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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OS 소설 아닌데요-20화 (20/170)

유능한 목수도 연장 좋아한다 (2)

커다란 기둥 양쪽으로 달린 스테인드글라스에서 빛이 쏟아진다. 광채의 신전이란 이름답게 던전 내부는 밝은 백색 톤의 신전이다.

적만 등장하지 않으면 마음이 절로 경건해지는 그런 장소.

나는 경험으로 입구 주변에서만 적이 등장하지 않는단 사실을 알기에 일단 휴식을 제안했다.

케빈은 포션 없이 마력을 채울 수 있어 안도하는 눈치였고 제리도 마찬가지였다.

“여긴 클리어하는데 몇 시간이나 걸리려나?”

비색의 동굴은 빼곡히 루팅을 마치고 보스까지 잡는데 보통 세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광채의 신전은 A급 아이템을 처음으로 드랍하는 곳, 비색과 난이도를 비교하는 건 실례였다.

최소 6시간, 첫 입던이라 친구들이 헤맬 걸 고려했을 때 8시간은 잡아야 했다.

가이아의 모든 던전은 입장을 하면 끝을 봐야 한다. VR 접속기를 이용해 플레이하는 중이라 도중에 멈출 수 없고 한 번 접속을 끊으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시스템이다.

게임이 길어지면 대충 안전한 지대에 캐릭 세워두고 끼니도 해결하던 플레이어들에겐 매우 불편한 일이었으나 이제 다들 적응한 것처럼 보였다.

“근데 너무 조용하지 않아? 개미 새끼 한 마리 안 보이네.”

인기척이 전혀 없는 던전, 제리는 유저가 너무 없는 것에 의문을 표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현재 헤르메스를 구독 중인 사람은 아마 천 명 남짓, 천 명이면 적은 숫자는 아니다.

현재 월 1천 달러를 내고 정보를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랭커일 테니 맘맞는 사람 모아 팀 하나 짜는 건 쉬운 일이다.

하지만 정보의 내용이 문제였다.

애초에 이 미개척 지역의 던전을 찾아내는 유저도 탐험스킬을 지닌 랭커다.

그런 이들이 현재 광채의 신전은 도저히 돌만한 난이도가 아니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스탯 숙련도 경험치는 상당하지만 적들이 너무 강해 리스크가 크다는 결론을 첨부했다.

현재 가이아 상위 랭커에게 가장 인기 있는 던전은 비색의 동굴 같은 B급 던전이었다.

내가 케빈을 데리고 비색의 동굴을 돈 것도 어언 한 달 전 일이다. 이제 유저 수준이 인면지주를 상대로 제법 수월한 전투를 벌일 정도로 올라왔기에 해당 던전들은 상위 유저들의 방문으로 미어 터지는 중이었다.

“던전이 그만큼 어렵다는 증거겠지.”

“후우. 우리 에이스만 믿고 간다.”

휴식을 마친 우리는 곧장 안쪽으로 향했다.

***

뻑!

녹빛 장갑을 낀 주먹으로 용의 충격을 꽂자 하얀 로브를 걸치고 있던 적 마법사는 빛가루로 변해 스러졌다.

인간형 적을 힘겹게 처치했지만 쉴 틈은 전혀 없었다. 신전 곳곳에 얼마나 많은 마법사가 모습을 숨기고 있는지 불덩이가 끊이지 않고 날아왔다.

“제리!”

정신 차리라고 소리쳐보지만 제리는 자기도 최선을 다하는 중이라고 외치기 바빴다.

사냥 방식은 간단했다. 몸놀림이 빠른 내가 전면에 나서 적들의 주의를 끌고 저들이 마법을 난사해 위치를 노출하면 제리가 역공을 가하는 형태다.

문제는 적들이 한 번 나타날 때마다 여러 명이 무리를 지어 나타난다는 점, 그렇게 적에게 둘러싸여 몸을 비틀고 있노라면 1:4 팀전을 하는 기분이었다.

그만큼 신전 마법사들의 공세가 매서웠다.

피한다고 열심히 비틀어도 범위 공격에 서서히 체력이 깎였다.

이렇게 체력이 떨어지면 케빈이 열심히 스킬 범위 끝자락에서 힐을 펼쳤다.

그나마 마법사들의 드랍템이 좋아 케빈과 제리가 제법 장비를 챙긴 게 희소식이었다. 적 대부분이 마법사다 보니 드랍 아이템이 마력을 올려주는 게 많았다.

마력이 늘어나면 그만큼 스킬을 더 많이 쓸 수 있으니 말이다.

‘나도 마찬가지고.’

마력은 전직업 공용스탯이다. 나는 좀 더 여유롭게 회피기를 쓰며 적에게 접근할 수 있었다.

몸을 순간 둘로 나누는 이형환위로 집채만 한 불덩이를 피해낸 나는 곧장 교룡뇌조를 뻗어 마법사의 머릴 날렸다.

“이제 다 정리했나?”

적들이 보이지 않기에 다시 마력을 채울 겸 휴식을 하려는데 시스템 메시지가 울렸다.

[부동심이 일어나 정신을 지킵니다.]

초월급 스킬 부동심이 갑자기 발동해 내 정신을 보호했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하나, 환각이나 독같은 디버프 스킬에 노출됐단 소리다.

재빨리 뒤로 몸을 빼며 일행에게 경고했는데 이미 늦었는지 눈빛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마치 앞이 안보이는 사람마냥 허우적거리는 동료들, 숨어있는 적을 찾는데 오른편 공간이 왜곡되더니 흑색 가면을 쓴 마법사가 튀어나왔다.

‘중간 보스다!’

놈의 머리 위로 ‘고대의 악령술사’ 라는 이름이 붉은색으로 굵직하게 박혀있다.

던전 규모가 대형으로 넘어가면 보스뿐만 아니라 네임드급 중간 보스가 출몰한다.

위치를 정하지 않고 랜덤하게 말이다.

그런데 하필 마력이 다 떨어져 가는 시점에 기습을 당했다.

악령술사가 손을 들어올리자 지팡이 끝에 검은빛이 모이더니 레이저처럼 쏘아져 제리와 케빈을 향해 쏟아졌다.

평소 같았으면 일격에 죽지 않았을 텐데 시야가 마비돼서 제대로 반응이 불가능한 상황, 중간 보스의 강공을 헤드에 맞으면 솔직히 랭커라도 재간이 없다.

치명타가 터져 데미지가 아주 빵빵하게 들어올 테니까.

젖먹던 힘까지 짜내도 둘 다 살리는 건 불가능했다.

나는 망설임 없이 케빈의 몸을 낚아채 굴렀고 머리가 날아갈 뻔한 케빈은 억소릴 내며 땅에 넘어졌다.

검은 광선에 직격당한 제리는 그대로 터져 사망했다. 원래대로라면 그 즉시 던전에서 튕겨 필드접속 불가의 패널티를 받을 테지만 아직은 아니었다.

주변에 부활을 시켜줄 수 있는 비숍, 케빈이 남아있었다.

“일어나!”

나는 케빈의 뺨을 왕복으로 때리며 상점표 치료제를 얼굴에 부었다. 체력이 툭툭 떨어져 나가긴 했어도 초점없던 눈에 생기가 돌아왔다.

“어떻게 된 거야.”

“시야 장악 마법에 당했어. 길게 설명할 시간 없어. 제리부터 살려.”

“알았어.”

나는 케빈을 벽 쪽으로 던져 넣으며 악령술사를 향해 몸을 날렸다.

연신 부동심의 스킬 메세지가 머릿속을 울리며 마력을 빨아들이는 중이었다. 적의 디버프 스킬 방어에 효과가 좋긴 한데 소모되는 마력도 만만찮았다.

신전 마법사들에게서 얻은 마력 보조 장비가 아니었으면 크게 부담될 수준이었다.

속전속결.

바람처럼 거리를 좁혀오자 악령술사가 손을 들어올렸다.

동시에 거대한 검은 손이 나타나 나를 잡으려 들었다. 이형환위를 익히지 않았다면 피할 수 없을 만큼 매서운 공격이었다.

우리 뒤를 이어 누군가 이곳을 방문하면 애 좀 먹겠구나 하는 생각과 동시에 나는 항마장을 좌우로 밀어내 검은 손을 막았다.

사악한 기술을 막는덴 이만한 게 없었다.

코앞까지 달려간 나는 번개를 터트리며 교룡뇌조를 퍼부었다. 악령술사의 몸이 실 끊긴 인형처럼 뒤로 넘어져 안개처럼 사라졌다.

‘강하네.’

쉽게 이긴 것처럼 보이지만 제리, 케빈의 마법방어를 뚫고 대번에 디버프를 걸 정도의 마력, 용케 막아낸 검은 손도 상성 스킬인 항마장이 아니었으면 위험했다.

중간 보스가 이 정도면 신전 보스는 피해 없이 잡기 힘들었다. 나는 더 진행을 해야 할 지를 고민했다.

믿고 있던 케빈의 부활 보험은 제리가 홀랑 날린 상황.

뒤쪽을 돌아보니 제리는 부활 후유증으로 축 늘어져 힐을 받는 중이었다.

잠시 회복할 시간 동안 나는 악령술사의 몸을 뒤졌다.

중간 보스도 엄연한 네임드다. 자연의 기운을 불어넣자 시체가 푸른빛을 매섭게 빨아들였다.

인면지주 때보다 훨씬 많은 양이 나가기에 의아했다.

미국 땅에서 보충한 기운은 밀도가 낮기라도 하단 말인가?

심지어 악령술사가 드랍한 아이템은 단 하나였다.

광채의 신전에서 A급 아이템은 보스만 드랍한단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입맛을 다셨는데 아이템을 확인하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아이템 - 르도라의 펜던트]

등급 : B

종류 : 목걸이

특수 효과 : 초월급 이하 디버프 스킬을 100초마다 1회 방어한다.

[마력 +80]

대박, 아니 초대박이란 수식어가 어울렸다.

특수효과도 상당했지만 마력 +80은 B급에서 나올 수 있는 거의 최상위 옵션이었다. 3개월 동안 심혈을 기울여 키운 무도가의 마력이 고작 127이었다.

심지어 전직업이 선호하는 마력 스탯 아닌가.

‘이걸 어떻게 처분한다.’

악령술사를 혼자 처리하긴 했지만 여기까지 오는데 제리와 케빈의 공도 적지 않았다.

나는 고민하지 않고 팀원에게 아이템 획득 사실을 알렸다.

“얘들아. 좋은 아이템 나왔는데.”

부활 후유증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던 제리는 내가 다가오기도 전에 케빈에게 물었다.

“야. 케빈.”

“응?”

“너 보스 잡는데 뭐 한 거 있냐?”

“한 거 있냐고? 너 살린 거밖에 없는데.”

“들었지? 우리 한 거 없어. 그게 뭔지 몰라도 그냥 너 가져.”

아무리 장비가 좋아도 탐욕으로 정리를 깔끔히 하지 못하면 나중에 말이 나온다.

서로를 도와야 하는 팀 동료끼리 불화가 생기면 성적이 개판되는 건 당연한 수순, 마켓에 넘겨 처분할까 했는데 제리가 저렇게 말해줄 줄이야. 솔직히 예상 못했다.

“케빈 너도 불만 없지?”

“없지. 오늘 얻은 수확만 해도 만족이야.”

아이템 옵션을 확인했어도 저렇게 쿨하게 포기할 수 있었을까 싶지만 나를 위한 배려심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고맙다고 말하자 제리는 나를 보며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아마 앞으로도 잘 부탁한단 뜻이었으리라.

***

“너희 게임 안하고 뭐해.”

게임을 안 한다고 혼내는 곳은 지구상에 게임단 숙소가 유일하다. 브라이언 코치는 간식을 한아름 들고 스크린 앞에 옹기종기 모인 친구들을 보며 물었다.

“코치님. 쟤네 몇 시부터 게임 했어요?”

“누구.”

“한솔이랑 제리, 케빈이요.”

“글쎄다. 내가 일어났는데 이미 게임하고 있더라.”

코치가 매일 아침을 시작하는 시간은 새벽 6시, 그럼 그 전부터 게임을 했다는 이야기다.

점심 1시를 가리키는 시계를 보며 팀원들이 수군거렸다.

“성공할까?”

“힘들 거 같은데. 아까 보니까 케빈 부활스킬이 쿨타임이었어.”

선수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생긴 코치도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모니터링을 함께했다.

최근 랭크 게임 빈도가 줄면서 필드플레이 모니터링을 위해 설치해둔 스크린이었다.

단순히 필드 사냥인 줄 알았더니 스크린 속에선 대 접전이 벌어지는 중이었다. 처음 보는 보스는 휘하의 마법사들을 부려 매섭게 일행을 몰아쳤다.

“마법사 스킬 봐라. 깨라고 만들었냐? 아크위자드가 다 저랬으면 콜로세움 랭크 1위도 식은 죽 먹기였을 텐데.”

“제리 맞았어!”

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탄식이 여기저기에서 터졌다.

방어가 너무 약했던 제리는 간신히 몸만 피해 기둥 뒤로 기어갔다.

“다행히 살았네. 쟤 이번에 죽으면 48시간 패널티야.”

점차 고위 던전이 오픈되고 있기 때문에 스탯 숙련도를 쌓는덴 필드 쪽이 유리했다.

콜로세움을 종일 돌려도 필드 사냥을 못하면 점점 격차가 벌어질 터였다.

“케빈이 힐을 저렇게 잘 넣었나?”

“최근에 같이 사냥해본 적 없어? 케빈 힐 타이밍 거의 칼이야.”

제리가 반쯤 리타이어 됐지만 여전히 케빈은 광선 틈사이를 뛰며 힐을 넣었다.

굳이 서당개까지 갈 필요도 없이 케빈의 실력은 한솔과 함께하는 동안 급성장을 이뤘다.

서버 1위라 부르기에 손색없는 무도가의 민첩한 몸놀림을 계속 눈에 담다 보니 저도 모르게 동작이 효율적으로 변해 있었다.

죽을 뻔한 한솔에게 마지막 힐을 쏟아낸 케빈은 바닥을 굴러 기둥 뒤로 숨었다.

준비해온 포션도, 마력도 바닥이었다.

남은 적은 보스를 포함해 셋, 모니터를 보고 있는 팀원들이 손에 땀을 쥐는 사이 한솔의 몸이 빛줄기를 그리며 미끄러졌다.

힘을 숨기고 콜로세움에서 극도의 효율성을 추구할 때와는 전혀 다른 움직임.

한솔의 손이 매섭게 마법사들을 향해 뻗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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