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크 (4)
예로부터 대전격투 게임은 입문하기 어려운 장르 중 하나였다.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다.
일단 게임의 난이도를 조절하기 어렵다.
대전격투는 사람 대 사람의 일대일 위주의 컨텐츠가 주류다.
개발자들이 만들어낸 몬스터를 상대하는 게 아닌 사람과의 대결이다 보니 난이도 조절이 힘들다.
게다가 높은 숙련도를 요구하기도 했다.
캐릭터 조작 난도가 너무 쉬우면 사람들이 금방 흥미를 잃어버렸고 조작을 어렵게 하면 입문 문턱이 턱없이 높아졌다.
어디 그뿐인가.
어느 게임이나 고인물의 뉴비 괴롭히기는 존재하는 편이나 대전 격투계는 유독 그 영향이 심한 편이었다.
“게임은 원래 맞으면서 배우는 거야.”
초보자 입장에선 정말이지 치가 떨리는 말이다.
그런 말을 하는 녀석들치고 정말 순수하게 잘 가르쳐주겠단 마음으로 가르침을 베푸는 유저가 몇이나 될까?
가이아는 수십 년에 걸쳐 쌓인 대전격투게임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여러 가지 개선방책을 도입했다.
소위 말하는 불공정 매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이아는 철저한 본인인증 제도를 완성했다.
헤드기어와 장갑을 통해 홍채와 지문이 고스란히 서버 데이터에 남아 캐릭터를 새로 키워도 이전의 콜로세움 정보로 보정을 받아 신규 유저를 만날 수 없는 구조를 만든 것이다.
이용자의 생체정보를 수집하는 건 인권침해라는 주장이 시즌 초기에 일긴 했으나 약관에 명시되지 않은 것도 아니고 맘에 안 들면 하지 말란 식이었다.
어쩌겠는가 게임이 아쉬운 유저라면 받아들일 수밖에.
아마 다른 게임업체가 이런 논란에 휘말렸으면 크게 휘청였을지도 모르나 지오는 예외였다.
세계 최고 대열의 IT 대기업은 이런 논란쯤 지나가는 바람으로 여겼고 결국 그들의 예상대로 이내 논란은 잠잠해졌다.
가이아의 또 다른 특징은 콜로세움에 쓸 캐릭터를 스스로 육성한다는 데 있다.
보통 격투 게임이라 하면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정해져 있지만 가이아는 육성법과 전직에 따라 캐릭터의 성능이 천차만별이다.
게임 가동 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경기장엔 무수히 많은 캐릭터가 저마다의 개성을 두르고 등장했다.
문제는 캐릭터 하나를 키우는데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는 것.
나 역시 프로게임단에 들어가 성장 최적화 루트를 알기 전까진 거의 일 년 가까운 시간을 캐릭터 하나에만 쏟을 정도였다.
가이아 2년 차 시즌이 끝날 즈음, 게임을 할 시간이 없어 바쁜 직장인들은 캐릭터를 돈을 주고 사기 시작했다.
그들은 돈은 있지만 먹고 살아야 하기에 전력으로 자신의 캐릭터를 키워낼 시간이 없었다.
수요가 발생하면 공급이 따라오기 마련.
중국엔 값싼 노동력으로 스탯기계 캐릭터를 찍어내는 대형 작업장이 들어섰다.
‘캐릭터 육성 시장을 선점하면 재미 좀 보겠는데.’
잡다한 생각을 하는 사이 경기가 끝났는지 초대장이 날아왔다.
[사이클론님이 초대를 보내왔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달칵 하는 소리와 함께 주변 풍경이 전장의 대기실로 바뀌었다.
눈을 마주친 사이클론은 고개를 까닥하는 것으로 인사를 건넨다.
검은 무복으로 몸을 두르고 등 뒤로 커다란 장검을 메고 있는 폼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처음부터 이걸 생각하고 계셨습니까?”
듀오를 염두에 두고 말을 걸었느냐고 물은 것이다.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이죠. 실력 있는 사람이 둘만 있으면 콜로세움에서 열 받을 일이 줄어드니까.”
내 말에 동의한다는 듯 그가 희미하게 웃었다.
네 번의 개인전 중 두 번을 이기면 무조건 5라운드에 돌입한다.
팀에 에이스가 둘이면 허무하게 엎어지는 일은 없어진단 뜻이다.
“그런데 한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나름 CBT 기간 동안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유니크란 이름은 들어본 적이 없거든요. 어디서 활동하신 겁니까?”
“이상한 일도 아니죠. 가이아는 넓지 않습니까. 보시다시피 전 미국인이 아닙니다. 시차가 있어서 활동시간이 달랐던 것뿐입니다.”
거의 폐인처럼 온종일 가이아를 플레이했던 사이클론 입장에선 썩 이해할만한 답변이 아니었다.
적성시험 최고등급을 받을 정도의 재능이라면 분명 튀었을 텐데 말이다.
“바깥에 기다리는 관중들이 보입니까?”
사이클론은 반투명 모니터를 조작해 바깥의 경기장 상황을 보여줬다.
가이아의 관전 시스템은 상대방의 닉네임만 알면 얼마든지 관전을 할 수 있었다.
“많이들 보러왔네요. 그만큼 실력이 뛰어나시니까 그렇겠죠.”
족히 수십 명은 스탠드에 자리 잡고 있는 게 눈에 띄었다.
다들 사이클론의 현란한 움직임을 보러 온 것이다.
“대부분은 제 관객입니다. CBT 때부터 생긴 팬들이라고 할까요?”
지 자랑이 하고 싶었던 건가?
어쨌건 CBT 때 활약만으로 팬을 몰고 다니다니, 난 놈은 난 놈이다.
“그런데 유니크님의 관중은 보이지 않는군요. 그만한 실력이면 입소문이 진즉 났어도 이상하지 않을 텐데 말이죠.”
사이클론은 아무래도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나의 존재를 무척 신경 쓰고 있는듯했다.
“참고로 제 적성시험 당시 레벨은 S입니다. 저보다 높은 사람이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 했죠. 그게 지금 듀오를 하기로 맘먹은 이유입니다.”
가이아의 프로게이머는 너나 할 것 없이 같은 클래스 게이머에 대한 승부욕을 품고 있다.
사이클론은 지금 내게 경쟁의식을 불태우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적성 SS 등급의 플레이어의 움직임이 어떤지 지금 몹시 궁금할테지.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겸손한 대답과 함께 나는 오늘 인심을 쓰기로 했다.
전생에선 백색 계열 클래스를 다루긴 했으나 상성의 우위 덕에 수도 없이 최상급 암살자들과 겨뤄왔던 나다.
그들의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 세세한 버릇, 어떻게 하면 보다 효율적으로 데미지를 넣을 수 있는지 작은 팁이 내 몸에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그리고 난 오늘 그 일부를 조금 공개할 참이었다.
그렇게 해서 관심을 끌어야 이 녀석과 오래 붙어 다닐 것 아닌가.
“그거야 두고 보면 알겠죠.”
아직 어려서 그런가. 살짝 과하게 까칠하게 군다는 느낌이다.
그도 그럴게 나는 열여덟 외모지만 알맹이는 노련한 스물여섯 7년 차 프로게이머.
사이클론은 이제 고작 열아홉 살 짜리 애다.
저 정도 승부욕은 귀엽게 봐줄 만 했다.
“제가 원래부터 알고 지내는 실력파 유저가 몇 명 있습니다. 초대해서 4인 팀을 구성하면 어떻겠습니까.”
“잠시만요.”
안 될 말이다.
시간이 금인데 왜 불필요한 4인 팀을 쓴단 말인가.
콜로세움의 매칭 시스템은 승리할 때마다 점수를 주는데 홀로 뛸 때의 점수 상승폭이 훨씬 컸다.
고정 팀의 경우 모르는 유저끼리 뭉친 급조 팀에 비해 팀워크가 좋을 테니 솔로 유저에게 어드밴티지를 부여하는 것이다.
승률만 보장된다면 고정 4인 팟을 꾸리기보다 2인 매칭을 하는 게 결투장 코인 획득 면에서 훨씬 유리했다.
“일단은 둘이 해보죠. 고정 파티로 게임을 하면 점수 오르는 게 더디니까요.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으면 그때 영입해도 충분할 겁니다.”
“그러죠.”
***
처음엔 사이클론을 보기 위해 모여든 관객들이었다.
고작 한 달 여의 CBT 기간만으로 관중을 사로잡을 정도로 그의 움직임은 몹시 뛰어났다.
그러나 오늘 전장에선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웬 무명의 플레이어가 현란한 움직임으로 경기를 휩쓸고 있었다.
-누군지 아는 사람?
-유니크? 처음 듣는데.
-지금 몇 승이지? 10승?
-14연승이야.
-방금 15연승 됐네.
암살자 두 명이 파티를 맺고 연속으로 경기를 치른지 4시간이 지났을 때 쉰 명쯤 있던 고정 관중은 어느새 오백 명에 달해 있었다.
-야. 너 청색 골랐다고 했지? 내가 불러주는 곳으로 와볼래?
-아니 잔소리 말고, 분명 봐두면 너한테 도움이 될 거라니까? 사이클론이냐고? 사이클론도 있긴 한데···.
관중이 새로운 관중을 부르는 사이 전장의 암살자는 탱커의 방패를 사정없이 내려쳤다.
무기와의 충돌로 방패 표면이 연신 번쩍인다.
좀 더 들이대볼까?
속으로 웃으며 방패 끝을 매섭게 긁는다.
쇠가 쇠를 긁는 소리는 언제나 듣기 거북하다.
슬쩍 비친 탱커의 얼굴엔 당혹스러움이 역력하다.
왜 아니겠는가.
처음 보는 암살자가 압도적인 힘으로 자신을 몰아붙이고 있다.
직업 간 상성 우위라곤 온데간데없는 모습이었다.
다년간의 프로 경험을 지닌 내가 상대를 압도하는 건 당연한 것이다.
그걸 고려하면 상대 역시 상당한 수재라고 할 수 있었다.
잘 성장하면 충분히 프로팀 문을 두드려 볼 수 있을 정도쯤은 됐다.
“하압!”
이대로 계속 얻어맞으면 답이 안나온다고 생각했는지 기합과 함께 방패가 매섭게 솟구친다.
각도를 보아하니 공격을 흘려내고 반격을 할 모양이다.
펑펑 하는 소리와 함께 방패의 각도가 비현실적으로 틀어진다.
스킬로 인한 효과다.
백색 직업의 정점에 오른 이들에게 방패는 몸을 보호하는 용도 외에 무기의 역할도 겸한다.
가이아 초창기엔 위력적인 스킬을 빨리 얻은 이가 먼저 높은 곳으로 향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어떤 스킬인지 알아야 대처를 할 텐데 경험이 부족하기에 반응할 수가 없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평범한 암살자였다면 조금 전 받아치기 스킬에 균형이 무너져 방패 뒤에서 튀어나오는 검에 체력을 크게 잃었을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내겐 해당 사항 없는 얘기다.
나뿐만 아니라 어떤 프로게이머를 데려다 놨어도 마찬가지다.
스킬이 얼마나 빠르게 발동하는지, 기술이 실패할 때 생기는 경직은 어느 정도인지, 기술을 막고나서 어떻게 움직여야 더 많은 데미지를 줄 수 있는지 등등.
프로는 기계라고 해도 믿을 만큼 완벽한 전투 공식을 머리에, 몸에 녹인 존재다.
쑤욱하고 튀어나오는 검을 손가락 한마디 차이로 피해내며 클러를 상대의 몸에 꽂았다.
스러스트 스킬을 터트리자 엄청난 속도의 찌르기가 세 번 강타한다.
‘캡슐기기가 아닌 걸 다행으로 알아라.’
프로무대 신설 이후 등장한 캡슐형 기기엔 통각기능이 탑재된다.
때문에 모든 선수들은 콜로세움을 뛸 때마다 전력을 다해 몸을 놀렸다.
죽을 정돈 아니더라도 맞으면 아프니까.
-방금 봄? 받아치기를 실패하네. 스킬 숙련도나 올리고 쓸 것이지.
-랭크게임에서 스킬 실험하러 오는 애들 역겹지. 필드에서 연습 좀 해라!
-나였으면 삼타 보고 막았다.
-나도 가능할 듯. 별로 빠르지도 않은데.
-저기요. 님들 티어가?
관중들이 공방에 대해 의견을 늘어놓는 사이 탱커의 몸은 크게 무너지고 있었다.
삼타를 시작으로 무자비한 발길질을 동반한 체술이 방패를 밀쳐내고 퍼부어졌다.
얼마나 연계가 매끄러운지 잘 모르는 이가 보면 연타를 때리는 스킬로 볼 정도였다.
-연계 개 소름 돋네.
-보고 막는다는 사람들 내보내면 한판도 못 이길 듯.
허세충과 게임을 좀 볼 줄 아는 사람들이 의견을 자유롭게 나누는 가운데 탱커의 몸이 스르륵 뒤로 넘어갔다.
“와 형님! 하이파이브!”
“덕분에 승급했습니다.”
끝나고 대기실로 돌아온 나를 팀원들이 반겨준다.
다들 기뻐하는 가운데 유독 사이클론만은 어딘지 어색한 웃음이었다.
아차! 나도 모르게 신이 나서 두들겨 팼나보다.
배치도 마치고 슬슬 재능있는 친구들이 상대로 나오다 보니 나도 모르게 살짝 흥을 냈다.
적당한 격차는 사람으로 하여금 승부욕을 불태우게 하지만 압도적인 격차는 사람을 질리게 만든다.
이런 걸로 기죽기는!
그림자발자국을 얻기 전까진 어떻게든 녀석과 함께 다녀야 하는데 벌써 날 견제하게 만들면 안 될 일이다.
“벌써 네 시간이나 피빕만 했네요. 조금 쉬어갈까요?”
나는 사이클론에게 코인을 좀 쓰자며 권유했다.
“코인도 제법 모였는데 스킬이나 뽑아보죠."
“그러죠.”
가라앉은 게이머의 기분을 업시키는덴 아이템 선물이 최고다.
그게 장비든 스킬이든간에 말이다.
내가 살짝 풀이 죽은 사이클론의 어깨를 두드리며 코인샵으로 향하던 그 시각, 규모가 좀 있다는 게임 사이트엔 조용히 영상이 퍼지기 시작했다.
‘가이아, 콜로세움을 날로 먹는 법’이란 제목의 영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