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OS 소설 아닌데요-26화 (26/170)

프로리그 개막 (2)

가이아 프로리그는 1년에 한 번 진행된다.

리그에 올라오는 팀은 열 개 팀, 게임단은 타 팀 모두와 10게임씩을 치른다.

적은 게임 숫자가 아니다. 한 팀당 90게임, 풀리그 450게임이 발생한다.

매주 5일씩 풀리그를 치르는 데 걸리는 시간이 4개월, 플레이오프 한 달을 합쳐 5개월에 이르는 제법 긴 여정이다.

실력과 운, 멘탈, 체력 관리까지.

기복 없이 긴 레이스를 성공적으로 치르려면 신경 써야 할 요소가 한둘이 아니다.

그리고 긴 일정을 치르는 스포츠에서 매우 중요시하는 포인트가 바로 흐름이다.

그리고 이 흐름을 끌어오는데 가장 편한 방법은 첫 경기를 잡아내는 것이다.

아직 1라운드 맵으로 변하기 전, 원형 경기장에 앉아있는 수만 관중이 양 팀 선수들을 향해 뜨거운 시선을 보낸다.

가이아 리그 중계권을 방송사와 계약했기 때문에 기존의 무료 관전은 불가능했다.

직접 경기장 관중석에 앉으려면 TV로 보는 것보다 더 많은 비용을 써야 했다. 즉, 지금 관중석에 있는 유저들은 가이아 골수 팬이란 뜻이다.

-솔

-리

-라이징!

-드

-라이징!

본게임은 시작도 안했는데 응원 열기가 대단했다.

열 개 팀이 순서에 맞춰 전부 경기를 진행하게 되는데 우리 팀은 공교롭게도 첫 번째 순서였다.

이런 뜨거운 현장을 처음 마주하면 신입은 열에 아홉은 몸이 굳는다.

열기 속에 혼자 몸이 차갑게 식어서 굳는 감각은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설명하기 살짝 힘들 정도로 묘한 느낌이다.

저편을 슬쩍 보니 부산하게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나누는 상대 팀이 보인다.

라이징 게이밍 클럽, 라이징 G.C라 불리는 이 팀은 나와 실제로 붙은 경험은 없었다.

스크림 후반부에나 우리와 교류를 가졌는데 그때는 나와 사이클론이 엔트리에서 빠지고 12인을 고루 테스트하던 시기라 마주칠 일이 없었다.

직접 붙어본 건 아니더라도 코치의 동료들의 평가로 어느 정도 실력인지를 가늠할 수 있었는데 더도 말고 딱 중간쯤 되는 팀이었다.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려면 최소 4위 이상의 성과를 얻어야 하는데 냉정하게 라이징 G.C는 6위 정도 팀이었다.

한 달 전에 처참하게 무너진 레드불스도 우리팀을 제외하면 고승률을 기록하는 탄탄한 팀이고 슈퍼호넷도 마찬가지다.

플레이오프로 가는 티켓을 S.솔리드를 포함한 기존 3강이 한 장씩 나눠 가지면 남은 자리는 고작 하나다.

웬만한 실력이 아니고선 가을에 얼굴보기 힘들단 소리다.

팀의 응원을 받으며 마이클이 무대 위로 올랐다.

1라운드의 시작을 알리며 무대가 전장으로 격변하기 시작했다.

***

-이야. 시스템 때깔 좋은거바.

-솔직히 좀 비싸다고 생각했는데 돈 값 하네.

-다음에도 유료 관전해야겠다.

-선수 모공도 볼 수 있을 듯.

오픈 버프인지 6만의 유료 관중석은 꽉 찬 상태였다.

오늘 경기 관람을 위한 티켓값은 1게임당 10달러, 당일 모든 경기를 일괄 결제하면 42달러로 할인이 적용됐다.

자리를 차지한 관중들은 무료 관전과 유료 관전의 차이를 느끼며 감탄했다.

일단 랭크 매칭을 돌리는 상위 유저들의 경기를 볼 땐 관중석과 중앙의 거리가 있어 아주 자세한 움직임을 보기 힘들었다.

그러나 프로리그 시청을 할 땐 자유로운 시점의 줌인 기능이 적용되어 더 사실감 있는 경기를 볼 수 있었다.

또한 선수의 시야에서 경기를 시청하는 것도 가능했다.

매일 시청하는 건 부담될 수 있지만 자신이 원하는 팀의 경기만 골라서 시청하면 돈값은 하는 구조였다.

-근데 팝콘이랑 콜라 못 먹는 건 아쉽다.

-ㄹㅇ루. 빨리 외계인 고문해서 경기보면서 팝콘 먹을 수 있게 해야됨.

-이 정도만 해도 솔직히 말 안되는 거 같음. 지오 본사에 외계인 숙소 따로 있을듯;;

관중들이 신기능에 감탄하고 있을 때 경기장 위로 폭죽이 터지며 캐스터에 우렁찬 외침이 장내를 울렸다.

“가이아 프로리그를 찾아주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캐스터를 맡게 된 그랜 휘태커.”

“해설, 숀 어빈입니다. 반갑습니다.”

각종 게임 방송 진행으로 잔뼈가 굵은 노련한 캐스터와 해설이 게임의 시작을 알렸다.

“첫 번째 경기는 라이징G.C와 화제의 그 팀입니다. S.솔리드죠?”

“주목도는 놀라울 정도입니다. 지금껏 많은 e스포츠 종목을 중계했지만 이제 갓 출범한 리그 신생팀에 이 정도의 관심이 쏟아지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화제는 화제임. 내 친구도 오늘 1경기 예매 실패했음.

-돈을 준다는데 왜 받질 않아;

-유니크 나오는 경기면 10달러 가치 충분하지.

-근데 유니크 나오기 전에 솔리드가 3승으로 끝낼수도 있지않음?

-재수없는 소리마; 킹오몬 보러왔단 말야.

“자, 시작 전 승자 예측 그래프를 보실까요. 차이가 상당합니다. S.솔리드의 승리 예측 확률이 92퍼센트가 나왔거든요. 어떻게 보십니까.”

“딱 사람들의 기대를 잘 표현한 숫자라고 봅니다.”

세븐스타로 십 년 이상 명성을 날린 숀 어빈은 오히려 더 압도적인 결과를 낼지 모른다며 솔리드 띄우기를 시작했다.

“제가 격투 게임 장르를 이것저것 다양하게 접했지만 이런 강팀은 본 적이 없습니다. 마치 각 팀 에이스들만 추려놓은 느낌이죠. 정말 뛰어난 선수들인데 그중에서도 닉네임 유니크를 쓰는 정한솔 선수를 주목해 주시죠.”

“유니크. 솔리드 3번 엔트리에 있는 선수군요. 이 선수의 재능이 숀 어빈의 시선을 사로잡을 정도였습니까?”

“시선뿐만이 아닙니다. 격투게임 팬이라면 마음까지 모두 빼앗길 정도의 타고난 재능을 보유한 친굽니다.”

-숀 어빈 칭찬 떴다 ㄷㄷ

-모두까기 숀 아니었음?

-ㅇㅇ 칭찬 거의 안함. 근데 킹오몬은 그런 소리 들을만하지. 보고 못막는 걸 보고 막음.

-킹니크 갓···.

“숀 해설이 그렇게 말할 정도면 정말 기대가 되는군요. 오늘 꼭 유니크 선수가 나와줬으면 좋겠는데요.”

-제발···.

-안 나오면 환불 시위해도 무죄임;

“아! 마침 전장이 변화를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함성 소리로 선수들을 응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게임을 시작합니다!”

관중석과 선수의 경계가 녹아들며 일대는 활활 타는 거대한 화산으로 변한다.

[1라운드 - 정령의 화산]

[라이징 G.C 다크레인저 vs S.솔리드 엘레멘탈 마스터]

붉은 지면에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와 노란 틈새에서 이따금 터지는 불길은 맵의 열기를 고스란히 느끼게 한다.

정령의 화산은 시간이 지나면 점점 더 많은 균열과 함께 지면에서 불과 용암이 치솟는다.

3분을 꽉 채우는 풀타임 접전으로 흐르면 아무래도 움직임이 빠른 다크레인저가 유리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상성도 다크레인저 쪽이 살짝 우위에 있기에 마이클 입장에선 경기를 빨리 끝낼 필요가 있었다.

먼저 움직인 쪽은 마이클이었다.

엘레멘탈 마스터는 아크위자드에 비해 화력은 조금 떨어지지만 좀 더 다양한 역할을 하는 밸런스형 마법 딜러.

마이클은 민첩성을 일시적으로 상승시켜 주는 헤이스트를 걸어 몸을 가볍게 했다.

그와 동시에 날아드는 상대의 공격, 마이클은 꺾일 듯 머리를 숙였는데 체력 바가 미세하게 줄었다.

마이클도 엄연히 S.솔리드에서 당일 엔트리에 들 정도의 실력자다. 그런 마이클이 화살을 제대로 피하지 못했다는 건 상대 실력이 만만찮단 증거, 곧바로 검은 화살 수 발이 벼락처럼 날아들었다.

반투명한 배리어를 화살이 두들겼다.

마이클은 방벽을 거두며 동시에 지팡이를 뻗어 다크레인저가 있던 자리에 불폭탄을 떨어트렸다.

“저 녀석 실력자네.”

경기를 관전하던 사이클론이 중얼거렸다.

스크림 경기 때 아예 없던 인물이다 보니 정보가 부실했다. 어느새 거리를 좁힌 다크레인저는 무기를 교체해 활대신 단검을 휘둘렀다.

웬만한 마법사는 근접전에 쥐약이다. 캐릭터 자체 순발력도 부족하고 근접전에서 받아칠 스킬이 거의 없다.

마법사에 비하면 그래도 다크레인저는 근접기술이라고 할만한 게 몇 개 존재했다.

“윈드버스터!”

양손에 단검을 쥔 다크레인저가 신나게 마이클을 난도질하려던 그때, 마이클의 지팡이가 빛을 뿜더니 바람의 대마법을 터트렸다.

메모라이즈 스킬에 장착해둔 윈드버스터에 다크레인저의 체력이 3할가량 날아갔다.

뿐만 아니라 간격도 다시 회복할 수 있었다.

-와아아!

-S.솔리드 약점이 없는데?

-불리한 상성 매치를 이렇게 끌고 간다고?

관중들의 반응은 뜨거웠지만 팀원들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메모라이즈 스킬도 만능은 아니다. 조금 전에 사용했으니 다시 쿨타임이 차려면 게임이 거의 끝날 때쯤에나 가능했다.

평소 스크림이랑 팀 내 교류전에서 보여줬던 윈드버스터의 위력을 생각하면 체력을 더 빼야 했다.

상대는 방어력이 약한 다크레인저다. 그런데도 3할 밖에 안 빠졌다는 건 상대의 움직임이 생각보다 더 좋다는 뜻이다.

‘긴장했나?’

마이클도 마법사를 다루기로는 상위권 실력자다.

다만 프로 무대 첫 출전이라 그런지 몸이 약간 무거워 보였다.

“이거 마이클이 불리하지?”

“아마도···.”

서로 원거리 공격에 자신 있는 클래스다 보니 쉽게 결판이 나지 않았고 어느새 남은 시간은 60초가 됐다.

지면의 틈새로 솟구치는 불기둥의 숫자가 늘기 시작했다.

갑자기 발밑에서 갈라지며 치솟는 불은 예측이 불가능해 감으로 피하는 수밖에 없다.

윈드버스터 덕에 우세했던 체력도 어느새 다크레인저가 재역전한 상황, 이대로 있음 도저히 가망이 없겠다 생각한 마이클이 승부수를 띄웠다.

핑- 하는 소리와 함께 마이클의 몸에 푸른기운이 돌기 시작했다.

-저게 뭐임?

-저거 그거네. 와 이 타이밍에?

-그거가 뭔데.

-그거잖아. 모름?

-그거충 꼴보기 싫네.

가이아는 클래스 숫자는 많지 않지만 스킬은 정말 다양했다. 어느정도냐면 프로조차 주류 스킬 스펙만 외울 정도로 많았다.

강력하고 화려한 스킬은 선동작이 큰 편인데 프로 연차가 쌓여 경험치를 먹으면 이런 부분에서 대처하기 유리했다.

게임 내 스킬을 전부 꿰고 있으면 최선의 대비를 할 수 있다.

반응을 보니 상대 다크레인저는 무슨 스킬인지 모르는 눈치였다.

마나드라이브, 잠시 체내 마력을 폭주시켜 일정 시간 모든 마법 위력을 끌어올리는 스킬이다.

당연히 반동도 심하지만 일단 걸리기만 하면 기본 방어가 약한 암살계는 버틸 수 없다.

초당 마력 소모비가 괴물 같은 스킬이라 마력량이 관건, 그 시간 동안 사용하는 스킬은 당연히 따로 마력이 들어가니 마이클이 버틸 수 있는 시간은 기껏해야 5초였다.

5초 내로 승부를 보지 못하면 엘레멘탈 마스터는 빈 깡통 행이었다.

-워어

-ㄷㄷㄷㄷ

-빠르다!

마법사가 스프린터처럼 뛰기 시작했다.

그 기세만으로 위협적이었기에 다크레인저는 공격을 포기하고 시간끌기 전략을 택했다.

어차피 체력도 우위를 점하고 있기에 남은 시간동안 맵을 뛰어다니며 도망쳐도 이기는 싸움이다.

5초라는 짧은 시간 동안 마이클은 용케 상대를 코너에 몰아 마법을 쏟아냈지만 본래 다크레인저는 암살계 중에서도 은신과 이동, 저격에 특화된 클래스다.

작정하고 도망치기 시작하는 다크레인저를 잡기엔 5초는 너무나도 짧았다.

“아! S.솔리드 오디세이아 선수, 움직임이 갑자기 느려집니다.”

“금방이라도 잡을 것 같았는데 페널티가 큰 스킬이었나 봅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제로스 선수의 크리티컬 샷이 터집니다!.”

머리는 전신 급소중 가장 치명타가 터지기 쉬운 부위, 마이클의 캐릭터가 툭소릴 내며 무릎 꾾는 순간 나는 브라이언 코치를 불렀다.

“코치님.”

마이클의 패배를 심각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던 그가 눈을 깜빡거리며 평정을 되찾았다.

“어. 한솔아.”

“다음 라운드 제가 나가면 안될까요.”

“2라운드에? 아직 맵이 나오지도 않았는데 보고 나서 결정해도 괜찮지 않을까.”

“맵 상관없이 이길 자신 있습니다.”

코치는 이 녀석이 왜 이러지? 하는 눈빛이다.

마이클의 패배로 피가 끓어서 그런 건 아니었다. 내가 2라운드를 자청한 이유는 팀원들이 제 컨디션을 제대로 내지 못한다고 느껴서였다.

다들 멀쩡해 보이긴 하지만 속으론 엄청나게 긴장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무대에서 긴장 하면 어떤 프로선수도 제 실력을 낼 수 없다.

어떤 연습생은 숙소에선 정말 잘하는데 무대만 서면 제 실력의 반도 못 내는 경우도 있었다.

만약 우리 팀이 보이지 않는 부담감에 눌려있다면 나는 그것을 치워버릴 생각이었다.

긴장만 풀면 라이징G.C는 우리 상대가 아니라는 모습을 팀원들에게 보여줄 참이었다.

“음, 좋아. 한 번 해봐.”

안 된다고 하면 더 우기지 않을 생각이었는데 흔쾌히 허락이 떨어졌다.

나의 무대 2라운드, 상대가 누구든 압도적인 상황을 연출해야 하는 임무가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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