이 말이 아닐 거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편하게 얘기해도 돼. 괜찮아.”

미래가 달라졌단 사실에 조금 놀라긴 했지만 캐릭터 점검 후, 난 이미 평정심을 되찾은 상태였다.

시기가 빨라지긴 했지만 암살 클래스는 본래 하향될 운명이었다.

데니스에겐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조금 전 점검에서 의도적으로 실력을 줄여 팽팽한 줄타기를 연출했다.

그 사실을 모르는 감독과 코치 얼굴엔 먹구름이 가득했다.

데니스와 공방을 주고받은 나는 스킬 연계의 수준을 끌어올리면 아직 경쟁력은 충분하단 사실을 확인했다.

그런데도 밀리는 연기를 한 것은 앞으로 할 행동에 당위성을 심기 위함이었다.

“뭐라고···?”

나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감독과 코치에게 다가가 의사를 전달했다. 이야길들은 감독은 눈만 깜빡거렸고 당황한 코치가 나를 말렸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당장 하향이 됐어도 아직은 네가 꼭 필요해!”

“당분간만요. 저도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고, 조금 시간을 주시면 해결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나의 발언은 승리가 필요한 감독 입장에선 핵폭탄 그 자체였다. 승률 100퍼센트를 자랑하는 팀의 에이스를 엔트리에서 제외해달라는 게 폭탄의 정체였다.

“이거 쉽게 생각할 일 아니다.”

감독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네가 출전을 거부하면 계약 문제로 불거질 수도 있어.”

“감독님이 허락해주시면 상관없지 않습니까.”

감독은 슥 주변을 둘러보더니 다른 선수들이 없음을 확인하고서야 말을 이었다.

“애덤이나 조던 같은 친구들이었으면 내 재량하에 얼마든지 그렇게 해줄 수 있다. 하지만 넌 안 돼. 대표님이 눈여겨보시는 건 알고 있지? 내 선에서 처리할 문제가 아니야.”

팀 내 최고 연봉을 받는 선수가 출전을 하지 않겠다고 해서 ‘그래 쉬다 와.’ 해버리면 감독의 팀 장악력이 의심받는다.

역사가 오래 된 스포츠에선 으레 감독이 전권을 쥐고 팀을 운영하는 경우가 많지만 아직 e스포츠계에선 프런트, 스폰서의 파워가 훨씬 강했다.

감독이 혼자 모든 걸 결정할 수 없는 처지였다.

“그럼 전달만이라도 해주세요. 위에서 안 되겠다고 하면 저도 군말 없이 경기 출전 하겠습니다.”

“···그래. 알았다.”

월요일, 존이 숙소에 출근하자 감독과 코치, 셋이 모여 이야기를 나눴다.

그 자리에서 내 요구에 대한 선조치 후보고가 결정됐다.

“대표님껜 제가 따로 말씀드리죠.”

내 계약을 위해 한국까지 왔던 존 길버트, S.솔리드 프런트 담당인 그는 본래 해링턴 회장의 비서출신이었다고 했다.

팀 내에서도 실세로 속하는지라 감독도 그에겐 한 수 접어주는 그림이었다.

“그렇게 해주신다면 뭐···. 브라이언, 한솔이 빠져도 내일 경기 문제 없겠어?”

“괜찮습니다. 팀 스크림 한창 돌릴 때도 한솔이랑, 마커스 둘 빼고 승률 잘 나왔으니까요.”

스크림 당시 S.솔리드는 사이클론과 나를 빼고도 8할 가까운 승률을 기록했다.

물론 다른 팀의 실전 감각이 크게 올라온 상태라 그 정도까진 안 되겠지만 당장 연패로 고꾸라질 일은 없을 듯했다.

“경기에 출전하지 않더라도 모니터링은 함께해야 한다.”

“예.”

출전 엔트리에 들지 못하더라도 팀의 경기 시간이 되면 1군 선수, 연습생 할 거 없이 모두 스크린 앞에 모여 경기를 시청하는 게 일반적인 스포츠팀 관례다.

*

이튿날, 내가 손에 간식거리를 들고 숙소 대형스크린 소파에 앉자 팀원들이 놀란 얼굴로 쳐다본다.

“뭐야. 한솔이 너 왜 여깄어?”

“설마 감독님이 엔트리에서 뺀 거야?”

S.솔리드 숙소에서 지내는 인원은 총 열 둘.

당일 명단에 들지 못하면 이렇게 숙소에서 모니터링을 하게 되는데 이 시간에 소파에 앉은 건 처음이었다.

“패치 후에 연습하는 거 우리도 봤어. 근데 너 정도면 아직 실전에서 충분히 통하잖아.”

애덤이 얼굴에 그림자를 잔뜩 끼고 말했다.

팀에 최상위 암살 클래스 유저가 둘이나 있는 탓에 다크레인저를 다루는 애덤은 항상 벤치 신세였다.

아무리 암살계가 득세했어도 엔트리에 세 명이나 올리긴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같이 소파에 앉아있던 팀원들도 애덤을 거들었다.

“그래. 너도 알겠지만 데니스 그 녀석 방어 하나는 끝내주잖아. 점검 때 거의 대등했던 거 아니었어? 데니스니까 막았지. 아마 다른 팀 애들은 못 막을걸?”

“내가 빠지겠다고 한 거야.”

“네가 직접? 감독님이 허락하셨어?”

나를 제외한 다섯 명 모두 놀라 했다.

번갈아가며 로테이션을 도는 친구도 있지만 애덤처럼 만년 벤치 신세를 지는 친구는 스스로 자리에서 빼달라는 나의 요구를 이해하지 못할 터였다.

아무리 팀에서 거액을 챙겨준들 선수라면 경기를 뛰고 싶어한다.

차마 대놓고 말하진 못해도 뭐 이런 놈이 있나 싶은 눈치다.

총 맞고 죽기 전의 나였다면 같은 생각을 했을 거다.

누군가에겐 정말 간절한 출전자리다.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내가 엔트리 제외를 요구한 건 과도한 패치에 대한 작은 항의였다.

현재 리그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선수는 누가 뭐래도 나다. 팬의 사랑을 차지할 수 있는 퍼포먼스를 과감히 선보였으니까.

그런 내가 패치 한방에 쏙 들어간다?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스타 선수가 리그 출전을 거부하면 운영진도 바보가 아닌 이상 깨달을 거다.

이번 패치는 그 정도가 지나쳤다고 말이다.

물론 나 홀로 출전 거부라면 약발이 잘 듣지 않겠지만 난 확신했다. 암살클래스는 한동안 암흑기 당첨이었다.

10퍼센트까진 전생에서도 적당한 밸런스라고 했기에 할 말 없지만 15퍼센트는 심각했다.

특히 아직 선수들 역량이 한창 개발되고 있는 시기에선 더욱 그랬다.

원래대로 되돌리는 것까진 바라지 않았다.

적어도 10퍼센트 하향 선으로 돌려줘야 선수들이 다시 폼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

‘너무 상처받지 말아야 할 텐데.’

스크린에 비친 사이클론의 얼굴은 창백하기 그지없었다.

크게 낮아진 캐릭터 성능에 격분하던 애덤과 달리 그는 성능 테스트 때도 조용하기만 했다.

이번 패치가 별거 아니라고 생각한 건 아닐 터였다.

곁에서 지켜본 사이클론은 무슨 일이 있으면 화를 내기보단 조용히 속에 담아두고 혼자 끙끙대는 성격이었다.

갑자기 약해진 캐릭터, 15퍼센트는 아직 경험이 부족한 그에게 감당하기 힘든 수치다.

가이아는 혼자 모든 걸 캐리 할 수 있는 게임이 아니다.

올해 우승, 그리고 내년에 있을 월드 챔피언십, 그 모든 트로피를 위해서 딜러인 사이클론의 성장은 반드시 필요했다.

여기서 무너지면 진짜 죽도 밥도 안될 상황.

나는 사이클론을 응원하며 각종 커뮤니티 반응을 살폈다.

-뭐야. 유니크 어디 갔음?

-킹니크 안 보이는데. 출전 안 한 듯?

-님들 소식 못들음? 오늘 지오가 암살자 조져놨음. 관에 처박고 못질함.

-기사 방금 떴음. 민첩 스탯 칼질해버림. 15퍼센트 ㅇㅇ

-15퍼면 할만하지 않나.

-미친 소리 하지마. 15퍼면 걍 팔한짝 자른 수준임;

-암살애들 꿀 오지게 빨더니 이제야 밸런스 맞춘거임.

-겜알못 새기들이랑 얘기 못하겠네.

-꼬우면 아시죠?

암살계에게 당한 게 많은 유저들은 이제야 균형이 맞는 거라고 치열하게 물어뜯었고 프로리그의 암살 클래스 강세로 이제 막 육성을 시작한 유저들은 과한 너프라며 목소릴 높였다.

반반으로 갈려 치열하게 싸우던 의견은 열 개 팀 경기가 모두 끝날 즈음이 되자 과했다는 쪽으로 기울어졌다.

-더는 못하겠네요. 암살스킨 환불합니다.

-발로 패치하나.

-아아아ㅏㅏㅏㅏㅏ

-적당히 조절해야지. 한방에 병신을 만들어버리네;;

단 1승.

그마저도 같은 암살 클래스 경기에서 얻은 승리였다.

이 충격적인 결과에 선수들은 물론이고 유저들도 커뮤니티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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