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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OS 소설 아닌데요-21화 (21/170)

유능한 목수도 연장 좋아한다 (3)

한솔의 움직임은 놀라우리만큼 빨랐다.

그간 콜로세움에선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려는 듯 신들린 움직임으로 날아드는 마법을 피했다.

“저게 사람이 할 수 있는 움직임이냐?”

“못하죠. 못해.”

코치의 말에 선수들이 이구동성으로 답한다.

사이클론은 입술을 굳게 다물고 꽂히기라도 한 듯 한솔의 움직임을 눈에 담기 바빴다.

이제 조금 따라잡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얼마나 덧없는 생각이었는지, 현실은 되려 거리가 멀어진 기분이었다.

그만큼 지금 한솔이 보여주는 움직임은 너무나 압도적이었다.

어지간했으면 코치도 저렇게 좀 해보라고 툭 던졌을 텐데 도저히 따라 할 수 없는 움직임이라고 생각했는지 같이 관람객이 되어 영상을 쫓기 바빴다.

“거의 다 붙었다!”

누군가 외쳤고 거실에 있던 인원의 목이 쭉 펴졌다.

드디어 유니크가 보스의 사거리 안으로 들어섰다.

***

원래 보스방은 패스할 생각이었다.

부활 스킬도 쿨타임이어서 무리한 트라이를 하면 누구 한 명 죽겠지 싶었다.

그러나 흔쾌히 펜던트를 양보하는 녀석들을 보니 끝까지 해보고 싶었다. 만약 첫 데스 패널티를 받는다면 오늘이어도 괜찮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손바닥을 펴 우직하게 내밀자 항마장이 낮게 울며 보스를 강타했다.

콰콰쾅!

악령술사를 잡아 착용한 펜던트가 아니었다면 진즉 마력 부족에 시달렸을 거다.

지면을 박차고 몸을 공중으로 튕겨 비틀자 붉은 광선이 지글거리며 서 있던 자리를 스쳤다.

족히 두 자릿수에 달하는 광선을 쏟아낸 대마법사는 고고한 시선으로 날 내려다본다. AI가 만들어낸 캐릭터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살아있는 표정이었다.

네놈은 여기서 죽을 거라고 비웃는 듯한 느낌이라 기분이 조금 더러웠다.

어디 한 번 죽어보라고 소리치려다가 목까지 올라온 기운을 도로 꾹꾹 눌러 주먹에 담았다.

왼손으론 용의 충격, 오른손으론 교룡뇌조, 전설급 스킬 둘을 양쪽으로 동시에 터트리자 그 면이 아주 화려했다.

순간 보스의 피가 3분의 1이 사라졌다.

살벌한 공격, 보스의 양 뒤를 떠받치고 있던 졸개 두 놈이 회복마법을 펼치려 할 때 나는 늦지 않게 항마장을 뻗었다.

이제부턴 내 마력이 먼저 떨어지느냐, 놈의 숨통이 먼저 끊어지느냐의 싸움. 회복을 방관하면 질 수밖에 없었다.

내 손에서 거친 소나기가 내리듯 스킬이 재차 터졌다.

숙련된 무도가만이 할 수 있는 극한의 스킬샷이 근접전에서 살벌하게 뿜어진다.

보스의 실드를 두들기기 시작했을 때, 조그만 도움이라도 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했다. 전생에선 충분히 잡을만한 상대였는데 이번 생에선 왜 이렇게 힘든지.

대마법사놈 목숨줄이 쇠심줄처럼 질겼다.

놈이 마력을 터트리며 주변을 불바다로 만들 때 나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

정상적인 반응이면 일단 뒤로 몸을 빼야 했지만 이번 트라이는 오로지 나만 믿고 하는 일이라 뒤가 없었다.

마력을 도로 채울 수도 없는 상황.

전설급 회피스킬 이형환위를 발동해 굵직한 불기둥을 피해낸 뒤 쿵 하고 자세를 잡았다.

배수진이었다.

두두두두-

공격은 참 매섭게 들어가는데 이 빌어먹게 두터운 실드벽이 도무지 까질 생각을 안한다.

보스 난이도 책정을 한참 잘못한 게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죽음이 자아내는 냉기가 발밑에서부터 쭉 타고 올라와 전신을 차갑게 했다.

이걸 깨라고 만들었나 싶은 그때, 상황이 반전됐다.

구우우-

짐승이 낮게 우는듯한 기이한 소리와 함께 실드가 매섭게 까였다.

곁눈질하니 제리가 디버프를 걸어 보스의 방어력을 낮추고 있었다.

“힐 들어간다!”

신전의 주인이 강렬한 한 방을 날리려는 찰나 케빈도 달려오며 소리쳤다.

보스의 일격을 맞기 전에 케빈이 힐을 걸어주면 살 테고 늦으면 죽는다. 나는 케빈을 믿고 되려 한발 앞으로 내디뎌 공격을 뻗었다.

***

“휴우”

진땀 나는 승부였다.

죽음을 각오하고 띄운 승부수였는데 펜던트가 디버프 마법을 아주 적절한 때에 막아준 덕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광채의 신전 주인을 처음으로 격파했습니다.]

[업적 혼돈의 마법 정화를 달성했습니다.]

오랜만에 업적 알림이 떴다. 인면지주를 잡을 땐 조용하더라니.

◆초월급 업적 - 혼돈의 마법 정화

광채의 신전 대장, 부대장을 포함한 적을 첫탐험에서 완전히 정화했습니다.

보상 : 혼돈의 상자 +1

제리와 케빈 역시 같은 알림을 받았는지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혼돈의 상자가 여기서 나올 줄은 몰랐네.’

혼돈의 상자, 장비가 나올지 스킬이 나올지 모르는 랜덤 박스지만 그 가치는 상당했다.

혼돈이란 이름에 걸맞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구성의 보상이 등장하곤 했는데 이게 상당히 레어한 물건들이었다.

예를 들면 분명 무도가가 쓸법한 스킬인데 힐러 전용으로 나온다든지, 전사용 대마법이 불쑥 튀어나오곤 했다.

물론 대부분은 등급이 낮아 이벤트성에 그치지만 간혹 그 쓰임새가 대단한 물건이 나오기도 했다.

혼돈의 박스는 일단 킵, 나는 팀원들이 캐릭터 체력을 채우는 사이 쓰러진 보스를 찾아 아이템을 거둬들였다.

물론 내 몸 안에 남아도는 푸른 기운을 흘려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번엔 살짝 살짝이 아니라 과감하게 질렀다.

어차피 한 달 동안 스킬 박스도 거의 안 열었다. LGE마켓을 통한 스킬거래가 활성화 된 이후 나만큼 전설급 스킬 세팅을 갖춘 유저도 종종 생겼으니 더 눈치 안 봐도 되겠다 싶었다.

나와라!

속으로 크게 소리치며 장비를 뽑아 올리자 팡팡하는 작은 폭죽 소리와 함께 아이템 3개가 쏟아졌다.

“아···.”

조금 과했나 보다.

트리플 A가 터졌다.

“뭐야 그 고생을 했는데 똥이야?”

아. 소리에 놀란 제리가 한달음에 달려왔다.

“아니잖아!”

똥이 아니라 대박 중의 대박이다. 처음보는 고등급 색채에 제리의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A급 아이템을 여러 개 뽑아내려면 확실히 기운이 많이 소모됐다. 오늘 한 번의 작업에 소모된 자연의 기운이 그간 사용한 양과 비슷했다.

[아이템 - 강욕의 반지]

등급 : A

종류 : 반지

특수 효과 : 착용시 고급 아이템 획득률이 상승한다.

[체력 +60] [마력 +60]

첫 번째 장비는 드랍 확률 아이템이었다.

이런 레어리티 상승류 아이템은 부르는 게 값이지만 그중에서도 A급 이상의 가격은 상상을 초월했다.

A급 아이템에 영향을 미치려면 관여 아이템의 등급이 A급 이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C급 루팅 관련 아이템을 아무리 많이 들고 다녀도 고등급 아이템이 나올 확률은 조금도 늘지 않는다.

게다가 저 놀라운 스탯 상승치를 보라.

둘을 합치면 120에 이르는 상승 폭이다. 현존하는 최상급 장비 두 개를 동시에 차는 효과다.

이 반지는 부르는 게 값인 아이템이라 당장 팀 마켓에 처분하기도 애매했다. 팀에서 미래가치까지 책정해주진 않을 테니까. 일단 반지를 한쪽으로 미뤄둔 나는 다음 장비를 확인했다.

[광채의 스피카로드]

등급 : A

종류 : 지팡이

특수 효과 : 적색 계열의 모든 스킬 시전 속도를 30% 단축시킨다.

[마력 +150]

제리는 이미 지팡이에 꽂혀 아무 말도 못하고 군침만 흘리고 있었다. 스탯이며 특수 효과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마법사 최고의 장비였다.

[천사의 법복]

등급 : A

종류 : 상의

특수 효과 : 스킬 사용 시 마력 소모가 20% 줄어든다.

[마력 +80] [인내 +50]

법복 역시 최고급 장비, 다만 스탯으로 보나 특수효과로 보나 암살자한테 맞는 옷은 아니었다.

당장 전력에 도움이 되는건 지팡이지만 장기적인 안목으로 볼 때 가장 비싼 건 반지였다. 레어리티 확률 아이템을 중첩해서 사용할 경우 제법 유의미한 드랍율로 연결됨을 전생의 유저들이 증명했다.

“어서 골라. 그래야 우리도 나누지.”

숨을 고른 케빈이 내게 말했다. 제리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3개다 대단한 아이템이기에 무얼 가져가든 상관없단 분위기였다.

나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반지를 집었다.

광채의 신전 파밍은 이제 막 시작된 참이다. 앞으로 이 반지를 핑계삼아 주기적으로 A급 장비를 뽑아낼 참이었다.

내가 반지를 거두자 차례대로 지팡이와 법복을 나눠 가진 둘의 표정엔 행복함이 가득했다.

“살아있길 잘했어···.”

“근데 한솔아.”

“응?”

“다음엔 네 명이서 오면 안 될까.”

케빈은 피로가 뚝뚝 묻어나는 목소리로 물었다.

7시간이 넘게 걸린 대장정, 스탯은 제법 올렸는데 다들 피로한 기색이 역력했다. 클리어하기 전까진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한 번에 달려야 했으니 말이다.

아마 초인적인 신체 능력을 얻지 못했다면 나 역시 지금쯤 피로가 상당했을 터였다.

골목 구석, 기둥 뒤, 신전 이곳저곳에서 숨어있다가 마법을 쏘아대는 적들을 일곱 시간 넘게 상대했으니 지치지 않으면 이상하지.

포지션 겹치지 않게 탱커를 한 명 더 넣을까.

고급 장비를 두고 직업이 겹치면 아이템을 나눌 때 여간 고민되는 게 아니다.

특히 매일 같이 얼굴을 보는 동료인데 코인으로 경매를 치르기도 그렇고 말이다. 한 명이 장비를 가지고 한 명이 돈을 가지면 되냐고 하지 않는데 프로급에서 쓰이는 장비가 다 최상위, 돈을 주고도 사기 힘들 정도의 것들이 많아 열이면 아홉은 장비를 원하니 그것도 쉽지 않았다.

결국 포지션을 겹치지 않게 파티를 구성하는 게 최선이었다.

나는 가볍게 박수를 치며 해산을 알렸다.

8시간에 가까운 하드한 던전 원정의 마침표였다.

“오늘은 하루 종일 쉬어도 무죄다.”

“그럼 나도 식사 좀 해야겠다. 같이 먹지그래.”

“알았어. 금방 갈게.”

다들 접속을 종료하고 혼자 남게 되자 나는 마지막 메인 디쉬를 손에 쥐었다. 업적으로 얻은 혼돈의 상자, 과연 여기선 무엇이 나올지 무척 궁금했다.

찰칵-

검은 연기가 새어 나오더니 그 틈새로 상당한 양의 자연의 기운이 빨려 들어갔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상자의 내용물을 확인한 나는 환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전설급 혼돈 스킬 - 여신의 은총 / 무도가]

-체력을 크게 회복시키고 잠시 마법 방어력을 높인다.

***

4월이 되자 게임 내 분위기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음에도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지오에서 사방으로 프로리그 출범 떡밥을 뿌리는 중이었다. 게이머라면 한 번쯤 해보는 상상, 내가 재능이 뛰어나 프로무대에 선다면?

일부는 그저 꿈으로만 치부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진짜 손에 닿을 듯 그 거리가 가까운 사람들도 있는 법이다.

스스로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던 이들은 콜로세움으로 달려갔다.

이미 프로팀에 입단했다고 입소문이 자자한 선수들이 랭크 게임에 나타날때면 수백 명, 천 명 넘는 관중이 경기를 구경하기도 했다.

상위 100위 안에 드는 선수, 닉네임을 아는 선수는 쉽게 검색해 관중석을 채울 수 있는 콜로세움 시스템 덕이었다.

많은 유저들이 프로 선수의 경기를 보며 감탄했다.

저 정도는 돼야 프로 하는구나.

프로 중에 관심 받기 싫어하는 선수는 거짓말 조금 보태서 단 한 명도 없다. 그 정도가 심하냐 아니냐의 차이일 뿐이지.

상황이 이렇게 흐르자 북미 프로팀 선수들은 은근히 관중이 모인 숫자를 비교하며 어깨에 힘을 잔뜩 주곤 했다.

인터넷 방송을 업으로 삼는 이들은 종일 가이아 상위 랭커 중계로 먹고 사는 이들까지 생겼다.

이런 친구들을 브로드 캐스터, 스트리머 등으로 부르는데 이들 사이에 뜨거운 감자는 바로 S.솔리드였다.

아직 떡밥만 난무하는 와중에 팀 이름까진 자세히 공표된 적이 없음에도 가이아 방송 좀 챙겨 본 사람이라면 어떤 팀이 강하더라. 어느 팀은 어디 포지션이 약하더라 하는 걸 죄다 꿰고 있었다.

제법 고급진 정보는 선수가 직접 방송을 켜고 말해주는 일도 있었다.

S.솔리드를 제일 먼저 언급한건 레드불스의 실드나이트였다.

비프로스트라는 닉네임을 쓰는 이 친구는 입담이 좋아 방송만 켜면 시청 인원이 금방 일만 단위를 찍을 정도로 인기가 있었는데 요즘 프로팀 사이에서 압도적인 괴물팀이 있다고 처음 소스를 뿌린 것이다.

-레드불스보다 센가요?

-ㄴㄴ 그럴 리 없음. 레드불스 사람들 경기하는 거 못 봄? 콜로세움 개 깡패임.

-맞음. 레드불스가 지금 콜로세움 in100 인원 1위임.

떡밥이 달리기 무섭게 사람들이 갑론을박하며 치고받기 시작했다.

왜 아니겠는가. 방송 보러온 사람들이 거의 레드불스, 비프로스트의 팬일 테니 다른 팀 편 옹호하는 걸 가만 볼 리 없잖은가.

“워워. 진정해 친구들.”

커다란 덩치에 넉살 좋게 생긴 비프로스트는 채팅창 진화에 나섰다.

아마 제 딴엔 진화였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이건 솔직히 나만 그런게 아니고, 다른 팀들도 다 인정을 해. S.솔리드는 그냥 차원이 달라. 괴물 팀이야 그냥. 스크림 성적이 8할도 넘을걸?”

불길이 사그러들긴 커녕 더 활활 타올랐다.

-레드불스는요?

-걔내 2할 패배는 우리불스한테 한 거죠?

팬들이 분주히 웅성거리는 게 재밌어서였을까. 성격 차이였을까. 비프로스트는 다른 팀이 굳이 하지 않았던 치부를 아무렇지 않게 꺼냈다.

승률이 8할로 떨어진 건 S.솔리드가 에이스 두 명을 로테이션에 넣지 않아서였다는 사실 말이다.

팬들은 놀랄 따름이었다. 프로팀 사이에서 8할 승률도 놀라운 일인데 에이스를 빼서 거둔 승률이라니.

“사이클론은 작은 괴물이고 유니크는···.”

-유니크?

-랭크에 없는데요. 가이아도 닉변 되나?

-부적격닉네임만 강제로 바꿔줌.

-유니크 모르는 뉴비들 많네.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존나 괴물 같은 새끼 있었음. 나도 실제로 붙어봄. 손도 못 댐.

-네다브.

-허세 적당히 부리자.

-두 달 전에 랭크 밖으로 밀렸으면 개퇴물 아님?

눈으로 쫓아가기도 힘들만큼 무수한 채팅이 쏟아지는 가운데 비프로스트는 장작을 던져 넣었다.

“그 친구가 S.솔리드 왕이야. 플레이가 그냥 말이 안 돼. 근데 요즘 솔리드 애들 콜로세움 잘 안하더라고. 뭐 하는지 모르겠어.”

S.솔리드 선수들이 스탯 육성에 집중하던 차라 소문만 무성해질 무렵, 북미 가이아 최대 커뮤니티 게시판에 글이 우후죽순 올라오기 시작했다.

[지금 콜로세움에 유니크 떴음.]

괴물 같은 선수들이 모여있는 팀에서도 독보적인 존재, 킹 오브 몬스터라 불리는 유니크가 오래간만에 콜로세움에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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