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 오브 몬스터 (1)
몰려든 구름관중에 나와 제리는 적잖이 놀랐다. 다른 팀과 달리 개인 방송을 전혀 하지 않는 S.솔리드지만 게임 커뮤니티 눈팅정도는 한다.
최근 우리 팀에 대한 유저들의 기대감이 상당하다는 얘긴 알고 있었는데 이 정도였을 줄이야.
족히 수천 명은 관중석에 앉아있는 걸 보니 이제야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실감이 났다. 아직 콜로세움에 입성한 지 3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이야. 인기 좋네. 우리 에이스님.”
제리가 능청을 떤다.
나는 어깨를 으쓱할 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이렇게 관심이 쏠린 게 다수의 프로게이머들이 나를 포함한 S.솔리드를 언급해서 그런 것임을 알고 있었다.
현재 내 랭킹은 게임 최고등급인 그랜드마스터 607위, 제리는 311위였다.
광채의 신전을 파밍하며 부쩍 힘이 붙는 단계였기에 계속 던전만 돌고 싶었는데 숙련도 버프를 구입할 코인이 모자라 경기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숙련도 버프 없이 던전을 도는 건 통상의 삼분의 일 효율밖에 나오지 않기에 사실상 시간을 버리는 짓이 된다.
“몇 게임이나 돌릴래?”
“연승으로 10게임 정도면 다시 보름 정도 잠수타도 문제 없겠지?”
연승을 하면 코인 획득량에 보너스가 붙는다.
그랜드마스터는 가이아에서 날고 긴다 하는 게임 천재들이 모인 구간. 현재 인원수는 약 5천 명 정도.
동시 접속자 수가 100만명을 진즉 돌파한 가운데 상위 5천 명에 들기가 얼마나 힘이 들지는 그리 어렵지 않게 짐작 가능하다.
그런 천재들이 바글바글한 곳에서 10게임 연승,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도 제리의 표정은 해맑기만 했고 나 역시 일말의 긴장감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럼 가볍게. 열 게임 접수했습니다~.”
제리가 랭크매치 버튼을 누르기 무섭게 매치가 잡혔다.
***
한동안 소식이 없던 S.솔리드의 간판선수 유니크.
킹오브몬스터의 등장 소식에 프로들까지 필드 사냥을 멈추고 콜로세움으로 달려왔다.
‘내가 잡는다.’
현재 1군 리그를 구성 완료한 북미 10개 팀 중 유니크에게 안 당해본 팀은 세 팀뿐, 나머진 유니크라면 치를 떨 정도였다.
비프로스트는 유니크의 실력을 인정했지만 모든 프로가 그런 건 아니었다.
일부 선수는 유니크가 초기에 전설스킬을 다수 선점해 꿀을 좀 빨았을 뿐, 두 달이 지나가는 이 시점에 다시 붙으면 충분히 해볼 만 하다고 생각하는 선수도 많았다.
저격.
게임방송에서 저격은 특정 목표를 두고 랭크매치 잡히는 시간을 노려 매칭하는 행위를 말한다.
가이아 방송을 취미로 하는 상위 랭커부터 프로게이머에 이르기까지 유니크를 저격하기 위한 동시다발적인 매칭이 이뤄졌다.
“여러분 잡혔습니다. 제가 지금 킹오브몬스터 저격 매칭에 성공했습니다.”
유저 닉네임 렉스, 그는 동시간 시청 인원 수가 3만 명에 육박하는 인기 스트리머였다.
콜로세움 랭킹은 상위 477위, 프로를 노려볼법한 재능이었지만 그는 방송 일이 더 좋았다. 프로판이 얼마나 빡빡한지, 또 스트레스받는 곳인지 잘 아는데 굳이 프로에서 뛸 이유가 있나 싶었다.
‘어차피 지금도 잘 나가고 돈도 잘 버는데.’
저격 매칭에 성공했다는 글이 각 커뮤니티에 퍼지기 무섭게 렉스의 방에 사람들이 몰렸다.
관전 시스템으로 보는 것보다 실감 나는 움직임을 가까이 보기 위해서였다.
2만 5천 명이던 접속자가 순식간에 4만 명을 돌파했다. 베일에 싸여있던 랭커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뜨거운지 알 수 있었다.
“오늘 또 한 명의 별이 집니다. 여러분.”
-렉스 실력이면 충분하지.
-솔직히 프로 별거 없더만.
-프로 킬러 렉스좌.
렉스를 응원하는 목소리가 채팅창에 넘쳐 흐른다.
실제로 렉스는 프로 유저를 상대로 준수한 승률을 보여 몇 번이나 입단 제의를 받을 정도의 실력자였다.
-근데 유니크는 진짜 괴물이라던데.
-비프로스트가 극찬함.
-렉스 비프로스트한테 쳐발리지 않음?
kvssw***님이 강제퇴장 당하셨습니다.
-말도 안 되는 파워 비교 ㄴㄴ해.
-맞음. 인간상성이란 것도 있음.
-인간상성이 아니구요. 원래 실드나이트가 암살계한테 강한데도 비프로스트가 유니크 극찬했어요. 그 정도면 진짜 괴물이에요. S.솔리드 승률이 유니크 낄 때는 전승이고요.
-누가 물어봄?
-장문충 out.
채팅창이 후끈 달아오르자 렉스는 괜찮다며 팬들을 진정시켰다.
“뭐 뚜껑 열어보면 알겠죠. 개인적으로 5라운드까지 갔으면 좋겠네요.”
-5라운드 보고 싶다!
-5라운드 가면 5만 코인 후원합니다.
-저도 미션 겁니다. 이기면 10만 코인요.
개인전에서 상대를 저격 성공할 확률은 고작 사분의 일.
하지만 최종 라운드까지 가면 무조건 얼굴을 볼 수 있는 상황, 렉스는 싱긋 웃으며 1번 주자로 나서겠다며 팀원에게 말했다.
그의 직업은 다크레인저, 은신스킬을 익혀 상대를 저격하는 장거리 특화 클래스다.
북소리와 함께 1라운드 맵과 함께 캐릭터가 전장으로 소환됐다.
[1라운드 - 잊혀진 사원]
[블루팀 다크레인저 vs 레드팀 무도가]
-와아!!!
채팅창이 잠시 마비가 될 정도로 엄청난 양의 메시지가 쏟아졌다. 확률 사 분의 일을 뚫고 1라운드에서 렉스가 저격에 성공했다.
-유니크 중국인임?
-한국인이래.
-렉스가 개 바를 거 같음.
렉스방 시청자들이 방장의 승리를 기대하고 있을 때, 렉스는 살짝 긴장을 머금었다.
잊혀진 사원은 다크레인저에게도 나쁘지 않은 맵이다.
라플라타 같이 좁은 맵에선 마법사나 사수가 활약하기 어렵지만 맵 크기도 적당히 큰 곳이다.
3, 2, 1 하고 카운트가 끝나기 무섭게 렉스의 손이 벼락처럼 움직여 시위를 당겼다.
첫 발은 가볍게 탐색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번개처럼 달려드는 상대의 움직임에 기겁했다.
‘이런 속도가 가능하다고?’
족히 30미터에 달하는 거리가 눈 깜짝할 사이에 줄어들었다.
생각이 채 끝나기도 전에 코앞까지 달려온 유니크의 주먹이 렉스의 머리통을 날릴 기세로 뻗었다.
렉스는 숨을 집어삼키며 상체를 흔들었다. 복싱의 위빙 동작을 응용해 용케 상대의 주먹을 피해낸 순간 시야가 빙글 돌며 회전했고 몸이 핑그르 돌아 땅에 꽂혔다.
다리 쪽에 뭔가 충격이 있다고 느낀 순간 렉스의 체력은 이미 바닥을 향해 맹렬히 달리고 있었다.
파바바바밧!
꼴사납게 넘어진 렉스에게 무자비한 주먹의 난타가 날아들었고 순식간에 체력바가 터졌다.
-스트리머가 킹오브몬스터한테 비비려고 하네.
-프로 몇 명 잡았다고 나댈 때부터 알아봤음.
-어그로 개많이 들어왔네.
-렉스가 방심해서 진거임.
-느그렉스.
-비프로스트 방송 안봤나봄. 킹오몬 전매특허 상하 원투임.
-개 뻔한 패턴이었는데 못막죠?
렉스 방에 몰린 시청자 수는 순간 5만 명을 돌파했다. 다른 방송을 보다가 부랴부랴 달려온 인원도 상당했다.
온갖 방에서 사람이 몰리니 채팅창이 지저분해질 수밖에 없었다.
렉스는 패배 메시지를 멍하니 쳐다볼 뿐, 방관리를 할 생각도 못 했다. 여지껏 본 적 없는 속도, 패배에 걸린 시간은 고작 6초였다.
“아···. 세긴 세네요.”
렉스가 간신히 멘탈을 추스를 무렵, 유니크 팀은 라운드 3승을 거둬 유유히 다음 매칭을 돌리고 있었다.
***
“야. 인기 좋다.”
제리는 관중석을 둘러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경기를 보겠다고 모여든 유저의 수가 진즉 만 명을 넘은 상태, 이 정도로 관심이 쏟아지자 되려 임시로 매칭되는 팀원들이 긴장하기 시작했다.
일반 유저들이 이만한 관심을 받아볼 기회가 흔하겠는가.
“유니크씨죠? 소문 익히 들었어요. 킹오브몬스터라고···.”
“푸읍. 킹오브몬스터래. 들어도 들어도 웃기네.”
“조용히 해.”
웃음을 참지 못하는 제리를 보며 핀잔을 줬다.
사실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프로생활을 제법 오래했지만 이런 관심을 받아본 적은 처음이었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관심이 욕설과 비난이 아닌 스포트라이트라면 싫어할 프로 선수가 있을까?
“근데 나도 말만 들었는데 이 정도로 인기 있을 줄은 몰랐거든? 차라리 코치님이나 감독님한테 말하고 우리도 방송하면 어떨까. 팀 홍보도 되고 좋을 것 같은데.”
“방송이라···.”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괜찮을 것 같았다. 실제로 한국에서도 주기적으로 방송하는 프로 선수들이 많았고 구단에선 방송을 권장하는 편이었다.
나 같은 경우엔 팬이 별로 없는 데다 괜히 인기 많은 선수 자리 빼앗았다고 욕이나 안 먹음 다행인지라 방송은 생각도 안 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상상 이상으로 쏟아지는 관심, 그리고 그 관심을 호의적인 시선으로 지켜낼 실력을 갖췄다.
인기 정상을 달리는 선수도 삽질 몇 번 하면 대규모 안티를 몰고 다니는 게 이 바닥 생리다.
현재까지 5연승.
아직 랭크가 낮아서인지 기존에 만났던 프로와 마주친 적은 없었다.
연승을 거두며 600 초반이던 순위는 400위까지 수직 상승했지만 프로팀 소속이라면 대부분 랭킹 200위 안에 들어있을 테니 아직 마주칠만한 구간이 아니었다.
다섯 게임 동안 보여준 거라곤 용의 충격을 기반으로 상체를 때리다 하체를 가격해 균형을 무너트리는 원 패턴 뿐이었다.
관중의 숫자는 계속 늘어나는데 원 패턴만 고집하는 상황, 그러나 지루해하는 관중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킹오브몬스터 맞네.
-저거 스킬임? 그냥 피지컬로 차는 건가?
-원투 패턴으로 랭킹 1위 따면 개웃기겠네.
-가이아를 날먹하는 법 장인;;
괴물의 원패턴 파워가 어디까지 통할 것인가. 관중의 관심사는 오직 그것에만 쏠려 있었다.
이런 반응을 나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오늘이 분기점이다.’
저 많은 사람이 나의 팬이 될 것인가. 아닌가를 가르는 분기점.
“1번으로 나갑니다. 괜찮죠?”
“누가 말려.”
“넵. 그러세요.”
“버스 고마워요. 형.”
나는 게임 내내 1번 순서를 고집했다.
이쯤 되자 나와 한번 붙어보고 싶은 사람은 무조건 1번을 자청했다. 지금 한창 저격을 돌리고 있다는 사실도 쏟아지는 메시지로 알 수 있었다.
바깥에서 모니터링 하며 팝콘을 뜯고 있던 케빈은 전 가이아 커뮤니티가 아주 활활 타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다음 매칭이 잡혔다.
빛과 함께 상대 선수들의 모습이 드러나자 신원을 알아본 팀원 한 명이 소리쳤다.
“어! 다이나믹 G.C 2군이다!”
다이나믹 게이밍 클럽.
S.솔리드와 스크림을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팀이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실력이 괜찮다곤 하던데, 그나저나 이 사람들은 상대가 2군인지 어떻게 알았을까.
1군 팀이야 워낙 상위 랭커인데다 프로들 방송에서 얘기가 나오니 알 수 있다지만 2군은 그럴 일이 없지 않은가.
2군도 방송을 하나?
그리 생각하며 1라운드 맵 망자의 광장에 올랐다. 상대 클래스는 아크나이트였다.
배틀이 시작하자마자 두들겨 패려는데 상대가 손을 번쩍 내밀며 멈춰줄 것을 요구했다.
뭐하는 플레이야?
“안녕하십니까. 저는 다이나믹 G.C 2군 아르고입니다.”
‘이거였구만.’
콜로세움에선 이렇게 대화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상위 레벨로 갈수록 타팀 프로들 뿐이라 살갑게 이야기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중간 레벨에선 흔한 편이었다.
“예. 반갑습니다.”
180초란 시간은 격투게임 1라운드에 주어지는 시간치고 굉장히 긴 편이었다. 상대를 죽이는데 필요한 시간은 넉넉잡아도 30초 정도면 충분한바, 나는 상대의 인사에 답해줬다.
“그간 명성은 익히 들었습니다. 거품이 제법이시던데요. 게임 초반에 꿀 빨고 달린 것치곤 좀 과하던데.”
아니 이새기가?
날 물어뜯으려는 녀석인 줄 알았으면 인사 안 받아줬을 텐데.
아르고의 말에 관전자들이 크게 웃었다. 5게임 연속 승리를 보여주긴 했지만 아직 관중은 중립상태란 증거였다.
이들이 완전히 내 팬이 된다면 웃음소리 대신 야유가 터져 나올 테지.
“1번 엔트리 지원한 겁니까?”
“예. 명성 자자한 킹오브몬스터가 얼마나 대단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야.”
나는 더 들어줄 생각이 없어 녀석의 말을 잘랐다.
“싸우러 나왔으면 싸워. 나 말 많은 사람 싫어해.”
웃음기를 싹 거두고 부동보를 밟으며 미끄러지자 아르고가 서둘러 방패를 들어올렸다.
실드나이트에 비해 작은 방패지만 아크나이트 역시 공방 밸런스가 뛰어난 클래스다. 저 작은 방패를 잘만 이용하면 마법사의 마법도, 암살자의 암기도 막아낼 수 있다.
용의 충격을 얼굴에 뻗는 척하자 녀석이 냉큼 방패를 들어 올렸다.
‘페이크다. 이 자식아.’
그 상태로 곧장 하단을 차자 하체에서 쩌적하고 몽둥이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와우.
-소리 찰진거바.
찰진 소리에 관중들이 탄성을 지른다.
“어딜.”
“듣보잡.”
“2군 주제에.”
“지랄이야.”
“지랄이.”
한 번 때릴 때마다 말을 섞어주자 아르고는 정신을 못 차리고 막기 바빴다.
물론 제대로 막지도 못해 체력이 뭉텅이로 깎여나가는 건 덤이었다. 민첩 스탯 1천이 넘는 캐릭터가 뿜어내는 용의 충격은 보고 막을 수준이 아니었다.
눈으로 따라가지 못하면 감으로 막을 수밖에 없는데 상대 탱커의 심리를 누구보다 잘 읽는 게 나였다.
평생을 방패 들고 공격만 막아댔으니까. 내 눈엔 녀석이 거대한 샌드백으로 보였다.
“이익.”
계속 체력이 닳자 도저히 안 되겠는지 녀석이 먼저 가드를 내리고 검을 뻗었다. 아주 하품나올 정도로 느린 공격이었다.
나는 상체를 살짝 비틀어 검을 피한 뒤 손톱을 세워 옆구리를 후려쳤다.
교룡뇌조의 번갯불이 번쩍이자 아르고의 캐릭터는 신음과 함께 무릎을 꿇었다.
“거품은 무슨, 언빌리 ‘버블’ 이다. 새끼야.”
빡! 소리와 함께 낮아진 면상에 드래곤 테일을 먹이자 승리 메시지가 떠올랐다.
[YOU WIN!!]
-오메.
-언빌리버블 ㄷㄷㄷ
-와. 프로 2군도 원패턴 극복이 안되네.
-1군도 안됨. ㅅㄱ
-게임이 제일 쉬웠어요 ㅋㅋㅋㅋ
-언빌리버블좌;;
더 많은 사람들이 내 플레이에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확실한 흐름이었다. 나의 플레이가 관중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다.
스탯 버프 구매할 코인만 벌 요량으로 잠깐 게임할 생각이었지만 관중의 환호가 점점 커지니 생각도 바뀌었다.
놓치기 아쉬운 흐름이었다.
팬이 많아지면 구단도 흡족해 할 터, 결정을 내린 나는 2번 주자인 제리와 웃으며 하이파이브를 했다.
‘이 판, 한 번 키워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