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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S의 천재 스파이 (152)화 (152/208)

NIS의 천재 스파이 (152)

혼인하지 못한 가난한 이가 대를 잇기 위해 돈을 모은다.

그리고 다른 이에게 돈을 주고 그의 아내를 빌려 아기를 낳은 후.

다시 그에게 아내를 돌려주고 낳은 아이를 길러 집안의 대를 잇게 한다.

또.

며느리를 외간 사내와 혼인시켜 외간 사내를 데릴사위로 삼아, 며느리가 낳은 아이로 하여금 집안의 대를 잇게 한다.

그처럼 집안의 대를 잇기 위한, 참으로 뭐라 말할 수 없는 참담한 풍속이 민간에서 행해졌다.

*    *    *

얼마 후.

다다다다.

몇몇 이가 급히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난간에서 수면을 내려다보던 차은성이 자세를 바로 하며 우를 돌아보았다.

꽤 떨어진 거리에서 바삐 뛰어오는 세 명의 여인.

“은성아!”

제일 앞의 여인이 오른손을 높이 들더니 좌우로 크게 흔들었다.

양승조의 유일한 자식이자 딸 양령.

그녀가 차은성을 바라보며 매우 반가워했다.

그 모습에.

차은성이 피식 웃었다.

“누가 믿겠어. 저런 누나가 대만 국방부 소속 군사 정보국의 요원이라는 걸.”

중얼거리며 차은성이 묘한 눈빛을 띠었다.

―달리 타이완이라 불리는 대만은 상당히 독특한 국가 및 사회 체계를 가지고 있다.

마카오의 경우.

단적으로 말해 형이 삼합회 조직원이고 동생이 마카오 경찰이라고 말할 수 있다.

대만의 경우.

한국 국회에 해당하는 입법원의 의원.

그러니까 한국으로 치면 국회의원인 그들의 상당수가 삼합회의 보스나 조직의 장로들이다.

과거 항쟁 때.

대만 정부의 요청에 대만 삼합회가 적극적으로 응해, 홍콩 삼합회 조직과 전쟁을 벌인 이면에는 그런 속사정이 있다.

양령이 타이완 군사 정보국에 몸담은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는 유일무이한 오빠인 양용의 죽음이고.

둘째는 양령이 열렬한 대만 독립주의자라는 것이며.

셋째는 한때 양령이 죽자 살자 사랑했던 남자가 항쟁 때 홍콩 삼합회에게 살해당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양령을 목표로 한 미남계였을지도 모른다.

의도했건, 하지 않았건. 그것은 이제 와 아무 의미가 없다.

군사 정보국 요원이었던 연인에게 넘어가 덜컥 군사 정보국에 몸담게 된 양령.

항쟁 당시 그녀가 받은 충격은 상당했고. 그 때문에 중국 공산당 정부를 매우 미워한다.

군사 정보국에 적극 몸담게 된 이유 중 하나가 분노와 미움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중국 공산당.

달리 중공 또는 북경이라 불리는 그들의 사주를 받아 항쟁을 벌인 홍콩 삼합회 조직에 대한 양령의 적개심은 매우 깊고 크다.

차은성으로서는 이런저런 이유로 양령과 정보를 교환한 적이 과거 몇 번 있다.

뜻밖에도 타이완 정보 조직이 북한 상층부에 관한 고급 정보를 상당수 가지고 있었고.

한국 NIS는 그 정보를 필요로 하였으며, 대가로 북경 관련 정보를 건네주었다.

한국과 타이완의 대리인으로 나서서 협상한 것이 바로 차은성과 양령이었다.

*    *    *

차은성의 앞에 이르러 선 양령.

“은성아!”

엄청 반가워하며 양손을 옆으로 크게 벌렸다.

그러곤 양승조처럼 차은성을 가슴 깊이 꼬옥 끌어안았다.

‘풋.’

차은성은 자의가 아닌 양령의 뜻에 의해 안기며 내심 고소했다.

‘이거 참.’

중국인 특유의 과장된 인사법이다.

그런데…….

뭉클.

차은성은 순간 양령의 젖가슴이 자신의 가슴에 닿는 촉감에 일순 당황하고 말았다.

‘이런!’

차은성은 급히 양손으로 양령의 좌우 어깨를 잡았다. 그러곤 서둘러 양령을 뒤로 밀어냈다.

“어?”

밀려난 양령이 의아한 눈으로 차은성을 바라보았다.

“은성아!”

“누나. 우린 더 이상 옛날의 그 소년 소녀가 아니야. 다 큰 성인이라고. 그러니까 선을 지켜 줘.”

차은성의 말에.

“까르르르.”

양령이 크게 웃더니 어느새 다가와 뒤에 서 있는 두 심복 부하. 두 여인을 돌아봤다.

“니들 들었니? 은성이가 날 여자로 인지한 거?”

두 여인은 말없이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누나!”

차은성이 힘주어 양령을 불렀다.

“깔깔깔깔.”

양령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아주 우스워 죽겠다는 듯이 크게 웃었다.

“누나! 그만 좀 해!”

자신을 놀리는 양령이다.

그것을 모르지 않기에 차은성이 언성을 높였다.

양령이 그에 웃음을 그치며 미소 띤 얼굴과 눈으로 차은성을 보았다.

“어때?”

양령이 옆으로 돌아서며 양손으로 자신의 허리 라인을 쓸어내렸다.

“이 정도면 끝내주는 몸매지? 응?”

차은성은 살짝 고개를 두어 번 좌우로 젓고는 옆으로 돌아섰다.

못 말리겠다!

차은성은 양손으로 난간을 잡으며 가만히 수면을 내려다보았다.

양령이 재빨리 차은성의 우측으로 다가서며 난간에 기대섰다.

“화났니?”

“…….”

“뭘 그런 걸로 화내.”

“…….”

“흠. 화난 것이 아니면 쑥스러워서?”

“…….”

“그것도 아니면.”

“…….”

“내가 꿈에 나와서 너도 모르게 몽정을 하는 바람에 내 얼굴을 못 보는 거니?”

계속 장난조로 말하며 은근 차은성을 자극하는 양령이었다.

“휴우우.”

차은성이 한숨을 쉬었다.

“장난 좀 그만 쳐. 맞장구쳐 줄 마음의 여유가 난 없어.”

심각한 목소리였다.

양령이 흠칫하더니 기대선 자세를 바로 했다.

그러곤 차은성처럼 양손으로 난간을 잡으며 수면을 내려다보았다.

“미국 애들 때문인 거니?”

“들었나 보네?”

“당연히 들을 수밖에 없지.”

“…….”

“지금 북경, 도쿄, 타이완,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러시아 FSB 등 동북아의 모든 정보기관이 서울을 예의 주시하고 있어.”

“…….”

“전시에서 볼 수 있는 미국의 전략 자산인 SOG가 한국 NIS의 팀장급 요원을 암살하려고 하다가 잡혔단 말이지.”

“…….”

“그런데 놀랍게도 경찰 고위 간부가 그걸 가지회견으로 다 까발렸네.”

양령이 말하며 차은성을 돌아봤다.

“그건 대놓고 CIA를 물 먹이는 거지? 그리고 동북아 각국의 정보기관에게 모종의 메시지를 보내는 거고.”

“…….”

“아니니?”

양령의 물음에 차은성이 말했다.

“너무 나가지 마! 난 그저 CIA 놈들이 나나 어머니 등 다른 사람들을 건드리지 못하게 만들고 싶었을 뿐이야.”

“하긴. 이전 네 팀원들이 그렇게 죽었는데, 다시 팀원들이 그렇게 죽는 것을 보고 싶진 않았겠지.”

“나에 관해 훤히 알고 있네.”

차은성이 양령을 돌아보았다.

“당연히 알고 있지. 유명한 귀수께서는 정보 계통에서…… 게다가 넌 내 동생이자, 어쩌면 미래의 내 남편이 될지도 모르는데. 당연히 관심을 가져야지.”

“누나!”

차은성이 고함쳤다.

“제발 장난 좀 그만 치라고!”

화냈다.

그러자 양령이 히죽 웃었다.

“장난 아닌데.”

은근 차은성을 약 올리고 갖고 노는 양령이다.

씨알도 안 먹힌다.

“내가 말을 말아야지.”

차은성이 고개를 바로 하며 다시 수면을 내려다보았다.

그 모습을 본 양령이 차은성을 따라 시선을 수면으로 주었다.

“뭐가 그렇게 고민인데.”

“…….”

“CIA 애들 때문에?”

“…….”

“세상 무서울 것이 없는 귀수가, 설마 CIA가 두려울 리는 없고. 뭐가 그렇게 고민인 거야?”

양령이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AOA!”

차은성이 툭 던지듯 말하는 순간.

“흑!”

양령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눈을 휘둥그레 떴다.

“본의 아니게 놈들을 내가 그만 자극해 버렸어. 그 때문에 놈들이 CIA의 전략 자산인 SOG로 하여금 날 암살…….”

차은성이 천천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브뤼셀에서의 일, 와히브의 유전, 미 서부에서 빼돌린 세바스찬 박.

자신도 모르게 AOA를 자극했을 법한 일들을 입에 올렸다.

얼마 후.

양령이 차은성을 돌아보았다.

“너!”

“…….”

“미쳤구나!”

“…….”

“아니, 적으로 돌릴 자들이 없어서, 그래, AOA를 적으로 돌려?”

양령은 황당하다는 속내를 내보였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야!”

차은성은 단단히 각오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그자들과 한판 붙으려고?”

양령이 물었다.

“날 죽이려고 하는데 가만히 있을 순 없잖아. ‘죽여 주십시오!’라고 말하며 목을 내밀고 싶진 않아!”

차은성의 대꾸에 양령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

차은성처럼 그녀 역시 정보 계통에 몸담고 있다.

“흠.”

양령이 침음을 흘리며 수면을 내려다보았다.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인 건데?”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놈들이 다 뒤지든가, 내가 죽든가. 양단간에 결판을 내야지.”

이미 각오한 바다!

차은성이 그런 속내를 내보이자 양령이 돌아보았다.

“역시 귀수야. 적도 보통 적들이 아니네. 미국 대통령도 눈치를 본다는 AOA와 전쟁을 하려고 하다니. 그것도 혼자서!”

어이가 없다!

양령이 그런 속내를 내보이며 말했다.

“협상해.”

“협상할 게 아무것도 없어.”

“그래서 죽을 작정으로 전쟁을 하시겠다!”

양령의 말에 차은성이 침묵했다.

“…….”

“휴우. 널 어쩌면 좋니.”

양령은 매우 걱정스러운 눈으로 차은성을 돌아보았다.

그러더니 차은성의 얼굴 우축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 붙였다.

“그 전에 우리 아이 만들까?”

“누나……. 제발! 조오오옴! 빠득!”

차은성이 이를 갈며 양령을 흘겨보았다.

자신의 목숨이 걸린 일인데, 양령의 장난이 지나치다.

“훗.”

양령이 웃으며 왼손을 들어 차은성의 우측 어깨에 척 걸쳤다.

“이왕 죽을 거. 내가…… 아니면 우희 언니도 좋고.”

“하아아아아.”

차은성이 질렸다는 듯 길게 숨을 쉬더니 고개를 좌로 돌렸다.

못 말리겠다!

양령이 차은성의 어깨에서 손을 내리며 정면 허공을 바라보았다.

“혹시…….”

“…….”

“아버지가 양자 입적 관련 말을 하시지 않았니?”

양령의 말에 차은성이 흠칫거렸다.

홱.

차은성은 급히 양령을 돌아보았다.

“그건 어떻게…….”

자신과 의부 양승조만이 아는 일인데 양령이 알고 있다니.

차은성은 매우 당혹스러웠다.

“꽤 되었지, 아마…….”

양령이 눈을 깜빡이며 회상의 눈빛을 띠었다.

“어느 날 저녁.”

“…….”

“아버지가 식사 후에 차 한 잔 하자면서 나와 우희 언니를 불렀어.”

“…….”

“나나 우희 언니는 별생각 없이 아버지와 함께 자리를 했는데. 그 자리에서 아버지가 생각도 못 한 말씀을 하시더라고…….”

차은성은 양령을 보며 호기심을 얼굴과 두 눈동자에 띄웠다.

의부 양승조가 무슨 말을 한 걸까?

양령이 말하며 수면을 내려다보았다.

“……아버지가 은성이 널 양자로 입적시켜…… 소방주가 되게 하고…… 집안의 대를 잇게 하고 싶다고 말씀하셨어. 그리고 나와 우희 언니에게 널…….”

양령의 말에 차은성은 엄청 당황했다.

“무, 무슨 말도 안 되는 그런 말을!”

차은성은 고개를 급히 좌로 돌리며 다른 곳을 보는 척했다.

양령은 그런 차은성을 보며 빙긋 웃었다.

“궁금하지 않니?”

“안 궁금해.”

“과연 그럴까?”

양령이 의미심장한 눈빛을 반짝였다.

“나 같으면 우희 언니와 내가 무슨 대답을 했을지 궁금할 것 같은데.”

양령의 말에 차은성은 못 들은 척, 아무 관심이 없는 척했다.

“나보다 먼저 우희 언니가…….”

양령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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