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S의 천재 스파이 (158)
“북경에서 전언이 왔습니다.”
“북경에서?”
“네.”
“무슨 전언이지?”
장년인의 물음에 연하의 장년인이 말하기 시작했다.
“…….”
차츰 장년인의 얼굴이 굳어지며 착잡한 눈빛을 띠기 시작했다.
* * *
시먼역 인근 번화가.
얼핏 보면 거리 풍경이 일본 어느 거리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친일이라고 말해도 무방할 정도로 일본에 매우 우호적인 타이완이다. 그 때문에 국가 전반에 왜색이 짙다.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를 흘리며 당우희가 꽤 폭이 넓은 골목을 걸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오른쪽에서 나란히 걷는 차은성의 왼팔을 오른팔로 꼈다.
그러며 왼손으로 핸드백을 어깨에 고쳐 멨다.
영락없이 데이트를 즐기는 커플의 모습이다.
골목을 오가는 행인들 중 몇 명이.
힐긋힐긋.
당우희와 차은성을 돌아보았다.
―깔끔하고 지적인 정장을 입은 당우희.
캐주얼한 복장의 차은성
어딘가 모르게 언밸런스한 모습이라고 할까?
아마도 그 때문에 오가는 몇몇 행인이 돌아본 것이 아닐까 싶다.
차은성은 매우 곤혹스러웠다.
‘이런!’
약점이 잡혀 당우희에게 질질 끌려가는 중이다.
그런데 당우희가 팔짱을 끼며 마치 점심 데이트 하는 연인과 같은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그 때문에 적잖은 부담감을 느꼈다.
오가는 이들이 힐긋거리는 것이 영 신경 쓰인다. 그리고 팔짱을 낀 것도 은근 불편하다.
당우희가 마치 보란 듯이 의도적으로 연출하는 것 같아 마음 한구석으로 껄끄럽다.
* * *
잠시 뒤.
앞쪽.
왼편에 있는 상가 건물에서 세 사내가 나왔다.
그들은 서로 말을 주고받으며 무심히 우로 돌아섰다.
그중 한 사내.
황진동이 당우희와 차은성을 보는 순간 멈칫하더니 걸음을 멈췄다.
“우희…….”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당혹스러운 눈빛을 띠었다.
뒤따르던 두 남자 역시 멈칫거리며 서더니 당혹스러운 눈으로 당우희와 차은성을 바라보았다.
뭐야?
두 남자가 그런 감정을 내색하더니 급히 황진동을 돌아보았다.
연상인 당우희를 은근 마음에 둔 황진동.
“형님!”
두 남자가 동시에 황진동을 힘주어 불렀다.
“이!”
황진동이 성난 표정을 지으며 당우희가 팔짱을 끼고 있는 차은성을 죽일 듯 노려보았다.
* * *
수십 초 후.
앞을 가로막고 선 황진동과 두 부하.
일면식도 없는 그들이 강한 적대감을 보이는 것에 차은성은 어안이 벙벙했다.
당우희는 안면이 있는 황진동에게 강한 어조로 항의했다.
“이 무슨 무례한 행동이죠! 어서 옆으로 비켜요!”
“당 변호사!”
황진동이 언성을 높이며 차은성을 돌아보았다. 연인을 빼앗긴 남자의 질투 가득한 시선이다.
“백주에 남자의 팔짱을 끼고…….”
황진동이 당우희를 돌아보았다.
여친이 자신 몰래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운 현장을 잡은 남친처럼 황진동이 당우희에게 화냈다.
한마디로 말해 어이 상실이다.
차은성은 황진동의 언행에 살며시 한숨을 쉬었다.
“휴.”
양령과 당우희에게 껄떡대는 놈들이 있다는 말은 들었다. 그런데 한두 놈이 아닌 듯하다.
아무래도 당우희가 팔짱을 끼고 골목을 걸었던 것이 자신에게 남자가 있다는 것을 어필하고 싶어서가 아니었을까?
치근덕대는 남자들 귀에 자신에게 남자가 있다는 말이 들어가거나 그들에게 남자가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 주려던 것은 아니었을까?
차은성은 그런 생각이 들어 가만히 황진동을 지켜보았다.
‘휴우.’
떡 줄 생각은 하지도 않는데, 혼자서 김칫국을 마신 황진동이다.
차은성이 생각하며 지켜보는 동안.
당우희가 황진동과 수여 회에 걸쳐 말다툼했다. 오가는 대화가 가관이다.
황진동이 당우희를 자신의 여자 취급 하며 당우희가 바람을 피운 것으로 현 상황을 몰아갔다.
당우희는 강하게 항의하며 황진동의 일방적인 생각에 동의한 적이 없다고 강하게 언성을 높였다.
“자자, 길에서 언성들 높이지 말고.”
차은성은 일단 말다툼을 멈추게 하려고 중재했는데, 그것이 황진동을 자극하고 말았다.
“넌 뭔데 끼어들어!”
황진동이 차은성에게 매우 거칠게 소리쳤다.
그렇지 않아도 눈에 거슬리는데, 차은성이 끼어드는 것에 황진동이 크게 화냈다. 격해진 마음에 황진동이 광둥어로 매우 빠르게 차은성을 욕했다.
워낙 말하는 속도가 빨라서 차은성은 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돼지 머리라고 말하는 것은 분명하게 들었다.
멍청하고 바보 같다는 뜻을 가진 은어, 돼지 머리.
언어를 배우며 욕을 가장 먼저, 많이 배우게 된다고 했던가?
회화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북경어를 하는 차은성이지만 광둥어는 그리 잘하진 못한다.
중국은 각 지방마다 사투리가 엄청 심해 간혹 중국인들끼리도 상대방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바로 지금 차은성과 황진동처럼 말이다.
당우희가 나서며 황진동에게 엄청 화냈다.
“워챠오!”
차은성은 당우희가 욕하자 깜짝 놀랐다.
한국어로 치면 ‘18’이라고 욕하는 것과 거의 똑같다.
황진동이 대번에 인상을 쓰더니 당우희에게 뭐라 마주 욕하려 하였다.
아무래도 황진동과 당우희 사이에 싸움이 날 것 같아 차은성이 서둘러 재차 끼어들었다.
“그러지들 말고.”
황진동과 당우희 사이에 개입하며 당우희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등 뒤에 두려는데.
“왕빠단!”
황진동이 고함치며 다짜고짜 차은성에게 주먹을 날렸다.
휘이이.
차은성이 예상한 듯 고개를 우로 젖히며 상체를 살짝 낮췄다. 주먹은 차은성의 왼쪽 귓가를 스쳤다.
“조심해요!”
뒤늦게 당우희가 소리쳤다.
차은성은 우로 비켜서며 우측 어깨로 황진동의 가슴을 뒤로 밀었다.
보디체크.
전력을 다하지 않았기에 실린 힘은 그리 강하지 않았다.
“어?”
황진동이 당혹성을 흘리며 뒤로 두 걸음 물러나더니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이 자식이.”
“죽고 싶어.”
황진동의 두 부하가 즉각 차은성에게 달려들었다.
힘껏, 정직하게 뻗는 두 부하의 주먹. 거친 뒷골목의 주먹질에 다름 아니다.
당할 차은성이 아니다. 굳이 피할 필요도 없었다.
차은성은 빠르고 부드럽게 양손으로 두 주먹을 상대했다.
왼쪽 바깥으로 팔뚝을 밀어내고, 아래에서 오른손 바닥으로 팔뚝을 밀어 올렸다.
대번에 두 부하의 주먹질이 무력해지고, 두 부하가 당황하며 무심결에 자세가 흐트러지며 허점을 드러냈다.
“쉬어!”
차은성이 짧게 말하며 두 부하의 옆구리를 두 주먹으로 가격했다.
퍼, 퍽.
연이어 차은성의 주먹이 옆구리에 닿는 찰나.
빙글.
차은성이 손목을 틀었다.
그러자 주먹에 실린 힘이 송곳처럼 두 부하의 옆구리 내로 스며들었다.
“커허억!”
“헉!”
충격받은 폐장이 주는 고통에 두 부하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털썩, 털썩.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러곤 상체를 앞으로 숙이며 몸을 가늘게 떨었다.
부르르.
폐장이 본연의 형태를 잃고 잠시 잠깐 찌그러졌다가 바로 펴지는 과정에서 이는 고통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통스럽다.
두 부하가 그 고통을 지금 단적으로 보여 주었다.
당한 두 부하를 본 황진동이 골목이 떠나가라 소리쳤다.
“죽여 버린다아아!”
치더니 차은성에게 달려들었다.
어디서 배웠는지 모르지만 실전을 중요시하는 홍가권을 황진동이 구사하기 시작했다.
―최근 중국 무술이 허접하다는 소문과 더불어 관련 동영상이 인터넷에서 떠돈다.
하지만 해당 영상에 나오는 중국 무술인들은 하나같이 가짜다.
오리지널 중국 무술가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중국이다.
과거 문화대혁명 당시 중국 내에서 전통 무술가의 씨가 말라 버렸기 때문이다.
차은성은 슬쩍 옆으로 몸을 돌렸다.
자신 역시 홍가권을 배운 터라 황진동이 구사하는 홍가권의 투로를 훤히 안다. 기술 스킬 역시 마찬가지다.
타타탁.
차은성은 손바닥으로 황진동의 팔뚝과 손목을 막았다. 바깥으로 밀어내고 위로 밀어 올리거나 슬쩍 내리눌렀다.
홍가권이 통하지 않는다!
한눈에 훤히 알 수 있는 다툼이다. 그럼에도 황진동은 포기할 줄 몰랐다.
성난 코뿔소처럼 멈추지 않고 줄기차게 차은성을 맹렬하게 공격했다.
차은성이 자세를 가다듬으며 눈을 반짝이더니 일순간 양손을 들어 올렸다.
투, 툭.
팔오금을 접은 양 팔뚝으로 황진동의 양팔을 삽시간에 쳐올린 다음, 황진동의 턱을 향해 양손을 쭈우욱 곧게 뻗었다.
손뼉 치듯이.
매우 신속하게 양손 바닥을 모았다.
쌀밥, 보리밥 할 때처럼.
차은성은 양손 바닥을 붙인 채 황진동의 턱을 위로 밀어 올렸다.
장근이 황진동의 턱을 강하게 압박하자 황진동이 고개를 거의 직각에 가깝게 뒤젖혔다.
―사기종인.
그렇게 불리는 중국 권술의 고급 스킬에 완벽하게 걸린 황진동이었다.
일련의 동작의 시작과 종결이 눈 깜짝할 사이에 이루어졌다. 무섭도록 빨랐다.
차은성이 옆으로 돌아서며 우측 어깨로 황진동을 밀었다.
터엉.
삽시간에 몸의 균형을 잃은 황진동이 뒤로 나동그라졌다.
과당탕.
차은성은 자세를 바로 하며 양팔을 내렸다.
천천히.
차은성이 뒤로 두 걸음 물러나 서며 두 부하를 돌아보았다. 두 부하는 아직도 몸을 가늘게 떨고 있었다.
차은성은 시선을 돌려 황진동을 보았다. 힘겹게 몸을 일으키는 중인 황진동.
“누굽니까?”
차은성이 당우희를 돌아보지 않고 물었다.
그러자 당우희가 재빨리 대답했다.
“황진동이라고 황일천 장로의 셋째 아들이에요.”
듣는 순간.
차은성이 망설임 없이 눈살을 찌푸렸다.
―황일천 장로는 딸보다 어린 첩을 예전에 두었다. 어린 첩이 얼마나 마음에 들었는지 한때는 한시도 곁에서 떼어 놓지 않았었다.
그 결과.
첩이 황일천의 막내아들을 낳았다.
생식 능력이…….
황일천은 그런 막내아들을 애지중지했다. 다른 아들들이 질투하고도 남을 만큼 각별히 아꼈다.
한순간.
차은성이 다급한 눈빛을 번쩍였다.
지켜보는 황진동이 일어나 서며 오른손을 허리 뒤로 돌렸다.
바로 감이 온다.
당우희도 알아챈 듯 황급히 소리쳤다.
“조심해요!”
차은성은 당우희에게 대꾸하지 않았다.
오른손을 왼 소매로 뻗으며 황진동에게 고함쳤다.
“멈춰!”
황진동은 차은성의 경고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허리 뒤에서 나오는 오른손에는 권총이 쥐어져 있었다.
보나 마나다.
살인 충동에 차은성을 사살하려는 것이다.
당우희가 황진동이 총을 쥔 것을 보고는 놀라 자지러졌다.
“꺄아악!”
그녀의 외침이 골목을 찢을 듯이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예의 외침에 차은성의 눈썹이 미미하게 실룩였다.
황진동에게 내뻗은 차은성의 오른손에서
휘이이이.
무엇인가가 낮은 파공성을 흘리며 날아갔다. 속도가 이만저만 빠른 것이 아니다.
바라크의 이빨이라 불리는 송곳니 형태의 고대 나이프가 창졸간에 총을 쥔 황진동의 오른손 등에 정확히 박혔다.
퍽!
동시에.
“악!”
박히는 고통에 황진동이 비명을 지르며 총을 놓았다.
툭.
총이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사이.
바라크의 이빨을 투척한 차은성이 황진동에게 전력 질주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