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안을 하는 자, 받는 자 (2)
무기를 주고받는 간격에서 일어난 바람이 머리칼을 잘라낼 기세로 치받기 시작했다.
충돌로 일어난 풍압이 상대를 압박하는 가운데 정작 당사자들은 평온하리만큼 차분한 대화를 나눴다.
“그쪽에서 버리는 패로 널 내보낸 거야?”
“네.”
본명 김민준, 닉네임 레이저.
가이아 프로리그 출범 이후 가장 뛰어난 마법사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선수.
녀석의 장점은 마법사답지 않은 민첩함, 그에 기반을 둔 공격 대처능력에 있었다.
적색(마법) 계열 클래스는 백색(탱커) 계열에 강한 반면 청색(암살)에겐 약한 모습을 보인다.
강한 공격력을 보유한 대신 몸놀림이 느린 탓이다.
그러나 레이저는 예외였다.
그는 인터뷰에서 자신이 지닌 민첩함의 비결을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해 온 권투라고 밝혔다.
중학교 때까지도 굵직한 대회에 출전해 좋은 성적을 거둬 실기 입학을 노릴 정도라고 했으니 운동 재능이 보통을 훌쩍 넘었을 터다.
실제로 육체 능력을 필요로 하는 대부분의 게임은 반사신경이 빠를수록 불시에 펼쳐지는 상대의 공격을 좀 더 수월하게 피해낸다.
“너 진짜 빠르구나.”
“형도요. 제가 만나본 사람 중에 제일 빠른데요.”
손대중할 요량으로 매서운 잽을 몇 방 날렸는데 녀석은 아랑곳하지 않고 고개를 흔들어 한 뼘도 안 되는 간격으로 공격을 모조리 피해냈다.
그걸로 모자라 나와 대화를 주고받을 정도다.
고작 열다섯 살 짜리의 재능이 이 정도라니, 새삼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 돼야 세계 톱클래스 레벨로 불리나 보다.
“버리는 패를 맡을 실력이 아닌데?”
스러스트를 터트리며 밀어붙이자 상체 움직임만으론 버거웠는지 레이저는 묘지 곳곳에 솟은 대형 비석을 방패 삼아 몸을 방어했다.
주먹에 부딪힌 바위가 사방으로 튀어나가며 우박 떨어지는 소릴 낸다.
“사실 제가 부탁했어요.”
“부탁?”
“지금 가이아에서 제일 유명한 사람이잖아요. 외모도 그렇고, 한국인인 건 오늘 처음 알았지만요.”
“내가 제일 유명하다고?”
엄연히 청색 계열엔 북미 일인자 사이클론이 버티고 있지 않은가.
내 말에 레이저는 고개를 저었다.
“사이클론은 CBT 때부터 유명했으니까요. 최근 가장 유명해진 건 유니크 맞아요.”
코를 쓱 훔치고 싶은 기분이 드는 틈을 타 녀석이 맹공을 가해온다.
“플레임 아레나!”
불이 가공할 기세로 번졌다.
비석도 녹일 화력으로 달려드는 불에 나는 펄쩍 뛰어 뒤로 물러났다.
요 잔망스런 녀석이 대화로 시선을 돌려놓고 나를 튀기려고 달려든다.
어림없지. 내가 프로 짬밥이 몇 년인데.
물론 프로리그에선 여러 가지 이유로 선수 간 대화 자체가 금지되어 있긴 하지만 말이다.
“내가 유명인사인 건 둘째치고 네가 부탁했다는 건 나랑 한번 싸워보고 싶었다는 거네?”
“후회 중이에요. 몇 번 치고받아 보니까 알겠어요. 아직은 제가 형 상대가 아닌 거 같아요. 이럴 줄 알았으면 3번이나 4번을 노려서 팀 승리를 노리는 쪽으로 갔어야 하는 건데.”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눈빛이 여전히 살아있다.
주변 지형을 살피는 눈초리가 어떻게든 스킬 한 방만 먹이면 승리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여기는듯했다.
가이아의 개인전은 총 3분씩 진행되는데 어느덧 시간이 100초밖에 남지 않았다.
맘만 먹으면 당장 녀석을 바닥에 쓰러트릴 수 있었지만 나는 좀 더 시간을 활용하기로 했다.
“혹시 괜찮으면 형이랑 게임같이 하지 않을래?”
“같이요?”
“당장은 아니지만 함께 팀을 만든다든지? 좀 있으면 프로리그도 생길지 모르고.”
“프로리그요? 그런건 생각 안해봤는데요. 일단 제가 게임하는 시간이 많지 않거든요. 좀 있으면 체전 준비도 해야 돼서요.”
“당장 같이하자는 건 아니고 나중에 말이야.”
“음.”
생각해 볼게요 라고 간단히 대답하면 될 텐데 녀석의 입이 무겁다.
저런 스타일은 한 번 입 밖에 내면 진지하게 생각해주는 성격이다.
물론 내가 맘에 안 들어서 그럴 가능성도 있지만 말이다.
“나중엔 제가 형보다 더 강해질 것 같은데···.”
이 녀석이?
조금 어울려줬더니 나를 말랑말랑하게 보다니!
저 말은 밥그릇 좀 쌓고 나면 나를 이길 수 있단 자신감의 표현이다.
“이것 참. 그럼 이렇게 하자. 지금부터 내 전력을 조금 보여줄게.”
“에이. 지금도 꽤 열심히 게임하고 계신 거 아는 데요.”
“이제부터 내가 공격을 들어갈 건데 네가 만족할만한 정도가 아니면 같이 게임하자는 이야긴 없었던 걸로.”
“좋아요.”
“대신 내 말이 맞으면 생각 제대로 해봐. 5초 준다. 5초 버티면 네가 이긴 거야.”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며 토를 달려는 순간을 틈타 내 몸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이때만큼은 녀석도 분명히 놀란 표정이었다.
갑자기 내 속도가 두 배는 더 빨라졌으니까.
‘스킬?’
눈으로 쫓기 힘들 정도의 움직임이니 스킬이 아니고선 설명이 안 됐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녀석에게 잽을 질러 넣는다.
손에 클러를 쥐고 있어 한 방 맞으면 골로 가는 잽이다.
“윽!”
처음엔 한 뼘 차이로 완벽하게 공격을 피해내던 녀석이 투둑 하며 작은 스파크가 일었다.
동시에 체력바가 미세하게 깎여나간다.
콜로세움에선 체력 스탯이 아무리 높아도 시간이 모두 경과 했을 때 남은 HP 퍼센티지로 승부를 가린다.
내 체력은 100퍼센트, 녀석은 99퍼센트.
이대로 거리를 벌려 졸졸 도망치기만 해도 내가 이기게 되는 셈이지만 5초 내로 쓰러트려 주겠다 선언했으니 그럴 일은 없었다.
퍽!
균형을 무너트리는 소리가 하체로부터 덜컥 올라온다.
권투 선수로 뛰는 녀석이니 동체시력이 빠르긴 하겠지만 평소 접해보지 못한 공격엔 내성이 없을 수밖에.
링 위에서 글러브를 끼고 뛰는 복서가 어디 가서 로우킥을 맞아보겠는가.
몸이 가벼운 탓인지 킥공격 한 방에 자세가 무너진다.
여담이지만 이 킥은 스킬이 아니라 내 순수한 기교다.
스킬은 이거지.
드래곤 테일!
발이 뱀처럼 휘어지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며 녀석의 명치를 냅다 걷어찬다.
쩌억 하는 소리와 함께 체력 바가 뭉텅이로 깎여나간다.
자세가 완전히 무너져 쓰러져 가는 찰나 녀석의 양손에 마력이 모인다.
그 와중에 반격할 생각을 하다니 독한 놈이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압도적인 전력 차를 보여주기 위한 무대이기에 나는 그대로 클러를 들어 올려 맹공을 이어나갔다.
어떤 마법 스킬이라도 발동하는 덴 준비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그것을 캐스팅이라고 하는데 만약 도중에 방해를 받으면 스킬은 불발, 마력은 마력대로 소모된다.
이런 탓에 암살자가 마법사와 거리를 좁히면 그 게임은 끝난 거나 마찬가지다.
승리 선언을 한 지 대략 3초나 지났을까.
눈으로 좇기도 힘들만큼 연타를 꽂았더니 레이저의 HP가 엄청난 속도로 줄더니 이내 터지고 말았다.
“아.”
현실을 아직 받아들이지 못한 레이저의 입에서 가벼운 탄식이 새어 나왔다.
***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군.”
경기를 치르고 돌아온 내게 사이클론이 말했다.
조금 전 내가 보여준 움직임은 그가 알고 있던 움직임과는 레벨이 몇 단계는 다른 수준이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무엇 때문에 실력을 숨기고 있어? 어쩐지 이상했어. 나보다 높은 등급의 적성시험을 받은 네가 그 정도 수준에 머무를 리가 없는데 말이야.”
무엇 때문에 숨기긴, 너 때문이다!
한동안 잠잠한가 했더니 은근슬쩍 다시 나를 견제하는 눈초리다.
“숨긴 거 아니야. 이동 스킬을 새로 얻었더니 몸놀림이 매끄럽더라고.”
“조금 전 움직임이 모두 스킬이라고? 그래도 도중에 킥은 직접 찬 것 같던데.”
눈치가 귀신이다.
“생사람 잡긴, 로우킥 스킬이야.”
“하긴 그 정도 동작을 아무렇지도 않게 구사할 수 있으면 넌 게임을 할 게 아니라 격투기 선수 준비를 하고 있겠지.”
미안한데 진짜로 격투기 배웠거든···.
사이클론은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테지만 불과 몇 년 뒤엔 프로레벨에서 자연스러운 전투기술을 위해 격투기를 배우는 게 일반적이었다.
격투기뿐이랴.
강도 높은 체력훈련은 기본이고 유연성을 위해 스트레칭에 요가, 멘탈 관리를 위한 명상의 시간도 때려 넣는다.
심지어 당시 내 소속팀은 자본도 빵빵해서 중세검술 훈련까지 시켰다!
게임을 하는데 그게 정말 다 필요하냐고 물으면 안타깝게도 그렇다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각종 훈련을 받은 선수와 아닌 선수를 비교하면 유의미한 차이가 있었다.
어느 정도냐고 하면 손가락 한 마디 정도?
그 작은 차이를 위해 프로 선수는 연일 피땀을 쏟는 셈이다.
각 게임단에서 보유할 수 있는 1군 선수는 열두 명, 2군 선수까지 합치면 수십 명이 된다.
재정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수십 명을 잘 먹여가며 체계적인 훈련을 하려면 돈이 이만저만 드는 게 아니다.
구시대처럼 작은 닭장 같은 방에 PC만 넣어놓는다고 연습이 되는 환경이 아닌 것이다.
그 짓을 또 해야 하나.
전생에 다 받은 훈련이니까 사양하겠다고 말하면 정신병자 취급받을 거 아닌가.
지독했던 훈련을 떠올리자 벌써 땀이 나는 기분이다.
“그렇게 기분 나쁜 질문이었어? 의심한 건 아니야.”
“아니, 그게 아니라 안 좋은 기억이 떠올랐을 뿐이야.“
이번 생엔 진지하게 팀을 바꿔야 하나 생각을 한 나는 재차 매칭을 돌렸다.
***
레이저와의 대결이 계기였을까.
생각지 않고 있던 여러 가지 제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게임 방송을 전문으로 하는 스트리머라 자신을 밝힌 이는 출연만 해주면 그날 수입의 5할을 주겠다고 했고, 게임잡지인데 인터뷰 가능하냐고 묻는 사람, 클랜을 만들려고 하는데 꼭 모시고 싶다고 발을 붙잡는 유저 등등.
몰랐는데 내가 콜로세움에서 경기를 뛴 영상은 이미 상당수가 인터넷에 돌아다니고 있었다.
인기 VR 게임을 날먹하는 법이란 어그로 제목과 함께 말이다.
어느 정도 유명세는 나의 향후 계획이 도움을 줄 테니 신경 쓰지 않고 있던 찰나, 처음으로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 들어왔다.
정중하게 대화할 시간을 5분만 내어달라는 요청.
마침 쉬고 싶었기에 나는 요청을 흔쾌히 수락했다.
“유니크씨죠.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명함입니다.”
가이아는 중세 동서양의 문화가 혼재한 세계관.
그런 곳에서 양복에 가까운 옷을 입고 다니면 눈에 띌 수밖에 없다.
다들 갑옷이나 로브 걸치고 다니는 도시에서 검정 양복을 쫙 빼입으면 누구라도 쳐다보지 않겠는가.
선글라스에 양복, 넥타이까지 매고 있으니 꼭 바깥에 있는 사람을 그대로 게임 안에 옮겨놓은 것처럼 보인다.
명함도 양복도 전부 수제작 했겠네.
돈깨나 들었을 텐데 생각하며 명함을 확인해보니 팀 S.솔리드라는 문구가 보인다.
“어?”
“혹시 저희 팀에 대해 들어보셨습니까?”
“아니요···착각했습니다.”
착각이 아니다.
S.솔리드라면 북미 프로리그 게임단 중 하나.
바로 사이클론이 뛰게 될 게임단이다.
향후 월드 챔피언십 초대 우승을 가져가는 명문 프로팀이다.
“그런데 절 찾아오신 이유가?”
“본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유니크 씨를 저희 팀으로 섭외하고 싶습니다. 저희가 내년에 프로팀 하나를 운영할 예정입니다.”
스카우트라니.
그것도 북미 팀에서 내게 영입 제안을 던질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다.
북미가 한국에 비해 프로리그가 일 년 먼저 시작한다곤 해도 아직 반년 가까이 남은 시점이다.
벌써 팀원을 물색 중인 걸 보면 개발사가 프로리그 운영에 대한 떡밥을 시장에 푼 게 아닐까 생각됐다.
나는 모른 척 그 내막을 떠보기로 했다.
“프로팀이요? 가이아에 프로리그가 생긴다는 이야긴 처음 듣는 데요.”
“반드시 생깁니다. 그 점에 대해선 염려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리고 리그 여부와 상관없이 저희는 유니크씨를 최고 대우로 영입할 의사가 있습니다.”
S.솔리드가 영입을 시작했다면 프로팀을 운영할 계획이 있는 다른 기업들 역시 물밑에서 움직이고 있겠지.
만약 내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스무 살이었다면 이 제안은 생각해볼 가치가 전혀 없었다.
난 오로지 국내에서 뛸 생각이었으니까.
애국심 때문에? 아니다.
국내에서 뛰려는 이유는 올림픽 때문이다.
전생에선 언감생심 노려보지도 못한 국가대표지만 이번엔 다르다.
내겐 세계 톱클래스를 노릴만한 재능이 있지 않은가.
명예와 더불어 병역 문제 해결까지.
물론 프로 무대는 팀플이기 때문에 나만 잘한다고 성적이 보장되는 건 아니지만 레이저 같은 전도유망한 선수들을 모아 호흡을 맞출 수 있다면 금메달도 허무맹랑한 이야긴 아니다.
그러나 지금 난 스무살이 아니라 이제 막 열여덟이 된 고등학교 2학년.
학업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다면···해결?
어쩌면 프로팀 제안을 이용해 머리를 앓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업계 최고 대우라는 부분이요. 자세히 들어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