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S의 천재 스파이 (174)
예의 파라벨럼 탄이 연이어 JK. 시먼스의 두 다리에 깊이 박혔다.
그러자 핏방울이 튀고 고통이 JK. 시먼스를 덮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JK. 시먼스는 악착같이 도망치려 했다.
“끄으으…….”
양손으로 바닥을 짚으며 몸을 앞으로 밀어냈다. 얼핏 포복이 생각나는 모습이었다.
다시.
타…… 타아앙.
총성이 울리고.
“아아악!”
JK. 시먼스가 어김없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파라벨럼 탄이 이번에는 그의 양 팔뚝에 박혔다.
미상의 적이 시먼스가 도망치지 못하게 그의 팔다리에 총탄을 박아 넣었음을 모를 수 없다.
* * *
잠시 뒤.
“으으…….”
고통이 밴 신음을 흘리는, 바닥에 엎어진 JK. 시먼스.
그의 눈에 군화와 유사한 등산화가 보였다. 가죽으로 만들어 보기에 무척 질기고 튼튼해 보이는 등산화다.
“흐으으…….”
JK. 시먼스가 재차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며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찰나.
JK. 시먼스는 기겁할 듯 크게 놀랐다.
“허어억!”
그 바람에 잠깐 고통을 잊었다.
눈에 보이는 차은성.
일전에 죽이려 하였다. 그러니 차은성의 얼굴을 모를 리 없다.
서 있는 차은성.
오른쪽 어깨에 HK416 소총을 척 걸치고, 등에 M24 저격 소총을 비스듬히 멨다.
씨이익.
차은성이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시먼스를 내려다보았다.
“초면이긴 하지만 우린 서로 잘 아는 사이죠. 안 그렇습니까? JK. 시먼스 부국장님.”
차은성이 조롱조로 말했다.
사진을 통해 보고 또 본 JK. 시먼스의 얼굴을 절대 잊을 수 없다.
JK. 시먼스는 힘없이 고개를 숙였다.
“죽여!”
삶을 포기하였음을 모를 수 없는 JK. 시먼스다.
“그럴 수야 있나요?”
차은성의 말에 고개 숙인 시먼스가 움칫했다.
“당신에게서 알아낼 것이 하나둘이 아닌데 말입니다.”
차은성이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JK. 시먼스는 눈을 질끈 감았다.
‘What The Hell!’
마음속으로 매우 거칠게 욕했다.
속한 조직 AOA로부터 사실상 버림받았다. 조직은 최악의 상황에서 자신을 죽임으로써 조직의 안전을 도모했다.
그런 조직에게 계속 충성을 바칠 이유가 없다. 그리고 지금 차은성이 자신의 목숨을 손아귀에 쥐었다.
AOA에 충성을 바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린다?
AOA가 자신을 죽이려고만 하지 않았어도 그럴 수 있다.
하지만 AOA에게 버림받았다. 살고자 한다면 차은성에게 협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잘만 하면 차은성을 이용해 AOA에 적잖은 손실과 피해를 입힐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동료들의 죽음에 자신에게 깊은 원한을 가진 차은성이다.
자신을 살려 줄 마음이 들도록, 살고자 한다면 부득불 차은성에게 협조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자 처지다.
달리 다른 방법이 없다.
자신이 협조하지 않으면 아마 차은성은 주저 없이 자신을 죽일 것이다.
* * *
수여 초 후.
JK. 시먼스는 땅에 드러누웠다.
팔다리를 늘어뜨리고 멀거니 어두운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총총히 떠 있는 밤하늘의 별들.
차은성은 시먼스의 왼쪽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며 물었다.
이전 팀원들.
노태준, 황민준, 김아름, 우형광은 마담 화이트에게 죽였다.
“그때 왜 나를 죽이지 않았지?”
“죽이라고 했었지. 그런데 그때 네가 늦게 입국하는 바람에 마담 화이트가 미처 널 죽일 기회를 잡지 못했어. 빌어먹을 년. 그때 널 죽여 없앴어야 했는데.”
시먼스가 진한 후회의 감정을 보란 듯이 드러냈다.
“그렇게 된 거군.”
차은성은 당시 자신이 운이 좋았음을 알게 되었다.
조금만 빨리 입국했다면 어쩌면 자신도 마담 화이트에게 당했을지 모른다. 팀장으로서 자신보다 먼저 팀원들을 귀국시켰다.
그것이 팀원들을 죽음으로 내몬 것 같아 차은성은 마음이 매우 무거웠다.
가만히 JK. 시먼스를 바라보며 그를 죽이고 싶은 살의를 필사적으로 참았다. 아직 JK. 시먼스에게 묻고 싶은 것이 많았다.
“이고르.”
차은성의 말에 JK. 시먼스가 움찔했다.
“너희 멤번가?”
“훗.”
JK. 시먼스가 실소했다.
“맞아. 우리 멤버야.”
“이고르가 체첸 반군에게 구소련군이 보유하고 있던 전략물자들을 대거 넘긴 이유가 뭐지?”
“간단해. 체첸 반군과 러시아 사이에 다시 전쟁을 붙여 러시아의 군사력과 경제력을 약화시키기 위해서야.”
“미쳤군!”
차은성이 어이없다는 투로 말했다.
전쟁이라니. 얼마나 많은 사람이 피해를 볼지 모르는데.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불필요한 전쟁을 야기하려 하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한편.
JK. 시먼스가 누운 몸을 들썩이며 웃기 시작했다.
“크크크큭.”
총상을 입은 팔다리에서 계속 출혈이 이어지고 있다. 그 때문에 JK. 시먼스는 상당히 어지러웠고 의식이 무척 흐릿했다.
대량 출혈의 후유증이었다.
차은성은 세르게이가 이고르를 죽이려는 것을 막았었다.
그때.
임무 수행 전에 세르게이가 자신에게 한 말 때문에 이고르를 죽이는 것을 반대했다.
이고르가 체첸 반군에게 구소련군이 보유하고 있던, 소련 연방이 해체되며 잃어버린 전략무기. 즉, 전략물자를 상당수 건넸다.
이고르가 체첸 반군에게 어떤 무기를 얼마나 넘겼는지 파악되지 않아, 이고르를 살려 두고 관련 정보를 알아낼 필요가 있다.
그때 그렇게 판단했다.
그 때문에, 감정이 격해진 세르게이가 이고르를 죽이려는 것을 말렸다.
해당 전략물자로 체첸 반군이 무장할 경우.
그들이 러시아를 상대로 다시 전쟁을 일으킬 소지가 다분했었다.
세르게이에게 그 점을 주지시키며 이고르를 살려 주라고 말했었다.
자신이 타이완으로 가기 전 들른 모스크바에서 세르게이가 말해 주었다. 이고르가 AOA와 접촉한 정황이 있다고.
차은성은 그것을 잊지 않고 염두에 두고 있었고, 방금 전 JK. 시먼스에게 물어보았다.
의외로 JK. 시먼스가 선선히 말해 주어 전후 정황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차은성이 JK. 시먼스에게 다시 물었다.
“브뤼셀에서…… 우리 NIS의 3팀 요원들을 모두 다 죽일 필요는 없었지 않나?”
JK. 시먼스가 힘없이 대꾸했다.
“당시에는 마음이 너무 급했어. 너희 NIS 요원이 빼돌린 것을 무슨 일이 있더라도 급히 회수해야만 했었다. 그리고 관련된 자들을 모두 죽여 그 입을 영구히 막아 비밀을 지켜야 했었어. 그 때문에 내가 마음이 너무 급했고. 그 바람에 무리수라는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런 조치를 취했다. 큭큭.”
JK. 시먼스가 웃었다.
차은성은 눈을 부릅뜨며 JK. 시먼스를 죽일 듯 노려보았다.
“영국으로 보내던 것이 뭐였지?”
“알고 싶나?”
“대답 여부에 따라서는 살려 줄 수도 있어.”
“거짓말 같긴 하지만…….”
“당신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 그리고 당신 목숨은 내가 아닌 당신의 협조 여부에 달려 있다는 것을 명심해.”
“흣. 틀린 말은 아니군.”
“다시 묻지. 영국으로 보내던 것이 뭐였지?”
“새로운 세계 질서!”
“응?”
JK. 시먼스의 대답에 차은성은 일순 어리둥절했다.
“우리 미국은 비정상적으로 군사력이 증강되어…… 상대적으로 경제력이 너무 약화되어 있어.”
“…….”
“이대로는 국가 미래 비전이 없지. 그 때문에 AOA는…….”
“…….”
“미국을 중심으로 새로운 세계 질서라는 체계를 세우고 전 세계를 경영하기 위한 세부 지침 및 향후 계획을 수록한 세계 경영전략 보고서라는 것을 만들었지.”
“그걸 왜 영국으로 보낸 거지?”
“영국에도 우리 멤버들이 있으니깐.”
“대단하군. 조직망이 엄청 글로벌해.”
“AOA는 세계를 관장하는 체계이고 질서이며 힘이자 세력이다.”
“좋아. 이번에는 당신이 알고 있는 AOA에 관해 말해 봐.”
“흣.”
JK. 시먼스가 비웃듯이 소리 없이 웃더니 천천히 말했다.
“알면 기겁할 텐데.”
“난 그렇게 소심한 사람이 아니야.”
“하긴. 날 찾아 죽이려고 여기까지 온 것을 보면 너도 평범한 놈은 아니지.”
이미 포기한 걸까?
아님.
마음을 내려놓은 걸까?
JK. 시먼스가 말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의 시작은 미국 독립 전쟁이었어. 당시 토머스 제퍼슨, 벤저민 프랭클린, 존 애덤스…… 열세 개 주 대표들이 필라델피아에서 모여 대륙 회의를 하며 미국 독립선언서를 만장일치로 채택한 이래, 미국 정치, 경제, 사회 등 국가 전반에 있어 언제부터인가 특정 몇몇 명문 가문이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었다.”
“오버 더 톱?”
차은성의 말에 JK. 시먼스가 눈웃음쳤다.
“맞아. 그들이야.”
“흠. 계속해.”
“흥.”
JK. 시먼스가 코웃음을 치더니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해당 가문들은 아직도 미국의 국가 전반에 걸쳐…….”
시먼스의 말이 이어지는 내내 차은성의 얼굴은 침중하게 굳어져 펴지지 않았다.
케네디 가문, 부시 가문, 미국 2대 대통령 존 애덤스와 6대 대통령 존 퀸시 애덤스를 배출한 애덤스 가문 등등.
미국 동부를 중심으로 각 명문 가문이 미국 정가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그들의 행보와 영향력은 단 한 번도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고 철저히 감춰졌다.
모든 언론 매체를 그들이 장악하고 있다는 반증에 다름 아니다.
“소련 연방이 해체되고 비대해진 군사력과 약화된 경제력으로 미국의 미래는 암울하기만 했었지.”
“…….”
“결국 보다 못한 그들이…… 미국 상층부와 각계각층의 저명인사들을 적극적으로 영입, 포섭하여 ‘Government Of Government’라는…… 아메리카 오브 아메리카로 불리는 AOA는 흔히들 그림자 정부라고 말하는 조직의 하부 조직일 뿐이야.”
JK. 시먼스가 말하며 은근 조롱의 낯빛을 띠었다.
차은성은 큰 충격에 뭐라 말하지 못했다. 멍한 표정과 눈으로 하염없이 JK. 시먼스를 바라보았다.
“……세계 질서를 재구축하는 과정에서 미국을 위협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가진 국가의 경제력을 약화시킴으로써 미국의 경제력의 강화를 꾀하고.”
“…….”
“바야흐로 세계는 군사력이 아닌 경제력이 국가의 국력을 좌우하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에 AOA는…….”
이어지는 JK. 시먼스의 말에 차은성의 다문 입술 사이에서 나직한 작은 침음이 배어 나왔다.
“음…….”
그림자 정부라는 말이 오래전부터 음모론자들이나 말하기를 좋아하는 가십거리를 찾는 이들 사이에서 나돈 적이 있다.
그저 그들의 몽상과 상상이 빚어낸 조직인 줄 알았는데. 설마 실존하는 조직일 줄이야.
AOA의 계획에 따라 미국 경제를 위협할 가능성이 있는 국가의 경제력을 약화시키면 필히 전 세계적인 경제파동이 일어난다.
세계적인 경제 위기를 AOA가 획책하고 있을 줄은 상상도 해 보지 않았다.
AOA는 자국 미국을 군사, 경제 양 방면에 있어 유일무이한 세계 최강대국으로 만들려고 한다.
다른 나라야 죽든 말든 아무 상관이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아 차은성은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