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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OS 소설 아닌데요-12화 (12/170)

의문의 능력 (2)

입에서 단내가 나는 것만 같다.

전직시험 시작 8시간 48분째, 99번을 도전했고 99번을 전부 깨졌다.

내 독기에 교관도 놀랐는지 무표정하던 그의 안색이 이따금 변하곤 했지만 승패는 여전히 뒤바뀔 기색이 없었다.

57퍼센트.

내가 상대를 가장 몰아붙인 기록이다. 다시 말해 43퍼센트의 데미지를 입힌 셈이다.

백번째 시험이 끝나자 구로관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건 나를 이기는 게 목적이 아니라 버티는 게 목적이네만. 혹시 목표를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닌가?”

그럴 리가 있나.

내 머릿속에선 치열하게 조금 전 전투를 분해해 약점과 공략 방법을 수정 중이었다.

아무리 머릴 굴려봐도 교관에게 300초를 버티려면 맞공격으로 맞서는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이동기의 부재였다. 내가 가진 이동기 중 가장 좋은 스킬은 바람의 발걸음.

청색 공용의 상급 스킬로 제법 안 뜨는 물건 중 하나다.

문제는 이런 상급 이동기로도 공중에서 방향을 꺾는 등의 묘기는 흉내조차 낼 수 없다는 점이다.

애초에 상대보다 발이 느린 상태에서 버티기 위해 몸을 빼는 건 지금 상태론 불가능한 일, 지금 방식을 바꾸는 건 의미가 없었다.

차라리 전직시험을 미루고 스탯 성장에 치중할 게 아니라면 말이다.

“한 번 더 갑니다.”

정말 어떻게 돼먹은 몸인지.

나는 집중력이 유지 되는 내 새로운 몸에 감탄을 보내는 중이었다.

아무리 실제 몸을 쓰지 않는 게임이라지만 사람인 이상 8시간 넘게 최고 집중력을 유지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푸른 빛덩이를 흡수한 이후 내 정신력은 인간 이상의 경지에 올라선 느낌이었다.

이렇게 공부를 했으면 판검사도 했겠다.

그런 쓸데없는 잡념과 함께 나의 발이 먼저 교관을 향해 미끄러지며 언제든 치고 나갈 자세를 잡았다.

도전 횟수가 130번을 넘었을 때 구로관의 체력은 11퍼센트까지 내려간 상태였다.

NPC 얼굴에 질린 기색이 떠오를 정도니 내가 방향을 제대로 잡고 있긴 한 모양이다.

상대의 이동기가 나보다 월등히 좋으면 앉은 자리에서 받아치는 수밖에 없다.

“자네 지금 내 공격을 보고 막았나?”

“이게···보려고 하니까 보이네요.”

그렇지 않았다면 승리를 목전에 둘 수 없었겠지.

지금 내 눈엔 구로관이 어떻게 주먹을, 발을 뻗어오는지 그 투로가 생생했다.

아무리 강한 기술도 공격 루트를 읽히면 마법이 아니고서야 방어할 수 있는 법이다.

도저히 흘릴 수 없는 공격은 몸을 앞으로 들이밀어 사전 차단하는 것으로 어떻게든 공격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의심할 여지 없는 최고 재능이로군.”

내 상체 위로 벼락이 떨어지듯 주먹이 날아든다.

초월급 스킬인 뇌력권이 틀림없다.

사람이 눈을 감았다 뜨는데 걸리는 시간은 0.4초 정도, 일부러 의식해 빨리 감았다 뜨면 0.15초가 걸린다.

0.15초.

인간이 무언가 인식하고 반응할 수 있는 한계 지점이다.

기술 시동이 이보다 빠르면 보고 막는 게 불가능한 영역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가이아의 사기급이라 불리는 스킬은 0.1초 안쪽으로 공격이 터진다.

그럼 이걸 다 맞아줘야 하는가?

그랬다면 딜러 졷망겜이었겠지. 프로라면 상위 스킬부터 하위 스킬에 이르기까지 웬만한 주력스킬의 투로를 다 꿰고 있기에 예측해서 막는 게 어느 정도 가능하다.

뇌력권의 연타는 총 일곱 번, 눈을 부릅뜨고 머리가 기억하는 대로 공격을 흘렸다.

분명 전부 다 막을 수 있는 공격이었다.

그러나 나는 마지막 한 발을 막지 않고 그대로 몸으로 받았다.

초월급 스킬을 몸으로 받으면 어떻게 되는가.

어떻게 되긴 뭘 어떻게 돼. 죽어야지.

간신히 남아 달랑거리던 체력바가 0으로 수렴해 불꽃이 꺼져 버린다.

“뭐하는 짓인가. 전직시험 통과가 눈앞에 있지 않았나.”

교관은 단단한 방어를 스스로 풀고 정타를 허용한 내가 이해가 되지 않는단 투다.

“아깝잖아요.”

“무엇이 말인가.”

나는 대답대신 머리 위의 시간을 가리켰다.

나의 패배가 찍힘과 동시에 멈춘 시간은 2초를 가리키고 있었다.

내가 이 괴물 같은 노인에게 298초를 버틴 것이다.

“조금만 더하면 버티는 게 아니라 직접 잡을 수 있을 거 같은데 아깝게 왜 그만둔단 말입니까?”

시험시간 2초가 남은 시점에서 구로관의 남은 체력은 고작 3퍼센트, 정말 조금만 더 분발하면 때려잡는 게 가능해 보였다.

이대로 뇌력권을 전부 막았으면 시험은 클리어했겠지만 꼭 똥싸고 뒤를 안닦은 기분이었겠지.

내 대답이 어처구니가 없었는지 교관은 맥빠진 웃음만 지었다.

“갑시다. 한 번 더!”

***

뇌력권의 궤적을 날랜 발차기가 틀어낸다.

상급 스킬인 열화각으로 반격한 뒤 기술을 캔슬, 스러스트로 돌리자 교관의 체력 바가 파바밧 소리와 함께 땅으로 꺼졌다.

지독하리만큼 고단한 전직시험이었다.

“해냈다!”

“축하하네.”

주먹을 불끈 쥐며 소리침과 동시에 금빛 폭죽이 터졌다.

무도가 전직을 완료했다는 시스템 안내창이 떠올랐다.

[청색 계열 전직 무도가 전직시험을 완료하셨습니다]

[업적 용의 시험을 달성했습니다]

[업적 무신의 자질을 달성했습니다]

무신의 자질?

아무래도 내가 모르고 있던 숨겨진 업적을 달성한 모양, 서둘러 업적 창을 열어 내용을 확인했다.

◆초월급 업적 - 용의 시험

적성시험 SS등급을 받아 30일 이내로 전직 시험을 통과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보상 : 전직시험 상자 +1

이건 익히 알고 있던 업적, 본래 가이아 초창기엔 전직시험을 늦게 치르는 프로게이머들이 많았다.

SS급 전직 시험이 너무 어려운 탓이었다. 그러나 연차가 쌓이고 지오에서 전직시험 난도를 하향시켜준 덕에 30일 이내의 업적을 달성하는 사람이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나도 전생에 해냈던 업적이다.

SS 전직시험 보상으로 주는 스킬 상자는 본래 하나인데 그것이 두 개가 됐다.

못해도 초월급, 잘하면 전설급 스킬도 뜨는 레전더리 상자이다 보니 기분이 좋았다.

나는 냉큼 나머지 업적을 확인했다.

★전설급 업적 - 무신의 자질

적성시험 SS등급을 받아 30일 이내로 교관에게 승리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보상 : 던전, 무신이 잠든 곳의 출입이 가능해집니다.

당장 쓸만한 건 아니네.

특수 던전 입장권한이 생긴 모양인데 이런 보상은 해당 던전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면 꽝이나 마찬가지다.

전설급 업적이라기에 기대했더니 당한 기분이랄까.

“교관님. 혹시 무신이 잠든곳이 어딘지 아십니까?”

“예로부터 무도가들에게 내려오는 전설이지. 무신이 잠들었다는 그곳을 발견하면 압도적인 무공, 무신의 심득을 발견할 수 있다는 이야기일세. 물론 지금까지 누구도 찾아내지 못했다고 들었네만. 자네도 이제 무도가의 길을 걷게 됐군.”

“그건 그렇고 보상은 언제 주십니까.”

빨리 상자를 열어보고 싶어 재촉하자 구로관이 양손으로 백금색 스킬 박스를 건넸다.

이 영롱한 무지개색 광채를 보라!

콜로세움의 코인으로 구입할 수 있는 전직업 스킬박스에서 내 직업에 맞는 상위 스킬이 등장할 확률은 0.1퍼센트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전직시험 보상 상자는 웬만하면 꽝이 없다고 정평이 나있는 바! 나는 재빨리 상자 하나를 잡아 돌렸다.

철컥-

영롱한 금색이 상자 틈새에서 뿜어져 나왔다.

“전설!”

[전설급 스킬 - 항마장 / 무도가]

-불길한 기운을 몰아내는 백수사의 장법.

나는 살짝 아쉬운 마음에 입맛을 다셨다.

가이아에서 스킬은 크게 PVE에 특화된 스킬, PVP에 특화된 스킬로 나뉜다.

항마장의 경우엔 전자였다.

콜로세움에서 쓰이기보단 필드나 던전, 부정한 기운을 몰고 다니는 적이 많이 등장하는 곳에서는 그 위력이 전설급 윗단계라 해도 믿을 정도지만 대인 공격으로 쓰면 전설급에 아쉬운 위력이었다.

‘그래도 전설은 전설이지.’

향후 악명 높은 언데드 던전이라도 발견되면 써먹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바로 다음 박스를 돌렸다.

돌린 틈새 사이로 익숙한 보라색 연기가 흘러나온다.

SS전직시험 보상으로 상급 스킬이 나왔단 소린 들어본 적이 없으니 초월 급이면 사실상 꼴등 상이다.

그래도 스킬만 좋은 게 떠준다면야.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내 몸에서 불쑥 푸른 빛덩이가 튀어나가 박스 틈새를 채워 다시 잠가버리는 게 아닌가.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나는 잠시 말을 잊고 말았다.

“왜 그러나?”

상자를 열다 말고 양손으로 붙잡아 멈췄더니 교관의 눈엔 이상하게 비쳤던 모양이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리 말하고 다시 돌리자 이번엔 보라색 연기가 아닌 금빛이 틈새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전설급 스킬 - 교룡뇌조 / 무도가]

-교룡의 발톱처럼 날카로운 조법. 번개처럼 빠르다.

맙소사.

분명 초월급 스킬이었던 상자가 푸른 빛을 받더니 전설급 스킬이 됐다.

단순히 신체 능력을 개조시켜주는 능력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거 위험한 거 아니야?

혹시 데이터에 뭔가 남는 작업이 있었다면 핵사용 유저로 분류되고도 남을 상황이다.

모른 척 하고 있다가 잘못되면 변명도 할 수 없기에 나는 가이아 경력 처음으로 운영자와의 대화를 시도했다.

유저가 운영자와 대화를 요청하는 경우는 인게임 내 치명적 결함을 발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10분 정도 기다리자 내 앞에 운영자가 호출됐다.

“무슨 일이시죠?”

“제가 방금 전직시험을 마쳤습니다. 스킬상자를 두 개 열었는데 전부 전설급 스킬이 나왔거든요.”

“확률상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제가 스킬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이상은 없었는지 한 번만 확인해주셨으면 합니다. 스킬이 바뀐 것 같아서요.”

“그럴 리가 없는데···.”

고개를 갸웃거리며 운영자는 내 요청을 받아들였다.

새 패널을 열어 데이터를 살핀지 1분쯤 지났을까 아무 이상 없다는 답변을 하고선 이내 자취를 감췄다.

그럴 리가 없는데. 분명히 봤다! 상자 틈새로 초월급 스킬 이펙트인 보라색 연기가 흘러나오는 걸 말이다.

혹시나 싶어 내가 상자를 여는 순간을 지켜봤던 교관에게도 물었는데 그는 그런 적 없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의심할 여지 없이 두 상자 모두 금색 연기였네.”

운영자에게 확인까지 받았으니 적어도 상자 여는 걸로 제재를 당할 위험은 없어졌다.

그렇다면 이제 내가 본 게 사실인지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이게 사실이라면 내 계획을 완전히 수정해야 할 정도로 압도적인 초능력이었으니까.

나는 구로관한테 인사를 남기고 서둘러 콜로세움으로 향했다.

현재 내가 보유한 코인은 3105개.

스킬 상자 30개를 오픈할 수 있는 양이다. 정확히는 31개지만 10개 묶음으로 구입해야 상위 스킬이 뜰 확률이 조금이라도 높아진다.

“오픈.”

스킬을 구입해 돌리자 팟팟팟 하고 상자에 하나씩 불이 들어온다. 흰색, 녹색, 푸른색이 차례대로 켜진다.

하급, 중급, 상급 스킬이 고루 섞여 마지막 상자에 도착했을 때 나는 머리털이 곤두서며 온몸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내 몸에서 다시 한번 푸른 기운이 쑥 하고 빠져나가더니 상자의 색깔을 바꿔버렸다.

영롱한 금빛 기운이 마지막 상자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미친···.”

***

30개 상자를 열어서 획득한 스킬 중 전설급 스킬은 무려 3개. 놀랍게도 10 묶음 당 빠지지 않고 전설 스킬이 들어있었다.

누가 들어도 절대 믿지 않을 수준이었다.

전부 무도가 스킬이 아니라고 해도 정도가 심했다.

[전설급 스킬 - 천사의 입맞춤 / 비숍]

-천사의 가호로 1분 이내에 죽은 동료를 되살린다. 일일 1회 제한.

[전설급 스킬 - 오행방벽 / 엘레멘탈 마스터]

-화(火), 수(水), 목(木), 금(金), 토(土) 속성의 오행 방어벽을 따로 움직일 수 있다.

[전설급 스킬 - 철의 방패 / 실드나이트]

-5초간 주변 아군이 받는 데미지는 타격당 1퍼센트를 넘지 않는다.

스킬 설명만 봐도 감이 오지만 전부 각 클래스가 최고로 치는 1티어 스킬이다.

무도가 전설 스킬과 교환하자는 글을 커뮤니티에 올리면 아주 반응이 뜨겁겠지.

얼마 전만 해도 100만 달러짜리 계약을 했다는 생각에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었는데 이 정도면 스킬만 내다 팔아도 빌딩을 살 기세다.

‘방법을 찾자···.’

운영자는 문제없다고 했지만 매번 상자를 열 때마다 전설급 스킬이 튀어나오면 없던 문제도 생길 게 분명했다.

적어도 이 능력을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도록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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