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OS 소설 아닌데요-16화 (16/170)

스크림도르 (1)

2월이 끝나갈 때쯤 내 콜로세움 랭킹은 급락을 거듭하고 있었다. 최대 17위까지 올라갔었던 순위는 100위권 바깥으로 밀려났다.

저녁에 2시간 치르는 팀 단위 게임을 제외하면 거의 콜로세움을 뛰지 않는 탓이었다.

가이아에서 스탯 숙련도를 쌓는 방법은 필드 사냥이냐, 콜로세움이냐로 갈린다.

마스터 등급 이상이면 상위 계급이기에 숙련도 측면에서 랭크 경기를 뛰는 게 더 이득이지만 내 경우엔 다시 역전이 일어난 상태였다.

듀오로 어지간한 4인 파티 이상의 효율을 내는 덕이었다.

나와 상당 기간을 필드 사냥으로 붙어 다닌 덕에 케빈의 자신감은 꽤 올라 있었다.

4:4 팀매치에서도 그가 속한 쪽의 승률이 오르고 있었다.

성장이 엄청나다.

팀 내 관계자, 선수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케빈의 스탯 성장폭이 커져 더는 게임 중에 불의의 기습으로 터지는 일이 적어진 것도 승률에 영향을 끼쳤다.

5라운드에서 팀 매치에서 힐러를 제일 먼저 자르는 건 가장 일반적인 전략 중 하나지만 실패했을 때의 리스크도 분명하다.

스킬을 쏟아부어 목표를 쓰러트리는 데 실패하면 그 반동을 감당해야 한다.

4인 랭크 게임에서 케빈은 등장만 하면 적들의 타겟이 됐지만 웬만해선 잘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스탯 뿐만이 아니라 몸놀림도 전보다 훨씬 좋아진 덕이었다.

내 옆을 계속 따라다니며 좋은 움직임을 눈에 담은 결과였다.

이렇게 되자 팀원들이 자신도 필드사냥에 데려가 줄 수 없느냐는 부탁이 많아졌다.

나중엔 선수 뿐만 아니라 코치도 가세할 정도였다. 저들 눈엔 내가 성장 치트키로 보인 모양이다.

그러나 지금은 나도 육성에 집중할 때였다. 아직 이 유니크, 무도가의 육성이 끝나지 않은 상태라 남을 돌볼 여력이 없었다.

이미 압도적인 실력을 가졌으면서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

당연히 누구도 넘보지 못할 위업을 이루기 위함이었다.

어설픈 강함으로 천재들이 범람하는 프로 1군 무대 정상을 완벽히 차지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니까.

“무슨 전설 스킬이 이렇게 많아?”

숙소 패왕이 된 내 스킬세팅을 확인하던 사이클론은 깜짝 놀랐다.

용의 충격, 교룡뇌조, 항마장, 이형환위 등등.

굵직한 전설급 스킬이 반짝거리는 걸 보니 놀랄 수밖에.

아직 배우지 않은 스킬은 공유하지 않지만 전력 점검을 위해 캐릭터가 습득한 스킬은 항상 그날 업데이트를 해 알리는 게 팀 내 룰이었다.

비법을 알려달라고 사정하는 사이클론에게 난 간단히 말했다.

LGE같은 온라인 거래소를 이용해 스킬을 구매하면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전설급 스킬이 상당한 고가라고 들었는데 혹시 계약금으로···?”

고개를 끄덕여주자 사이클론은 이럴 때가 아니라 생각했는지 서둘러 자리로 돌아갔고 다른 팀원 몇 명도 황급히 쉬다 말고 게임을 하기 위해 사라졌다.

모르긴 몰라도 오늘 내로 저들은 몇 만 달러는 우습게 쓸 터였다.

불과 보름 전과 비교해도 LGE에 올라온 스킬 가격이 거의 배 가까이 폭등한 상태였다.

‘심지어 매물도 없지.’

다른 사람들 틈바구니에 껴서 30만 달러를 쏟아부었으니 나도 가격 상승에 일조한 셈이다.

주방장 아저씨에게 식사 맛있게 했다고 인사한 뒤 나는 다시 케빈과 함께 몰이 사냥에 나섰다.

***

“오늘 저녁은 타 팀하고 연습 경기를 할 예정이다.”

뜬금없는 코치의 선언에 선수들은 혼란스런 기색이었다.

아직 프로리그 개최 발표조차 안 난 상황에서 용케 스크림을 잡았구나 싶었다.

“상대는 파라다이스 게이밍이다.”

“거기가 어디야?”

“파라다이스 호텔인가?”

일류 호텔 체인 파라다이스 산하 게임단, 기억을 더듬자 국제 대회에서의 성적은 그리 좋지 못했고 북미 여포 소릴 종종 듣던 팀이란 정보가 떠올랐다.

“열 명 모두 준비해두도록.”

그리 말한 브라이언 코치는 슬쩍 내게 다가와 컨디션을 물었다.

“상태는 좀 어때?”

“언제나 똑같죠.”

“다행이군. 단장님하고 사무국장님도 오신다고 했거든.”

조직도에서 이름만 본 양반들도 온다는 소식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던 팀원들의 눈빛이 달라진다.

긴장감, 흥분이 한데 섞인 기분이겠지.

“걱정 안 하셔도 될 거 같아요.”

“그래?”

가이아에선 압도적인 에이스 둘을 지니면 허망한 경기는 나오지 않는다.

내가 워낙 압도적이어서 그렇지 사이클론의 기량도 폭발적으로 성장 중이었다.

저녁 전에 온라인을 통해 상위스킬을 몇 개 더 장착하면 아마 제법 매서워질 것이다.

나는 얼굴이 굳어있는 케빈에게 식사하려거든 조금만 들라고 조언했다.

첫 연습 경기, 아마 나를 제외하면 대부분 긴장할 게 뻔했다. 컨디션 난조로 체하기라도 하면 아마 정신적 고통이 며칠은 갈 테지.

그 말을 증명하듯 팀원 대다수는 연습경기 시간이 다가오기 몇 시간 전부터 게임에 집중하지 못하고 쉬거나 콜로세움을 반복하며 끊임없이 실전에 대비했다.

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케빈과 함께 비색의 동굴 재탐험 중이었다.

며칠 동안 계속 들르다 보니 이제 동굴이 집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왜 이렇게 집중을 못 해?”

체력바엔 이상이 없었지만 케빈의 반응이 살짝씩 늦는 걸 느껴졌기에 일부러 강하게 지적했다.

“어차피 5라운드가 안 오면 네가 나갈 일도 없어. 걱정하지 마.”

“우리가 압승할 거란 얘기야?”

“그럴 확률이 높지.”

어쩌면 내 차례까지 안올 수도 있었다.

사이클론은 확실한 1승 카드였고 함께 들어온 피닉스도 그에 준하는 카드였다.

특히 피닉스는 넉살이 좋아 성장세로만 따지면 사이클론을 넘어섰다. 넉살이 좋으면 코치나 팀원들이 해주는 조언을 거리낌 없이 받아들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에 유리하다.

이런 친구들은 멘탈이 강하기 때문에 쉽게 무너지지도 않는다. 북미 1세대 프로게이머중 최고의 방패로 불렸던 친구 다운 성격이었다.

“케빈. 시간 됐어. 정리하자.”

보스방까지 돌지 못했지만 나는 미련 없이 귀환을 타 콜로세움으로 향했다.

비공개 커스텀 방에 입장하자 팀원들이 속속 접속했고 관중석엔 S.솔리드 관계자들이 눈에 띄었다.

오늘은 회장님은 안 온 모양이었다.

준비하고 있으려니 반대편에서도 PG 선수들이 속속 집결했다.

저쪽은 아직 선수단 구성이 다 안 끝났는지 우리 팀에 비해 인원이 적었다.

S.솔리드는 열 명, PG는 7명이었다.

“누가 처음으로 나설래.”

브라이언 코치는 선수들의 의중을 물었다. 첫 끗발을 잘 타야 스크림이 잘 풀릴 터, 나는 슬쩍 사이클론에게 나가보는 게 어떻겠냐고 눈치를 줬는데 그도 오늘만큼은 긴장한 모양이었다.

최소한 맵을 결정짓고 나서는 2, 4라운드를 노리는 기색이었다.

“없어? 니들 그래가지고 무대 설 수 있겠어?”

패기가 없음을 꾸짖으면서도 코치는 내 쪽은 단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다.

입맛을 다시던 내가 자원하려던 찰나 애런이 손을 번쩍 들었다.

“제가 가겠습니다!”

닉네임 코코넛, 우리 팀에 백색 포지션으로 들어온 그는 버서커 클래스로 전직한 상태였다.

버서커는 공격에 특화된 광전사로 스킬을 맞추긴 어렵지만 일단 히트시키면 게임을 뒤집을 정도의 완벽한 공격 일변도의 클래스다.

“좋아. 애런. 네 실력을 증명해 봐!”

우리 팀 모두는 휘적거리며 중앙으로 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상대가 탱커, 아니면 암살계가 나오길 바랐다.

마법사만 아니면 버서커가 해볼 만한 승부니 말이다.

“애런, 잘해라!”

맵이 촤르륵 늘어지더니 회전하며 셀렉트를 시작한다.

[1라운드 - 벽람 초원]

무한맵에 장애물도 없는 그냥 완전 뻥 뚫린 잔디밭이다. 다들 맵은 무난하다고 생각할 때 나는 애런의 패배를 직감했다.

버서커는 대검, 대형 둔기를 주무기로 쓰는 클래스.

클래스 특성상 이동속도가 느린 편이었는데 무한 맵은 상대가 영원히 뒤로 피할 수 있기 때문에 버서커에겐 좋을 것 없는 맵이었다.

다음 밝혀지는 양 팀의 클래스.

[블루팀 버서커 vs 레드팀 아크위자드]

“갓 뎀!”

“아···.”

코치를 비롯한 선수 사이에서 탄식이 쏟아진다.

마법사 전직 중에서도 1인 폭딜, 디버퍼를 전담하는 아크위자드다. 상성이 구려도 너무 구렸다.

심지어 상대 얼굴이 낯이 익은게 제법 상위권에서 놀던 선수인 모양.

“끼요옷!”

괴상한 기합과 함께 대검을 머리 위로 치켜들고 달려든 애런, 그것이 그의 마지막 외침이었다.

예상대로 이속이 느린 버서커는 끝내 아크위자드를 잡지 못하고 원거리에서 농락을 당하며 처참한 패배를 맞이했다.

“젠장 상대팀 정보가 없으니.”

코치는 괜히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패배로 머쓱했던 모양, 전광판을 주시하는 사이 다음 맵이 결정됐다.

[2라운드 - 유구의 천칭]

마력조성 레벨 3, 장애물 하나 없는 공중 광장. 상대를 밀어내 장외 패를 유도할 수 있는 마법사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한 맵이다.

이쯤에서 사이클론 카드를 꺼내 들려던 코치의 손이 멈칫한다. 만에 하나 사이클론이 페이스가 말려 여기서 무너지면 스크림 붕괴가 될 수도 있는 상황, 선수들 얼굴을 훑던 브라이언이 한 명을 지목했다.

“제리!”

팀 내 유일의 아크위자드. 코치는 확실한 1승 카드를 아낀 채로 맞불작전을 감행했다.

천칭 맵이기 때문에 상대도 마법사를 내보낼 확률이 높았다.

“제리, 힘내!”

“할 수 있다! 제리!”

모니터링 할 때 지켜본 제리의 재능은 나쁘지 않았다. 1세대 사이에선 충분히 통할 만한 실력이었다.

다만 팀 내에 다른 아크위자드가 없어서 같은 클래스 간의 실전 경험 부족이 약점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었다.

180초의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기 무섭게 상대 쪽이 선공을 퍼부었다.

첫 5초간의 공방은 거의 호각이었다.

유구의 천칭은 마력이 차오르는 속도가 워낙 빨라서 마력 소모비가 필드의 절반 수준인데다 조금만 쉴 수 있으면 다시 마력을 모을 수 있다.

제리는 상대가 큰 기술을 쓰지 못하도록 막기 위해 잔펀치를 연달아 던졌다.

파이어볼트처럼 캐스팅 시간이 짧은 마법으로 견제하며 거리를 좁혀가는데 상대의 몸이 거대한 불덩이로 타오르더니 이내 드래곤의 형상이 되어 솟구쳤다.

제리는 어어 하더니 뒷걸음질 쳤다.

상대가 모르는 스킬을 썼는데 이펙트로 보나 기세로 보나 보통 위력이 아닌 것처럼 보였으니까.

드래곤 웨이브.

아크위자드 전설급 스킬로 공중에서 역 U자를 그리며 떨어지는 가공할 위력의 스킬이다.

관전 중인 인원 중 저 스킬의 공략법을 아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일단 최대한 몸을 빼 스킬의 영향권에서 벗어난다.

드래곤 웨이브는 전설급 스킬을 모두 모아도 1등을 차지할 정도로 위력이 강하지만 발동 이후 후딜이 커서 일단 피하면 어떻게든 반격 기회가 생긴다.

그러나 제리의 발걸음은 드래곤으로 변한 불꽃을 피하기에 너무 느렸다.

한 박자 늦은 헤이스트는 그를 사지로 내몰았고 가공할 충격이 제리의 몸을 하늘 바깥으로 날려버렸다.

시간을 채 일분도 쓰지 못하고 두 번째 패배를 당하자 코치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머리를 맞대고 대화중인 단장과 감독도 찬물 한바가지 맞은 분위기다.

현재 S.솔리드가 선수들과 계약한 연봉 규모는 이제 막 세워진 팀인 점을 고려하면 의심할 여지 없는 최고 규모다.

성적이 형편없으면 어디선가 말이 나올 터였다.

“한솔아.”

코치는 우울한 낯빛으로 도움을 청했다.

여기서 또 지면 그냥 게임이 끝나기에 어쩔 수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서자 PG측에서 나를 알아보고 박수를 쳤다. 엔트리를 저격에 성공한 게 틀림없었다.

요즘 콜로세움을 잘 하지 않아서 순위가 많이 떨어졌는데도 용케 맞춘 모양이다.

아니면 여전히 최상위권인 사이클론을 의식한 것일 수도 있었다.

[3라운드 - 라플라타]

라플라타. 커다란 나룻배 위에서 피할 곳 없는 승부를 벌이는 소규모 맵이다.

PG측에서 이번 라운드를 위해 준비한 카드는 아크나이트였다.

전생의 내가 6년 동안 꾸준히 팠던 공방 일체의 백색 전직 클래스. 상성으로 볼 때 가장 암살계를 잘 잡는 직업이다.

“유니크. 이런 곳에서 만나는군.”

뉘신지. 흑색 투구까지 쓰고 있으니 알 수가 있나.

이놈도 비색의 동굴에서 거들먹거리던 그런 부류인 모양, 100위권 안쪽 붙박이었으면 내가 그래도 기억을 할 텐데 말이다.

“내가 그쪽 이름을···몰라서.”

“블랙실드다.”

“아?”

닉네임을 듣는 순간 깨달았다.

이 녀석, 한국 프로게이머다. 카운트가 꽂히는 순간 놈이 득달같이 검을 세우고 달려든다.

‘자세 좋네.’

나는 왜 스크림 중에 선수 평가를 하고 있는 거지.

날카롭게 꽂히는 슬라이스 스킬을 보니 완성도가 좋다. 프로의 재능은 의심할 여지 없는 현존 탑 티어, 물론 몇 년 후 진짜배기들이 올라오기 시작하면 조금 떨어지긴 하겠지만 충분히 프로씬에서 살아남을 실력이다.

“너 한국인이냐?”

빡 소리와 함께 하이킥으로 상대 방패를 때리는데 깔끔하게 막아낸 상대가 묻는다.

시합 중에 말을 거는 건 경고 행위에 속한다. 물론 지금은 연습 게임이라 그런 규정이 없지만 프로리그가 시작되면 스크림 도중에 말을 하는 광경은 없어지게 된다.

“그게 왜 궁금한데?”

“난 일 년만 뛰고 한국으로 돌아갈 거거든.”

내 기억이 맞다면 블랙실드는 한국 첫 시즌에 VT스타즈 소속으로 입단하게 된다.

VT스타즈, 통신사 VT의 지원을 받는 게임단으로 한국 프로리그 첫 우승을 따내는 강팀이다.

“그래서?”

“너도 한국에서 같이 뛰지 않을래? 같은 팀으로 말이야.”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하는 녀석이 있을 줄이야.

나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너 하는거 봐서.”

블랙실드의 재능이 내가 기억하는 예전 수준 그대로라면 같이 게임할 일은 없을 것이다.

내가 꿈꾸는 팀은 한국 최고의 플레이어들을 모아 만드는 드림팀이니까.

“그럼 전력으로 간다!”

블랙실드가 호기롭게 외치며 검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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