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S의 천재 스파이 (163)
차은성이 그의 총을 빼앗았다. 그리고 주저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퓨퓨퓨퓻.
정확히 그의 심장에 다수의 총탄이 박혔다.
“컥!”
그가 얼굴을 가린 왼팔과 총을 쥐었던 오른손을 내리더니.
풀썩.
화장실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힘없이 바닥에 너부러졌다.
못은 페인트였다.
차은성에게 속아 스스로 자신의 시야를 가린 것이 그의 치명적인 실수였다.
차은성은 무음 권총의 탄창과 약실을 살폈다. 탄환이 없음을 확인하고 죽인 자를 내려다보았다.
피식.
차은성은 소리 없이 웃었다.
* * *
차은성은 죽인 자의 소지품을 확인해 보았다. 폰과 지갑을 포함하여 꽤 많은 것이 나왔다.
차은성은 죽인 자의 옷을 이용해 무음 권총에 남아 있는 자신의 지문을 지웠다.
그리고 서둘러 뒤처리를 한 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세면대로 다가가 섰다.
쏴아아.
차은성은 수도를 틀어 손을 씻은 다음, 왼쪽 벽에 있는 종이 타월을 꺼내 젖은 손을 닦았다.
* * *
화장실을 나온 차은성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천천히 입구로 걸어가며 주변을 살폈다.
‘역시!’
CIA에 관해 생각했다.
세계 최고 정보기관답게 어느새 자신의 지척까지 따라붙었다.
화장실에서 죽은 자.
아무래도 CIA가 고용한 살인 청부업자인 것 같은데.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
그자가 사용하려던 총이 중국 국안부가 타국 정보 요원을 암살하기 위해 개발한 무기라는 것이다.
CIA에 고용된 살인 청부업자가 해당 총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법은 없지만, 신경에 거슬린다.
“음…….”
차은성은 나지막한 신음을 흘리며 계속 입구로 걸어갔다.
* * *
가게 밖 인도로 나온 차은성은 걸어가며 폰을 꺼냈다. 그리고 장샤오츠에게 전화했다.
화장실에 있는 시체의 처리를 장샤오츠에게 부탁하고 폰을 상의에 넣은 다음.
천천히 인도를 걸으며 차은성은 주의 깊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또한 각 점포의 진열창을 보는 척하며 혹 미행이나 감시하는 자들이나 차가 없는지 수여 회 반복 확인했다.
CIA가 따라붙은 것이 확실한 이상, 보다 더 신중해져야 한다.
타이완은 미국의 영향력하에 있다.
국가 존망이 미국 정부에 달려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이유로 미국의 입김이 매우 강하게 작용한다.
차은성은 그 점을 감안하여 자신의 흔적을 지우려 했다.
눈에 보이는 적당한 점포들을 몇 번이나 들락거리며 옷을 바꿨다. 그리고 안경과 모자를 쓰는 등 자신에게 변화를 주었다.
그럼으로써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르는, 눈에 보이지 않는 CIA의 감시에 혼선을 주려 했다.
굳이 사람이 아니더라도.
각종 첨단 감시 장비와 시스템을 통해 얼마든지 자신을 주시 및 감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차은성은 NIS에서 교육받은 대로.
만에 하나의 상황을 염두에 두었다. 최대한 자신의 흔적을 지우는 데 차은성은 만전을 기했다.
* * *
다음 날 아침.
콰앙.
양령이 차은성의 방 문을 매우 거칠게 열어젖혔다.
“차아…….”
그녀는 방으로 들어서며 차은성을 크게 소리쳐 부르려 했다.
그런데…….
없었다.
빈방이었다.
양령이 어리둥절해하는데. 뒤에서 두 심복 중 하나가 급히 뛰어오며 그녀를 소리쳐 불렀다.
“양령 님! 양령 님!”
양령이 뒤돌아서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이지?
양령이 그런 감정을 내색했다.
* * *
타이베이 ××× 메디컬 응급실.
장년의 의사가 정중하게, 누워 있는 양승조의 머리까지 하얀 침대보를 덮어씌웠다.
그리고 돌아서며 안타깝다는 어조로 말했다.
“사망하셨습니다.”
순간.
차은성이 휘청거리며 오른손을 옆으로 뻗었다. 벽을 짚으며 차은성이 몸을 지탱하는 사이.
털퍼덕.
양령이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으며 혼이 빠져나간 듯한 표정을 지었다.
망연자실한 모습이었다.
당우희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그러자 곁에 있던 한 간호사가 재빨리 다가와 당우희를 부축했다.
장년의 의사는 차은성, 양령, 당우희를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
“아무래도 급성 심근경색이 사망 원인인 것 같습니다. 평소 관상동맥 관련 지병이 있으셔서 협심증과 같은…… 조심하시라고 말씀드렸었는데. 그만…….”
장년의 의사.
양승조의 주치의인 장년의 의사는 참담하다는 심정을 온몸으로 내보였다.
* * *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죽음이었다.
양령은 평소 아버지 양승조가 심근경색과 같은 지병이 있었음을 몰랐던 것을 심하게 자책했다.
그녀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대성통곡했다.
돌연 부친을 잃은 자식이 슬퍼하는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당우희는 양령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녀 역시 양승조의 돌연한 죽음에 매우 슬퍼했다.
차은성은 이를 악물고 슬픔을 참았다. 그리고 서둘러 장례를 준비했다.
* * *
이틀 후.
타이베이 도심에 있는 고급 중국 전통 장례식장이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각종 근조 화환이 쉴 새 없이 장례식장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사자방의 조직원들이 장례식장 인근을 빈틈없이 에워쌌다.
조문을 온 사회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바삐 장례식장 내외를 오갔다.
* * *
사흘 후.
차은성은 장례식장 복도 한편에 서 있었다.
그런 차은성을 둘러싼 사자방의 다섯 장로.
육가, 당가, 황가, 금가, 호가.
차은성과 장로들은 심각한 어조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장지는 유일한 가족인 양령 누님이 양용 형님의 묘소 옆으로 하라고…… 중요한 것은 장지가 아니라 차기 방주 자립니다.”
차은성의 말에 다섯 장로는 흠칫흠칫하더니 서로 돌아보기 시작했다.
그들에게서 긴장, 경쟁심, 갈등, 암투와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이 몇 보였다.
차은성은 짐짓 못 본 척했다.
“방주님이 갑작스럽게 별세하시는 바람에 차기 방주에 관한 말씀을 남기시지 못하셨습니다. 그러니 차기 방주는 장로님들이 논의하셔서 결정해 주셨으면 합니다.”
차은성은 차기 방주 선임을 다섯 방주에게 일임했다.
“저는 장례가 끝나는 대로…….”
차은성은 타이완을 떠날 생각임을 밝혔다.
그리고…….
“돌아가신 방주님께 남은 피붙이는 양령 누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장로님들이 양령 누님의 뒤를 잘 살펴 주십시오.”
다섯 장로는 차은성을 바라보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차은성의 말대로 양령의 뒤를 봐 줄 것임을 무언의 고갯짓으로 밝혔다.
“방주님의 개인 재산은 양령 누님이 상속하는 것이…… 형수님이 변호사시니 알아서 잘 처리해 주실 겁니다. 그리고 개인 재산을 제외한 모든 재산은 방으로 귀속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차은성의 말에 장로들은 이의가 없었다.
양승조의 개인 재산의 상속과 개인 재산이 아닌 재산은 모두 사자방에 귀속시키려는 차은성의 조치는 지극히 당연하고 상식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다섯 장로는 무겁고 침중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아꼈다.
그들은 차기 방주 선임에 지대한 관심이 있었지만 그 관심을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무심한 척했다.
* * *
모든 장례가 끝나고 이틀이 지났다.
돌연.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상황이 연거푸 일어났다.
패도맹과 황하회가 손을 잡고 전격적으로 사자방을 급습했다.
사자방의 각 사업장과 영업장에 갑자기 들이쳤다. 동시다발로 일어난 급습에 사자방의 방도들은 우왕좌왕했다.
다들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런 한편으로 패도맹과 황하회에 강한 적개심을 감추지 않았다.
방주인 양승조가 죽고 아직 차기 방주를 결정하지 못했다.
다섯 장로는 차기 방주 선임을 두고 서로 격렬하게 대립과 갈등을 이어 나갔다.
주인을 잃고 분열된 상태의 사자방은 패도맹과 황하회의 급습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일방적으로 밀리며 다들 다섯 장로를 원망하고 규탄했다.
“빨리 차기 방주를 선임해 주셔야 합니다!”
다들 매우 안타까워했다.
타이완 삼합회 3대 조직으로 통하는 사자방, 패도맹, 황하회.
패도맹과 황하회는 사자방 못지않은 규모와 전력을 갖춘 조직이었다.
그런 패도맹과 황하회가 서로 손을 잡았다. 그 연합의 전력은 방주가 설사 있다고 해도 사자방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찼다.
지휘부의 부재, 급습, 내부 분열과 갈등 등.
사자방은 각종 악재로 전력이 매우 약화되어 패도맹과 황하회의 연합 전력에 일패도지하며 일방적으로 계속 밀렸다.
사자방 내에서 이대로 가면 사자방은 끝이라는 강력한 위기감이 대두되었다.
하지만 다섯 장로는 차기 방주를 선임하지 못했다.
당가, 황가, 금가. VS. 육가, 호가.
이렇게 양측으로 갈라져 서로 첨예한 갈등 국면을 이어 나갔다.
매우 답답한 상황이었지만 다섯 장로는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대립과 갈등이라는 내부 분열이 그렇게 지속되었다.
그들 다섯 장로가 함께 힘을 합쳐도 패도맹과 황하회의 연합 전력을 감당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데.
더욱이 급습을 받은 후로 사자방이 연합 전력에 계속 밀리는 상황인데.
전황이 급격히 사자방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는데.
다섯 장로는 합의를 보지 못했다.
상황은 악화 일로였고. 외부에서 전격적인 전력의 유입이나 지원이 없다면.
사자방이 패도맹과 황하회에 먹히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절체절명.
그렇게 말해도 무방한 최악의 상황이었다.
궁지에 몰릴 대로 몰린 사자방!
* * *
타이베이 동쪽에 위치한 지룽 항.
타이완 남부의 가오슝 항구에 이어 두 번째로 규모가 큰 항구는 고즈넉했다.
곧 자정이라 칠흑 같은 어둠이 깔려 있었고 오가는 이도 없었다.
* * *
여객 터미널.
탁 트인 드넓은 공간에 수없이 많은 이들이 서 있었다.
그들의 전면.
두 사람이 서로 마주 보며 악수 중이었다.
홍콩 삼합회를 대표하는 청방 수뇌 류사오칭.
사자방 다섯 장로 중 한 명으로 당우희의 부친인 당중산.
그의 등 뒤.
좌우에 당우희와 당중산의 최측근이자 고문 변호사인 좌종당이 서 있었다.
또한 당가에 속한 사자방의 조직원 수백여 명이 도열해 있었다.
* * *
악수한 손을 놓으며 류샤오칭이 말했다.
“선발대 1만 명입니다.”
류샤오칭이 눈짓으로 뒤에 서 있는 조직원들을 가리켰다.
당중산은 류사오칭의 뒤에 서 있는 조직원들을 바라보았다.
든든하다!
당중산이 은근 그런 감정을 내보였다.
그를 바라보던 류샤오칭이.
씨익.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득의의 눈빛을 띠었다.
“조만간 2만 명이 후속으로 지룽 항에 곧 도착할 겁니다.”
류샤오칭이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한껏 자신감에 찬 모습이었다.
당중산이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방주께 고맙다고 말씀을 전해 주시오.”
“예.”
류샤오칭이 당중산에게 대꾸한 후 현 상황을 물었다.
“한데…….”
그러자 당중산의 낯빛이 흐려졌다.
“좋지 않소. 절벽 끝으로 몰린 상태나 마찬가지요.”
최악이다!
당중산이 현 상황을 감추지 않고 있는 그대로 말하자.
“음…….”
류샤오칭이 나직한 침음을 흘렸다.
예상한 것보다 상황이 더 악화된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워졌다.
당중산이 류샤오칭에게 말했다.
“자아, 여기서 이럴 것이 아니라 장소를 옮겨 차라도 마시면서 더 얘기하도록 합시다.”
“네.”
류샤오칭이 선선히 대꾸하며 뒤돌아보는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