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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OS 소설 아닌데요-11화 (11/170)

의문의 능력 (1)

존이 들고 온 계약서 초안을 살짝 손보고 싸인을 한 지 하루가 지났을 때, 아파트 단지 내에 내게 인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한솔아. 얘기 들었는데 미국 간다면서?”

“어머, 한솔아. 미국 갔다더니?”

자랑 중 자랑은 자식 자랑이라더니, 어머니가 아는 인맥을 총동원해 나의 미국행을 자랑하신 모양이다.

온종일 미국 갔다는 소릴 들으니 혹시 내가 죽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아마 날 아는 사람 중에 더는 내가 미국 가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으리라.

미국 가기 전 가족여행 장소로는 속초가 당첨됐다.

본래 우리 집은 바다보단 계곡이나 산을 좋아하는 집안인데 한겨울에 계곡은 갈 일이 없으니 겨울 산행이 결정된 것이다.

산의 정기를 받아 심신을 맑게 하자!

라는 취지 하에 패딩을 걸치고 가족들과 속초로 향했다.

본래 우리 집은 그리 유복한 편이 아니어서 여행을 가도 적당한 숙소만을 잡았지만 이번엔 달랐다.

탁 트인 절벽에 바다를 마주한 리조트는 이번 생에 내가 묵어본 숙소 중엔 가장 좋은 곳이었다.

솔직히 날도 추워서 집에서 쉬고 싶었지만 되려 부모님이 힘이 넘치셨던 모양이다.

끌려가는 길에 순두부 한 그릇 먹고 설악산을 타기 시작하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이 땀이 비 오듯 쏟아지기 시작했다.

저질 체력, 아무래도 미국에 건너가면 체력보강 훈련을 다시 해야 할 듯했다. 전생의 튼튼했던 몸뚱이가 그리웠다.

케이블카를 거르고 헉헉 거리며 산을 타는데 뭔가 이상한 것이 눈에 띄었다.

‘반딧불?’

얼어 죽을 것 같은 한겨울에 반딧불이가 웬 말인가.

자세히 살펴보니 그것은 반딧불 비슷한 푸른 빛덩어리였다.

누운 팔자를 그리며 이리저리 날아다니기 시작한 빛을 조심스레 관찰하는데 순간 빛이 쏘아지듯 내게 쇄도하는 게 아닌가.

“억!”

“왜 그러니? 벌써 힘들어? 그래 가지고 타지 생활 괜찮겠어?”

빌빌거리는 아들을 어머니가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바라보신다. 가족 중 내 발걸음이 제일 느려 뒤처진 상태였다.

“아니! 이거!”

작은 불똥을 시작으로 무수한 푸른 빛이 내게 쏟아지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내게 공포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광경이었다.

벌도 아니고 이게 대체 뭐야!

미친 듯 뛰어다니며 푸른 빛을 떼어내 보려고 애를 쓰는데 아무 소용 없었다.

내 몸으로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한 푸른빛은 패딩을 뚫고 들어와 내 몸을 지지기 시작했다.

과장이 아니다.

진짜로 몸을 열탕에 담근 것처럼 극심한 열기가 나를 휘감았다.

뭔가 잘못됐다.

내가 지랄 발광을 하자 어머니는 깜짝 놀라 달려왔다.

“왜 그래!”

“아니 이거-!”

“이거 뭐!”

아마 이 푸른 불똥은 어머니 눈에 전혀 보이지 않는 모양, 이 상황을 도저히 설명할 길이 없어 나는 이를 악물고 패딩을 벗어 던졌다.

“더워서요!”

“사람 놀래게, 땀 금방 식어. 감기 걸리려고 작정했니?”

지금 패딩을 안 벗으면 죽을 것 같은데 어쩌겠는가.

시간이 조금 지나자 주변을 맴돌던 푸른 불빛이 몽땅 내 몸 안으로 빨려 들어왔고 후끈거리던 열기는 빠르게 잦아들었다.

이 신기한 일이 있고 난 후에 내가 제일 먼저 느낀 건 더는 숨이 차지 않는단 사실이었다.

“너무 힘들면 아빠한테 말해서 내려가자고 할까?”

“괜찮아졌어요.”

조금 더 올라가자 흔들바위가 나타났는데 어머닌 더는 못 가겠다며 쉴 것을 제안했다.

“너희 아빤 대체 어디까지 올라갔다니.”

“쉬고 계세요. 제가 빨리 올라가 볼게요.”

“놔둬. 어차피 만나지도 못할 텐데.”

참고로 말하자면 우리 가족 중 산을 정기적으로 오르는 분은 아버지뿐이다.

취미가 등산인 분이라 항상 혼자 정상을 찍고 내려오실 정도다.

나는 힘들어하는 어머니를 잠시 앉게 해드린 후 등산로를 홀로 올랐다.

시야에 더는 어머니가 날 볼 수 없을 때부턴 뛰어서 올라가기 시작했는데 정말 놀랍게도 숨이 전혀 차지 않았다.

게다가 한동안 보이지 않던 푸른 빛무리가 어디서 또 나타났는지 내게 우수수 달려들기 시작했다.

헛둘헛둘!

속으로 구령을 붙이며 산을 뛰자 스쳐 지나가는 등산객들은 나를 전부 한 번씩은 바라봤다.

그냥 오르기도 힘든 산을 뛰어다니면 나라도 신기하게 봤을 거다.

경사진 등산로를 족히 1킬로미터는 쉬지 않고 뛰었을 때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초능력자가 된 게 틀림없다고.

총 맞고 죽은 뒤로 나도 모르는 육체 능력에 눈을 뜬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체육인도 울고 갈 폐활량에 전생보다 압도적으로 좋아진 피지컬이 이해가 됐다.

그래도 이 푸른 빛덩이는 뭔지 모르겠네.

내 몸을 계속 파고들던 푸른 빛덩이는 한참을 달라붙더니 이내 자리가 없다고 판단했는지 더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내 몸 안에 어떤 맑은 기운이 가득 찬 느낌이 있었다.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던 푸른 기운이 내 몸 안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한참을 올라도 아버지가 보이지 않자 나는 홀로 기다릴 어머니에게 되돌아갔다. 내려갈 때도 달려 내려가니 몇 분 걸리지도 않았다.

물론 숨은 조금도 차지 않았다.

***

“여기까지 와서 게임을 꼭 해야겠니?”

“이해해주세요. 이제 이게 제 직업이잖아요.”

보름간 계약이다 뭐다 일로 인해 성장 페이스가 상당히 느려진 상태였다.

적어도 전직 정도는 맞추고 숙소에 합류하고 싶었다.

객실 내 PC를 이용해 가이아를 설치한 나는 들고 온 VR 장비를 연결했다.

조금 페이스가 늦어지긴 했어도 오픈 이후 3주일간 나보다 육성을 잘해낸 플레이어는 없을 터였다.

콜로세움 상위권을 유지하며 받은 코인으로 빠듯하게나마 스탯 숙련도 3배 버프를 항상 유지할 수 있었던데다 필드 사냥보다 더 많은 경험치를 확보할 수 있었다.

어디 보자.

<플레이어 : 유니크>

직업 : 청색 계승자

소속 : 없음

강화 효과 : 없음

[체력 225+11]

[마력 97]

[투지 166+4]

[인내 180]

[근력 215+5]

[민첩 376+18]

[지식 101]

스탯합계 1366, 적성시험을 치르고 난 뒤 받은 스탯 수치 10배를 넘겼기에 이제야 전직시험을 치를 수 있게 됐다.

다른 유저에 비해 늦은 이유는 초기 스탯이 높은 탓이었다.

적성시험 SS판정을 받아 초기스탯이 타 유저에 비해 월등히 높았으니 말이다.

그러나 전직이 늦다고 꼭 나쁜 건 아니었다. 오히려 나중을 생각하면 더 유리했다.

가이아에선 스탯 합계치가 5천에 이를 즈음 성장 한계치에 도달한다. 내 스탯 합이 1366이니 벌써 20퍼센트 지점을 넘긴 셈이다.

하지만 이 5천이란 수치는 아이템이나 스킬, 강화 효과로 인한 보조 스탯을 뺀 수치이며 초기스탯 역시 마찬가지다.

SS로 적성시험을 끝마쳤을 당시 내 민첩스탯은 32였다.

민첩은 캐릭터의 움직임 속도를 결정하는 아주 중요한 스탯 중 하나다.

만약 S라면 27쯤 됐을 터인데 이 민첩 5차이를 후반에 올리는 건 몹시 어려운 일에 속했다.

사실 기본스탯 합이 5천쯤 되면 5차이야 무시할 수 있는 수치이긴 하다.

아이템의 효과까지 생각하면 스탯이 더 오를 테니까.

하지만 프로라면 그런 작은 부분을 그냥 넘길 수 없었다.

그 작은 차이가 중요한 승부를 결정지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나는 당당한 걸음걸이로 도시 외곽에 위치한 청색 전직소를 찾았다.

콜로세움만 돌릴 땐 몰랐는데 대도시에 사람이 무척이나 많았다.

가이아의 완성도, 재미의 입소문이 퍼져 엄청난 기세로 유저가 늘고 있단 증거였다.

덕분에 전직소 앞은 전직시험을 치르려는 청색 계승자들이 고개를 기웃거리는 중이었다.

어떤 식으로 시험을 치르는지 전직소 바깥에선 확인할 도리가 없지만 담벼락 안쪽에서 연신 악악거리는 괴성이 터지는 걸로 보아 흥겨운 매타작이 벌어지고 있음은 짐작할 수 있었다.

“자, 등급 별로 줄을 서도록!”

눈만 내놓고 검은 천을 둘둘 말은 전직소 NPC가 눈을 부라리며 유저들을 줄 세운다.

줄은 D급, C급에 다수 몰려 있었다.

적성시험 A급 이상은 대기줄이 짧아 거의 프리패스나 다름없었다. 그들은 유저들의 부러운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전직소 안으로 향했다.

“내가 알아봤더니 적성시험 등급이 높을수록 보상이 좋다더라.”

“지금이라도 캐릭터 새로 키울까? 다시 시험 보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

적성시험 등급에 따라 전직시험의 종류가 바뀌고 보상도 다른 건 사실이나 그만큼 시험 난도가 차원이 다르다는 걸 저들은 알고 있을까.

A급 전직 시험 상위 점수를 받은 유저가 S급 전직시험을 통과하는 것조차 벅차다는 사실을 말이다.

“자네는?”

“저쪽입니다.”

“호오.”

가장 왼편의 통로를 가리키자 NPC의 눈이 반짝였다.

“어서 가보도록.”

NPC에게 공손하면 없던 보상도 생기는 법이기에 난 고개를 꾸벅 숙이고 바람처럼 사라졌다.

워낙 빠르게 움직였기에 내가 SS쪽 관문으로 향한 걸 본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내 뒷모습을 본 이들조차 잘못 봤겠거니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그곳은 직사각형의 회색 돌이 가지런히 깔린 연무관이었다. 바람처럼 들어선 나를 한 명의 노인이 맞이했다.

“아마 지금쯤 올 때가 됐다고 생각했지. 그대는 전직시험을 치르러 온 계승자가 맞는가.”

“예.”

휘날리는 수염을 쓰다듬는 백의의 노인은 마치 신선 같은 모습이었다.

청색 시험 교관은 오늘 처음 봤지만 그 시험의 악명만큼은 익히 들어왔다.

청색 SS전직 시험은 진정한 불지옥 난이도.

이걸 기초 스탯 10배에 깨는 건 불가능하다. 라는 말이 프로 사이에서 돌 정도였다.

“구로관이네. 그대의 이름은?”

“유니크입니다.”

“청색 계승자가 갈 수 있는 길은 총 세 가지일세. 무기의 달인이 되어 적을 압도하는 웨폰마스터, 어둠속에서 적을 암살하는 다크레인저, 육체를 극한으로 단련해 한계를 뛰어넘는 무도가. 그대가 가고자 하는 길은 무엇인가.”

“무도가입니다.”

이건 생각할 것도 없었다. 현재 내 수중엔 전직만 하면 쓸 수 있는 초월급 스킬 부동심에 전설급 최상위 티어에 군림하는 용의 충격이 있다.

이걸 놔두고 다른 전직을 고르는 건 가시밭길을 자청해서 가는 격이다.

“제한 시간은 5분! 그대가 나의 공격을 버티면 무도가의 인정을 받게 된다. 오라!”

전직교관 구로관이 발을 찍음과 동시에 300초의 숫자가 새겨지며 전투가 개시됐다.

흔히 소설을 보면 고수가 하수에게 선공을 양보하곤 하는데 교관에겐 해당 없는 이야기였다.

쿵하며 바닥을 박차고 날아드는 교관은 흡사 인간 포탄 같았다. 무게중심을 옆으로 빼며 피하는데 갑자기 공중을 밟으며 방향을 꺾는 게 아닌가.

비처럼 쏟아내는 교관의 주먹을 전부 피하는 건 지금 수준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콩 볶는 소리가 전신을 훑더니 코끝의 시큰한 무언가가 입술을 타고 흘러내린다.

눈 깜짝할 사이에 체력바가 30퍼센트가 빠졌다. 피한다고 피했는데도 이 모양이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간이 컨트롤러인게 천만다행이었다.

이 괴물 같은 존재를 캡슐머신 속에서 상대했더라면 자비 없는 고통을 느꼈을 테니까.

‘이길 수 있을까?’

“몸놀림은 쓸만하군!”

맞기만 하다 끝날 순 없어 주먹을 내질렀다. 날카로운 클러가 구로관의 빈 옆구리를 가른다.

공격을 슬쩍 흘려낸 그의 다리가 뱀처럼 솟아올라 턱을 공격해온다.

턱을 정통으로 가격당하면 높은 확률로 스턴 상태에 빠진다. 컨트롤 불가 상태가 되는 것인데 이런 근접 공방에선 찰나의 틈도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

기를 쓰고 머릴 뒤로 물렸는데 코피가 콸콸 터진다.

체력이 바닥에 거의 닿을즈음 나는 생각을 잘못했음을 깨달았다.

교관을 상대로 공격을 깔끔하게 피해낸다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살을 주고 뼈를 쳤어야 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던 때에 구로관의 날카로운 킥이 상체로 파바밧하고 떨어졌다.

무력감이 들 수밖에 없는 일방적인 패배였다.

“자질은 충분하나 자네의 힘이 아직 시험을 통과하기에 부족해 보이는군. 더 힘을 길러 도전하게.”

휙하니 몸을 돌리는 동작마저 절도 있어 보인다.

가이아 시작 이후 오랜만에 느껴보는 벽에 도전정신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정말 불가능할까? SS급 전직 시험의 악명이 높긴 했어도 프로 중 일부는 초기 10배 스탯을 가지고 벽을 뚫어냈다.

그들이 해냈다면 나도 가능할 터였다.

내 육체에 담긴 재능은 결코 그들에 비해 밀리지 않았다.

“다시 도전하겠습니다.”

사망으로 인한 패널티도 없으니 두려울 건 없었다.

그저 얼마나 빠른 시간 내에 클리어해서 시간 낭비를 막느냐 하는 싸움일 뿐.

안타깝게도 교관과 벌이는 시험은 스탯 숙련도에 기여하지 않았으니까.

“곧바로 도전하겠나? 본래라면 순번을 지켜야 하네만, 이곳엔···자네뿐이군. 들어오게.”

발구름과 함께 다시 300초의 시간이 새롭게 리셋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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