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NIS의 천재 스파이 (189)화 (189/208)

NIS의 천재 스파이 (189)

국면 전환

“좋네. 자네가 원하는 것을 말해 보게.”

조나단 대통령의 말에 차은성이 천천히 잔을 내려놓으며 내심 고소를 흘렸다.

‘훗.’

어차피 AOA와는 끝장을 볼 작정이다.

자신을 죽이려고 한 것도 있지만. 박영광이 죽었다. 그 때문에 차은성은 전례 없는 분노와 살의를 가슴 깊숙이 품고 있었다.

‘적의 적은 친구라고 했었지.’

차은성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조나단 대통령을 바라보았다.

캐나다로 갓 입국한 자신의 앞에 뜻하지 않게 월터 부국장이 나타남으로써 염두에 두었던 기존의 모든 것이 다 틀어졌다.

―리샤오와 몬트리올에서 접선하기로 했었다.

그리고 알 하르비와 세르게이에게 연락, 도움을 받으려 하였다.

이후의 행보 역시 변화가 불가피하다. 그래도 한 가지 큰 성과가 있다.

AOA.

조직 내부에서 갈등과 알력이 생각 이상으로 심각하고 깊은 것 같다.

각자의 이익과 이해관계가 아주 복잡하고 미묘하게 뒤엉켜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AOA의 멤버인 현직 미국 대통령 조나단.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미국의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이다.

그런 그의 머리 위에 AOA가 있다는 것을 아마 받아들이지 못한 것 같다.

어쩌면 매우 적대적인 마음을 숨기고 어쩔 수 없이 AOA의 뜻을 받아들이는 척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흠.’

차은성은 내심 침음을 흘렸다.

―대체적으로 타인보다 가진 것이 많은 이.

―타인보다 강한 힘이라고 할 수 있는 권력을 갖기를 원하는 자.

그와 같은 부류의 인간은 대개 이기적이고 자신의 이익과 욕망을 다른 모든 것에 있어 최우선한다.

그러다 보면 조직 내부에서 이견이 생기고 충돌이 일어나는 것은 필연이다.

‘흩어져 있어!’

차은성은 내심 중얼거리며 쾌재를 불렀다.

세상 다시없을 조직도 내부가 분열, 반목되어 있다면!

제 기능과 본연의 힘이라고 할까? 조직의 위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

그 점을 감안하면 AOA와 한번 해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드는 차은성이다.

더욱이 현 미국 대통령이 뒤를 봐 준다고 하지 않는가?

차은성은 사양할 생각이 없었다.

똑바로 조나단 대통령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제가 원하는…….”

차은성의 말에, 조나단 대통령과 월터 부국장이 거의 동시에 흠칫거리며 당혹이란 눈빛을 띠었다.

뜻밖이다!

조나단 대통령과 월터 부국장은 마치 약속을 한 것처럼 그런 감정을 가감 없이 내보였다.

*    *    *

테이블에 각종 서류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그런 테이블 주위에 다섯 남녀가 방만한 자세로 앉아 한창 대화 중이었다.

하비에는 잠시 대화를 끊고 의자에 앉은 채 빙글 뒤돌았다. 그러자 그의 눈에 큼직한 화이트보드가 들어왔다.

보드 상단에는 몇몇 사진이 붙어 있고, 그 아래와 옆에 몇몇 간단한 문장과 단어가 적혀 있었다.

“음…….”

하비에가 나지막이 침음을 흘리더니.

“시빌라.”

시빌라를 불렀다.

테이블 오른쪽에 앉아 있던 시빌라가 하비에를 돌아보았다.

“네, 팀장님.”

“시카고에서 일어난 테러.”

“…….”

“차은성의 짓이 확실해?”

하비에의 물음에서 반신반의라는 감정이 슬며시 배어 나왔다.

“현재로서는 단언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어요. 팀장.”

시빌라의 대답에.

“맞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하비에가 중얼거렸다.

“네.”

시빌라가 재차 대답하자 하비에가 답답하다는 기색을 짓더니 보드 최상단에 붙어 있는 차은성의 사진을 바라보았다.

“휴고.”

테이블 좌측 중앙 어름에 앉은 휴고가 하비에를 돌아보았다.

“사용하는 총기를 바꿈으로써 저희의 수사에 혼선과 혼란을 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휴고가 재빨리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아마 시카고를 이미 벗어났을 겁니다.”

“자넨 확신하는군.”

하비에가 말하며 휴고를 돌아보았다.

휴고는 시빌라를 힐긋거리며 하비에에게 말했다.

“시빌라가 얼마 전에 언급했던 랄프. 인근에 있는 마크트웨인 주립공원 방면에서 북으로 이동하면 이곳 시카고입니다. 팀장.”

“흠. 차은성이 시카고로 이동. 테러를 저질렀다?”

“그렇습니다. 돈 파블리코의 개인 사무실이 있는 비토리오 타워 63층을 헬기로 들이받아 버린 차은성입니다.”

“…….”

“만약 차은성이 비토리오 타워 현관 로비를 시작으로 63층으로 이동하려고 했다면 필히 중간 어딘가에서 돈 파블리코의 부하들에 의해 죽었을 겁니다.”

“…….”

“과감하고 저돌적이며 매우 터프한 스타일로 볼 때!”

“…….”

“카사스 씨와 에드윈 엘링은 단 한 발에 머리가 관통당해 즉사했습니다. 그런 저격 실력을 가진 자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팀장.”

휴고는 확신한 듯 자신감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계속 말했다.

“로켓탄으로 시카고 시장 사무실을 날려 버린 것을 감안하면, 차은성이 확실합니다.”

하비에는 침묵했다.

“…….”

“무엇보다도 지금까지, 그 어디에서도 이렇다 할 단서가 단 하나도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

“자신을 완벽하게 감추고 있다는 말이 되는데. 그 정도로 자신을 노출시키지 않는다면 관련 전문적인 교육과 훈련을 받았다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휴고의 말에, 하비에가 물었다.

“자네 말대로 차은성이 시카고를 떴다면 어디로 갔을 것 같은가?”

“둘 중 하납니다.”

“둘 중 하나?”

하비에가 휴고를 돌아보았다.

“네. 미시간호를 통해 캐나다로 갔거나 뉴욕으로 갔을 겁니다.”

“미시간호를 통해 캐나다로 도주한 것은 그렇다 치고. 왜 뉴욕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하비에가 궁금하다는 눈빛을 띠었다.

“차은성은 LA를 시작으로 계속 동쪽으로 이동을 거듭해 왔습니다.”

“동쪽이라…….”

“틀림없습니다. 제가 그동안 분석한 모든 것을 놓고 생각해 볼 때.”

“…….”

“차은성의 이동 방향은 틀림없이 동쪽일 겁니다.”

“좋아. 동부로 이동했다고 치고. 그런데 왜 뉴욕이라고 단정 짓는 거지?”

하비에가 재차 물었다.

그러자 휴고는 즉각 대답했다.

“이제까지 차은성이 죽인 자는 다양했습니다. LA에서 죽인 자들 중 명사라고 말할 수 있는 이는 돈 파블리코였습니다. 랄프라는 자는 이동 경로상에서 무슨 이유에서인지 죽였습니다.”

“…….”

“JK. 시먼스가 마크트웨인 주립공원에 있다는 것을 차은성은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마크트웨인으로 이동하여 JK. 시먼스 전 CIA 부국장을 죽이고 이곳 시카고로 왔을 겁니다.”

“…….”

“그리고 명사들을 노렸습니다. 각기 활동하는 영역은 다르지만, 그래도 저명인사라고 말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이들입니다.”

“…….”

“차은성은 명사들을 노리고 있는 겁니다.”

휴고의 눈이 반짝였다.

“차은성이 동부로 이동하고, 명사를 노린다고 가정할 때.”

“…….”

“가장 가능성이 큰 이동지는 뉴욕일 수밖에 없습니다.”

“…….”

“뉴욕에는 한다하는 명사들이 잔뜩 모여 있지 않습니까?”

휴고의 말에, 하비에는 말없이 눈을 내리감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휴고의 말이 꽤 설득력이 있다.

한편.

시빌라가 휴고를 돌아보았다.

“차은성이 왜 명사를 노린다고 생각하는 거죠?”

휴고가 시빌라를 돌아보았다.

“지금까지의 분석 결과, 시카고에서부터 집중적으로 명사를 노리기 시작했습니다.”

“…….”

“LA나 마크트웨인 주립공원에서와는 달라졌습니다. 즉, 차은성이 노리는 타깃을 바꿨다는 말이 되죠.”

“타깃을 바꿨다고요?”

시빌라의 반문에 휴고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회 각계각층에서 명사로 불리는 이들만 집중적으로 골라 죽이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휴고는 차은성에게 죽은 랜디 아로자레와 제런 듀런을 언급했다.

“두 사람은 각기 폭발물과 로켓탄에 의해 죽었습니다. 반면 카사스와 에드윈 엘링은 저격으로 죽었습니다.”

“살해 수법이 서로 다르다?”

“그렇습니다.”

“랜디 아로자레는 언론계 명사이고 제런 듀런은 정계의 명사입니다. 그리고 카사스는 문학계의 명사이고 에드윈 엘링은 과학계의 명삽니다. 왜 그들을 죽이는 수법에 차이를 뒀을까요?”

휴고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눈빛을 띠었다.

시빌라는 할 말이 없는지, 입을 다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사이.

휴고는 일언반구도 없이 의자에 앉아 묵묵히 듣기만 하는 런드월과 수잔을 바라보았다.

“뭐, 다른 정보는 없습니까?”

런드월이 휴고를 바라보았다.

“아직 전달받은 정보가 없습니다.”

“수잔.”

휴고가 부르자, 수잔이 런드월을 힐긋거리며 대꾸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예요.”

“흠. 그런가요. CIA라면 혹 다른 중요한 정보를 입수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는데. 아쉽군요.”

휴고의 말이 끝나자마자 하비에가 눈을 번쩍 떴다.

“휴고.”

“네.”

휴고가 돌아보았다.

“뉴욕에 있는 명사들 중 차은성이 노릴 법한 명사들을 추릴 수 있겠나?”

하비에의 물음에, 휴고가 움찔하더니 시빌라를 힐금거렸다.

시빌라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양손을 좌우 바깥으로 젖혔다.

―난 몰라요.

시빌라의 무언에, 휴고가 하비에를 쳐다보며 말했다.

“대상자가 너무 많습니다.”

“랜디 아로자레와 제런 듀런을 기준으로 최대한 추려 봐. 그들 중에 틀림없이 차은성이 죽이려는 타깃이 있을 거야.”

“그렇담, 보다 많은 자료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분석할 넉넉한 시간도 있어야 하고요.”

“빠듯해.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지?”

하비에가 휴고를 보았다.

“최대한 빨리!”

힘주어 말하는 하비에의 모습에, 휴고가 한숨을 길게 쉬었다.

“휴우우우.”

이어 말했다.

“혹시 모르죠.”

“…….”

“일단은 죽은 랜디 아로자레, 제런 듀런의 지인이나 친구 등 깊은 연관이 있는 이들을 집중적으로 추려 보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아 보겠습니다.”

“기왕이면 카사스와 에드윈 엘링도 부탁해. 틀림없이 뉴욕의 명사들 중 두 사람과 관련이 있는 이들이 있을 거야.”

“알겠습니다. 팀장.”

“시빌라.”

하비에가 돌아보았다.

“네, 팀장.”

“지금 당장 뉴욕으로 이동할 준비 해.”

“네.”

시빌라의 대답에, 하비에가 런드월과 수잔을 바라보았다.

“런드월, 수잔.”

“네.”

“네.”

“미시간호를 이용해 캐나다로 차은성이 이동했을 수도 있으니, 두 사람은 그쪽을 조사해 줘.”

하비에의 말에, 런드월과 수잔이 흠칫흠칫했다.

하비에가 두 사람을 따돌리려고 한다. 의도적으로 팀에서 배제하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런드월이 급히 하비에에게 말했다.

“팀장님.”

“만약 차은성이 캐나다에서 국외로 출국해 버린다면 우린 영영 그자를 놓치고 말아. 지금 우리는 이렇다 할 증거가 단 하나도 없다는 점! 잊지 마!”

하비에가 힘주어 말했다.

런드월이 움칫하며 내심 무척 난감해했다.

그러자 수잔이 서둘러 말하고 나섰다.

“팀장님.”

“런드월 혼자서는 무리야. 수잔.”

“하지만…….”

“뉴욕을 유추한 휴고가 틀렸을 경우. 수잔, 런드월. 자네들이 차은성을 뒤쫓을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야.”

“…….”

“휴고의 예상이 틀렸을 경우를 대비하지 않을 수 없어!”

단호한 하비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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