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S의 천재 스파이 (141)
카페 안의 손님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다 차은성의 눈에 예의 커플이 보였다.
입구 우측 앞쪽.
3, 4미터 떨어진 곳에 야외로 이어지는 자동 유리문이 있고, 문 너머에는 세 개의 테이블과 의자들이 놓여 있었다.
그중 한 야외 테이블에 예의 커플이 서로 마주 보며 앉아 있었다.
시미치를 떼듯.
카페 손님인 척하고 앉아 자신을 곁눈질하고 있었다.
“풋.”
차은성은 어이가 없어 실소하며 천천히 커플에게 걸어갔다.
‘뭐냐? 니네들?’
암살용 무기를 이용해 자신을 죽이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금 카페 손님인 척 앉아 자신을 곁눈질하는 허술함이라니.
차은성은 혼란스러웠다.
‘혹 국외에서…….’
한국이 낯선 것은 아닐까? 그래서 어이없는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닐까?
걸어가며 차은성은 머릿속으로 꽤나 많은 것을 생각했다. 매우 복잡하게.
그사이.
커플은 시선을 바로 하고 서로 말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거리가 있어 커플이 무슨 말을 주고받는지 들리지 않았다.
커플의 입 모양을 볼 수 있다면 독순술로 무슨 말을 주고받는지 알 수 있는데. 커플의 입은 보이지 않았다. 그 때문에 커플의 대화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커플이 자신을 노렸다는 것이다.
차은성은 곧장 야외 테이블과 카페 내부를 구분하는 다른 자동 유리문에 이르렀다.
스르르.
센서와 연동된 유리문이 열리고, 차은성은 곧장 커플이 앉아 있는 테이블로 걸어갔다.
천천히.
차은성이 상의 안쪽에서 지포 라이터를 꺼내더니 오른손에 쥐고 빙글빙글 돌리기 시작했다.
이어.
돌리며 간간이 라이터의 뚜껑을 열었다 닫기를 반복했다.
딸깍, 딸깍.
지포 라이터의 뚜껑이 열렸다가 닫히는 작은 금속성이 이어졌다.
이윽고 차은성이 커플이 앉아 있는 테이블에 이르며 걸음을 멈추고 섰다.
그러자 커플이 사전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차은성을 돌아보았다.
왼쪽에 여자가 앉아 있고, 오른쪽에 남자가 앉아 있다.
차은성은 커플의 중간에 서서 계속 오른손에 쥔 라이터를 빙글빙글 돌리며 뚜껑을 열고 닫기를 반복했다.
여자가 의아한 목소리로 차은성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시죠?”
시치미를 딱 떼고 의아한 눈빛을 띠었다.
남자는 은연중에 긴장한 듯 슬며시 양손을 말아 주먹을 쥐었다.
테이블 때문에 남자의 주먹 쥔 양손이 보이진 않았지만 어깨와 팔뚝의 움직임을 통해 짐작할 수 있었다. 여차하면 그가 자신을 공격할 것이라는 걸.
차은성은 담담하게 물었다.
“니들.”
“…….”
“누구지?”
싸늘한 차은성의 목소리.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여자가 차은성에게 화냈다.
“훗.”
차은성이 실소하며 말을 이었다.
“경찰 부를까?”
차은성의 언급에 여자와 남자가 거의 동시에 흠칫거렸다. 경찰을 꺼리는 게 분명하다.
차은성은 남자를 힐긋 돌아보았다.
“아서.”
말과 함께 라이터를 슬쩍 보여 주었다.
“장난감 아니야. 반경 2미터 내에 있는 모든 것이 한순간에 날아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하며 차은성이 남녀를 번갈아 보았다.
“뭐, 나와 함께 죽고 싶다면야…….”
차은성의 말에 커플이 흠칫흠칫하더니 서로 돌아봤다.
당황한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눈치다.
차은성은 커플을 번갈아 보며 은근 궁금하다는 감정을 내보였다.
“누구나 목숨은 하나뿐이지. 두 사람이 과연 나와 함께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는지. 날 죽이기 위해 자신들의 목숨을 걸 정도로 각오가 남다르다면 상황이 달라지겠지만.”
차은성이 싸늘한 목소리로 재차 말하며 커플을 번갈아 보았다.
“허튼짓할 생각 하지 말고. 천천히, 내가 잘 볼 수 있도록 각자 양손을 테이블에 올려.”
서로를 바라보는 커플은 무언의 대화를 주고받았다.
―어떻게 하지?
두 남녀의 눈동자에서 당혹, 주저 등 몇몇 감정이 나타났다.
차은성은 그들의 결정에 도움을 주고 싶었다.
“내 말이 우습게 들렸나 본데.”
말하며 손에 쥔 라이터를 가슴 높이로 들었다. 그러곤 남녀가 잘 볼 수 있도록 우측면을 보여 주었다.
상단.
아주 작은 빛이 반복적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내가 지금 뚜껑을 열면 바로 폭발해.”
차은성이 싸늘하게 말하며 오른손 엄지로 라이터의 뚜껑을 밀어 올리려 하였다.
그러자…….
“자, 잠깐!”
여자가 급히 말하며 양손을 테이블에 올렸다. 그러자 남자도 어쩔 수 없는지 뒤이어 양손을 테이블에 올렸다.
차은성은 남녀를 번갈아 보며 물었다.
“다시 묻지. 니들 누구야?”
그러자 남자가 차은성을 힐금거리며 대답했다.
“SAC요. 같은 편끼리 이러지 맙시다.”
차은성은 흠칫거리며 놀란 눈빛을 띠었다.
“SAC?”
당혹감에 젖은 목소리로 반문했다.
SAC.
Special Activities Center.
CIA 산하 특수 활동부라 불린다.
소위 말하는 검은 작전이라는 걸 수행하는데.
간단하게 말하면 국제법을 무시하고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일을 전담 처리하는 조직이다.
CIA 대외 작전부와 유사하지만, 하는 일은 더 더럽다.
정보 수집이나 적 내부나 후방에서의 사보타지는 기본이고, 분란 조장을 통해 적 내부 분열을 획책하며, 적 요인의 암살 등.
아주 고약한 일만 전담, 처리한다.
차은성이 여전히 엄지를 라이터 뚜껑에 붙인 채 물었다.
“SOG?”
차은성은 SAC 산하 특수작전 그룹인 SOG를 언급했다.
통상 다섯 개 팀.
그러니까 다섯 개의 SOG가 다섯 대륙을 활동 영역으로 하여 비밀리에 각종 작전을 수행한다.
커플은 아시아를 전담하는 SOG 소속이라고 할 수 있다.
차은성의 반문에 남자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인정했다.
차은성이 그에게 재차 물었다.
“날 노린 이유는?”
“무슨 소리요? 우리가 누구를…….”
남자의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차은성이 거리낌 없이 엄지로 뚜껑을 밀어 올리려 했다.
“자, 잠깐!”
여자가 급히 차은성을 바라보았다.
“우리도 몰라요. 우린 상부 지시에 따라 작전을 수행할 뿐이에요.”
남자가 여자를 흘기며 눈살을 찡그렸다.
대외비의 기밀 정보를 발설하는 것에 남자가 무언으로 여자를 책망했다.
“지시라……. 누구의 지시였지?”
“우리 같은 현장 요원이 그걸 어떻게 알겠어요?”
여자의 말에 차은성이 수긍의 눈빛을 띠었다.
“하긴.”
자신 역시 필드를 뛰는 현장 요원이다.
위험한 작전을 맡기며 최대한 정보를 은폐하려는 것은 기본 중 기본이다.
일일이 현장 필드 요원들에게 상세한 작전 설명을 해 주는 경우는 없다.
대략적인 설명만 해 주고 임무를 맡길 뿐이다.
“좋아.”
차은성이 두 남녀를 번갈아 보았다.
“지금부터 소지한 무기들을 꺼내서 테이블에 올려놔. 특히 핸드백. 빼먹지 말고.”
남자가 차은성을 곁눈질했다.
“우리 동맹인데, 이런 대우는…….”
“훗.”
차은성은 실소했다.
“방금 전까지 날 노렸으면서 잘도 그 입에서 동맹이라는 말이 나오는군.”
차은성은 보란 듯이 엄지로 라이터의 뚜껑을 밀어 올리려 했다.
그러자 여자가 급히 말했다.
“알았어요. 진정해요, 진정.”
남자가 맞은편에 앉은 여자에게 뭐라 말하려는데 차은성이 알아채고는 그에게 툭 던지듯 말했다.
“CIA에 목숨을 바치고 싶으면 얼마든지 그렇게 해.”
차은성은 단호했다. 재차 뚜껑을 밀어 올리려 하자.
“해요! 한다고요.”
여자가 급히 언성을 높이며 소지한 무기들을 서둘러 꺼내기 시작했다.
이내.
그녀가 소지한 무기들을 하나둘 테이블에 내려놓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남자가 잠깐 망설이더니 이젠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지 자신의 무기를 꺼내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커플이 소지한 무기는 꽤 다양했다.
콤팩트한 월터 자동 권총, 탄창, 암살용 나이프, 최루가스 분사용 스프레이, 독가스 앰풀, 핸드백 등.
보기보다 소지한 무기가 다채롭다.
차은성이 여자를 힐금거렸다.
“안경.”
여자가 움찔하며 주저했다.
“벗어서 올려놔.”
차은성은 거침이 없었다.
“휴우.”
여자가 한숨을 쉬더니 안경을 벗어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차은성은 두 남녀를 번갈아 보았다.
“다시 말하는데, 허튼짓할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두 남녀는 서로 바라보며 은연중에 아쉬워하는 감정을 내색했다.
기실.
은근 차은성을 안심시키고, 틈을 보아 남녀 공히 동시에 차은성을 공격하려 했다.
명색이 훈련을 받은 최고의 현장 요원에 속하는데. 이렇게 차은성에게 휘둘려 당하는 것은 자존심상 용납할 수 없었다.
카페에 들어온 것도 그 때문이다. 차은성의 방심을 유도하려고 했었는데. 차은성이 라이터 폭탄을 소지하고 있었을 줄이야.
커플은 자신들이 목숨을 버려 가며 차은성 암살이란 임무를 완수하고 싶진 않았다.
사람의 목숨은 누구나 하나!
자신들을 희생하며 임무를 완수할 정도로 커플은 독하지 않았다. 마음의 각오 역시 되어 있지 않았다.
차은성의 오른손에 들린 라이터.
커플은 무척 신경 쓰였고,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다.
뭔가 알아챈 듯이 경고한 차은성이다. 그 점을 감안하면 돌발적인 상황에 차은성이 대비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커플이 속으로 생각하는 사이.
차은성이 재차 커플을 번갈아 보았다.
“상부와의 연락 루트 및 방법. 그리고 연락 시 암호 코드는?”
차은성의 물음에 커플이 순간 움찔움찔했다.
이내.
그들의 귀에 재촉하는 차은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일을 마친 후 임수를 완수했다고 연락할 거잖아.”
“…….”
“아마추어도 아니고 우리 모두 프론데. 피곤하게 굴지 말라고.”
“…….”
“아, 그리고 거짓말할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아. 정직하게. 그저 아는 것만 털어놓으면 돼. 그런데 허위다?”
차은성이 말을 멈추며 커플을 번갈아 보았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거야.”
차은성이 커플을 죽일 용의가 있음을 감추지 않았다.
그러자 커플이 우거지상을 지으며 입술을 질끈 힘주어 깨물었다.
차은성은 차가운 눈으로 커플을 다시 번갈아 보았다.
“다음 수순!”
스산한 느낌을 주는 차은성의 말에 커플이 공히 함께 눈을 내리감았다.
다음 수순을 모를 수 없다.
* * *
잠시 뒤.
커플이 땅바닥에 돌아앉았다.
서로 한 치의 틈도 없이 등을 밀착했다. 커플의 두 다리는 운동화 끈으로 단단히 묶여 있었다.
학교 운동회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2인 3각처럼.
차은성은 남녀의 다리만 묶었을 뿐, 팔이나 상체는 묶지 않았다.
딱히 묶을 만한, 줄과 같은 장비가 수중에 없었다. 그 때문에 운동화 끝으로 두 남녀의 다리를 단단히 묶을 수밖에 없었다.
둘 중 한 사람이 벌떡 일어나려면 다른 사람의 다리와 묶어진 줄을 풀어야 한다. 그러자면 시간이 걸린다.
차은성은 커플이 자신을 공격하거나 도주를 하려는 시도를 심중 경계했다.
커플은 라이터 폭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순순히 자신의 말을 현재 따르고 있다는 것을 차은성은 충분히 염두에 두었다.
현재 자신은 비무장이라 커플을 상대하기가 마땅치 않다.
그리고 커플이 동시에 자신을 공격하거나, 둘 중 하나가 자신을 공격하여 희생하는 사이, 다른 하나가 도주하는 상황을 차은성은 유념하고 있었다.