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크 (3)
총을 맞고 깨어난 지난 며칠간은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정리하느라 제법 애를 먹었다.
이번 생에서 내가 좀 더 나은 삶을 살 방법은 무엇이 있을지 머리를 쥐어 뜯어가며 고민했다.
그러나 좀처럼 명쾌한 해답을 찾을 수 없었다.
전생의 기억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지만 나의 재능이 이전과 같다면 성장 한계점은 명확했다.
1군에 자리만 간신히 지키는 로테이션용 선수.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무던히도 고민했었는데 사이클론을 만난 순간 흐릿했던 길이 선명하게 내 앞에 나타났다.
가이아에서 남들보다 뛰어난 강자가 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한가.
답은 간단했다.
남들보다 좋은 장비, 그리고 스킬을 손에 넣는 게 제일 효과적이다.
그것을 효율적으로 다룰 수 있는 재능이 필요하긴 하나 1군 무대에 오를 정도의 게이머라면 어느 클래스를 다뤄도 최소 기본 이상은 하기 마련이다.
가이아의 가동 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놀라울 정도로 강력한 스킬과 신급이라 불리는 아이템이 여러 차례 서버에 등장했다.
그것들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각종 게임 매체는 큼지막한 타이틀과 함께 특종으로 기사를 써내곤 했다.
[△△유저, 가이아의 보물을 손에 넣다!]
사이클론 역시 그런 기사의 주인공 중 한 명이었다.
자세한 획득 장소와 방법은 알지 못했지만 그가 가이아 최초로 최고등급 스킬을 얻은 건 아주 유명한 일화였다.
아마 게임 시작 후 3개월쯤의 일이었지?
그 말인즉, 사이클론 옆에 찰싹 달라붙어 있으면 그 최고급 스킬을 도중에 가로챌 기회가 생길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림자 발자국.
청색계열 클래스가 공용으로 익힐 수 있는 최상위 은신스킬로 이것만 손에 넣으면 상대는 눈뜬장님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위력이 어찌나 대단한지 프로 사이에서도 사이클론의 은신은 완벽하게 막는 게 불가능하다고 결론이 났을 정도.
사실 사이클론이 얻은 그림자 발자국은 나의 이번 생을 강력하게 할 아이템 후보로 물망에 올려두긴했지만 획득 장소와 시기를 정확히 알지 못해 살짝 신경만 쓰는 정도였다.
하지만 이렇게 뜻하지 않게 상대를 만났으니 충분히 시도해볼 만한 일이 됐다.
“그럼 나중에 뵙죠.”
나는 친구 제의를 수락한 사이클론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어준 뒤 다시 일행에게 합류했다.
“무슨 얘길 나누셨어요?”
마법사가 궁금해한다.
“같은 청색 계열이라 육성에 관한 조언을 듣고 싶다고 했죠.”
“아아. 저 사람 CBT때부터 제법 유명했던 사람이에요. 듣기론 무뚝뚝하다던데요. 정보 공유는 쉽지 않을걸요? 물물교환이라면 모를까.”
“그나저나 이제 어떻게 할까? 보스는 저 사람이 잡고 가서 빨라도 몇 시간 뒤에나 나올 텐데.”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밝은 분위기였던 파티는 쏟아지는 소나기라도 맞은 것처럼 축 늘어져 버렸다.
어차피 버스는 떠났다.
보스가 다시 나타날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 없던 나는 가볍게 박수를 쳐 시선을 돌렸다.
“남은 맵 정보를 모아 발견 스탯을 획득하고 빠져나갑시다.”
***
던전 밖으로 나와 헤어질 때쯤엔 모두가 아쉬워했다.
이게 다 내가 편안하게 적을 쓸어담은 덕분이었다.
아마 저들은 오늘 처음으로 천상계 버스의 안락함을 느꼈으리라.
오죽하면 무뚝뚝하던 마법사조차 내게 여러 번 눈길을 던지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 맘이 바뀔 일은 없지만.
초반에 너무 허약한 청색계열 맷집을 기르기 위한 스탯 확보 수단으로 잠깐 파티를 맺었고 잡다한 아이템과 스킬을 이것저것 주워 입었더니 나름 살만해졌다.
초급자 던전이긴 해도 완벽하게 맵 정보를 수집해 추가된 숙련도는 나의 민첩성을 더욱 높게 끌어올렸다.
일행과 헤어진 뒤 나는 빠르게 필드를 누비며 사냥을 이어나갔다.
더 깊은 숲 속을 헤집고 다니며 야생의 몬스터를 도살, 어쩌다 이름없는 던전이 나오면 용감하게 기어들어가 맵 정보를 수집했다.
그렇게 꼬박 22시간 정도를 사냥에 매달렸다.
눈이 뻑뻑하니 아프다고 느낄 즈음 은빛 이펙트가 이전과 달리 화려하게 폭발하며 몸을 덮었다.
무미건조한 시스템 보이스가 내게 새로운 기능의 출현을 알렸다.
[적성시험 초기 스탯 기준, 3배의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콜로세움 기능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밥 시간인데.
지친 몸을 채찍질해가며 사냥하던 와중에도 밥은 꼬박꼬박 챙겨 먹었다.
8시간마다 규칙적인 식사를 통해 에너지를 보충하고 간단한 맨몸운동으로 스트레칭 하는 걸 잊지 않았다.
뭣도 모르는 게이머들은 밥도 굶어가며 게임을 달리고 있을 테지만 결국 일 년간의 마라톤에서 승리하는 쪽은 규칙적으로, 스케쥴에 따라 움직이는 게이머들이다.
전세계 프로게임단이 너나 할 것 없이 규칙적인 루틴을 도입해 재미를 봤고 세간에 정보가 퍼지며 무식하게 게임하는 방식은 차츰 자취를 감췄다.
물론 미래의 이야기다.
지금 시점의 사람들은 아직 일 년짜리 육성 마라톤이 어떤 의미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으니까.
딱 한 게임만 돌리고 먹자.
고양이가 생선가게 앞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듯이 나는 홀린 듯 전장의 문을 열었다.
콜로세움 기능을 터치하자 시야가 급변하며 관중의 함성소리가 귓가를 때린다.
그래 이거야.
사실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팀이 휴가랍시고 고성에 보내주기 며칠 전만 해도 나는 유럽 라운드 마지막 게임을 뛰었으니까.
그런데도 꼭 처음 가이아를 접했을 때처럼 심장이 두근거렸다.
콜로세움, 가이아가 RPG 가상현실 게임이 아닌 성장형 대전격투 게임이라 불리는 이유.
“매칭을 시작하시겠습니까?”
매칭 버튼을 누르자 랜덤한 유저들이 급조된 팀에 흘러들어온다.
“모두 안녕하십니까.”
“세상에.”
“이런 썅···뭔데 진짜.”
시작부터 분위기가 험악하다.
나를 포함해 네 명의 유저가 팀에 모였는데 이들이 흥분한 이유는 간단했다.
우리 팀에 힐러가 있었다.
“힐러도 사람입니다. 애껴주세요.”
“지랄 말고 닷지해. 아.”
“팀운 꼬라지바. 역겹네.”
가이아 자체 통역기능이 매우 찰지게 저들의 분노를 전해온다.
콜로세움은 4 vs 4 배틀 시스템이다.
네 명이 각자 개인전에 투입돼 스코어를 올리게 되며 3승을 하면 게임 종료.
2:2로 동률이 되면 팀전으로 승부를 결정짓는 시스템이다.
5번째 라운드까지 꽉꽉 채운다고 해도 보통 30분 이내로 끝나는데 보는 맛이 제법인지라 프로리그 출범 당시부터 가이아는 제법 많은 시청자층을 확보했다.
원래 대전격투 게임은 룰을 모르는 사람이 봐도 직관적으로 알아볼 수 있어 시청하기 편한 종목이다.
이종격투기, 권투 같은 스포츠는 룰을 몰라도 누가 이기는지 대충 보이지 않는가.
그와 비슷한 맥락이다.
상대보다 많이, 세게 때리고 잘 피하면 이긴다.
“자자. 멘탈잡고 해봅시다. 힐러 끼고 배치 승리하면 점수 더 받는 거 아시죠?”
“누가 물어봄?”
“저 새끼 닷지 안하면 나 그냥 던짐. 수고.”
이대로 가면 첫 게임부터 폭망할 판이다.
대기실에서 폭력 허용이 안 되는 게임이었으니 망정이지 안 그랬음 시작부터 서로 멱살잡이할 기세였다.
자 냉정히 살펴보자.
빛의 계승자라 불리는 힐러 계열은 가이아 최약체 전투력을 지녔기에 같은 클래스끼리 붙지 않는 이상 무조건 1패.
나머지 둘은 시작도 하기 전에 멘탈이 깨져서 던지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으니 2패 추가.
내가 아무리 날고 기어도 1승밖에 올리지 못하니 결국 진다는 뜻이다.
유일하게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나 이외의 누군가가 승리를 거둬 2:2로 게임을 5라운드 팀전까지 끌고 가는 것뿐.
점수를 얻어 콜로세움 상위 계급에 올라야 더 많은 결투장 코인을 얻을 수 있다.
여기서 매주 정산되는 코인은 경험치 버프, 스킬박스 구매 등의 다양한 루트에 쓰이며 정말 없어서는 안 되는 귀한 물건이다.
나는 어떻게 해서든 성난 팀원들을 달래야 했고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저 청색 적성 SS받은 사람입니다.”
내가 원래 이런 캐릭터는 아니다.
적성시험 결과 가지고 나대길 좋아하는 캐릭터와는 한참 거리가 멀었지만 어쩌겠는가.
이것 말곤 저들의 분노를 잠재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내 스탯창이 열리자 코웃음을 치던 유저들의 눈이 크게 떠진다.
“와 형님. 혹시 한국인이에요?”
“나 방금 살짝 지림.”
바로 형님 소리부터 튀어나온다.
북미 유저들 눈에 동양인은 중국인이든 한국인이든 일본인이든 구분이 안 된다.
그러나 그중에서 게임을 가장 잘하는 국가로 알려진 게 바로 한국이다.
요즘은 격차가 많이 줄었다곤 하나 오래전부터 밈(Meme)화 되어 코리아 게이머라고 하면 장르를 막론하고 실력으론 알아주는 편이었다.
“자 여러분이 딱 한 판만 이기면 우리 팀전까지 갈 수 있습니다. 팀전에선 힐러 좋은 거 아시죠?”
“형님 믿고 함 해봅니다.”
“이거 이기면 넌 우리한테 절해라. 알았어?”
“예.”
딱히 틀린 말도 아닌 게 마지막 라운드에선 네 명이 동시에 싸우기 때문에 힐러의 역할이 제법 쏠쏠했다.
힐러에게 핀잔을 주긴 해도 다행히 팀원들이 마음을 잡았다.
“첫 번째 경기는 누가 나가시겠습니까.”
“동생. 나한테 맡겨.”
동생? 언제 봤다고 동생 타령이야.
어디 가서 동생 소리 들을 나이는 아니라고 핀잔을 주려던 찰나 내가 열여덟 살이 됐단 사실을 기억해냈다.
액면가로 보면 저들이 내 한참 형이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럼 먼저 하세요.”
가슴을 탕탕 두드리며 호기롭게 손을 든 남자는 백색 계승자, 탱커였다.
백색 계열은 기본적으로 물리 방어도가 높은 편이라 청색 계열을 상대로 특성상 우위를 점했다.
암살은 마도에게 강하고 마도는 탱커에게, 탱커는 암살에게 강하도록 짜인 상성 관계다.
부디 상대가 청색 계열이길 바라며 우린 1번의 승리를 한마음으로 응원했다.
1라운드의 맵은 랜덤, 어지럽게 화면이 전환하더니 맵이 결정됐다.
[1라운드 - 유구의 천칭]
[블루팀 백색 계승자 vs 레드팀 적색 계승자]
“아.”
나를 비롯한 모두가 탄식을 흘렸다.
시원한 바람이 우리의 머리칼을 흔든다. 떨어지는 저녁놀이 바닥을 비추는 하늘 위 광장.
울타리가 없이 펼쳐진 하늘의 경기장이 1라운드 무대였다.
하필 상대가 상성상 불리한 마법사인 것도 문제지만 맵 운도 따라주지 않았다.
유구의 천칭은 마력조성 3짜리 중규모 전장이다.
1이 제일 낮은 수치이며 2는 보통, 3은 높은 수치를 뜻한다.
개인전에선 대규모 맵이 등장하지 않으니 천칭 맵이 나올 확률은 고작 9분의 1이었는데 그걸 뽑고 말았다.
마력은 전 직업이 공통으로 사용하는 스탯이지만 탱커보단 마법사에게 더 중요한 스탯이다.
즉 마력조성 레벨이 높은 맵일수록 마법사에게 유리하단 뜻이다.
부디 저 초보 마법사가 제대로 된 공격 스킬을 익히지 못했길 바라는 기도가 끝나기도 전에 마법사가 맹공을 퍼붓기 시작했다.
지팡이에서 쏟아져 나온 바람이 속수무책으로 아군을 난타했다.
방패를 들어 힘겹게 막고 있긴 한데 마법을 버티긴 역부족이었는지 계속 몸이 뒤로 밀렸다.
“끼아아아앙.”
나한테 맡기라던 우리의 탱커는 괴상한 소리와 함께 삼십 초를 버티지 못하고 장외로 1패를 적립했다.
“힐러 탓하더니만. 푸짐하다 푸짐해.”
저 푸짐하다는 말엔 똥이란 주어가 삭제된 게 틀림없다.
“닥쳐! 맵 운이 개똥 같은데 나보고 어쩌라고.”
1라운드, 3라운드, 그리고 마지막 5라운드인 팀전은 맵이 랜덤이지만 2, 4라운드는 맵을 보고 내보낼 선수를 결정할 수 있다.
2라운드 맵으로 십만 대산이 결정 되자 팀원 전원이 일어서서 박수를 친다.
송곳 처럼 날카롭게 솟아오른 수십 개의 바위산이 디딜 곳의 전부인 암살자를 위한 맵이다.
십만 대산은 프로무대에서도 열이면 열, 청색 계열을 내보내는 전장이다.
“1승 가져오겠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제발 이겨주세요!”
팀원들의 응원과 격려를 받으며 나는 당당히 전장에 뛰어들었다.
***
“망할 놈들.”
결과는 1승 3패, 도저히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구제불능 팀이었다.
상큼하게 랭크 배치게임 첫판을 패배로 시작했지만 사실 내 기분은 그렇게 나쁜 편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 몸을 감싼 묘한 감각 탓이었다.
적성시험을 치르고 있을 때부터 느꼈지만 피지컬에 변화가 생긴 듯했다.
처음엔 단순한 의심이었지만 게임을 하면 할수록 점차 확신이 생겼다.
이거 더 빨라진 거 맞지?
동체 시력과 순발력, 판단력이 내 전성기 시절을 웃돌고 있었다.
북미 서버의 렉을 생각했을 때 경기장에서 내 몸은 지금보다 훨씬 둔해야 했음에도 구름 위를 걷는 것처럼 가볍고 재빨랐다.
설마 전생에 먹은 마약이 내 몸에 아직도 남아있나 하는 생각을 했지만 웃기지도 않은 이야기였다.
과거로 돌아왔는데 약성이 남아있을 리 없지 않은가.
좀 더 실력 있는 게이머와 겨뤄보면 나의 피지컬이 어느 정도로 오른 건지 명확히 알 수 있으리라.
나는 친구 창을 열어 온라인 상태인 그에게 연락을 취했다.
「안녕하세요. 사이클론님. 아까 던전에서 인사드린 유니크입니다. 혹시 괜찮으시면 저와 같이 콜로세움 듀오 어떠신가요?」
정중한 메세지를 보낸 지 얼마 되지 않아 바로 답신을 받을 수 있었다.
「좋습니다.」
내가 원하던 메시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