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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OS 소설 아닌데요-1화 (프롤로그) (1/170)

AOS 소설 아닌데요? ⓒ행운요정

프롤로그.

정말 아름다운 휴양지였다.

머리털 나고 말문이 트인 후로 이만한 곳은 본 적이 없었다.

정령이 깃들어 있다는 호수는 투명하리만큼 물이 맑았고 절벽 위에 세워진 고성(古城)은 전망이 끝내줬다.

발코니에 기대 호수를 바라보며 와인 한잔을 걸치면 그야말로 그림 같은 풍경이 그려지는 멋진 곳.

7년 차 프로게이머였던 나는 정규일정을 마치고 휴가를 받은 상태였고 이곳이 우리 팀의 숙소였다.

아직 플레이오프가 남은 시점에서 이런 휴식은 이례적인 일이지만 모두 기쁜 마음으로 여유를 만끽했다.

그도 그럴 게 하위권을 노닐던 팀이 단숨에 시즌 2위까지 치고 올랐으니 최근 팀의 분위기는 아주 좋았다.

모든 게 행복했을 터였다.

내가 진실 하나만 모른 척 외면했다면.

“핸솔. 이렇게까지 해야겠어?”

한솔을 혀 꼬부라진 발음으로 말하는 녀석의 이름은 제이슨, 샛노란 머리에 검정 선글라스를 낀 제이슨은 육체미가 넘치는 인간이다.

난 그를 처음 봤을 때 고릴라에 양복을 걸쳐놓은 줄 알았다.

팀 내에서 그의 직책은 코치였는데 전략을 짜는 등의 일은 일절 하지 않았다.

그럼 하는 일이 뭐냐고?

그는 오직 팀 내 기강을 위해서만 돌아다녔다.

험상궂은 근육 빵빵한 아저씨가 어슬렁거리며 숙소 안을 돌아다닌다고 생각해보라.

분위기가 화기애애할 리 없다.

해외 팀이라고 하면 분위기가 유할 거란 이미지가 있는데 적어도 우리 팀은 해당 사항 없는 이야기였다.

자칫 한 대 맞을 것 같은 분위기 속에서 나는 뜸을 들이며 입을 열었다.

“제이슨. 이건 범죄야.”

“보이. 그런 딱딱한 소리 말자고.”

제이슨이 그 커다란 손으로 내 어깨를 두드리려 할 때 나는 은근슬쩍 몸을 빼 거리를 벌렸다.

그의 눈빛이 더 싸늘해지자 왠지 모르게 위험하단 생각이 들었다.

“자네만 조용히 하면 우리 팀, 모두 행복할 거야.”

귀에 꽂고 있는 통역기는 제이슨이 내게 하는 말을 열심히 전달했다.

영어를 아예 못하는 건 아니지만, 솔직히 통역기 성능이 좋아 꽂고 있는 게 편했다.

“그렇다고 마약은 아니지.”

마약이라고 하면 좀 틀린 표현인가?

어찌 됐건 내 의도는 잘 전달된듯했다.

드러그란 소리가 입에서 튀어나오자 제이슨의 표정이 더 살벌해진 걸 보면.

“그래서 어떻게 하고 싶은데?”

“뻔하잖아. 협회에 알릴 거야.”

“그럼 핸솔, 자네 커리어도 여기서 끝 날 텐데?”

꼴찌에서 놀던 팀이 약을 빨고 상위권까지 도약했다.

아무리 자수에 대해 참작을 해준다 한들 나는 옷을 벗게 될 테고 그간의 커리어도 엉망진창이 되리라.

기자들이 앞세운 카메라 플래시 속에 질문세례를 받는 광경을 잠시 떠올린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돼.”

“어째서?”

“내가 벌써 프로 7년 차야. 햇수로 따지면 9년 차고. 내가 퇴물 소리 들어가면서 이 바닥에 붙어 있는 이유가 뭘 거 같아. 돈? 아니야. 돈은 너희랑 중국이 섭섭잖게 챙겨줬어.”

노후까지 보장할 만큼 큰돈은 아니지만, 금전적 여유는 있었다.

날이면 날마다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를 견뎌가며 프로생활을 이어가는 이유는 단 하나, 내가 이 게임을 여전히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아직 이 게임을 좋아하거든. 내 손으로 똥칠할 순 없잖아. 안 그래?”

나의 답변이 의외였던 걸까.

제이슨은 입술을 비죽거리더니 노란 머리를 쓸어올리길 몇 차례 반복했다.

“모두 착각했군.”

“뭘?”

“자네가 아직 게임을 지속하는 원동력, 여전히 정상에 섰을 때의 쾌감을 잊지 못하는 줄 알았지. 나이가 들고 젊은 애들한테 서서히 밀린 1군 선수들은 대부분 우리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이번이 처음이 아니야. 우린 자네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했어. 치열한 한국 프로판에서 몇 년을 굴러 여기까지 왔으니까. 그런데 생각보다 순수한 친구였네.”

알아줘서 고맙다고 웃으면 이 살벌한 분위기가 좀 나아질까?

어색하게나마 웃으려던 그 순간, 제이슨이 재킷 안쪽에 손을 넣었다 뺐다.

‘시발.’

고릴라의 손에 들려 나온 건 광택 없는 검은색 권총 한 자루였다.

휴가차 놀러 왔다가 권총을 마주한다는 비현실적인 상황이었지만 내 몸은 용케 움직여 생존을 도모했다.

이래 봬도 격투 게임 프로게이머다.

머리털이 쭈뼛 서는 감각을 느끼며 내가 발코니로 뛰어오른 순간 괴상한 소리가 세 번 울렸다.

푝푝푝.

등을 쇠꼬챙이로 쑤시는 듯한 고통이 엄습했고 난 입도 뻥끗하지 못했다.

처음 맞아본 총알은 살을 제대로 찢어놨고 아주 많이 아팠다.

차가운 물 위로 첨벙하는 소리가 크게 울리는 소리와 함께 시야가 새카맣게 물들었다.

***

난 욕을 하지도, 비명을 지르지도 않았다.

정신을 차렸을 땐 아주 오래전에 봤던 것 같은 익숙한 천장이 눈에 들었다.

‘꿈인가?’

그런 생생하고도 좆같은 꿈이 있을 리가?

얼마나 땀을 흘렸는지 침대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이불을 옆으로 치우고 자리에서 일어난 난 강렬한 기시감에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아마 프로를 시작하기 한참 전이었을 터다.

학창시절을 보냈던 내 방, 기억 속에 잠들어 있던 익숙한 방이었다.

뭔가 큰일이 일어나고 있단 느낌에 난 방문을 열고 거실로 튀어나갔다.

“일찍 일어났네?”

시계는 아침 일곱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엄마?”

“응? 왜?”

약 1분 전쯤, 제이슨 개자식이 날 쏜 것만큼의 충격이 머릴 때렸다.

귀한 아들내미 경기만 뛰면 욕먹는 거 더는 보고 싶지 않다며 인제 그만 집에 돌아오는 게 어떻겠냐고 우울해 하던 울 엄마가 십 년은 젊어졌으니까!

“어디 안 좋아?”

내가 아무 말도 못 하고 우두커니 서 있으니 이상하게 보였나 보다.

떨떠름하게 아무것도 아니라며 손을 흔든 나는 다시 방으로 돌아가 달력을 살폈다.

뭔가 이상해도 한참 이상했다.

설마 타임머신이라도 탔다는 거야, 뭐야?

누구나 새로운 인생을 꿈꾸지만, 그것이 이루어질 수 없음을 알기에 망상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헛된 꿈!

차라리 죽기 전 천천히 인생의 기억을 더듬고 있는 건 아닐까.

그래. 이쪽이 타임머신보단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볼을 꼬집고 매만지며 달력을 확인한 나는 신음할 수밖에 없었다.

꼬집어서 느끼는 화끈함, 기가 막히게 생생한 감각은 너무나도 현실적이었다.

게다가 방 안의 가구며 집기들은 내가 생각지도 못한 곳까지 디테일이 살아있다.

“2028년 1월.”

책상 옆에 놓인 달력을 확인하는 순간 나는 눈 앞에 펼쳐진 현실을 점차 받아들였다.

옷장 앞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앳되기 그지없다.

열여덟, 겨울방학을 게임으로 알차게 보낼 예정이었던 고등학생이 거기 있었다.

“하하···.”

실없는 웃음이 새어 나왔다.

총 맞은 퇴물 프로게이머의 시계가 거꾸로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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