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OS 소설 아닌데요-15화 (15/170)

밸런스 브레이커 (3)

프로팀 4인 파티가 해내지 못한 보스 사냥을 단둘이 해냈다.

클리어 소리에 놀란 케빈을 놔두고 난 보스의 사체를 만지작거렸다.

괴물 몸뚱이에 매력을 느끼는 건 아니고 아이템을 루팅하는 작업이다.

손을 살짝 대자 사체가 하얀빛으로 흐트러지며 놈이 품고 있는 아이템이 모습을 드러내려던 그때, 나의 몸에서 푸른 기운이 일부 흘러나와 이펙트에 화려함을 더했다.

나의 몸속에 잠들어 있는 푸른 기운, 나는 그것을 자연의 기운이라 이름 붙였다.

손해를 감수하고 스킬 박스를 낱개로 뜯어가며 이 힘을 다룰 수 있도록 노력한 끝에 간신히 감을 잡을 수 있었다.

그간의 노력으로 알아낸 정보에 의하면 이 기운은 게임 내에 작용하는 랜덤한 무언가에 영향을 끼치는 듯 했다.

가령 보스몬스터의 레어아이템, 레어소재 드랍이나 스킬박스에서 상위 스킬을 뽑을 확률을 올려주는 식으로 말이다.

티 나게 썼다간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조심하는 편이었지만 연습하느라 획득한 1퍼센트 급 상위스킬이나 0.1퍼센트 급 초월스킬의 수량은 남들과 비교해 거의 열 배 가까운 수준이었다.

‘절반쯤 남았나?’

몸 안을 가득 채우고 있던 기운이 많이 줄어든 것을 느끼며 나는 인면지주가 토해낸 아이템을 확인했다.

자연의 힘을 슬쩍 흘렸으니 기대할만한 아이템이 나왔으리라.

금화와 인근 아이템에서 NPC들의 친밀도를 올릴겸 수집하는 잡화, 그리고 레어리티 아이템 두 개가 눈에 띄었다.

[아이템 - 인면지주의 눈]

등급 : B

종류 : 활

특수 효과 : 다크레인저의 ‘고속 연사’ 스킬의 준비동작을 없앤다.

[민첩 +60]

자연의 기운이 정말 사기적인 능력이긴 한데 직업 설정을 할 수 없는 건 아쉬웠다.

너무 도둑 심보인가?

인면지주의 눈은 대단한 아이템이었다. 암살 계열이 가장 중요시하는 민첩을 60이나 올려주기도 했지만 고속 연사의 준비 동작을 없애준다는 건 매우 큰 메리트였다.

다크레인저 클래스라면 군침을 흘릴만한 아이템이었고 B급이면 지금 마켓에 풀린 최상위 장비였다.

홀로 사냥을 나온 게 아니기 때문에 일단 놔두고 두 번째 아이템을 확인했다.

[아이템 - 인면지주의 홍옥]

등급 : B

종류 : 반지

특수 효과 : 인면지주의 기운으로 피격시 3% 확률로 적에게 ‘인면지주의 저주’를 건다.

[마력 +30]

인면지주의 저주가 정확히 어떤 효과를 지녔는지 아이템 상으로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

아마 대부분 효과를 모르겠지만 나는 예외였다.

인면지주의 저주가 발동되면 상대는 거미줄에 걸린 것처럼 스피드가 급격히 저하된다. 마법사 상위 스킬 슬로우보다도 훨씬 느려지기 때문에 일단 터지기만 하면 거의 초월급 스킬 하나를 장착한 것과 비슷한 효과다.

게다가 마력스탯이 30이나 오른다는 점.

지금 내 마력 스탯이 겨우 100을 넘긴 시점이니 이걸 끼는 것만으로 마력이 30퍼센트 가까이 뛰는 셈이 된다.

“B급 두 개라고!”

끈적거리는 바닥에서 벗어나 다가온 케빈은 인면지주가 떨어트린 아이템을 보고선 기쁨의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이내 자신이 던전 기여도를 떠올리고선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기 시작했다.

차마 하나만 달라는 말이 안 떨어지는 모양이다.

둘 중에 어떤 게 더 비싸냐 물으면 당연히 홍옥이 압도적으로 가치가 높았다.

가이아 대부분의 아이템은 직업 제한이 걸려있지 않지만 결국 활을 쓸만한 직업은 다크레인저나 음양사 정도고 특수효과를 고려하면 직업 전용인 수준, 그에 비해 홍옥은 전 직업이 쓸만한 아이템이니 값이 비싼 게 당연했다.

가이아에선 레어리티 아이템이 떨어졌을 때 팀원끼리 의견을 조율하거나 서로 가지겠다고 할 땐 자연스레 경매가 시작된다.

누가 더 결투장 코인을 많이 내는가에 따라 아이템을 낙찰 받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케빈은 오늘 얻은 스탯 숙련도만 해도 만족하는지 일절 아이템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지 않았다.

그게 당연하다는 듯 뒤로 물러서는 모습을 보니 오히려 아이템을 주고 싶은 맘이 들었다.

인면지주급 보스 레이드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자연의 기운을 소모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긴 하지만 B급 정도면 앞으로 질릴 정도로 획득하게 될 터였다.

“받아.”

“이걸 나한테 준다고?”

“두 개니까 하나씩 나누자. 홍옥은 마력을 올려주니까 니가 쓰고, 난 활 가질게. 어차피 처분할 거지만.”

“아니, 아니야. 나도 양심이 있지. 하나씩 나눌 거면 홍옥은 네가 가져.”

난 사양하는 케빈의 손에 반지를 쥐여줬다.

까짓 앞으로 무수히 많은 아이템을 챙길 텐데 이걸로 선심 쓸 수 있으면 남는 장사다.

그렇게 케빈의 신뢰를 얻은 나는 잠시 접속을 종료하고 밖으로 나왔다.

아주 당연한 사실이었지만 체력이 무한에 가까운 나를 제외하면 어느 게이머건 3시간 이상 집중을 하면 적당한 휴식이 필요했다.

휴식은 케빈을 위한 배려인 셈이다.

쉬는 시간을 틈타 난 1층의 큰방을 찾았다. 존이 거주하는 사무공간이다.

S.솔리드의 조직도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대표로 해링턴 명예회장, 단장, 사무국장, 프런트, 감독, 전력분석원, 코치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파워 순으로 나열한 셈인데 존은 스카우트 겸 프런트를 담당했다.

“무슨 일이지?”

“게임을 하면서 떠오른 아이디어에 관해 얘기를 드릴까 해서요.”

나는 훗날 각 프로게임단이 운영하는 자체마켓 시스템에 대한 이야길 꺼냈다.

가이아는 대전격투 게임이지만 RPG 요소를 빼놓을 수 없다. RPG게임 프로게이머야 이전부터 있긴 했지만 제대로 히트한 게임은 가이아가 거의 처음이나 마찬가지, 스킬이나 장비등의 거래가 활발해짐에 따라 향후 일 년 이내로 각 게임단은 자본력을 동원해 시장의 상위 스킬, 장비를 선점하기 시작한다.

자체마켓은 소속 선수들이 가져오는 아이템을 팀에서 알아서 처분해주는 시스템이다.

드랍된 아이템을 선수끼리 교환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한두 푼 하는 물건도 아니고 마켓이 없는 팀은 불협화음이 생기다 보니 나중엔 팀내 프런트에서 아이템을 일괄 관리해주는 게 프로팀의 베이식이 됐다.

“선수의 아이템을 팀에서 일괄 구매해달라는 이야기군?”

“모든 아이템에 대해 그럴 필요는 없죠. 현재 서버 상태를 보면 B급이 최상위 레어리티니까 기준을 B급으로 잡고 점차 올려나가면 되지 않을까요.”

“팀내에서 자체적으로 교환하는 건?”

“사이가 틀어질 수도 있으니까요. 알아보니 B급 아이템 시세가 천 달러를 가볍게 넘습니다. 스킬은 말할 필요도 없고요.”

천 달러? 나중에 더 상위 장비가 풀리기 시작하면 선수 연봉이 왔다 갔다 하는 수준에 이르기도 한다.

이걸 팀원 간 교환만으로 처분하라는 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나는 미래에 이 시장이 어떻게 굴러갈지를 몸소 겪었다.

프로 씬에서 승부를 가를 만한 장비나 스킬이 타 팀에 넘어가는걸 방지하기 위해 더욱 엄격한 모니터링이 시작되고 모든 장비 처분은 팀 수뇌부가 결정하는 시대가 도래한다.

그뿐이면 다행이지. 나중엔 자본으로 선수 캐릭터를 강화해 준 뒤 팀 이적할 때 캐릭터를 압수하는 일도 비일비재하게 벌어진다.

스타 게이머라면 이런 조항을 처음부터 받아들이지 않거나 호조건에 팀을 이적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프로는 그냥 하자는 대로 끌려가게 된다.

뭐 팀 입장에서도 억 단위에 가까운 돈을 그냥 부어줄 순 없으니 이해 못할 일은 아니지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지만 나는 이런 식의 흐름이 도래할 거란 식으로 의견을 정리해 존에게 건넸다.

결국 이 모든 건 프런트 몫이 될 테니까.

“요점 정리를 잘해놨군. 이 종이를 보니까 꼭 이렇게 될 것 같단 말이지. 혹시 계약서 수정을 요구했던 것도 이걸 예상하고 했던 건가?”

존이 한국에 계약서 작성을 위해 찾아왔을 때 난 캐릭터 소유권 침해를 막기 위해 몇 개 조항을 추가해 달라고 요청했다.

스타프로게이머들이 적극적으로 주장해 찾았던 그 권리들을 말이다.

“근시일 내로 대표님께 보고 올라갈 거야. 그리고···전설급 스킬은 확실히 선점에 나서야겠어. 아, 이야기 끝났으면 가봐도 돼.”

혼잣말을 중얼거리다 내게 손을 흔들어주는 존에게 인사하고 문을 나서며 생각했다.

‘이미 조금 늦으셨지만요.’

시장의 흐름을 보니 재력이 넉넉한 유저들은 이미 전설급 스킬, B급 레어리티 장비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LGE같은 북미 최대 거래 사이트에서 가이아는 이미 핫플레이스였다.

살짝 늦긴 했지만 나도 팀에서 쏴준 달러로 쇼핑을 조금 했다. 장비는 스킬에 비해 인플레이션이 빠른 편이라 관심을 두지 않았다.

초월 급이지만 전설 급처럼 취급되는 각 클래스의 주요 스킬, 나중에 값이 몇 배는 더 뛸 게 분명한 전설 스킬이 나의 주 구입 품목이었다.

그렇게 내 계정에 고스란히 잠든 스킬이 딱 30만 달러 어치였다.

***

합동 랭크 게임을 두 시간 뛰면 곧장 자유시간이 아니라 토론이 이어진다.

오늘 어떤 동작이 잘못됐고 수정해야 할 부분을 논의하는 자리다.

지금까지 숙소생활을 시작한 이후 단 한 번도 지적받지 않은 선수는 나뿐이었다.

진 적이 없으니까.

물론 지지 않았다고 해서 피드백을 하지 않는 건 아니다.

나 다음으로 고승률을 자랑하는 사이클론도 격투게임 고인물인 브라이언 코치의 조언을 수시로 받았다.

내게 코치의 조언이 없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코치 뿐만 아니라, 감독, 관계자들 모두가 나의 플레이에 흠을 딱히 잡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딱 해야할 타이밍에 주어진 임무를 해내는 것. 프로가 갖춰야할 덕목을 나는 정확히 이행했다.

브라이언 코치는 자존심만 내세우는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내게 노하우를 선수들과 공유해줄 것을 정중히 부탁했고 나는 흔쾌히 응했다.

어차피 스킬과 장비, 재능, 삼박자가 어우러져야 하는 결과물이라 알려줘도 따라할 수 없는 게 대부분이었다.

정규 랭크 연습 시간이 끝난 뒤, 나는 코치를 찾았다.

“코치님.”

“응?”

“저 내일 외출 좀 해도 될까요?”

밥시간이 지났으면 배달을 시키면 되고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주문을 한다.

체력단련 시설까지 고루 갖춰진 숙소에서 밖에 나갈 일이 거의 없기에 코치는 내게 행선지를 물었다.

“세도나 국립공원요.”

“······?”

브라이언 코치는 당혹감을 내비쳤다.

왜 아니겠는가. 합숙 시작한 지 일주일 만에 국립공원 가게 외출 허락좀 해달라는데.

뭐 이런 놈이 다 있지? 하는 심정일 거다.

차마 한숨은 쉬지 못하고 입술만 적시던 코치는 손가락으로 주머니를 두드렸다.

팀 내 최고 성적을 거두는 의심할 여지없는 에이스, 대표의 총애까지. 게다가 첫날 선수를 모아놓고 합동 훈련 시간만 지키면 따로 터치는 하지 않겠다고 미리 언질까지 준 마당이다.

알아서 잘하는 녀석을 묶어둘 이유는 없었다.

“설마 숙박은 아니지?”

“네.”

차를 타고 가면 편도 2시간, 숙소에서 멀리 갈 일 있으면 기사를 붙여준다 했으니 내일 일정도 문제없었다.

“그래. 그럼 내일 연습 전까진 올 수 있겠네. 근데 왜 국립공원이야?”

기사가 따라붙는데 시내 놀러 나가는 걸 산에 간다고 거짓말하진 않았을 거 아닌가.

“기운이 좋다고 해서요.”

“기운···?”

코치는 이제 나를 조금 이상한 놈으로 보는듯했다.

나의 이런 행동이 팀 내 기강 잡기에 좋을 리 없단 사실을 잘 알았지만 내게도 무척 중요한 문제였기에 어쩔 수 없었다.

내 몸 안에 남아있는 자연의 기운은 이제 절반 정도, 미국에 온 뒤로 기운은 조금도 회복되지 않았다.

나는 이 기운이 설악산 같은 공기 맑은 곳에서 회복할 수 있을지 모른단 가설을 세웠다.

이 말도 안 되는 능력만 있으면 굳이 사이클론이 가지게 될 그림자발자국에 연연할 필요도 없었다.

문제는 내일 만약 국립공원에 갔는데 기운 회복이 안 될 경우였다.

그럼 따로 시간을 내서 한국에 가는 수밖에 없었다.

거기서도 기운 회복이 안 되면 남아있는 절반의 기운은 정말 중요한 때를 위해 아껴둘 참이었다.

날이 밝자마자 나는 검정 밴에 올라탔다.

17번 고속도로를 타고 가는 동안 나는 흥겨운 로큰롤의 소리를 작게 깔아두고 잠을 보충했다.

“친구. 다 도착했어.”

“감사합니다.”

기지개를 켜며 뻐근한 몸을 풀고 있을 때 미리 연락해둔 가이드가 우릴 발견하고 다가왔다.

나를 깊은 삼림까지 안내해 줄 사람이었다.

“기가 좋다더니···.”

“가이드 벤 말렉일세. 젊은 친구가 뭘 좀 아는구먼. 이곳 기운은 미국 최고라고 자부할 만 하지.”

밴에서 내리자마자 내 발끝을 타고 푸른 기운이 천천히 차오르는 게 느껴졌다.

시원한 느낌이 발바닥을 마사지해주는 기분이다.

이 사기적인 행운이 당분간 마르지 않으리란 사실에 나는 씰룩거리는 입꼬리를 진정시키기 위해 뺨을 두드려야 했다.

“오늘 안내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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