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NIS의 천재 스파이 (167)화 (167/208)

NIS의 천재 스파이 (167)

그의 보디가드들을 차은성이 모두 다 사살하였음을.

그런 차은성이 각종 보안 장치나 시설을 가만히 놔두었을 리 없다. 틀림없이 다 부숴 버렸을 것이다.

‘어, 어쩌면…….’

산토스는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앞에 죽음의 신이 보낸 사자가 앉아 있음을.

싸늘하다!

하얀 김이 풍기는 저온의 냉기처럼.

차은성은 지독히도 차가웠다.

무엇보다도 차은성의 눈동자가 무심하고 무정하다. 흔들림이나 동요와 같은 것은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가 없다.

그리고 쳐다보는 눈빛이 흔들림이 없다. 은근 지겹다는 감정을 풍긴다.

‘사, 사람을 죽여 본 자의 눈이야. 그것도 밥 먹듯이!’

산토스는 차은성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챘다. 살인을 청부하는 의뢰자와 의뢰를 실행에 옮기는 살인 청부업자를 연결해 주는 중개자로 그간 살아왔다.

그런 그가 차은성이 사람을 죽여 본 적이 있는 사람인지 없는 사람인지 알아보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한두 명이 아닌 다수의 사람을 죽인 이력과 경험이 있는 듯한 차은성.

산토스는 차은성이 진짜 자신을 죽일 작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속한 세계의 룰을 깨고서는 더 이상 중개자로 살아갈 수 없다. 굳이 룰이 아니더라도 의뢰한 자가 만약 자신이 그를 발설했다는 것을 알면 100% 죽이려고 할 것이다.

산토스는 갈등의 눈빛을 띠었다.

‘빌어먹을!’

완전 궁지에 몰렸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다. 산토스가 생각하는 동안, 차은성이 천천히 물었다.

“의뢰자?”

“…….”

“훗. 죽고 싶다면야.”

차은성이 글록으로 산토스의 이마를 겨눴다. 막 방아쇠를 당기려고 하는데.

“도…… 돈 파블리코! ……파블리코!”

산토스가 발작하듯이 급히 말했다.

멈칫.

차은성이 글록을 아래로 내리며 눈을 반짝였다.

의외다.

차은성이 서둘러 물었다.

“빅 보스 파블리코?”

“예, 예스!”

산토스가 고개를 연거푸 끄덕였다.

“왜?”

차은성이 물으며 다시 글록으로 산토스를 겨눴다.

“나도 몰라. 그걸 내가 어떻게 알…….”

산토스의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퓻.

총탄이 산토스의 머리를 관통했다. 머리 뒤로 총탄에 이어 핏방울이 몇 튀었다.

고개를 뒤젖히며 사지를 추욱 늘어뜨린 산토스.

즉사!

차은성은 글록을 내리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처음부터 널 살려 둘 생각이 없었어.”

천천히 앉은 의자에서 일어났다.

*    *    *

차은성은 주택을 빠져나오며 손목시계를 보았다.

“훗. 2시간 남았군.”

중얼거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혹 모르는 일이다. 자신을 본 목격자가 있을 수도 있다. 있을 경우 부득불…….

차은성은 주의 깊게 주변을 훑었다. 목격자는 없을 듯싶다. 사람이 전혀 눈에 띄지 않는다.

차은성은 서둘렀다. 주택단지에서 빨리, 멀리 벗어나야 한다. 세팅해 둔 가스 폭발이 2시간쯤 후에 일어날 것이다. 폭발로 산토스의 주택은 전소될 것이고. 그 불길에 모든 것이 잿더미가 될 것이다.

죽은 산토스나 보디가드들의 부검을 통해 그들의 신원이 밝혀질 때쯤이면 자신은 캘리포니아에 아마 없을 것이다.

*    *    *

2시간쯤 후.

쿠아아아앙!

고급 주택단지 외곽에서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폭발로 인한 충격파에 주변에 있는 주택들의 창문이 와장창 깨어졌다. 주차되어 있는 차량들이 요란한 경고음을 마구 울려 댔다.

주택단지에서 몇몇 사람이 무슨 일인지 알고 싶어 밖으로 나왔다.

그들 외에 폭발로 인한 화염이 밤하늘 높이 치솟는 것을 본 몇몇 이가 급히 밖으로 나왔다.

얼마 후.

누군가의 신고를 받은 소방서 차량에 이어 경찰 순찰차들이 밤의 어둠을 깨우는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주택단지에 나타났다.

*    *    *

폐공장으로 돌아온 차은성은 푹 잤다.

그 후.

일어나 씻고 가공식품으로 배를 채운 다음 테이블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LA 교외에 델코이 항공이라고 민간 항공사가 있다.

그들은 항공기, 조종사 대여 및 에어 택시 등의 사업으로 수익을 창출한다. 그런 한편으로 스카이다이빙과 같은 레저 분야에도 진출. 재정 상태가 상당히 건실하다.

차은성은 델코이 항공사의 홈페이지로 들어가 예약을 확인했다. 예약은 변동이 없었다.

차은성은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씨익.

*    *    *

수여 초 후.

차은성은 외장 하드와 노트북을 연결. 돈 파블리코에 관한 일련의 정보를 훑었다.

LA 도심 비토리오 타워 63층, LA 도심에 있는 고급 주택, 미 서부 지역 모든 마피아 보스들의 보스. 일명 빅 보스에 관해 경찰이 파악한 관련 범죄 이력 및 정보들 등.

차은성은 돈 파블리코에 관한 전반적인 정보를 훑으며 꾸역꾸역 머리에 밀어 넣었다.

*    *    *

이틀 후.

델코이 항공사의 주기장 앞 활주로를 두 사람이 걸어가고 있었다.

LA 다저스 팬인 듯 LA 다저스 야구 모자를 쓰고 손에 보드 판을 쥔 백인.

캐주얼한 복장을 한 동양인.

그리 오래지 않아.

두 사람은 헬기들이 있는 활주로 한편에 이르렀다.

상업용 헬기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자리해 있었다.

야구 모자를 쓴 백인이 그중 가장 오른쪽에 있는 헬기로 다가가 섰다.

“이 헬깁니다. 연료는 충분히 채워 놓았습니다. 적어도 3시간 동안은 비행하는 데 무리가 없을 겁니다. 그리고 정비 또한 신경 써서 해 놓았으니 아무 일 없을 겁니다. 그리고…….”

야구 모자를 쓴 백인은 보드 판을 들어 일일이 체크하기 시작했다. 항공기 면허, 사회보장 번호를 통한 신원 확인, 비행 계획에 따른 관계 당국의 허가, 비행시간 및 경로 등.

야구 모자를 쓴 백인은 동양인에게 꽤 많은 것을 설명하고 확인받았다.

동양인은 말이 없었다.

“…….”

묵묵히 설명을 들은 다음 관련 몇몇 서류에 서명했다.

“이제 타도 되는 겁니까?”

동양인의 물음에 야구 모자를 쓴 백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동양인은 거침이 없었다. 헬기로 다가가 조종석 문을 열고 가리낌 없이 들어가 조종석에 앉았다.

잠시 뒤.

헬기의 로터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로터의 회전 속도가 빨라지자 야구 모자를 쓴 백인이 멀찌감치 뒤로 물러났다.

서서히.

헬기가 상승하기 시작했다.

야구 모자를 쓴 백인은 상승하는 헬기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조종석에 앉은 동양인은 꽤 능숙하게 헬기를 조종했다. 떠오른 헬기는 빠르게 고도를 높이며 오른쪽으로 돌아섰다.

그리고 비스듬히 상승하며 차츰 시야에서 멀어졌다.

야구 모자를 쓴 백인은 가만히 서서 시야에서 멀어지는 헬기를 바라보았다.

“뭐……. 괜찮겠지.”

야구 모자를 쓴 백인이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중얼거리며 돌아섰다. 그리고 저 앞에 있는 사무실을 향해 바삐 걸어가기 시작했다.

*    *    *

수여 분 후.

헬기는 LA 도심으로 진입했다.

치, 치, 치익.

무선으로 LA 공항의 관제탑이 호출했다.

조종석에 앉은 차은성은 통신을 꺼 버렸다. 그리고 비행 코스를 확인했다.

“흠.”

비토리오 타워.

차은성은 목표인 해당 빌딩을 향해 헬기를 몰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LA 도심이 한눈에 들어왔다.

각종 고층 빌딩들이 만들어 내는 스카이라인.

보기에 꽤 장관이었다.

차은성은 목표인 비토리오 타워가 65층의 고층 빌딩인 점을 감안. 해당 층수에 해당하는 빌딩들을 주로 살폈다.

한참 후.

차은성의 눈이 반짝였다.

저 멀리 고층 빌딩들 사이로 우뚝 솟은 한 빌딩이 눈에 들어왔다.

비토리오 타워.

사진으로 본 것과 똑같았다.

차은성은 헬기를 조금 상승시켰다.

돈 파블리코의 사무실이 있는 63층과 헬기를 수평으로 맞추며 속도를 높였다. 그리고 이내 최고 속도로 비토리오 타워 63층으로 접근했다.

돌격하듯이.

*    *    *

큼직한 원목 책상에 앉아 업무를 보던 장년인 돈 파블리코.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어 펜을 든 채 고개를 왼쪽으로 돌렸다.

사무실 왼쪽 벽은 모두 유리였다. 그 때문에 밖이 한눈에 훤히 다 보인다.

엄청난 속도로 다가오며 빠르게 거리를 줄이는 한편, 급격히 동체가 커지는 듯한 상업용 헬기.

“미, 미친!”

돈 파블리코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헬기가 그가 앉아 있는 사무실을 들이받으려는 듯이 무서운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    *    *

눈 깜짝할 사이.

헬기가 유리벽을 들이받았다.

쿠아아아앙.

벽이 산산이 부서지는 듯한 굉음이 울리고 유리가 힘없이 깨어지며 사방팔방으로 파편이 마구 날렸다.

끼기기기기긱.

귀에 엄청 거슬리는 기분 나쁜 소리가 메아리쳤다. 헬기 동체가 사무실 바닥을 긁는 소리였다.

파파파파팟.

헬기 동체와 사무실 바닥 사이에서 크고 작은 불꽃들이 마구 튀었다. 금방이라도 붙이 붙을 것 같은 광경이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불이 붙지 않았다.

의아한 광경이 삽시간에 지나가고.

사무실을 들이받으며 난입한 헬기가 곧장 사무실 출입문으로 미끄러지더니 뭘 어떻게 할 틈도 없이 문을 들이받았다.

콰아아앙.

그러자 천장이 무너지고 비서들의 자지러지는 비명이 몇 들렸다.

“우아아악!”

“꺄아아악!”

천장에서 무너지는 콘크리트 조각과 멈춰 서는 헬기 동체 탓에 사무실은 빌딩과 완전히 단절되었다.

그 때문에 빌딩 내에서 돈 파블리코의 사무실로 그 누구도 들어올 수 없었다.

퍼, 퍼억.

차은성이 열리지 않는 조종석 문을 발로 연거푸 걷어찼다. 그렇게 두어 번 시도하자 문이 힘없이 헬기에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꾸웅.

차은성이 헬기 밖으로 빠져나오며 인상 썼다.

“끙…….”

충돌에 대비하였음에도 충격에서 완전 자유로울 수 없었다. 몸이 뻐근하고 움직임이 여의치 않았다.

차은성은 천천히 걸음을 떼며 어깨를 이리저리 움직여 보았다. 여타의 관절들 역시 움직여 보았다.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

다행히 부상을 입지 않았다.

차은성은 상의 안쪽의 홀스터에서 글록을 꺼냈다. 양손으로 글록을 받쳐 들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런 한편으로 눈을 번득이며, 뭐라도 눈에 띄면 곧바로 방아쇠를 당겨 사살할 작정이었다.

*    *    *

얼마 후.

차은성은 원목 책상으로 접근했다. 그런데 돌연 돈 파블리코가 책상으로 머리를 쏙 내밀더니 총을 겨눴다.

그 모습에 차은성이 흠칫했다.

순간.

타타탕.

정확하게 세 번의 총성이 울렸다.

퍼퍼퍽.

총탄이 차은성의 가슴에 박혔고.

“크흐윽.”

차은성은 잠깐 동안 몸을 비틀거리더니 힘없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러자 돈 파블리코가 천천히 책상 뒤에서 일어나더니 이내 책상을 빠져나왔다.

돈 파블리코는 오른손에 쥔 콜트 자동 권총으로 쓰러진 차은성을 겨누며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미친!”

헬기로 자신의 사무실을 들이받아 버리다니. 이런 말도 안 되는 미친놈을 보았나?

돈 파블리코가 그런 마음을 담은 눈빛을 띠었다. 이윽고 돈 파블리코가 차은성의 머리맡에 이르러 섰다.

찰나.

죽은 줄 알았던 차은성이 돌연 몸을 뒤집으며 글록의 방아쇠를 당겼다.

타, 탕.

연이어진 두 총성.

“아악!”

돈 파블리코는 비명을 지르며 손에서 총을 놓았다. 총은 맥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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