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OS 소설 아닌데요-2화 (2/170)

유니크 (1)

“진짜 돌아왔구나.”

현실을 받아들이는데 오 분쯤 걸렸다.

옆에 걸려있던 교복 명찰에 박힌 정한솔이란 이름 석 자는 다 잊어버렸다고 생각했던 희미한 기억들을 수면 아래서 하나둘씩 끌어올렸다.

“아이고 머리야.”

그나마 다행인 건 오늘이 방학이란 점이었다.

2028년 1월 1일, 겨울방학을 시작한 지 고작 하루 지났다.

내가 제이슨에게 총에 맞았던 때로부터 8년을 거슬러 올라온 셈이다.

“이런 일이 있을 수···있나? 아니 그보다 뭘 해야 할지 모르겠네.”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생각을 정리해나갔다.

누구나 한 번쯤 상상해봤을 법한 일이다.

기억을 가지고 과거로 돌아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땐 무엇이든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막상 현실로 닥치니 아무 생각이 나질 않았다.

언젠가 과거로 갈 때를 대비해 진지하게 준비하는 사람은 없을 테고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스무 살에 프로팀 2군으로 데뷔했던 내 전(前) 인생을 돌이켜보니 게임 말곤 남은 게 없었다.

로또 번호라도 외워둘걸.

머리를 긁적인 다음엔 PC 전원을 켰다.

공책에 뭔가를 정리하는 것보다 PC 메모장에 적는 게 편하니까.

‘일단 내가 잃어버린 것.’

국내에서 4년, 중국과 유럽을 1년씩 돌고 열심히 뛰며 모아둔 10억가량의 돈이 증발했다.

10억을 8년의 세월과 바꿨다고 생각하면 수지맞은 거래라고 할 수 있나?

비록 로또 번호는 외우지 못했어도 열심히 머릴 굴려보면 할 수 있는 게 분명 있을 거다.

무엇보다 7년 차 프로게이머로서의 경험치가 내 머릿속에 고스란히 남아있지 않은가.

유일한 문제는 이걸 써먹으려면 다시 그 치열한 전장으로 뛰어들어야 한다는 점 정도?

물론 나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 생각이었다.

20대 청춘을 불사른 게임이 더럽혀지는 걸 막으려다 총까지 맞은 몸이다.

내 안엔 아직 게임에 대한 열정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자연스레 해야 할 일도 정리가 됐다.

성공 그리고 복수.

약물에 의한 도핑을 묵과하지 않은 탓에 죽고 말았다.

그렇다고 사람을 죽여? 아주 더러운 놈들이다.

이 망할 놈들 때문에 아직도 내 심장이 쿵쾅거렸다.

나에게 총을 쏜 놈은 코치였던 제이슨이지만 고작 코치가 선수를 향해 총을 갈겨도 좋다는 판단을 내리진 않았을 거다.

감독이나 사장단까지 연계되어 있을 확률이 매우 높았다.

설령 모기업은 모르는 일이라고 해도 봐줄 생각은 없었다.

그런 미치광이를 팀에 박아둔 죗값을 누군가는 치러야 하지 않겠는가.

문제는 능력이다. 나는 총을 맞고 죽었다.

부랑자한테 칼침을 맞은 것도 아니고 게임단 코치가 재킷 안에서 꺼낸 총에 맞았단 말이다.

유럽의 치안이 그 정도로 형편없진 않다.

휴양지에 사람을 끌고 가 아무렇게나 사람에게 총구를 들이밀 정도라면 게임단의 뒤편에 상당한 힘이 자리 잡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복수를 하고 싶은 맘은 굴뚝같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내가 이번 생에 할 수 있는 건 이러나저러나 프로게이머뿐이다.

그것도 간신히 1군 문턱을 사수하던 그런 재능, 설령 운이 따라줘 프로게이머 1위가 된다 해도 강력한 뒷배를 등에 업은 게임단에 철퇴를 때릴 수 있을까?

그 질문엔 다소 회의적일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유명해진다 한들 결국 프로게이머는 개인에 불과하다.

사람도 가볍게 담가버리는 이익 집단을 상대로는 하루살이나 마찬가지다.

다만 아직 시간은 남아있었다.

서유럽을 기반으로 둔 XG게이밍은 이 시기면 아직 솜털도 안 났을 시기다.

프로리그는 빨라도 내년부터 시작이니 아직 때가 이르다.

“1월 1일이라.”

복수에 관한 문제는 잠시 덮어둔 나는 키보드를 두드리며 가이아에 대한 정보를 검색했다.

미국계 초대형 검색엔진 지오에서 4년간 개발해 선보인 성장형 대전격투 게임 ‘가이아’.

진정한 VR( Virtual Reality ) 시대를 화려하게 연 초대작 게임이다.

가상현실 게임에 대한 시도는 가이아 이전 10년 전부터 꾸준히 있었지만 대중성을 갖춰 메가 히트를 친 게임은 가이아가 최초였다.

서버 가동 1년을 넘긴 시점에 동접자가 700만 명에 육박했으니 더 말할 필요 있겠는가.

그뿐만이 아니다.

가이아는 사상 처음, 게임 신분으로 올림픽 시범종목에 채택된다.

시대의 흐름상 언젠가 e스포츠도 올림픽 종목으로 오를 날이 올 거라 많은 사람들이 얘기했지만 그 첫 삽을 뜬 게 가이아였다.

게임 역사에 길이 남을 대단한 업적.

이런 과정엔 운동에 관여하는 육체 능력이 가이아를 플레이할 때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주효했다.

그렇게 게임이란 카테고리를 뛰어넘어 문화계 전반에 충격적인 영향을 끼친 가이아는 즐길거리라는 거대한 시장에서 영토를 빠르게 늘려나갔다.

「지오, 총력을 쏟은 대형 프로젝트 ‘가이아’ 북미 서버 오픈 일자 공개」

1월 9일, 전 세계 최초로 가이아가 오픈하는 날이다.

기억이 맞다면 북미 서버를 시작으로 유럽 2개, 한국 순으로 서버가 열렸다.

한국은 반년 이상의 지연을 두고 오픈한 탓에 초반 경쟁력이 선두 서버에 비해 약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 차이를 극복하긴 쉽지 않았고 초대 월드 챔피언십에서 고전, 북미와 유럽에 결승의 자릴 내주고 만다.

한국이 세계 정상을 차지하지 못하는 문제는 제쳐놓고라도 당장 8일 뒤, 내가 몸담았던 전장이 다시 기지개를 켠다는 사실은 날 흥분케 했다.

과거의 난 열여덟 살 부터 가이아를 접했지만 제대로 시작한 건 고등학교 졸업 이후 스무 살 부터였다.

바늘구멍 통과하기만큼 어렵다는 프로 1군 엔트리에 7년을 비볐으니 인정받을 만한 재능임엔 틀림없었다.

하지만 프로생활 내내 과거에 대한 아쉬움이 있던 게 사실이다.

가이아를 처음 알았던 때부터 전력투구했다면 좀 더 대단한 커리어를 쌓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생각 말이다.

실제로 프로 4년 차부턴 나이 어린 친구들이 치고 올라와 피지컬이 밀리고 있음을 느꼈고 힘겹게 버티는 날이 많아졌다.

‘근데 내 피지컬이 되돌아온 건 맞나?’

내 유일한 걱정은 뇌가 늙었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었다.

기억을 모두 가지고 과거로 돌아왔는데 몸이 생각처럼 따라주지 않으면 정말 허탈할 테니까.

모니터 앞에 앉아 앞으로의 계획을 떠올렸다.

두 번째 인생은 지난번 경험치를 발판삼아 전력으로 가이아에 매진한다.

그렇게 누구도 이루지 못할 업적을 쌓아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되면 나를 죽음으로 밀어 넣은 녀석들에게 복수할 수도 있겠지.

단순해서 맘에 들었다.

“좋아!”

스스로 다짐하듯 기합을 넣고 호주머니를 뒤적거렸다.

교복 안쪽, 바지, 가방, 마지막으로 몇천 원 들어있지도 않을 통장까지.

배춧잎 두 장, 동전 몇 개가 전부다.

군자금으론 턱없이 부족한 액수.

북미 서버 접속을 위한 VR 기기를 사려면 중고를 떠올려도 30만 원은 필요했다.

마침 시기가 방학인 데다 북미 계정을 차후 소속 지역으로 이전 작업을 해줄 테니 지금 당장 가이아를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모니터 바탕화면엔 가이아를 시작하기 이전에 즐겼던 게임들이 보인다.

“내가 이런 게임도 했었지.”

본래 나는 게임을 무척 좋아하는 인간이었다.

몇 년간 즐겼던 게임에 하나씩 접속해 돈이 될만한 것을 추려 전부 현금으로 바꾸는 작업이 이어졌고 저녁쯤엔 VR 기기를 주문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싸게 살 수 있었는데 적절한 타이밍이었다.

가이아 오픈 이후 VR기기의 시세가 일시적으로 상승하기 시작했고 한국 서버 오픈 이후엔 없어서 못팔 정도로 값이 치솟는 상태가 됐던 기억이 났다.

덕분에 전국 PC방 사장님들이 동쪽을 향해 매일 절한단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꼭 필요한 준비를 마친 나는 현금이 될만한 것들을 처분하고 뼈대만 남은 계정에 접속해 간단히 고전 게임을 플레이했다.

혹시라도 나의 피지컬이 30대에 가까워지는 그곳에 머물러 있다면 이 모든 계획에 큰 차질이 생길 테니 점검차원에서였다.

달칵거리는 마우스 소리와 키보드 소리가 방 안에 오디오를 채우며 그렇게 밤이 깊어갔다.

***

“택배 시켰니?”

“제 거예요.”

가슴에 큼지막한 박스를 들고 들어오는 어머니 손에서 재빨리 박스를 넘겨받은 나는 부리나케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박스 안에서 나온 것은 검은색의 헬멧, 장갑 세트였다.

자연스레 어디서 난 물건이냐고 질문이 들어왔지만 게임을 통해 얻은 선물이라고 하니 별말은 없으셨다.

“후.”

이게 뭐라고 긴장이 되는지.

지난 며칠간 다른 게임을 통해 피지컬을 점검한 결과, 신체 능력도 어렸을 때로 돌아왔다는 확신을 9할 정도는 얻었다.

9할인 이유는 내가 착각한 걸지도 모른다는 계산에서였다.

이제 곧 정확한 결과를 내려줄 본 게임을 시작할 테니 긴장이 되는 건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집에 수상한 택배가 왔다는 이야긴 아버지 귀에까지 들어갔는지 PC에 설치 작업을 마치고 있을 즈음 아버지가 방에 찾아오셨다.

“택배 왔다며? 게임기야?”

“네.”

“요즘 게임은 신기한 것도 많구나. 해보고 재밌으면 한 번 알려주고 그래라.”

“꼭 알려드릴게요.”

지난 세월, 아버지는 내게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처음 프로게이머를 하고 싶다는 의견을 밝혔을 때도 화를 내시지 않고 가능성이 있으면 도전하라며 응원도 해주셨다.

해외를 전전하며 고생하고 있을 때도 꾸준한 격려로 힘을 실어줬던 아버지, 시간을 내서 아버지와 같이 게임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수없이 많았지만 게임단 일이 바쁘고 하루 이틀 미루다 보니 결국 아버지와 가이아를 같이 해본 적은 없었다.

그뿐인가.

아들이 스물여섯에 총 맞고 죽었단 걸 아시면 게임을 못하게 뜯어말리실 테지.

다만 확실한 건 이번엔 잠자코 당하고만 있지 않을 거란 점이었다.

XG게이밍 뿐만 아니라 7년간 프로 생활을 하며 이것저것 험한 꼴은 더러 있었다.

인생 경험치가 부족했을 땐 어쩔 수 없이 당했다 쳐도 이젠 아니었다.

밤 10시.

미국에선 시차로 인해 아직 아침인 시각, 몇 번이고 점검한 VR 전용 헤드기어를 쓰고 사전 인스톨 해둔 가이아에 접속했다.

[Welcom to GAIA.]

검은색 바탕에 흰색 글씨가 떠오른다.

몸이 잠시 날았다가 떨어지더니 빛이 스미는 광장에 내려앉는다.

자애의 미소를 지으며 나를 내려다보는 여신의 얼굴을 쳐다본 순간부터 몸의 떨림이 잦아들지 않았다.

진정 과거로 돌아왔음을 다시 한 번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어서오세요. 운명의 인도자여.”

영어지만 알아듣는덴 문제 없었다.

여러 번 작업했던 캐릭터 생성 과정이니 당연했다.

딱히 어려운 말도 아니고.

지금 여신은 네 가지 직업군에 대한 설명을 전달 중이었다.

누군가를 지키는데 특화되어 수비 능력이 뛰어난 백색 계승자.

은밀히 거리를 좁혀 치명적인 일격을 선사하는 청색 계승자.

강렬한 화력으로 전장의 공세를 주도하는 적색 계승자.

신성의 힘으로 아군을 치유하는 빛의 계승자.

쉽게 말하면 탱커, 암살자, 마법사, 힐러다.

전생의 나는 백색 계열 전직인 아크나이트를 다뤄 프로팀 1군 말석을 끈질기게 지켜냈다.

수비 능력의 포텐셜을 조금 떨어트리는 대신 데미지도 어느 정도 기대할 수 있는 클래스다.

그러나 지금 난 전생에 걸었던 길을 그대로 밟을 생각이 없었다.

설령 나중에 다시 육성할지언정 지금은 아니었다.

앞으로 일 년간 메타를 호령할 클래스는 탱커가 아닌 암살이었다.

나는 확신에 찬 어조로 여신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청색 계승자.”

여신이 재차 확인한다.

아직 청색이 어떤 가능성을 지녔는지, 어떤 클래스로 전직할 수 있는지 다 듣지도 않고 유저가 결정을 내리니 당연한 반응이다.

확실하단 뜻을 보내자 나무 인형의 색이 푸르게 변하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요컨대 나의 청색 재능을 알아보는 테스트로 결과가 좋지 않으면 플레이어로 하여금 다른 직업을 고를 수 있도록 돕는 장치다.

“이 나무 인형은 당신을 위해 준비된 것입니다. 자유롭게 공격해보세요. 그대의 가능성을 점칠 수 있도록요.”

여신의 신호가 떨어지자 양손에 클러가 채워졌다.

날카로운 강철의 클러는 커다란 맹수의 손톱을 떠올리게 했다.

나무인형도 마찬가지로 손에 무기가 들렸다.

가이아를 처음 시작하는 유저는 이 직업 선택과정부터 어려움을 겪는다.

사실적인 VR 그래픽, 성인 남성과 같은 크기의 나무인형이 무기를 들고 자신과 마주 서는 경험을 어디서 해보겠는가.

찔리면 설마 아픈 건 아닐까. 대체 어떻게 상대해야 될지 몰라 머리가 혼란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내겐 상관없는 이야기, 저런 느려터진 인형은 프로 1군을 지켜낸 내 상대가 아니다.

자리를 박차고 튀어나간 나는 클러를 뻗어 인형의 손을 받아침과 동시에 목을 쳤다.

나무인형이 쓰러지기 무섭게 다른 녀석이 활을 들고 불쑥 나타난다.

나의 손에 들려있던 클러도 자연스레 활로 바뀐다.

이것만큼은 그닥 자신이 없었다.

검과 방패는 무던히 들었어도 활은 쏴본 적은 없는 탓이다.

될 대로 되라지.

놈보다 나의 손이 더 빨리 움직였다.

탕! 소릴 내며 튀어나간 화살이 용케 상대의 손을 맞췄다.

마무리는 허리춤에 주렁주렁 달려있던 표창이었다.

하나가 살짝 빗나가긴 했지만 나머지 표창은 적에게 충분한 데미지를 입혔다.

연기와 함께 사라진 나무인형은 다시 맨손으로 나타났다.

테스트의 마지막임을 깨달은 나는 재빨리 거리를 좁혔다.

청색 계열 전직 중 하나인 무도가의 자질을 시험하는 순간이다.

훅하고 바람 가르는 소리와 함께 인형의 주먹이 내 뺨을 스친다.

갑자기 몇 배는 빨라진 속도에 당황했지만 멈추지 않고 주먹을 뻗어 턱을 냅다 갈겼다.

주춤거리는 인형을 상대로 발길질을 매섭게 날리자 충분한 데미지를 입혔는지 인형이 연기로 변해 사라진다.

세 번의 전투를 치르는 데 채 1분도 걸리지 않았다.

작은 폭죽 소리와 함께 나타난 점수는 바라던 대로 최상위였고 여신은 놀란 얼굴을 하며 박수를 보냈다.

“축하드립니다. 적성 결과 최상위 점수를 획득하셨습니다.”

여신만 놀란 게 아니다. 나도 놀랐다.

아무리 전생의 경험이 있다고 해도 암살자는 내가 제대로 파본 적 없는 클래스다.

게다가 서버 렉도 있지 않은가.

가이아 북미 서버의 본체가 있는 곳과 한국의 거리탓에 미세한 렉은 어쩔 수 없었다.

때문에 잘하면 S정도 받겠구나 싶었는데 SS를 덜컥 따냈다.

뭔가 내가 모르는 변화가 생긴 게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여신의 우아한 목소리가 생각에 잠겨있던 나를 깨웠다.

시험의 결과는 곧 스탯의 출중함으로 연결된다.

더할 나위 없는 시작 선에 선 나는 지니고 있던 긴장을 털어내고 만족스럽게 웃을 수 있었다.

직업을 확정 짓자 캐릭터의 세부 스탯이 펼쳐진다.

체력, 마력, 민첩, 투지, 인내, 근력, 지식에 이르는 일곱 가지 스탯은 적성시험에서 받을 수 있는 최고 스탯에 도달해 있었다.

목각인형을 상대로 지지부진한 승부를 벌이거나 패배한다면 이보다 낮은 스탯을 받게 된다.

물론 이 초반 스탯 차이가 극복 불가능한 정도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건 결코 아니다.

가이아는 AI시스템을 극한까지 끌어올려 밸런스를 맞추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 게임.

한순간의 판단 실수로 육성에 완벽하게 실패하는 불합리한 일을 두고 보지 않는다.

결과가 맘에 들지 않으면 얼마든지 시험을 다시 치를 수 있으니 결국 유저하기 나름이다.

아마 대다수 유저는 각기 다른 직업의 적성 평가를 모두 받아볼 것이며 재시험을 치르는 이들도 많을 터였다.

“청색의 길을 선택한 자여. 그대의 이름을 알려주시겠습니까?”

직업 선택 과정의 마지막 차례.

나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전생에 쓰던 이름을 그대로 등록했다.

“UNIQUE.”

가이아를 시작할 때부터 사용한 이름.

유니크라 쓰고 평범이라 불러야 한다며 적지 않은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다른 이름을 쓸 맘은 들지 않았다.

유니크란 닉네임으로 화려한 족적을 남기는 게 나의 꿈이었으니까.

“그대의 앞날에 축복이 함께하기를.”

이번에야말로 이름에 어울리는 프로게이머가 되리란 결심과 함께 나는 필드를 향해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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