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S의 천재 스파이 (159)
총이 눈에 들어온 이상, 황진동을 봐줄 수 없다. 총은 살상을 전제로 한 무기니깐.
순식간에 차은성이 황진동에게 이르렀다.
황진동은 왼손으로 바라크의 이빨이 박힌 오른손을 잡으며 고통에 신음성을 흘렸다.
“으으…….”
구겨진 황진동의 얼굴 표정이 무언으로 말하고 있었다. 황진동이 지금 어떤 고통을 느끼고 있는지…….
황진동은 차은성이 이른 것을 보고 이를 악물었다.
“개에…….”
황진동은 욕하며 차은성을 공격하려 했지만 차은성이 한발 빨랐다.
차은성은 오른손을 채찍처럼 휘둘렀다.
휘이이이.
오른손 등이 눈 깜짝할 사이에 허공을 스치더니.
퍼억.
눈 깜짝할 사이에 황진동의 얼굴 우측을 때렸다.
차은성의 오른손에 실린 힘이 매우 강한 듯 황진동이 맥없이 왼쪽으로 쓰러졌다.
털퍼덕.
차은성은 서둘러 황진동이 놓친 총을 집어 들며 신속하게 살폈다.
“그라치?”
의외다.
황진동이 최신 러시아 제식 권총을 갖고 있을 줄이야.
―2003년 러시아 연방 정부가 선포 제166호로서, 러시아 육군 제식 권총으로 ‘그라치’라 불리는 권총을 채택했다.
일부 총기 전문가는 그라치 권총을 글록에 필적할 만한 명품으로 꼽는다.
그라치를 허리 뒤춤에 쑤셔 넣으며 차은성이 쓰러진 황진동을 보았다.
“흣.”
차은성은 실소하며 황일천 장로를 생각했다. 아무래도 막내아들 황진동을 끔찍이도 아끼는 모양이다.
“쯧.”
차은성은 살짝 혀를 차며 미간을 찌푸렸다.
황일천 장로와 꽤 인연이 있다. 그 때문에 황일천 장로의 얼굴을 봐 주지 않을 수 없다.
“운이 너무 좋은 놈이군.”
차은성이 중얼거리며 황진동에게 걸어갔다.
타이완에 오며 이렇다 할 무기가 없었는데. 운 좋게 최신 러시아 권총 그라치를 습득했다.
‘혹시 몰라.’
차은성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그라치의 탄창을 생각했다.
―개발 당시에는 17발 탄창이었지만 2004년 18발로 탄창이 업그레이드되었다.
차은성은 그라치 권총의 예비 탄창을 쓰러진 황진동이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 쓰러진 황진동에게 이르자마자 품속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당우희가 지켜보고 있었다.
어이가 없네.
당우희는 그런 감정을 내색했다.
무슨 강도도 아니고. 쓰러진 황진동의 품속을 뒤지다니.
당우희는 차은성의 행동에 매우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 * *
고급 일식 레스토랑.
일본에 매우 우호적인 타이완답다고나 할까? 실내 인테리어가 100% 일본 스타일이었다. 그 때문에 일본의 어느 레스토랑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무 칸막이로 구분된 창가의 한 테이블.
당우희와 차은성이 마주 보며 앉아 식사 중이었다.
“어때요?”
당우희가 젓가락으로 초밥을 하나 집으며 차은성에게 물었다.
차은성은 말없이 당우희를 보았다.
“맛이요.”
당우희가 새침한 어조로 재차 물었다.
차은성은 피식 웃었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습니다.”
“참나.”
당우희가 은근 실망한 티를 냈다.
“여긴 비싼 곳이라고요. 소위 말하는 저명인사들이 자주 드나드는 시먼역 인근의 맛집 중 한 곳이에요.”
“그런가요.”
차은성은 건성으로 대답하며 미소 국그릇을 들어 조금 마셨다.
꿀꺽.
우동 국물이 생각나는 미소 국물의 맛에 차은성이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한식이 좋은데.’
입맛에 맞지 않았다.
슥.
당우희가 손을 뻗어 장난감처럼 앙증맞은 작은 술잔을 들었다.
“반주로 한 잔 해요.”
당우희가 술잔을 차은성에게 내밀자 차은성이 멈칫했다.
꺼려진다.
전날의 기억 때문에 영 술이 당기지 않는다.
“왜요?”
당우희가 물었다.
술을 한 잔 하자고 권했을 뿐인데, 차은성이 은근 서운하게 만든다.
“별로 안 당깁니다만.”
“매너 없게. 그럼, 뭐. 나 혼자 마시죠.”
당우희가 말과 함께 술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녀가 술잔을 비우는 사이.
차은성은 초밥 하나를 입에 넣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눈에 들어오는 몇몇 손님들.
하나같이 고급 정장 차림이다. 다들 익숙하게 식사 중이었다.
딱히 자신을 감시하는 이가 없어 차은성은 시선을 바로 하며 씹던 초밥을 삼켰다. 그리고 녹차를 마시려고 컵으로 손을 뻗는데.
“이러지 마십시오.”
“비켜!”
“이 새끼가!”
거친 말다툼 소리가 들렸다.
당우희가 빈 술잔을 내려놓다가 멈칫하더니 레스토랑 입구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눈에 보이는 광경에 진한 당황의 감정을 내비쳤다.
“황가 사람들이에요.”
사자방의 장로들 중 한 사람인 황일천의 수하들이라고.
당우희가 돌려 말하며 맞은편에 앉은 차은성을 보았다.
차은성은 천천히 녹차를 마시는 중이었다.
“어쩌죠? 황진동 때문에 우릴 찾는가 봐요.”
당우희가 불안한 기색을 지었다.
차은성은 녹차 잔을 내려놓으며 당우희를 보았다.
“안심하세요. 아무 일 없을 겁니다.”
“하지만…….”
당우희가 말을 흐렸다.
* * *
레스토랑 직원이 서른 초반의 이와 뒤따르는 10여 명의 이들을 가로막았다.
“여기는 저명인사분들이 식사하시는 곳입니다. 그러니 이러시면…….”
직원의 말을 서른 초반의 이, 레이가 잘라 버렸다.
“비켜!”
레이의 기세에 주눅이 든 직원이 주춤거리며 뒷걸음쳤다.
성큼.
레이에 이어 10여 명의 이가 입구를 지나 레스토랑으로 들어섰다.
몇몇 손님이 레스토랑 입구를 돌아보더니 하나둘 눈살을 찌푸리기 시작했다.
입구를 등지고 선 레이와 10여 명의 부하가 레스토랑 안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그러다 레이가 눈살을 찌푸리는 몇몇 손님을 보았다.
대뜸.
“우리는 사자방의 사람들이다!”
레이가 레스토랑이 떠나가라 소리쳤다. 그러자 직원들은 물론이고 손님들이 움찔거렸다.
사자방=삼합회.
다들 그런 등식을 생각하는지 꺼리는 눈빛을 띠었다.
레이의 언행에 당우희가 앉은 의자에서 일어나려 했다.
“가만히 계십시오.”
차은성이 말하며 앉은 의자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당우희가 차은성에게 물었다.
“어쩌려고요?”
“사자방의 명예는 곧 양가의 명옙니다.”
차은성이 말하며 좌로 돌아서더니 곧장 레이와 10여 명의 부하들에게 걸어갔다.
저벅저벅.
낮은 발소리를 들은 레이가 돌아보았다.
천천히 걸어오는 차은성.
레이가 실소했다.
“풋.”
뒤에 서 있던 10여 명의 부하가 걸어오는 차은성을 보고는 너나없이 한마디씩 말하기 시작했다.
“저치 뭐야?”
“어쭈. 멋진 척하는데 그래?”
“꼴에 무슨…….”
10여 명의 부하가 차은성을 비웃었다.
그들의 말을 들은 레이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차은성을 비웃고 있었다.
문득.
“응?”
레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눈에 보이는 차은성이 낯익다.
차은성이 걸어오는 것에 비례하여 거리가 줄어들었다. 덕분에 차은성의 얼굴이 보다 명확하게 보였다.
깜빡깜빡.
레이가 눈을 두서너 번 감았다 뜨며 기억을 더듬었다.
‘분명 본 적이 있는데.’
레이가 내심 중얼거리는 사이.
뒤에 서 있는 부하들 중 몇이 앞으로 나서려 했다.
레이가 알아채고는 오른손을 옆으로 뻗었다.
“멈춰.”
나서려던 몇이 레이를 돌아보았다.
“형님.”
“저희가…….”
레이가 힘주어 말했다.
“가만히 있어!”
나서려던 몇 명은 레이의 말에 움칫움칫하며 의아한 눈빛을 띠었다.
그들은 레이와 걸어오는 차은성을 번갈아 보았다.
* * *
잠시 뒤.
차은성이 레이 앞에 이르러 섰다.
“낯이 익군.”
“나 역시.”
레이가 거침없이 맞대꾸했다.
차은성이 픽 웃었다.
“제법…….”
배짱이 두둑해 보인다.
“이름?”
차은성의 물음에.
“그쪽이 먼저.”
레이가 재차 거침없이 대꾸했다.
차은성이 빙그레 웃었다.
“난 한국인이고 이름은 차은성이라고 하는데. 그쪽은 사자방의 누구지?”
찰나.
“허어억!”
레이가 금방이라도 숨넘어갈 것 같은 다급성을 삼켰다.
순식간에 사색이 되었다.
뒤늦게 차은성이 누구인지 레이가 알아챈 모양이다.
차은성이 다시 물었다.
“그쪽 이름은?”
레이가 황급히 대답하려는데.
“한국인?”
“빵즈가 왜?”
“네가 뭐라고 나서?”
레이의 뒤에 서 있는 부하들이 차은성에게 소리쳤다.
대만의 혐한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발언이었다.
홰액.
레이가 급히 뒤돌아보았다.
“입!”
레이의 서늘한 눈빛에 부하들이 일순 흠칫했다.
“닥쳐!”
레이의 심상치 않은 모습에 부하들이 입을 다물며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뒤돌아보던 시선을 바로 하자마자.
레이가 급히 차은성에게 머리와 상체를 직각으로 깊이 숙였다.
“죄송합니다!”
레이가 목청을 높였다.
그 모습에 부하들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으며 진한 의문의 눈빛을 띠었다.
몇몇 부하는 레이에게 뭐라 묻고 싶었지만, 방금 전의 심상치 않은 레이의 모습에 그만 침묵하고 말았다.
그들은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며 레이와 차은성을 번갈아 봤다.
뭐지?
그들 모두 의아한 눈빛을 띠었다.
형님 격인 레이가 차은성에게 머리와 상체를 직각으로 숙였다.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레이가 아무 이유 없이 저렇게 머리와 상체를 숙일 사람이 아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한국인에게 말이다.
차은성이 숙인 레이를 내려다보았다.
“날 아는 것 같은데.”
“1차 항쟁 때 돌아가신 양용 형님을 가까이에서 모신 적이 있습니다.”
레이의 말에 차은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군.”
“죄송합니다. 계신 줄 알았다면 소란을 피우지 않았을 겁니다.”
레이의 말에 차은성이 말했다.
“여기는 레스토랑이야. 대중이 빈번하게 드나드는 장소지. 그런 장소에 무례하게 난입하여 다짜고짜 사자방 사람이라고 외치다니.”
차은성이 은근 화냈다.
“언제부터 사자방이 그렇게 무례해졌지?”
“죄, 죄송합니다.”
레이가 대답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레스토랑 손님들 한 분, 한 분을 찾아가 정중하게 사과하고 돌아가.”
“예에!”
“그리고 황 장로님의 막내아들 때문에 온 것 같은데. 돌아가서 황 장로님께 내가 아들을 그렇게 만들었다고 말해. 황 장로님의 아들이 아니었다면 그 정도에서 끝나지 않았어.”
“예에에.”
레이의 대답에서 긴장이 묻어났다.
차은성은 천천히 돌아섰다.
걸어가는 발소리에 레이가 조심스럽게 머리를 들었다.
“휴우우우.”
레이가 알아듣기 어려울 정도로 작게 긴 한숨을 쉬었다.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
레이가 숙인 머리와 상체를 바로 하자 부하들 중 몇이 도저히 궁금증을 찾지 못하겠는지 레이의 눈치를 보며 차은성에 관해 물었다.
그러자 레이가 조심스럽게 말해 주었다.
“귀수님이시다.”
찰나.
“흑!”
“허억!”
“끅!”
부하들이 기겁했다.
1차 항쟁 당시 차은성의 활약은 귀수라는 별칭에 그대로 녹아 있다.
부하들이 대경실색한 표정을 지으며 눈을 동그랗게 부릅떴다.
* * *
차은성이 돌아와 다시 의자에 앉자 당우희가 빙긋 미소 지었다.
“역시!”
“날 아는 자였습니다. 그 때문에 조용히 처리할 수 있었습니다.”
차은성의 대꾸에.
“호호호.”
당우희가 웃었다.
“사자방의 방도들에게 귀수는 여전히 전설이네요.”
심장한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