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NIS의 천재 스파이 (176)화 (176/208)

NIS의 천재 스파이 (176)

좌중은 고요했다.

던컨과 FBI 요원들은 굳은 얼굴로 입을 다문 채 로베르토의 설명을 경청했다.

시간이 꽤 흘렀다.

로베르토의 브리핑이 끝나자 던컨이 물었다.

“그런데 돈 파블리코 사건과 차은성이 무슨 관계지?”

던컨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으로 로베르토를 보았다.

좌우에 앉은 FBI 요원들 역시 의아한 눈으로 로베르토를 바라보았다.

로베르토가 던컨을 바라보며 말했다.

“JK. 시먼스 국장이 CIA 전속 살인 청부업자인 마담 화이트에게 의뢰하여 차은성의 이전 팀원들을…… 그런데 라스베이거스 공항에서 미구엘이라는 살인 청부업자가…….”

“…….”

“조사 결과…… 산토스라는 중개자가 미구엘에게 차은성에 대한 의뢰를 한 듯한 정황이 있습니다. ……당시 공항 내에서 차은성과 미구엘이 동일 공간에 있는 동영상이…… 미구엘이 차은성을 미행 중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미구엘의 시체가 발견된 것으로 미루어 보아 차은성에게 당한 것이 아닐까 짐작됩니다.”

로베르토가 CIA에게 건네받은 정보를 언급하자 던컨의 눈이 반짝였다.

“가만, 가만.”

던컨이 두어 번 눈을 깜빡이더니 제법 날카로운 눈빛을 띠었다.

“혹시 산토스가 마담 화이트처럼 돈 파블리코의 전속 의뢰를 처리하는 역할을 했다면?”

던컨의 물음에 로베르토가 망설임 없이 즉각 대답했다.

“네. CIA도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돈 파블리코가 예전에 산토스를 통해 살인 청부업자를 고용하여…… CIA의 조사 결과, 비밀리에 몇몇 일을 처리한 적이 있던 것 같습니다. 그 때문에 CIA가 돈 파블리코 사건의 주요 용의자로 차은성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던컨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퍼즐이 맞춰지는 것 같군. 그러니깐 돈 파블리코가 산토스에게 의뢰를 하였고. 산토스는 그 의뢰를 미구엘에게 넘겨 차은성을 없애려고 했다가 역으로 당했군.”

던컨이 중얼거리듯 말하며 은근 화를 내비쳤다.

CIA.

의외로 FBI보다 상당한 조사의 진척을 보였다. 달리 세계 최고의 정보기관이 아니다.

그런데도 FBI에 일절 관련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 차은성에 관한 통보나 주의도 없었다.

그레이엄이 아니었다면 FBI는 CIA에게 뒤통수를 맞았을지도 모른다.

던컨은 그 점이 매우 불쾌했다.

CIA가 FBI를 물 먹이려고 작정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만저만 서운한 것이 아니다.

던컨은 그런 속내를 꾹 눌러 참으며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다.

한편.

로베르토가 던컨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 차은성이 이번에 LA 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한 목적이 돈 파블리코의 제거였다면 돈 파블리코가 죽은 다음 출국했어야 합니다.”

“…….”

“하지만 돈 파블리코의 사후에도 차은성의 출국 관련 기록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즉, 아직 저희 미국 내에 차은성이 있다는 말이 됩니다.”

“…….”

“현재 미국 내의 어딘가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만에 하나 돈 파블리코 외에 다른 목적이 더 있다면?”

로베르토의 말에 던컨이 순간 눈빛을 반짝였다.

“또 사람을 죽일 수도 있겠군.”

“네. CIA도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로베르토가 산토스의 집 가스 폭발과 현장에서 수거한 몇몇 소총탄을 언급했다.

“저희 FBI CSI 팀의 분석으로는 M24 저격 소총과 HK416 소총의 탄환으로 판명이 났습니다.”

“저격 소총과 제식 소총의 탄환이라고?”

던컨이 당혹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네. 그리고 돈 파블리코가 죽은 당일, 할리우드 거리에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할리우드 단역배우 조합장 얀톤이 식사 중에 저격을 당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

“해당 사건에서 수거한 탄환 역시 M24 저격 소총에서 발사된 것으로 확인이 되었습니다.”

“…….”

“산토스와 얀톤. 양쪽에서 나온 탄환이 모두 동일 소총에서 사용되었다는, CSI 팀의 분석 결과를 감안할 때.”

“…….”

“차은성이 얀톤을 저격한 것으로 의심이 됩니다. 하지만 저격한 이유가 현재로서는 불명확합니다.”

로베르토가 넌지시 의혹이란 감정을 내보였다.

로베르토의 말에 던컨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럼 뭐야? 그 차은성인가 뭔가 하는 전직 한국 요원이 어쩌면 다시 또 저격으로 우리 미국인을 더 죽이려고 할지도 모른다는 거잖아?”

던컨이 언성을 높였다.

로베르토가 던컨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 때문에 최대한 빨리 차은성의 신병을 확보해야 합니다. 하지만 현재 차은성의 행방이 묘연합니다. 어디에 있는지 전혀 파악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

“혹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서 누군가를 저격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로베르토의 말에 던컨의 얼굴이 딱딱해졌다.

연쇄살인마!

절로 그 생각이 난다.

고도의 전문화된 교육 과정과 훈련을 받은 타국 정보 요원이다.

살아 움직이는 살인 병기나 마찬가지다. 지금 제 맘대로 미국인을 마구 죽이려 한다.

이후.

상상하기도 끔찍한 상황이 전개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 전에 차은성이 잡힌다면 다행이지만. 현재 상황으로 봐서는 차은성을 잡기란 매우 어려울 것 같다.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잡을 것이 아닌가?

그리고 타국 정보 요원이 쉽게 찾아내어 잡을 수 있는 이들이라면 굳이 방첩 전문 분야나 부처가 있을 필요가 없다.

그만큼 어렵고도 어렵기에 방첩 분야나 부처가 있는 것이고, 관련 최고의 전문가가 해당 분야와 부처에 상주하는 것이다.

던컨이 생각하는 동안 로베르토가 말했다.

“차은성이 산토스와 돈 파블리코를 죽인 것은 미구엘이라는 나름 이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얀톤의 경우. 살인 이유가 불분명합니다. 왜? 무엇 때문에? 돈 파블리코를 죽이고 곧바로 이동. 얀톤을 저격한 이유가 무엇인지 서둘러 알아내야 합니다.”

로베르토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세상에 이유 없는 살인이란 없습니다.”

“…….”

“살인이란 행위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로베르토가 힘주어 말했다.

“차은성이 얀톤을 죽인 이유!”

“…….”

“그 이유를 알아내야 차은성이 미국 내에서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알아야 차은성이 현재 미국 어디쯤에 있는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유추할 수 있습니다.”

“…….”

“지금으로서는 차은성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차은성이 여태까지 출국하지 않고 미국 내에 머무는 이유가 뭔지, 필히 알아내야 합니다.”

로베르토가 말하며 의문이란 감정을 내비쳤다.

테이블 양쪽에 앉아 있는 FBI 요원들이 사뭇 긴장한 표정을 지으며 매우 진지한 눈빛을 띠었다.

다들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들이다.

그런 이유로 자신들의 목표이자 상대가 한국 NIS의 팀장급 요원인 차은성이라는 것에 은연중에 승부욕을 느끼고 있었다.

타국 정보 요원을 상대함에 있어.

자만이나 방심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어떤 희생과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그들 모두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그 때문에 십분 주의하면서 은근 기쁨이라고나 할까?

사냥꾼이 간만에 승부욕을 강하게 자극하는 사냥감을 발견. 뒤를 쫓으며 자신이 압도적이고 우월한 존재하는 것을 느끼는 것처럼.

회의실에 앉아 있는 FBI 요원들은 상황을 은근 사냥 게임처럼 생각하며 받아들였다.

―세계 최고의 정보기관이 CIA라면, 세계 최고의 수사기관은 바로 우리 FBI다. 그런 우리 FBI가 차은성을 못 잡을 리 없다.

다들 내심 그렇게 생각했다. 방심이고 자만이다.

CIA로부터 정보를 제공받아 사건의 대략적인 윤곽을 파악한 FBI다.

하지만 CIA는 차은성에 관한 별도의 고급 정보를 제공하진 않았다.

던컨, 로베르토는 CIA가 가진 차은성에 관한 모든 정보를 넘겨주었다고 생각하겠지만.

정보 조직이자 기관인 CIA가 그리 녹록하지 않다. 항상 이중성과 양면성을 띤다.

―외부에 유출되거나 타 정보기관, 정보 부처에 건네줘도 아무 상관이 없는 정보.

―극비리에 보관하며 오직 CIA만이 알고 있어야 하는 독점적인 고급 정보.

CIA의 그런 속성을 알 수 있는 이나 이들은 동일한 세계라고 할 수 있는 정보 계통에 속한 자들밖에 없다.

FBI가 그런 속성을 알아채고 CIA에 해당 고급 정보를 달라고 하더라도 CIA는 아마 그런 정보가 없다고 딱 잡아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정보기관의 속성이니깐 말이다.

미 서부 지역을 총괄하는 FBI 최고 책임자 던컨 허슬러.

그는 사건의 윤곽을 잡고 차은성을 용의자로 특정 지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그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회의가 끝나고 3시간쯤 지났을까?

미 서부 전역을 대상으로 FBI가 테러 주의보를 내렸다.

―테러를 자행할 수 있는 용의자가 서부 지역에 있다!

그러니 다들 조심해라!

그와 같이 경고했다.

해당 테러 경보에 미 서부 지역의 경찰들이 즉각 비상령을 내리고 검문검색을 강화하는 한편.

주요 건물이나 시설의 경비 단계를 상향 조정했다. 그리고 경비 태세를 한층 강화했다.

차은성이 이미 미 서부를 벗어난 것을 그들은 까맣게 몰랐다. 또한 미처 생각하지도 못했다.

던컨을 위시하여 미 서부 지역의 FBI는 워싱턴 DC에 있는 FBI 본부에 차은성 관련 사건을 보고하는 한편.

미 서부 지역을 샅샅이 훑어, 어딘가에 숨어 있을 차은성을 찾아내려 했다.

하지만 이미 미 서부에서 벗어난 차은성이 그들의 이목에 잡힐 리가 없었다. 결국 차일피일 시일만 잡아먹으며 이렇다 할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반면.

보고를 받은 워싱턴 DC의 FBI 본부는 무슨 폭풍을 만나기라도 한 듯, 간부들이 연일 긴급회의를 거듭했다.

*    *    *

차은성이 마크트웨인 주립공원을 내려왔을 때다.

관광 레저용으로 대여해 주는 말을 돌려주고 주차장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주차해 둔 포드 중고 RV.

지난 며칠 동안 계속 세워 두었다. 그 때문에 사람의 손길이 닿았는지, 그 여부를 확인해 보았다.

다행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았다.

차은성은 내심 안심하며 차 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았다.

부릉.

시동을 걸며 주변을 살폈다.

랄프.

약을 끊은 후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 그 때문에 순간적인 충동을 참지 못하고 식당에서 그만 랄프를 사살하고 말았다.

틀림없이 브라운이 카운티 보안관 사무실에 신고했을 것이다.

필히 카운티 보안관 사무실에 비상이 걸렸을 것이고, 주변 주요 도로에서 보안관 사무실 소속의 이들이 검문검색을 하였을 것이다.

그동안 마크트웨인 주립공원 내에 있었으니, 카운티 보안관 사무실에서 자신을 찾지 못한 것이다.

차량 역시 교체했으니, 카운티 보안관 사무실에서 알 리 없다.

하지만 만에 하나를 모른다.

그런 이유로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 항시 긴장하고 주의해야 한다. 추호도 방심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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