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OS 소설 아닌데요-17화 (17/170)

스크림도르 (2)

라플라타는 상당히 특이한 맵이다. 일단 구조물이라 부를만한 건 발을 딛고 있는 배뿐이지만 이 나룻배는 무슨 짓을 해도 부서지진 않았다.

그렇다고 흔들리지 않는 건 아닌데 강하게 발을 구르면 철썩거리며 배가 요동치는 경우는 빈번하게 일어났다.

때문에 라플라타는 마법사들이 기피하는 맵 중 하나였다.

스킬을 시전 중에 배가 크게 흔들리면 발동이 취소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 데다 배도 작아 적을 피해 움직일 공간이 여의치 않았다.

발을 크게 구르자 뱃머리가 들렸다.

엇! 하는 소리와 함께 달려들던 블랙실드의 균형이 무너졌는데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교룡뇌조를 먹였다.

파직!

스파크 소리와 함께 옆구리를 정통으로 얻어맞자 녀석이 몸을 가누지 못한다.

마법 저항력에 관여하는 인내 스탯이 낮으면 일정 확률로 마비가 걸리는 탓이다.

장비 때깔을 보아하니 나름 신경을 쓴 것 같은데 전설급 스킬의 정타를 막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

펑펑 소리와 함께 용의 충격이 연달아 터지자 블랙실드의 체력이 쭉쭉 깎여 내려갔다.

“큰소리치더니 생각만큼은 아니네.”

게임 초기인 점을 감안하면 훌륭한 움직임이었지만 일부러 평정심을 무너트릴 요량으로 세게 말했다.

그러나 상위 선수임을 증명하듯 블랙실드는 꿋꿋이 다음 동작을이었다. 방어를 견고히 하는 녀석에게 용의 충격을 던지는데 새로운 스킬이 터졌다.

“실드 카운터.”

수세에 몰린 녀석의 손이 어지럽게 움직이더니 방패가 여러 겹이 된 것처럼 늘어났다.

상체를 두텁게 방어하는 초월급 반격 스킬이다. 뭣 모르고 저기다 스킬을 꽂으면 반탄력에 체력 손실을 보게 된다.

용의 충격이 비록 전설급 스킬이긴 하지만 만능은 아니다.

애초에 가이아의 모든 스킬셋은 적재적소에 사용할 경우 레어리티에 상관없이 위력을 발휘할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초월급 실드 카운터에 교룡뇌조나 용의 충격을 꽂으면? 본래 위력의 두 배쯤 되는 반격 데미지를 입게 된다.

찰나의 순간에 내가 주먹을 거두자 블랙실드의 눈이 커졌다. 실드 카운터의 타이밍이 완벽했는데도 내가 주먹을 거뒀기 때문이다.

‘확실히 재능은 있어.’

반격 스킬을 넣는 타이밍을 보니 웬만한 랭커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만큼 감이 좋았다. 나를 제외한다면 아마 피하기 쉽지 않을 터였다.

나는 공격 방향을 바꿔 다리 쪽에 공세를 펼쳤다.

쩍 소리와 함께 체력 바가 깎여나간다. 내 로우킥이 불꽃을 피우며 녀석의 다리를 찜질하는 중이었다.

블랙실드의 표정이 크게 일그러진다.

알면서도 못 막는 자신의 피지컬에 분통이 터진 것일까. 재빨리 검을 휘둘러 막아보지만 발에 눈이라도 달린 것처럼 허공을 가를 뿐이었다.

나는 콜로세움을 시작한 이후 언제나 이 패턴을 고수했다.

빠르게 접근해 최상급 견제기인 용의 충격을 던져대며 틈이 보이면 강공을 넣고, 상대의 반격이 매서울 땐 살짝 빠졌다가 하단을 노린다.

하단을 방어하면 상단에 교룡뇌조를 꽂는 간단한 이지선다.

아주 간단한 공식인데 지금껏 내 공식을 깬 녀석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오죽하면 가이아를 날로 먹는 법이 숫자가 붙어 시리즈로 나왔을까.

[상대가 하단을 막으면 상단을, 상단을 막으면 하단을 때리면 됩니다. 참 쉽죠?]

음식이 싱거울 땐 소금을 치면 된다 급의 리빙포인트.

내 동영상이 인기 있는 이유였다.

적성시험 최고 점수를 받을 때부터 느꼈지만 피지컬이 좋으면 이렇게나 게임이 쉬웠다.

상대의 공격을 나는 보고 막을 수 있고 내가 던지는 공격을 상대는 예측으로밖에 막을 수 없다.

이게 얼마나 사기적인 능력인지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일이다.

저러다 잇몸에서 피 나는 건 아닐지 걱정될 정도로 무서운 얼굴을 한 블랙실드의 몸이 살짝 굳는 게 느껴졌다.

큰 기술임을 직감적으로 간파한 내가 발을 빼는데 녀석의 검이 8자를 그리더니 매서운 검격이 쏟아졌다.

예상 밖의 공격에 체력이 20퍼센트 이상 깎이고 말았다.

어찌나 강한 일격인지 공격이 스치고 지나간 자리에 잔상이 남을 정도였다.

전설급 공격 스킬 인피니트 슬래셔.

이제 보니 PG녀석들 스킬 수준이 예사롭지 않다.

출전인원 다수가 전설급 공격기를 갖추고 있는 게 아닌가.

반면 우리 팀원들은 내가 조언을 늦게 해준 탓에 아직 스킬 구비를 제대로 못 한 상태였다.

파라다이스 게이밍은 자비든 팀의 지원이든 이미 스킬에 상당한 투자를 했을 가능성이 컸다.

체력바 수치는 58퍼센트 대 79퍼센트.

이대로 시간만 끌어도 이기는 싸움이다.

전생에선 탱커 전담이었던지라 타임아웃을 무던히도 노렸지만 솔직히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능력이 된다면 시원하게 때려 부수는 스타일이 팬들에게 훨씬 인기 있기가 많았다.

시간벌이로 어떻게든 승리를 따내면 팀에서야 좋아하겠지만 매번 그러면 팬들이 저 선수는 지루한 경기만 한다고 관심도가 내려가기 마련이다.

슬쩍 고개를 들어보니 완전 질린 얼굴의 블랙실드가 보였다. 믿고 있던 전설 스킬이 고작 체력 반의 반도 못깎고 헛쳤으니 그럴 만도 했다.

인피니트 슬래셔, 제대로 걸리면 방어가 약한 암살자 정도는 다진 고기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극강의 스킬이다.

“이걸 어떻게 피해?”

어떻게 피하긴. 힌트를 네가 다 줬으니까 피했지.

강공을 먹이려고 움찔하는 근육과 시선 처리. 이 모든 게 상대에게 정보를 전해준단 사실을 이들은 아직 모른다.

자신의 속내를 완전히 숨기고 포커페이스로 게임을 하는 경지에 도달하려면 일 년 정도는 걸리리라.

“나밖에 못 해.”

“뭐 이런···.”

‘아직은’ 나밖에 못 한다고.

경험이 쌓이고 재능이 뒷받침되면 너도 할 수 있단 사실을 지금 미리 알려줄 필욘 없기에 나는 그저 웃기만 했다.

재능의 격차에 압도당한 녀석을 나는 마저 요리하러 들어갔다. 아크나이트도 무도가도 마력이 넉넉한 직업들이 아니다.

기술 위력이 강하면 강할수록 더 많은 마력을 필요로 한다. 나는 마력이 크게 떨어진 녀석에게 달려들어 다시 상단, 하단의 이지선다를 펼쳤다.

적어도 나의 저레벨 패턴이 더는 먹히지 않을 때까지 공격 레벨을 올리지 않을 참이었다.

그래야 오래도록 정상에서 군림할 수 있을 테니까.

***

“어때?”

“솔직히 이건 분석의 의미 없어요. 쓰는 기술도 많아야 다섯 개를 안 넘어요. 그냥 상단 아니면 하단, 이지선다 강요라구요.”

“그걸 몰라서 그래? 그럼 우리도 똑같이 이지선다를 걸면 되잖아.”

“저렇게 빠른 스피드를 가진 선수가 없으니까요.”

PG의 전력분석 인원은 유니크의 모든 동작을 녹화하며 실시간 분석중이었다. 그러나 분석하면 할수록 상대의 역량이 뛰어나단 사실밖에 알아낼 수 있는 게 없었다.

너무나 간단해 보이는 저 전략은 오롯이 녀석만 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특히 저 견제로 넣는 스킬이요. 준비동작도 없고 막아도 반격하기도 까다롭고, 견제기로선 거의 최상급이거든요. 견제기가 맞긴 한가? 그런 것 치곤 데미지도 좀 쎈 거 같은데···.”

“돈은 얼마든지 줘도 되니까 마켓에서 구할 수 없나?”

“우린 저 스킬 이름이 뭔지도 몰라요. 아직 DB에도 정보가 없어요.”

PG분석팀은 유니크를 당장 이길 방법이 없는 레벨로 평가했다.

이번 매칭은 PG가 예상을 적중시켜 만들어 낸 상성매치.

본래 암살계에게 강한 백색을 내보냈는데도 시종일관 맞기만 하다가 게임이 끝나버렸다.

PG는 S.솔리드와 스크림을 가지기 전에 이미 타 팀과도 두 번의 연습게임을 가졌다.

블랙실드는 이미 암살계를 상대로 확실한 강점을 증명했으며 팀 내 랭킹전에서도 최상위 실력자였다.

그런 녀석이 체력바가 바닥칠 때까지 샌드백 신세로 게임을 마쳤다.

아마 현재 레벨에서 저 무도가를 꺾을 선수는 없으리라.

“S.솔리드가 정말 좋은 선수를 챙겼어.”

“뭐 어디까지나 개인전 얘기고요. 5라운드 가면 이야기가 달라지죠.”

“그렇지. 이게 또 팀전이 묘미거든. 한 명이 아무리 날뛰어도 조합 시너지는 무시 못 하지.”

분석팀장은 벤치로 향하는 한솔의 뒷모습을 보며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

***

“한솔!”

“한솔!”

“한솔!”

우직하게 블랙실드를 패고 들어왔더니 벤치 분위기가 살아났다. 나는 웃으며 팀원들과 하이파이브를 나눴다.

자체 랭킹전 패왕이 바깥에서도 여전히 위력적이라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4라운드 맵은 정령의 화산, 암살계에게 나쁘지 않은 맵이었고 브라이언 코치는 팀 내 2위, 사이클론을 내보냈다.

PG쪽 엔트리도 나쁘진 않았다. 또 한 번 상성 저격을 노리고 백색을 내보낸 것이다.

다만 블랙실드처럼 강한 선수는 아니었다.

사이클론은 아슬아슬하게 4라운드를 따냈고 스크림은 5라운드로 돌입했다.

팀이 최종전에 돌입하면 엔트리를 의논할 시간 3분이 주어진다.

브라이언 코치가 우릴 불러 모았다.

“자, 우리팀 에이스들이 잘해줘서 5라운드까지 왔다. 지면 안 되겠지. 일단 한솔이, 마커스는 선수로 올린다.”

코치가 나와 사이클론을 지목했다.

이렇게 되면 자리가 두 자리 비는 상황, 1라운드 때는 망설이던 팀원들이 서로 나가고 싶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에이스 둘이 나가면 승리 확률이 크게 올라간다.

특히나 내가 끼는 팀은 4:4 게임에서 연습과 랭크게임을 막론하고 져본 적이 없으니 이번 기회에 단장님에게 눈도장 찍고 싶은 친구들이 많았다.

비밀유지조항 덕에 내가 명예회장님 앞에서 일대다 쇼를 펼쳤던 이야긴 S.솔리드 밖으로 새어나가진 않았다.

애초에 나 일대사로 발렸소- 하고 자랑하고 다닐 이야기도 아니고 말이다.

녀석들이 랭킹 최상위권 선수는 아니었다지만 혼자 네 명을 상대했는데 4:4면 더 쉬울 수밖에.

“자, 나가고 싶은 친구들이 많네. 선택은 승리를 한 에이스들이 한 명씩 하는 거로 한다.”

아니. 여기서 화살을 나한테? 이런 건 코치가 알아서 교통정리를 해줘야 할 거 아닌가.

속으로 혀를 차고 있는데 사이클론이 냉큼 피닉스를 뽑아 올렸다. 이런 약은 녀석, 일부러 서두른 게 틀림없다.

“저는 데니스를 추천합니다.”

“좋아. 그럼 암살 둘에 탱커 한 명. 남은 건 한솔이가 누굴 선택하냐는 건데.”

딱 한 자리 남은 티켓을 두고 묘한 기류가 흐르는 상황, 나는 최대한 선수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고 말했다.

“역시 팀전은 힐러 아니겠습니까.”

팀 내 유일의 힐러, 내가 케빈을 택하자 이 녀석 미소를 숨기지 못한다.

반면 뽑히지 못한 팀원들은 아쉬운 기색이 역력했다.

다음부턴 코치보고 알아서 좀 하라고 해야겠다. 그리 생각하며 나는 서둘러 전략을 조율했다.

사이클론, 피닉스, 티르윙.

내가 프런트에 추천했고 의심할 여지없는 북미 최고의 잠재력을 지닌 선수들이다.

전생에선 S.솔리드에 사이클론 뿐이었지만 내가 역사를 바꾼 셈이다. 각 팀에서 에이스라 불렸던 선수를 모아 한데 박아놨으니 말이다.

당장 성장세는 사이클론이 제일 컸지만 시간이 지나면 셋 모두 비슷한 수준에 도달할 터였다.

“우리 원거리 스킬이 아예 없어.”

내가 먼저 작전에 관한 운을 뗐다.

아직 PG측에서 어떤 전략으로 나올진 모르지만 암살자 두 명이 나온다고 가정하면 탱커 둘, 원거리 저격을 위한 마법사 한 명, 힐러 한 명 정도가 이상적이다.

PG는 실력 있는 아크위자드를 둘 이상 데리고 있으니 어쩌면 2탱, 2법으로 나올 수도 있는 상황.

특히 2라운드에서 제리를 박살냈던 위자드는 드래곤 웨이브를 가지고 있는 것도 염두에 둬야 했다.

드래곤 웨이브는 위력도 위력이지만 범위가 넓어 팀전에선 그 가치가 더욱 올라간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코치는 지엽적인 조언만을 건넸다. 한 방을 조심하고 힐러를 잘 지키라는 등의 누구나 할 수 있는 조언 말이다.

아무래도 타 게임 출신이기도 하고 아직 경험이 많지 않을 테니 당연한 일이었다.

이제 상의할 시간은 채 1분도 남지 않은 상황, 나는 실드나이트 피닉스의 스킬을 점검했다.

“데니스, 혹시 스킬 새로 들여온 거 있어?”

“네가 조언을 해준 덕에 LGE에서 바로 공수했어.”

“스킬이름이 뭔데?”

“코스모실드.”

코스모실드는 일시적으로 마법 방어를 크게 높여 마법사의 저격을 무력화시키는 스킬이다.

전설 등급이기에 밀착해 붙으면 팀원도 어느 정도 보정 효과를 받는 스킬.

적이 아무래도 마법사 위주의 작전을 짤 것 같은 상황에서 크게 도움이 될 게 분명했다.

“무슨 효과인지 안 물어봐?”

“이미 알고 있어.”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하단 표정으로 눈을 깜빡거리는 데니스를 놔두고 나는 바로 작전 설명을 시작했다.

“아마 2탱에 마딜 조합을 들고나올 거야. 우린 데니스 뒤에 붙어서 거리를 좁히자. 좁히는 동안 떨어지는 체력은 케빈에게 맡기고 접근만 하면 나랑 사이클론이 알아서 처리, 간단하지?”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처맞기 전까지는.

이 바닥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격언이다.

말로는 참 그럴 듯해도 실전에 들어가면 온갖 변수가 튀어나와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 쓰는 말이다.

당장 맵부터 무엇이 나올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뒷목을 주무르며 근육을 풀고 있을 때 5라운드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가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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