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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OS 소설 아닌데요-13화 (13/170)

밸런스 브레이커 (1)

2월 초, 나와 같은 연령대의 학생들은 전부 개학에 학교에 갈 때 나는 애리조나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아마 이날이 가이아 오픈 직후 가장 오랫동안 게임에 접속하지 않은 날이었으리라.

피닉스 공항에 도착했을 때 나는 한국 날씨가 너무 가혹하다 한 존의 말을 곧바로 이해했다.

2월임에도 조금 쌀쌀한 정도?

한낮엔 봄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다른 곳도 비슷하겠지만 어디를 가든 기다란 야자나무와 선인장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내 짐은 이미 관계자들이 알아서 챙겨서 난 가볍게 몸뚱이만 돌아다니면 됐는데 존은 곧장 숙소로 향하는 게 아니라 도시 이곳저곳을 구경시켜줬다.

“오늘 일정은 도시 구경입니까?”

“그렇지.”

“빨리 숙소 들어가서 가이아에 접속하고 싶은데···.”

그가 추천한 멕시칸 음식점에서 식사를 해결하며 운을 띄워봤는데 회장님 명이라 어쩔 수 없단다.

팀원들이 도시에 애정이 생기면 좋겠다나?

돈 주는 사람이 시켰다는데 어쩌겠는가. 잠자코 구경하는 수밖에.

심지어 여행이지 않은가. 처음 보는 장소였기에 신선한 재미도 있었다.

그렇게 아이스크림 먹고 상점 번화가를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낸 뒤, 저녁이 돼서야 숙소에 들어갈 수 있었다.

S.솔리드 숙소는 스코츠데일에 박혀있었는데 나는 밴에서 내린 즉시 한 명의 외국인을 알아보고 손을 흔들었다.

“헤이!”

사이클론이었다. 팀에선 미팅 이후 내가 추천한 인원 세 명을 모두 영입하는데 성공했다.

사이클론, 피닉스, 티르윙.

전부 콜로세움에서 두각을 보였고 전생에서 활약을 보였던 1세대 선수들이다.

프로팀을 만들려는 움직임은 S.솔리드뿐만이 아니었는지 이들 모두 다른 곳에서 제의를 받았다고 했다.

그럼에도 이들이 이곳으로 온 건 보다 좋은 조건 덕이었다.

객관적으로 봐도 모기업 규모가 가장 큰 곳이 S.솔리드였으니 탁월한 선택이었다.

“오늘 처음 만났는데 꼭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것 같네.”

“외모는 거의 달라진 게 없으니까.”

가이아의 캐릭터 커스터마이징 자유도가 떨어지는 게 여기선 이런 데선 소소한 장점으로 통했다.

게임 속에서 마주쳤던 캐릭터가 그대로 현실 밖에 서 있는 기분이다.

그나저나 숙소 한 번 끝내주는군.

3번이나 팀을 옮겼던 내가 본 모든 게임단 숙소 중에 단연 이곳이 최고였다.

테니스장, 농구코트, 풀장을 달고 있는 3층짜리 건물.

숙소로는 터무니없을 만큼 좋았다.

그것뿐인가.

숙소 안에서 제공하는 음식 수준도 모두 최고였다. 어디 호텔 주방장을 모셔왔는지 일단 내가 기억하는 이모님 밥하고 비쥬얼적인 부분에서 많이 달랐다.

9시가 됐을 때 1층 거실 테이블엔 10명의 선수와 팀 코치, 분석팀이 참석해 앞으로 운영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설명했다.

“프로리그는 개최 시기는 아마 5월 초로 예상됩니다. 그전까지 여러분은 지금까지 했던 대로 가이아에서 꾸준히 캐릭터 육성을 해주시면 됩니다. 단, 저녁 6시부터 두 시간씩 4인 랭크게임을 돌릴 예정이고 데이터를 수집해 분석, 피드백할 겁니다.”

감독의 말에 선수들은 다 같이 박수를 쳤다.

선수 간 연봉은 구체적으로 언급한 적 없다지만 다들 1년 차 프로게이머가 받을 수 있는 최대 액수를 받고 이 자리에 모였을 터.

많은 돈을 받으면 그만큼 일을 하는 게 전 세계 공통 룰이다. 그럼에도 하루에 두 시간만 팀게임을 하면 아무 터치를 하지 않겠다니.

“랭크게임을 하는 시간 외에 게임을 하지 않는 선수는 어떻게 됩니까?”

“터치하지 않습니다. 단, 시즌 도중에 교체할 수도 있고 이 자리에 모인 선수 대부분은 많은 옵션을 달고 있습니다. 겨우 보장금액 푼돈이나 받고 짐싸서 나갈 게 아니라면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닭장에 넣고 선수들을 굴리는 한국 시스템엔 나도 회의적인 편이지만 그게 제일 빠르게 결과를 내는 방법인 것도 사실이다.

너무 널널한 게 아닌가 싶었는데 감독의 말이 이어졌다.

“열심히 하는 선수는 연봉 조정 때 적용을 받을 겁니다. 저희 대표께선 성실한 선수들을 좋아하시거든요.”

S.솔리드의 대표는 해링턴 명예회장, 회장 눈 밖에 나기 싫으면 열심히 하라는 뜻이다.

스케쥴 표에 따르면 식사는 하루 2번. 10시와 4시.

그 외엔 간식으로 때우거나 배달을 시켜서 먹으면 된다.

가이아는 캐릭터 육성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다 보니 최대한 선수들의 편의를 보장했다.

팀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하루 두 시간의 팀 게임과 4시간의 숙면 시간이었다.

잠을 더 자는 건 어느 정도 배려하겠지만 최소한 4시간씩은 자라는 요구였다.

이렇게 자유롭게 놔둬서 팀이 제대로 돌아갈까 의문을 품은 채로 S.솔리드 생활이 막을 열었다.

***

숙소 생활 일주일이 지났다. 일주일간 한 거라곤 이전과 거의 다를 게 없었다.

부모님에게 안부 전화 드리고, 프로게이머 생활 재밌느냐고 물어보는 고등학교 친구들에게 이런저런 답장, 김민준 같은 유망주와 미리 친목을 다지는 정도?

-저도 나중에 형처럼 프로생활할 수 있을까요?

-네 재능이면 충분하지. 나 미국에 오래 있진 않을 거야. 나 없는 동안 다른팀에 먼저 들어가면 안 된다. 좋은 팀 한 번 만들어보자.

-저야 좋죠.

민준이는 내 제안에 여전히 긍정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좋다고 말해도 프로팀에서 계약금 흔들며 입단하자고 하면 다른 곳으로 홀랑 넘어갈지 모른다.

이 녀석은 아직 애니까.

게임을 하면서 나오는 마법사 아이템은 뇌물 겸 선물로 뿌려야겠다.

열 명의 선수가 너나 할 것 없이 숙소에 익숙해졌을 때 S.솔리드 숙소는 작은 정글로 변화의 조짐을 보였다.

하루에 꼴랑 두 시간만 합동 훈련을 하는 곳에서 이런 일이 왜 벌어졌는가.

첫 발단은 파티구성으로부터 시작했다.

가이아의 모든 플레이는 4인 중심으로 돌아가기에 팀 내 인원도 자연스레 넷씩 뭉치게 됐는데 현재 숙소 인원은 총 열 명이었다.

두 팀을 짜고 나면 두 명이 남는 상황이다.

아직 리그 시작 전이기에 팀 코치들은 엔트리의 유동성을 위해 고정 파티 대신 돌아가며 사냥할 것을 주문했다.

소외 받는 팀원이 생기지 않도록 로테이션 파티를 해달란 요구다.

물론 아직 어린 친구들은 이런 결정이 영 맘에 들지 않는단 투였다. 사람이 열 명이나 모이면 서로 잘 맞는 사람, 안 맞는 사람이 나오기 마련이다.

억지로 손발이 안 맞는 팀원과 합을 맞추려니 불만이 생길 수밖에.

그래도 여기까진 괜찮았는데 화이트보드에 콜로세움 선수 평가를 기록하기 시작하자 불협화음이 일기 시작했다.

감독과 코치 입장에선 어떤 선수가 강점을 가지고 있고 실력은 어느 정도나 되는지 면밀히 알아둘 필요가 있다.

때문에 승리, 패배를 기록하며 그날의 성적을 빼곡히 작성하기 시작했는데 선수들 입장에선 여간 스트레스가 아니었다.

현재 숙소 인원은 총 열 명, 나는 리그가 시작되면 당일 엔트리가 6명까지 배정된단 사실을 알고 있지만 팀원들은 최악의 경우 4명만 게임에 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했다.

현재 팀에선 나와 사이클론을 제외하면 승률이 엎치락뒤치락하는 형국이라 다들 화합하기보단 서로 견제하는 기운이 강해졌다.

저 녀석을 이기지 못하면 팀에서 주전 보장을 받지 못 할거란 압박감, 이것이 현재 숙소가 작은 정글이 된 원인이었다.

이것만큼은 나도 어쩔 수 없는 문제였다.

선수 모두가 즐겁게 웃는 프로게임단은 애초에 존재할 수 없다. 팀이 딱 경기를 뛸 만큼의 선수만 보유할 게 아니라면 말이다.

가이아뿐만 아니라 프로리그를 운영하는 대부분의 게임은 연습생을 포함해 엔트리 이상의 선수를 확보, 철저한 경쟁을 통해 선수를 가려낸다.

전생의 난 간신히 1군 자리를 지켜내긴 했지만 항상 경기를 뛰는 선수는 아니었다.

때문에 지금 힘들어하는 친구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4시간 정도 자고 일어난 나는 아침을 먹고 코치를 찾았다.

브라이언 오, 그는 북미에서 잘 나가는 격투게임 세븐스타 우승자 출신이었다.

격투게임을 하던 친구라 그런지 콜로세움 랭킹도 마스터를 유지할 정도로 실력 있는 코치였다.

“코치님?”

“무슨 일이야?”

“저 오늘 케빈이랑 같이 필드 좀 뛰어도 될까요.”

“오늘 순서가···.”

파티 로테이션 순서를 확인한 브라이언 코치가 슬쩍 내 눈치를 본다.

코치가 선수 눈치를 보는 일은 흔하지 않다.

서류상 순서로는 오늘 내가 케빈이랑 같이 게임할 날이 아니다. 그러나 그는 이내 나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팀에서 내 영향력이 커진 이유, 며칠 전의 일이었다.

한창 게임을 하고 있는데 프런트 담당인 존이 내게 와 대표님 호출을 알렸다.

S.솔리드의 대표는 해링턴 명예회장.

차를 타고 이동하니 근사한 식당이었다.

식사 한번 같이하자는 말이 빈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심지어 나중에 알게 됐는데 팀원 중 회장님과 독대하고 식사를 함께 한 건 나뿐이었다.

이런 사실을 코치나 감독이 모를 리가 없다.

회장님의 총애를 받는 팀 내 최고 유망주, 덕분에 숙소에서 내 영향력은 브라이언 코치를 가볍게 누를 정도였다.

“무슨 일이야?”

자기 순서도 아닌데 불려온 케빈은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이다.

닉네임 티르윙, 케빈 스미스는 내가 추천한 선수 중 한 명으로 게임 내 클래스는 힐러 전직인 비숍이었다.

최근 내가 신경쓰는 것중 하나는 추천 선수들의 성장이었다. 사이클론이야 걱정할 것 없지만 데니스나 케빈은 달랐다.

현재 이 두 명은 내가 원하는 만큼 실력을 끌어올리지 못하는 상태였고 그중에서도 케빈은 조금 심각했다.

케빈은 팀 내에서 가장 심한 압박을 받고 있었다.

힐러는 개인전에선 아무런 기여를 할 수 없고 팀전에서나 조커카드로 쓰는 클래스다라는 인식이 선수는 물론이고 코치나 감독 또한 그리 생각하는 기색이었다.

애초에 내가 추천하지 않았다면 뽑힐 리 없던 선수였다.

“오늘은 조금 빡세게 사냥을 하고 싶어서. 힐러가 없으면 불안하잖아. 죽으면 큰일이고.”

“네 실력이면 죽을 일이 없지 않나.”

말은 그렇게 해도 케빈은 오늘 나랑 뛰게 되어서 한결 편한 기색이었다.

다들 자기 자리를 지키려고 눈을 부릅뜬 가운데 나는 시종일관 부드러운 태도를 지켰으니 그럴 만도 했다.

“신경 써줘서 고맙다.”

고맙긴, 너도 좋고 나도 좋자고 하는 일인데.

리그가 장기전에 들어가면 어느 팀의 어떤 포지션이 강한지가 낱낱이 드러난다.

때문에 5라운드를 가는 경우가 자주 일어나는데 팀전에서 힐러의 영향력은 생각보다 강했다. 힐러를 낀 조합이 정석으로 자리 잡을 정도로 말이다.

네가 잘 커야 내 챔피언십 우승 계획도 차질이 없단다.

“출발하자.”

“뭐야. 네 명이 아니라 우리 둘이야?”

케빈은 난감한 얼굴이었다. 그도 그럴 게 우리가 지금 서 있는 곳은 바로 엊그저께 발견된 현재 가이아 내의 최정상 난도 던전인 비색의 동굴이었다.

“둘이 사냥 돌리면 스탯 숙련도가 빠르게 오르니까.”

리그가 고작 두달도 채 남지 않았다.

아직 대륙 미개척 영역이 많아 남은 시간 동안 스탯 한계점인 5천은 절대 만들 수 없는 상황, 최대한 캐릭터 육성에 공을 들여야 했다.

“죽지 않도록 잘 부탁한다.”

가이아는 사망 패널티가 무척이나 큰 게임에 속했다.

필드 사냥을 하다 죽으면 24시간 동안 필드를 뛸 수가 없다. 두 번째로 죽으면 48시간, 다음은 72시간.

죽을 때마다 24시간씩 패널티가 증가하는데 이게 리셋되는건 해가 바뀌어야 된다.

즉, 시즌이 끝날 때까지 죽으면 죽을수록 막대한 손해를 입는 셈이다.

엄청난 패널티에 유저들은 이를 악물고 몸을 비틀거나 안전한 곳의 사냥을 선호했다.

그런 점을 고려할 때 케인은 내 선택을 무모한 것으로 여겼다. 이제 막 발견된 상급 던전을 4인 파티도 아니고 단둘이 돌아야 한다니.

그 생각이 틀린 게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최신 던전임에도 주변에 사람이 거의 보이질 않았다.

재수없게 죽을 바에 한 단계 낮은, 안전이 확보된 곳에서 육성하겠단 취지다.

“그렇게 걱정할 필요 없어. 비색의 동굴은 별거 없으니까.”

“어떻게 알아? 벌써 돌아봤어?”

돌아봤지. 전생에서.

무도가 전설급 스킬만 3개, 심지어 그중 하나는 항마장이다.

지금 내 수준에 비색의 동굴은 혼자 돌아도 하품 나올 정도 수준일 터였다.

“자, 힘차게 오늘 하루를 시작해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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