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S의 천재 스파이 (188)
캠프 데이비드
쿠바 관타나모 기지와 같은 곳으로 이송할 경우.
미 해병대가 이송 과정에 개입하기도 한다.
관타나모 기지 자체가 미 해병대 기지이기 때문이다.
* * *
착륙한 헬기에서 내린 차은성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과거 인터넷이나 뉴스 영상을 통해 보았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캠프 데이비드.
차은성은 자신도 모르게 황당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서, 설마…….”
한 사람이 머릿속에서 떠오른다.
현직 미국 대통령 조나단.
겉보기에는 전형적인 백인이지만 인종학적으로 보면 유럽계, 멕시코계, 아일랜드계의 혼혈이다.
코즈모폴리턴이란 말이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리는 이이기도 하다.
당혹감을 이기지 못한 차은성이 뒤돌아보았다.
뒤이어 헬기에서 내리는 월터 부국장.
놀란 차은성의 얼굴을 본 월터 부국장이 말없이 씨익 웃었다.
은근 짓궂다.
―그럴 줄 알았어!
월터 부국장이 무언으로 그렇게 말하며 차은성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 * *
타, 타, 탁.
서너 개의 굵직한 장작이 타들어 가는 벽난로를 배경으로 세 사람이 각기 다른 자세로 앉거나 서 있었다.
조나단 대통령은 푹신한 1인용 가죽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는 오른손에 와인 잔을 쥐었다.
이런저런 말을 하며 조나단 대통령이 간간이 와인을 마셨다.
무척 여유 있는 모습이었다.
월터 부국장은 창가에 서서 밖을 보며 마티니를 마시고 있었다.
조나단 대통령과 차은성의 대화에 방해가 될까 봐.
월터 부국장은 은연중에 없는 사람 행세를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차은성은 조나단 대통령의 오른쪽에 있는 3인용 소파에 앉아 커피를 홀짝였다.
무표정한 모습이었다.
차은성은 내심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월터 부국장이 대통령과 이어져 있을 줄은 정말 몰랐다.
* * *
조나단 대통령이 지그시 차은성을 보았다.
“어떤가?”
차은성이 손에 쥔 커피 잔을 내려놓으며 조나단 대통령을 바라보았다.
“글쎄요. 제가 왜 그래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차은성의 말에 조나단 대통령과 월터 부국장이 찰나 움칫했다.
차은성은 계속 말했다.
“제가 아는 바로는 대통령께서도 AOA 멤버이실 텐데. 왜 제게 AOA 최고위층의 제거를 부탁하시는 겁니까?”
차은성은 의문이란 진한 감정을 드러냈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와 같은 속내를 가감 없이 밝혔다.
조나단 대통령은 말없이 차은성을 바라보았다.
“…….”
수 초의 짧은 시간이 흐르고.
조나단 대통령이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자네 말대로 나도 그들 중 한 사람이긴 하네. 하지만 내가 원해서 그들의 일원이 된 것은 아니라네.”
“…….”
“그리고 내가 명색이 미국 대통령인데. 언제까지 그들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날 수는 없지 않은가?”
조나단 대통령이 은근 분노를 내비쳤다.
의도적인 감정 표출인지.
아니면.
무의식적인 감정 내색인지.
알기 무척 어려웠다.
차은성이 물었다.
“자의로 그들의 멤버가 된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십니까?”
차은성의 물음에 월터 부국장이 뒤돌아보았다.
“대통령께서도 부모라네. 자식을 인질로 위협하면 어쩔 도리가 없지. 그나마 지금까지 대통령께서 은연중에 그들을 견제해 온 덕분에 그들이 적극적으로 활동하지 못했네.”
“…….”
“대통령께서 견제하시지 않았다면.”
“…….”
“그들은 지금 아주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었을 거네.”
“…….”
“물론 그 때문에 힘들어하고 다치는 이들이나 나라가 많을 테고.”
월터 부국장은 차은성에게 말하며 은근슬쩍 조나단 대통령의 손을 들어 주었다.
한편!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알 수 있다.
차은성은 월터 부국장을 돌아보았다.
“왜 하필이면 접니까? 다른 이도 있을 텐데요.”
차은성의 물음에 조나단 대통령이 말했다.
“간단하네.”
차은성은 조나단 대통령을 돌아보았다.
“나와 접점이나 연결 고리가 없고 나와 연관 짓기도 어려우며, 그들에 대한 강한 적의를 가지고 있고, 그들을 과감하고 단호하게 제거해 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
“…….”
“의외로 그런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네.”
조나단 대통령이 AOA를 꺼리고 두려워하는 것 같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노출되는 것을 극구 피하려는 눈치다.
차은성은 그 점이 껄끄러웠다.
아닌 말로, 월터 부국장이나 조나단 대통령에게 뒤통수를 맞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지 않은가?
차은성은 자신이 토사구팽을 당할지도 모르는 상황을 은연중에 염두에 두었다.
―세상에 믿을 놈 없다!
자신이 속한 세계에서는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다.
자신 외에 그 누구도 믿어서는 안 된다.
차은성은 정보 요원으로서 첩보라는 세계의 생리를 십분 감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마음속으로다. 일절 겉으로 그와 같은 속내를 밝히지도 드러내지도 않았다.
그사이.
조나단 대통령이 말했다.
“무릇 조직이란 머리만 제거하면 힘을 쓰지 못하는 법이라네.”
“…….”
“백수의 왕 사자도 머리가 잘리면 죽을 수밖에 없고, 하이에나들의 먹잇감으로 전락하고 말지.”
“대통령님께서 방금 전에…… 제가 AOA 최고위층을 제거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월터 부국장님을 통해 지원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확인하려는 차은성이었다.
조나단 대통령이 거침없이 대꾸했다.
“물론이네. 무엇이건 말만 하게. 내가 지원해 줄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이 무엇이 되었건 모두 다 지원해 주겠네.”
의외다.
너무 선선하게 말하는 것이 의심스럽다.
차은성은 미심쩍은 목소리로 물었다.
“혹…….”
“…….”
“제가 그 최고위층의 이들을 모두 죽여 없애면!”
“…….”
“이후, 대통령께서 조직을…….”
차은성은 조나단 대통령이 AOA를 장악할 생각이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그 의심을 감추지 않고 입에 올리며 차은성은 조나단 대통령과 월터 부국장의 반응을 살폈다.
한편.
차은성의 물음에 월터 부국장과 조나단 대통령이 거의 동시에 몸을 흠칫거렸다.
예기치 않게 의표를 찔린 듯한 반응이었다.
조나단 대통령과 월터 부국장은 무의식적으로 뜻밖이라는 속내를 내비쳤다.
조나단 대통령과 월터 부국장의 반응과 모습에, 조건반사라는 말이 절로 생각나는 차은성이었다.
느낌일 뿐이지만.
어째 딱 맞아떨어지는 것 같아 무시하기 힘들었다.
그러는 동안.
조나단 대통령이 가만히 차은성을 바라보더니 천천히 미소를 지었다.
씨이익.
느긋함을 물씬 풍기는 모습이었다.
“솔직히 그런 생각을 안 해 본 것은 아니네.”
조나단 대통령이 의외로 선선히 인정했다. 그 때문에 차은성이 도리어 흠칫거리며 당혹스러운 작은 눈빛을 띠었다.
“그들을 모두 흡수할 수 있다면!”
조나단 대통령이 눈을 반짝이며 은근 들뜬 속내를 드러냈다.
과감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만만한 것인지.
조나단 대통령의 속내를 알기 어려웠다.
그 때문에 차은성은 무표정한 얼굴과 무심한 눈으로 조나단 대통령을 바라보았다.
조나단 대통령이 말했다.
“조직을 효과적으로 통제 및 제어할 수 있을 것이네.”
“…….”
“통제 및 제어할 수 없는 힘의 폭주는 왕왕 국가적 위기를 불러오는 법이지.”
“…….”
“결국에는 수많은 이들에게 재앙으로 다가온다고 나는 생각하네.”
조나단 대통령은 AOA를 흡수하여 자신의 통제하에 두려는 것 같다.
차은성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
입을 꾹 다물고 침묵했다.
월터 부국장이 그런 차은성을 은근히 지켜보고 있었다.
조나단 대통령은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거리낌 없이 말을 이었다.
“그러니 그런 힘을 적절하게 통제 및 제어하여야 한다고 난 생각하네. 핵무기처럼 말이야.”
조나단 대통령은 스스럼없이 권력을 입에 올렸다.
방금 전에 조나단 대통령이 말한 힘! 그리고 핵무기!
그것은 권력을 의미한다.
남이 가지지 못한, 자신만이 가진 무소불위의 막강한 파워!
차은성은 내심 불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권력 추종형 인간!’
보기에 조나단 대통령은 권력을 추종하는 듯하다.
그의 자식이 AOA에 인질로 잡혀 있다는 말을 믿기 어렵다.
자식이 AOA에 인질이 되어 있다는 말이 진짜라면, 조나단 대통령이 AOA의 멤버가 된 것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세상 모든 부모에게 있어 늘 최우선하는 것은 자식일 수밖에 없으니깐 말이다.
만약.
조나단 대통령의 아들이 마약중독자라고 가정할 경우.
AOA가 아들이 마약중독자라는 것을 공개.
조나단 대통령의 정치생명을 끊어 놓겠다고 협박했다면.
조나단 대통령으로서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일단.
아들이 당할 것이고. 그 역시 정치생명이 끝날 테니깐 말이다.
‘어쩌면 그런 상황이거나 그와 유사한 상황이라서…… AOA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정치생명과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
‘자신의 치부라고 할 수 있는 모종의 비밀을 알고 있는 AOA 최고위층의 이들을 모두 죽여 없애려는 걸 수도 있지만!’
차은성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경계했다.
조나단 대통령이 권력을 추종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자식은 핑계일 뿐이고, 실제로는 AOA를 장악. 자신의 힘으로 만들려는 것은 아닌지.
차은성은 마음 한구석으로 조나단 대통령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해. 자칫 잘못하면 조나단 대통령에게 이용만 당하다가 마지막에 가서는 뒤통수를 맞고 내가 죽을 수도 있으니까.’
차은성은 내심 경계심을 북돋우며 가만히 조나단 대통령을 바라보았다.
“미스터 프레지던트.”
차은성이 조나단 대통령을 호칭하자, 조나단 대통령과 월터 부국장이 차은성을 바라보았다.
“동양 속담에.”
“…….”
“사냥을 할 때에는 사냥개가 필요하지만, 사냥이 끝난 후에는 더 이상 사냥개가 필요 없어져 삶아 먹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달리 토사구팽이라고 하죠.”
“…….”
“대통령님 말씀처럼 제가 그들 최고위층을 모두 죽여 없앴다고 가정을 했을 때.”
차은성은 자신이 배신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과 대가를 요구했다.
“……뒤통수를 맞고 살해당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배신하지 않는다는 보장을 해 주셨으면 합니다.”
“흠. 신변 안전을 보장해 달라는 말이로군. 맞나?”
“네,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제거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대통령께서도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
“제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입니다. 그러니 적절한 보상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차은성의 말에, 조나단 대통령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씨이익.
그는 알겠다고 무언으로 말하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슬쩍 월터 부국장을 흘낏거렸다.
무언으로 의견을 묻는 조나단 대통령이었다.
월터 부국장은 그새 눈가를 흠칫하더니 차은성을 돌아보았다.
1, 2초 동안 말없이 차은성을 본 월터 부국장이 조나단 대통령을 돌아보았다.
끄덕끄덕.
월터 부국장의 무언의 동의에 조나단 대통령이 차은성을 바라보았다.
그동안.
차은성은 잔을 들고 커피를 몇 모금 마시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