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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S의 천재 스파이 (203)화 (203/208)

NIS의 천재 스파이 (203)

직사각의 대형 창문에 서서 밖을 바라보는 조나단 대통령.

“흣!”

가볍게 웃는 그의 얼굴이 무척 밝다.

은근 들떠 보이는 것이 기분이 무척 좋은 모양이다.

방금 전.

벤턴 체니가 죽었다는 보고를 받았다.

AOA에서 최고의 자리.

의장이었던 벤턴 체니다. 이제 그가 죽음으로써 사실상 AOA의 최고 상층부.

일명 위원회의 상임위원들이 모두 죽었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상임위원은 코드명 에이스, 조나단 대통령. 그 자신밖에 없다.

창밖을 바라보는 조나단 대통령.

두 눈동자에서 완연한 희열의 빛이 일렁거렸다. 이제까지 몇몇 최고위 수뇌가 역할 분담을 하며 공유했던 AOA가 이젠 그의 개인 사조직이 된다.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이후, 현직에 있을 때 못지않은 권력이 곧 수중에 들어온다.

정계, 재계, 문화계, 과학계 등.

국가 전반의 각 분야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조나단 대통령은 그것이 무엇보다 기뻤고, 그 때문에 기분이 아주 좋아졌다.

빙긋.

웃으며 조나단 대통령이 왼쪽으로 돌아서더니 천천히 걸어가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이제 차은성만 정리하면 깔끔하게 다 끝나는 건가? 후후후.”

조나단 대통령의 두 눈동자에서 매우 들뜬 작은 빛이 반짝였다.

*    *    *

잠시 뒤.

조나단 대통령이 책상에 앉아 앞을 보았다.

―백악관 로고가 선명한 최고급 시가 박스.

조나단 대통령이 손을 박스로 뻗었다.

완만한 손동작으로 박스를 개봉하고, 포장된 시가들 중 가장 마음에 드는 하나를 꺼냈다. 포장을 벗기고 커팅한 후 시가를 입에 물었다.

몇 초 후.

조나단 대통령이 음미하듯 시가를 피우며 몸에서 힘을 뺐다.

그리고 편안한 자세로 앉아 하얀 연기를 뿜었다.

후우우우.

그렇게 서너 번 시가를 피웠을까?

돌연.

“윽!”

조나단 대통령이 엄청 당황하며 눈을 둥그렇게 뜨더니 급히 시가를 놓고 오른손으로 심장 어름을 부여 쥐었다.

손에 쥐었던 시가가 힘없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조나단 대통령의 얼굴이 한순간 고통으로 일그러지고 힘없이 고개가 숙여졌다.

“끄으으으…….”

고통스러운 신음을 나지막하게 흘리는 조나단 대통령.

그는 이해할 수 없다는 의문의 눈빛을 띠었다.

‘시, 심장이…….’

급성 심장마비 증세.

심장이 뛰지 않는다. 정지한 듯이 박동을 멈췄다. 그러자 곧바로 숨이 막히고 호흡이 이어지지 않는다.

마치 공기가 없는 우주 공간에 있는 것처럼.

이대로는 질식사할 것 같다.

고개를 숙인 조나단 대통령의 눈에 바닥에 떨어져 타들어 가는 시가가 보였다.

‘도, 독?’

조나단 대통령이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믿을 수 없게도.

누군가가 자신이 피우는 시가에 손을 써 둔 것 같다.

‘차은성!’

조나단 대통령은 부지불식간에 차은성을 생각했다.

‘아, 아니야! 꺼어어억!’

차은성이 대통령 집무실까지 들어온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 그럼 월터…….’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월터 부국장이 들어올 수는 있다.

하지만 자신이 피우는 시가에 월터 부국장이 손을 쓴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워, 월터도 아니라면…….’

조나단 대통령은 자신의 의식이 급격히 흐려지는 것에 암담했다.

‘이, 이대로는 죽어!’

조나단 대통령은 살고 싶었다. 하여 호흡을 하려 했지만, 뜻대로 호흡이 이어지지 않았다.

여전히 숨이 쉬어지지가 않는다. 점점 더 막혀 온다.

‘빠, 빨리!’

조나단 대통령은 고개를 들며 책상 우측 위로 손을 뻗으려 하였다.

서둘러 사람을 불러야 한다. 이대로라면 자신은 죽는다.

‘의, 의료진을…….’

조나단 대통령은 필사적으로 손을 더 뻗어 인터콤을 누르려 하였다. 죽음이 자신을 집어삼키기 전에!

한데.

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아, 안 돼!’

조나단 대통령은 마음속으로 목이 터져라 외쳤다.

하지만 말은 입 밖으로 나가지 않고 입안에서만 맴돌았다.

결국.

추욱.

떨리는 팔을 힘없이 책상에 늘어놓으며 조나단 대통령이 책상에 엎드렸다.

시야가 빠르게 사라지듯.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급격히 흐려지며 의식이 점점 없어진다.

조나단 대통령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조, 조커!’

그밖에 없다.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마지막 최상층부 요인.

현존하는 AOA 최장수 멤버.

은퇴할 때가 이미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나타내지 않음으로써 스스로를 감춘 최고 위원들 중 1인.

그가 자신을 죽이려는 것이 틀림없다.

왜인지 알 것도 같다. 조직을 사조직화하려 한 것에 대한 응징일 터!

조커를 인지한 조나단 대통령의 몸이 일순간 추욱 늘어뜨려졌다.

몸에서 모든 힘이 빠져나가고, 두 눈을 뜬 채 조나단 대통령은 절명하고 말았다.

*    *    *

몇 시간 후.

백악관에서 충격적인 발표가 있었다.

―조나단 대통령. 심장마비 사!

곧바로 TV 방송국, 신문사 등.

언론 매체들이 일제히 조나단 대통령의 죽음을 속보로 긴급 보도했다.

각 주마다 있는 방송국과 신문사 등 미국의 모든 언론이 조나단 대통령의 죽음을 긴급 방송했다.

신문들 역시 인터넷 판을 통해 해당 기사를 게재했다.

캐서린 랭포드 하원 부의장의 죽음에 이은 조나단 대통령의 심장마비 사에 워싱턴 정가는 걷잡을 수 없는 엄청난 혼란에 빠졌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급변 사태에 다들 어쩔 줄을 몰라 하며 허둥지둥거렸다.

단 한 사람.

조나단 대통령의 죽음으로 남은 임기를 승계해야 하는 맥슨 부통령.

오직 그만이 남몰래 미소 지었다. 이제 그가 미합중국 대통령이다!

*    *    *

그날 밤 자정.

알링턴 국립묘지 인근에 있는 미 해군 컨트리클럽.

자정이라 모든 불이 소등되었다. 그 때문에 엄청 캄캄했다.

사위가 죽은 듯이 고요한 것이 매우 을씨년스럽다.

13번 홀이 바라보는 숲 어귀에 서 있는 월터 부국장.

한일자로 입을 다물고 어두컴컴한 13번 홀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몇십 초쯤 지났을까?

저벅저벅.

뒤에서 누군가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월터 부국장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놀라지도 않았다. 그는 태연했다. 마치 누가 오는지 알고 있는 것처럼 들리는 소리에 일절 반응하지 않았다.

이윽고.

한 사람이 월터 부국장의 오른쪽에 이르러 섰다.

밤하늘의 달빛이 비추는 CIA 국장 월리엄 워필드.

월리엄 국장이 어두운 13번 홀을 바라보며 천천히 물었다.

“날 여기서 보자고 한 이유가 뭔가?”

월터 부국장이 월리엄 국장을 흘낏거렸다.

“대통령이 죽었습니다.”

“아네. 그런데 날 보자고 한 이유가 대통령의 죽음 때문인가?”

“네.”

“재미있군. 뭔가 남들이 모르는 것을 자네가 알고 있어, 은밀히 나와 만나 얘기하려고 한다고 생각하여 이렇게 나왔는데 말이야.”

월리엄 국장이 은근 실망이란 감정을 내비쳤다.

월터 부국장은 침묵했다.

“…….”

그러자 월리엄 국장이 돌아보았다.

“월터.”

“예전부터 무척 의아했었습니다.”

“무슨 말인가?”

월리엄 국장이 물었다.

월터 부국장은 못 들은 체하며 계속 말했다.

“시먼스도 그렇고, 조지도 그렇고.”

“…….”

“CIA 부국장을 두 사람이나 누가…….”

월터 부국장은 의문을 내비쳤다.

“그런데 저에겐 아무 일이 없었습니다. 마치 일부러 살려 두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월터. 지금 자네의 말이 무슨 말인지 난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네만.”

월리엄 국장이 말하며 월터 부국장을 향해 돌아섰다.

그사이.

월터 부국장이 천천히 월리엄 국장을 돌아보았다.

“조커십니까?”

순간.

“헉!”

월리엄 국장이 엄청 놀라며 헛바람을 깊이 삼켰다.

경악실색의 표정을 지으며 눈을 화등잔만 하게 부릅떴다.

쩌억.

벌린 입이 그가 얼마나 놀랐는지, 놀람의 강약을 보여 준다.

넋을 놓은 것 같은 모습의 월리엄 국장.

월터 부국장이 천천히 그를 향해 돌아섰다.

“절 일부러 살려 두신 이유가 뭡니까? 국장님.”

“워, 월터.”

월리엄 국장이 매우 놀란 목소리로 더듬거리며 뒤로 두 걸음 물러나 섰다.

뭐라 말할 수 없이 당황하는 월리엄 국장이다. 당황하는 것이 한눈에 다 보인다.

월터 부국장이 월리엄 국장을 당장이라도 죽일 것처럼 쏘아보았다.

“이유가 뭡니까?”

월터 부국장이 큰 목소리로 다그쳐 물었다.

알고 싶다는 의사가 한눈에 보이는 월터 부국장이다. 그런 한편으로 분노를 드러냈다.

“…….”

월리엄 국장은 잠시 입을 다물고 월터 부국장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월터 부국장 역시 입을 다물고 월리엄 국장을 마주 보았다.

두 사람은 마치 눈싸움을 하는 것처럼 서로를 응시하며 각기 다른 감정을 품었다.

월리엄 국장은 당혹이란 감정을.

월터 부국장은 계속 분노하는 감정을.

*    *    *

수여 초 후.

월리엄 국장이 손을 들어 상의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꺼내더니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후우우우.

월리엄 국장이 담배 연기를 뿜으며 월터 부국장에게 넌지시 말했다.

“어떻게 알았나?”

“제가 안 것이 문제가 됩니까?”

“당연히 문제가 되네. 날 아는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으니깐 말이네.”

“그 말씀!”

“…….”

“자신이 조커임을 인정하시는 겁니까?”

월터 부국장의 말에, 월리엄 국장이 입에 담배를 물며 눈웃음치더니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인정한다!

월리엄 국장의 무언에, 월터 부국장이 움찔했다.

예상하고 있었지만. 막상 눈앞에서 월리엄 국장이 인정하자 내심 뭐라 말할 수 없이 당혹스러웠다.

월리엄 국장은 담배를 피우며 가만히 월터 부국장을 보았다.

“이럴 줄 알았다면 자네를 일찌감치 처리했을 것이네.”

“후회하십니까?”

“당연히. 후후.”

월리엄 국장이 낮게 웃었다.

“절 살려 두신 이유가 뭡니까?”

“조금 전부터 계속 묻는 것을 보니 엄청 궁금한가 보군.”

“네. 궁금합니다. 절 살려 둔 이유가 분명히 있을 테니까요.”

월터 부국장의 말에, 월리엄 국장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씨익.

그는 다시 담배 연기를 뿜었다.

후우우우.

월리엄 국장이 다시 입에 담배를 물며 느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간단하네.”

“…….”

“자넨 차은성과 이어져 있기 때문이네.”

월리엄 국장의 말에, 월터 부국장이 몸을 움찔거렸다.

이해가 안 된다.

“절 살려 둔 게, 차 팀장 때문이란 말씀이십니까?”

“맞네. 차은성이 틀림없이 자네에게 연락할 것 같아서 말이야.”

월리엄 국장이 피우던 담배를 바닥에 버리고 발로 비벼 껐다.

월터 부국장은 월리엄 국장의 말에 진한 허탈감을 느꼈다.

자신을 살려 둔 이유가 고작 차은성 때문이라니. 자존심이 이만저만 상하는 것이 아니다.

월리엄 국장이 월터 부국장을 마주 보았다.

“처음부터 이런 상황까지 만들 생각은 없었네.”

“…….”

“조용히!”

“…….”

“세상 그 누구도 모르게…….”

“…….”

“일을 망친 것은 하트와 시먼스였네. 두 사람 다 내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상황을 너무 극단적으로 몰고 가더군.”

무심한 목소리.

월터 부국장은 월리엄 국장의 말을 묵묵히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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