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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OS 소설 아닌데요-10화 (10/170)

제안을 하는 자, 받는 자 (5)

몸값을 올리기 위한 시합을 무사히 마치고 딱 하루가 지났을 때 스카우트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당연히 내가 한국에 있기에 가이아 안에서 볼 수밖에 없었는데 놀랍게도 이번엔 혼자가 아니라 둘이었다.

“어···?”

다년간의 프로 경험으로 단련된 나는 어지간해선 놀라는 일이 없었는데 이번만큼은 예외였다.

그는 혼자가 아니라 백발의 할아버지와 함께 자리에 앉아있었다.

“다시 만나서 반갑네.”

“안녕하세요. 회장님.”

“이젠 명예회장이지.”

해링턴 명예회장은 호칭을 정정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최근 기술 발전은 정말이지 놀라울 따름이야. 내가 죽기 전에 이런 세상이 올 줄은 몰랐거든. 소식 들어본 적 있나? 지오는 최근 게임 속에서 먹고 마실 수 있도록 감각 센서를 개발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하더군.”

“이야긴 들었는데 꽤 오래 걸리지 않을까요.”

게임 내에서 음식을 섭취하는 것으로 맛과 포만감을 느낄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 그들 취지인데 적어도 내가 현역으로 뛰던 시절엔 제대로 적용이 되지 않은 영역 중 하나였다.

현실과 가상현실의 경계가 무너진다면 위험한 일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하는 학자들이 더러 있을 정도로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작업이었다.

아무튼 당장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내가 신경 써야 할 건 이 자리에 해링턴 회장이 나온 이유였다.

“어제 자네의 활약. 굉장히 인상 깊었네. 몸놀림이 아주 뛰어나더군.”

“좋게 봐주셨다니 감사합니다.”

“자네가 우리에게 제안한 계약금은 10만 달러였지. 물론, 어제의 활약을 보여주기 전에 말이야.”

어제 난 분명히 더 보여줄 것이 있다 말했고 그걸 보여주면 몸값이 더 오를 거라 말했다.

다행스럽게도 회장님이 그걸 기억하고 있는 데다 딱히 기분 나빠하지 않는 것 같았다.

“자네의 요구를 받아들이기로 했네. 분석팀 역시 자네가 현재 이 게임의 독보적인 플레이어라고 칭찬하더군. 해서 말인데 보장 계약금으로 30만 달러에 우승 등의 수당은 옵션으로 책정할까 하는데 어떻겠나. 정확히 결정이 난 건 아니지만 올해 우리 팀이 리그에서 우승한다면 자넨 100만 달러에 가까운 돈을 받게 될 걸세.”

100만 달러.

그 액수가 주는 묵직함이 나의 심장에 팍 하고 꽂혔다.

올해 팀이 우승만 한다면 내가 프로 생활 6년을 굴러 모은 돈을 단번에 벌 수 있단 소리 아닌가.

관계자들에겐 어제의 퍼포먼스가 확실히 인상 깊었던 모양이다.

“혹시 부족한가?”

내가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으니 재차 되물어왔다.

나는 즉시 아니라며 손사래를 쳤다. 솔직히 말이 안 될 만큼 좋은 조건이긴 했다.

당장 리그 시작도 안 한 게임, 미래의 가능성만을 보고 이런 고액 투자를 하는 셈이니 말이다.

“액수는 만족합니다만 몇 가지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말해보게.”

“먼저 팀원을 구성하는데 의견을 좀 드리고 싶습니다.”

완곡한 말이긴 해도 결국 그 의미를 들여다보면 내가 원하는 팀원을 맞춰줄 수 있느냔 뜻이 되기도 했다.

내 말을 곧장 알아들은 스카우트는 살짝 날이 선 듯한 기색이었지만 정작 회장님은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허락이 떨어지자 난제일 먼저 사이클론의 이름을 올렸다.

어제 내가 동시에 상대한 네 명의 쭉정이들과 비교하면 사이클론은 리그 우승에 있어 반드시 필요한 인재였다.

대체 왜 전력분석팀이 사이클론의 이름을 뺐는지 의문일 정도로 말이다.

시즌을 치르는 동안엔 여러 변수가 생긴다.

선수 컨디션이 항상 좋을 수 없는 노릇, 몇 개월간 리그를 운영하다 보면 감기나 부상으로 슬럼프를 겪는 선수가 꼭 있다.

그럴 땐 팀이 얼마나 두터운 인재 풀을 갖췄느냐로 성적이 결정된다.

비록 지금은 내가 사이클론보다 전투력 면에서 월등히 앞서있는 상태지만 그가 1년만 경험치를 쌓아도 지금보다 배 이상 성장할 터였다.

그의 재능은 진짜배기다. 다른 팀에 넘겨주기 아까울 정도.

사이클론을 포함해 눈여겨 봐두었던 세 명의 유저를 언급했더니 해링턴 명예회장은 즉시 스카우터에게 그들에게 접촉할 것을 지시했다.

“자네 생각에 지금 추천한 이들은 팀 운영에 있어 반드시 필요한 인재들이라 이거지?”

“예. 회장님.”

“그들에게도 업계 최고 대우로 영입 제안을 넣도록 하지. 본인들이 싫다는 경우만 아니라면 계약은 어렵지 않을 거야.”

“감사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또 있나?”

회장님은 까다로운 친구구만 하는 표정이다.

“이게 본론입니다. 제가 말씀드린 유저들은 팀에 플러스가 될만한 재목이기에 사실 S.솔리드가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는 제안이었습니다.”

“그말은 지금 하려는 이야긴 팀에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단 소리로 들리는데.”

“아마 그럴 겁니다.”

“그게 뭔가.”

“제 계약 기간은 최대 2년까지입니다. 이 계약 기간을 약속해주시지 않으면 전 이 팀에서 뛸 수 없습니다.”

리그 2년 차를 마치고 나면 난 스무 살이 된다.

전생에서 프로팀 2군으로 처음 입단했을 당시의 나이다. 이런 제안을 할 줄은 예상치 못했는지 회장님이 눈을 깜빡인다.

“이유를 들어볼 수 있을까? 2년 후에도 정상급 기량을 유지하고 있다면 자네의 이탈은 팀 전력에 엄청난 공백을 만들 텐데.”

S.솔리드에서 2년을 보내고 한국에 복귀하면 2030년이다.

복귀가 이보다 늦어지면 레이저를 비롯해 내로라하는 한국 출신의 톱클래스 게이머를 한 팀에 모으기 어려워진다.

내 머릿속엔 북미 프로팀에서의 성공을 발판으로 드림팀을 구성할 계획이 짜여진 상태, 계획대로 진행돼 최고의 동료들과 함께 2032년의 올림픽을 맞이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그림이었다.

“저의 기량이 최고조에 머물러 있을 때 국가의 명예를 위해 뛰고 싶은 마음입니다.”

사실 국가의 명예를 운운한 건 msg가 많이 첨가된 발언이었다.

그보단 세계 최고라 불리는 한국리그의 위상, 대한민국 국가대표로서 올림픽 출전등이 더 큰 요소였다.

물론 아직 한국엔 리그도 없을 뿐더러 올림픽 얘기 따윌 할 순 없으니 대충 둘러댄 셈인데 의외로 수긍하는 반응이 나왔다.

해링턴 회장이 그런 이유라면 이해할 수 있다며 고개를 끄덕인 것이다.

“알았네. 자네가 원치 않는다면 2년 뒤에 붙잡지 않겠네. 다만 조국으로 복귀할 때의 이야기네.”

“물론입니다.”

“그럼 더 이상의 조건은 없는 건가?”

더 있다고 말했다간 사람 좋은 회장님 얼굴이 어떻게 변할지 몰라 나는 냉큼 그렇다 답했다.

“한국인이라고 들었는데 맞나?”

“그렇습니다.”

“계약서를 작성해야 하니 여기 이 친구를 한국으로 보내도록 하겠네. 그럼 돌아올 때도 편할 테니 말이야. 자네 얼굴은 며칠 뒤에나 볼 수 있겠군. 그때는 내가 맛있는 식사를 대접하도록 하지.”

“부탁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회장님.”

해링턴 회장은 내 어깨를 두드리며 게임을 빠져나갔고 나는 남은 스카우트와 향후 만날 일정에 관해 대화를 나눴다.

***

계약은 완료단계에 들어섰다.

하지만 내겐 큰 산이 남아있었다. 바로 부모님을 설득하는 일이었다.

당장 내일모레 스카우트 존이 우리 집에 도착하면 나는 신청한 여권을 받아들고 짐을 싸서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게 된다.

S.솔리드 관계자들 앞에서 1:4로 칼춤을 춘 게 벌써 보름 전의 일, 이제 더는 늦츨 수가 없기에 난 마음을 굳게 먹고 부모님 앞에 섰다.

“그래. 할 말이 있다고?”

저녁 먹고 이야기를 들어달라는 아들의 말에 부모님은 고개를 갸웃거리셨다. 어린 아들이 이렇게 무게 잡고 뭔가 들어달라는 경우는 좀처럼 없었으니까.

“아버지, 어머니.”

항상 엄마, 아빠라고 부르던 아들이다. 분위기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부모님 얼굴에 살짝 그늘이 진다.

혹시 큰 사고라도 친 게 아닌가 하는 표정이다.

“너 혹시 사고쳤니?”

“그건 아니구요.”

“그럼 뭔데. 답답하니까 어서 말해.”

“당신은 좀 가만히 있어. 괜히 재촉하니까 애가 더 말하기 힘들잖아.”

이미 부모님 머릿속에 나는 뭔가 큰 폭탄을 하나 터트린 녀석이 된 모양이다.

그러나 폭탄은 이제 막 터질 차례였다.

“자세한 얘긴 내일 다시 드리겠지만 저 학교 그만두려고 합니다.”

“······.”

거실에 정적이 흐른다. 침묵이 이렇게 숨이 막힐 수도 있는 줄 전생엔 미처 몰랐다.

뜬금없이 학교를 관두겠다니, 부모님이 크게 놀라실 만 했다.

“너, 너 그게 대체.”

“혹시 학교에서 괴롭힘 같은 게 있니?”

뒷목 잡고 쓰러지려는 어머니에 비해 아버진 최대한 침착하려 애를 쓰셨다.

“아니 그게 아니구요. 제가 입단 스카우트를 받았거든요.”

“입단? 어디서 말이냐?”

“그 S.솔리드라고 하는 북미 게임단인데요.”

나는 거기까지 밖에 말할 수 없었다.

게임단이란 소리를 들은 엄마의 머리털이 곤두서며 불을 뿜기 전 용처럼 가슴이 부풀어 올랐기 때문이다.

“너어어- 미쳤어!”

엄마는 마침내 용이 되었다.

불대신 매서운 손바닥이 우수수 쏟아진 게 달랐지만.

노발대발하는 어머니의 분노가 사그라든 건 다음날 존이 우리 집을 방문하고 나서였다.

존 길버트 스카우트, 그는 게임 안에서 만났을 때와 똑같은 검은 양복 차림으로 통역사를 대동하고 우리집을 찾았다.

190센티미터의 장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의 아우라는 나를 몹시 긴장케 했다.

왠지 모르게 그 망할 놈의 제이슨이 떠오른 탓이었다.

존은 선물이라며 와인을 꺼냈는데 집에 와인 마시는 사람이 없어도 그것이 고가의 물건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아, 감사합니다.”

아버지는 조심스레 와인을 받았고 어머니는 어떤 차가 좋겠냐며 통역사를 통해 물었다.

“조금 따뜻한 걸 주실 수 있겠습니까. 한국 날씨는 제겐 좀 힘들군요.”

한국의 살벌한 1월 추위는 어제까지만 해도 애리조나에 있던 존에게 너무나 가혹했다.

참고로 애리조나는 한겨울에도 영하로 내려가는 법이 없는 곳이다.

“여보. 이리로 좀.”

“뭔데?”

존에게 따뜻한 레몬티를 내준 엄마는 부엌에서 그가 가져온 와인 상표를 검색하곤 눈이 휘둥그레져 아버질 불렀다.

“이게 얼만 줄 알아요? 삼백이래요. 삼백.”

그 사이 스마트 폰으로 검색해 와인 가격을 알아보셨던 모양이다. 스마트폰에 찍힌 와인 라벨의 가격을 본 아버지도 이게 무슨 일이냐며 와인과 액정을 번갈아 쳐다봤다.

간밤에 아들이 터트린 폭탄은 너무나도 당혹스러운 이야기, 평범하게 게임을 좋아할 뿐이던 녀석이 갑자기 학업을 중단하고 미국으로 취직 하러 가겠다던 현실이 이제야 천천히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존 길버트 씨라고 하셨나요?”

“편히 존이라고 하시면 됩니다. 이건 저희가 준비한 저희 게임단 팜플랫, 그리고 이쪽은 정한솔 군이 저희와 맺게 될 계약 내용입니다.”

“아니, 계약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 아들이 그럼 중졸이 된다는 거 맞죠.”

“엄마. 이게 얼마짜리 계약인데. 학교가 문제야?”

“너. 그 입. 안 다물어?”

입술을 조금만 열고도 어떻게 저런 박력을 내시는지.

조금만 더 뻥끗했다간 계약이고 나발이고 산 채로 죽을지도 몰라 조개마냥 입을 닫았다.

“미국엔 게임학과를 갖춘 유능한 고등학교가 여럿 있습니다. 출석도 형편에 맞게 조정을 해줍니다. 원하신다면 정한솔 군의 학업을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도울 겁니다.”

존은 눈치 9단이었다. 상황을 보니 내가 궁지에 몰려있다는 걸 포착한 그는 손짓 발짓을 동원해가며 이 계약이 얼마나 내게 좋은 것인지를 열심히 설명했다.

어찌나 열심인지 통역사가 끼어들기 곤란해 할 정도였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내 계약금 액수를 밝혔을 때 이 긴장의 벽이 서서히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예, 예?”

“얼마라고요?”

“정확히 보장 계약금만 30만 달러입니다. 계약서에 정한솔 군이 사인하는 순간 즉시 지급되는 돈입니다.”

국내 계좌로 지급 받으면 세금을 내야 하니 토막이야 나겠지만 그래도 거금임엔 틀림없는 액수.

부모님은 아들이 하루아침에 억대 연봉자가 된다는 사실이 영 믿기지 않는단 표정이었다.

“원하신다면 부모님께서 저희 숙소에 직접 오셔서 한 번 둘러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비행기 티켓과 체류 비용은 저희가 부담합니다.”

존, 고맙습니다. 왠지 당신이 좋아질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숙소 방문이냐고!

“정말 둘러봐도 괜찮나요?”

“물론입니다.”

어머니의 반짝이는 눈을 보며 난 산채로 죽을 걸 각오하고 끼어들었다.

“아, 제발!”

세상에 숙소 부모님 견학이라니, 물론 전생에서도 나이 어린 친구들이 연습생으로 들어올 때 부모님과 같이 오는 경우가 있긴 했는데 외국인 친구의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유니크 부모님은 꽤나 극성이더라 같은, 숙소 동료들 사이로 이상한 이야기가 도는 건 절대 사양이었다.

“하루 이틀 다녀오는 것도 아니고 너 일 년씩 가는 건데 그 정도도 못할까 봐?”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요. 괜히 마마보이 같은 소문 나는 거 바라시는 건 아니죠? 전화 자주 드릴 테니까 제발요.”

“그래. 적응하는 데 신경 쓸 것도 많을 텐데 우리까지 부담 주고 그러지 말자고.”

어머닌 영 못마땅한 눈치였지만 아버지의 말을 이해하신 듯 보였다.

“그럼 계약을 하면 출국은 언제 하는 겁니까.”

“일주일 뒤입니다.”

“일주일? 그럼 짧게 여행 다녀오기엔 충분한 시간이네.”

어머니가 가볍게 박수를 쳤다.

해외 취직 전, 가족여행이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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